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92)
393화 방문자 (2)
“미드얼 행성 분리. 이거 어떻게 한 거냐?”
[…….]블랙 드래곤은 너무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냐? 사람이 묻잖아.”
두 개의 긴 뿔이 달린 저 신은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드래곤은 대답을 신중히 골랐고, 인간신의 이마골이 파이는 것을 보곤 급히 의지를 전했다.
[그것을 왜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군.]“왜냐니? 드래곤이면 알 것 아니냐.”
[신이 모르는 일을 어찌 내게 묻느냐?]“허.”
수호는 헛웃음을 짓고는 이마를 짚었다.
신룡대전에서 겨우 빠져나가 제 한 목숨 건진 녀석이다.
‘정말 모르나?’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다.
미드얼의 행성의 신.
미드얼 행성의 관리자.
그 정도 되면 행성을 어떻게 신계에서 분리시켰는지 알 것 아닌가?
“관리자가 왜 몰라?”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나야…….”
관리자인가?
내가 지구의 관리자가 맞긴 한가?
‘시스템 메시지도 없던데?’
혹여 휘리릭 지나가서 놓친 건 아닐까?
“나 관리자 맞아?”
[…….]말문이 막힌 블랙 드래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녀석은 미쳐서 돌아온 것인가?
정녕 이 인간신의 계략에 빠져 미드얼의 그 많은 드래곤이 목숨을 잃었던가?
“아, 맞는 거 같은데…….”
수호는 자문자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의 신이 되었다.
전체 인구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그래도 여러 인간들의 추앙을 받는 신이다.
이 미드얼 행성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을 얻기 위해 왔나?
인간들을 보살피고 구하기 위해서 오지 않았나.
“진짜 몰라?”
[모른다.]“아, 이거 곤란하네.”
수호는 볼을 긁적였다.
그런 그를 보며 블랙 드래곤은 호기심이 치밀었다.
처음엔 미드얼 행성의 멸망을 위해 그가 찾아온 줄 알았다.
신룡대전에서의 덜 풀린 원한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신의 지나치게 무관심해 보이는 태도를 보면, 원한과 트라우마는 드래곤에게만 남은 모양이었다.
[어찌하여 그것이 궁금한가?]“아, 외통수에 몰렸으니까 그러지.”
“인류 멸망을 막을 길이 없다고.”
7성 던전이 등장하며, 인류가 이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브레이크와 함께 ’군주’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몬스터들을 휘하로 굴복시키는 힘이 있었고, 사냥은 전쟁으로 변질된다.
이것을 견딘 인류가 맞이하는 건 8성 던전.
군주 몬스터가 최종 보스로 있는 8성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그것마저 해내면 브레이크와 함께 끔찍한 악몽이 튀어나온다.
인류가 거대육상군주라 명명한 그것들의 실체는 신계에서 강림한 신수.
신수는 지구에 강림해 여러 군주 몬스터를 거느리며 대규모 군세를 이룬다.
각기 영역을 꿰차고 그곳의 문명을 파괴해 나간다.
인류의 활동 반경은 계속해서 줄어들며, 결국에는 지구의 모든 문명이 파괴되고 원시 상태로 돌아가리라.
그것을 목적으로 강림하는 것이 신수다.
인류는 신격을 지닌 신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만약.
만약 신의 힘을 빌려 신수를 격퇴한다 하여도 끝이 아니다.
신의 ‘개입’으로 인해 죽은 신수는 블랙 포탈을 남긴다.
‘창조신이라 해야 하나?’
신계의 시스템을 구축한 절대자라고 해야 할까?
그가 만들어 놓은 문명지구의 원시화를 위한 장치.
검은 포탈은 신이 ‘개입’할 때를 대비한 ‘안배’다.
검은 포탈은 죽어서 기록만 남은 신을 불러온다.
‘이이제이도 아니고, 참 나.’
죽은 신을 불러와 살아있는 신을 잡는다.
죽음에서 돌아온 신은 죽음 그 자체로 지구를 물들인다.
이른바 침식.
수호는 침식에 이른 지구를 보며 고심했고, 직접 신계로 올라가 이 죽은 신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었다.
‘너무 많아.’
신들의 무덤.
구천엔 신들의 묘지가 너무나 많았고, 자칫 잘못했다간 고대의 신들과 접촉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수많은 무덤 중에 자신의 죽음만을 골라내 처리하는 건 지지부진한 일이었고, 그사이 신이 사라진 지구는 신수들의 난동을 막을 수 없었다.
‘신수를 처리해도 문제다.’
수호의 사제와 기사 임명으로 신의 힘을 나눠받은 G급 각성자가 탄생해 꾸역꾸역 신수들을 처리하며 막고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신수를 사냥하면 블랙 포탈이라는 재앙의 씨앗이 심어지고, 사냥하지 않으면 주변 도시들을 파괴한다.
소모전뿐인 싸움 끝에 인류에게 남는 건, 주도권을 잃어버린 지구와 도시라는 지극히 좁은 생활반경뿐이다.
무엇을 하든 인류를 구할 수 없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멸망의 수순을 걷게 될 것이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너한테 왔겠냐. 안 그러냐?”
[…….]블랙 드래곤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인간신을 보며 생각했다.
원수나 다름없는 이 새끼는 왜 남의 행성에 와서 제 하소연만 하고 있는 것인가?
“다 구할 수 없다는 거야, 나도 알지.”
모든 인류를 구원한다?
수호가 구하려고 하는 것은 단지 목숨이 아니다.
“아주 좆같잖아. 안 그래?”
인간들의 신이 되어 죽음과 삶을 결정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지고 볶든 말든 알아서 하게 냅둬야지.”
누군가의 개입.
정확히는 창조신이 짜놓은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짜놓은 안배대로 행하는 것이 거북하고 혐오스럽다.
신계.
신을 배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큐베이터로서의 지구.
지구에서 탄생한 신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신계에 오른다.
신이 되기 위해 동족을 버려야 한다.
“이거 만든 놈, 변태새끼 아니냐?”
[…….]수호는 본 적 없는 창조신을 욕하며 떠들었고, 드래곤 로드는 그저 침묵했다.
“확, 다 죽여버리고 그냥 뜰까?”
움찔.
블랙 드래곤이 날개를 퍼득거렸다.
“아, 뭘 쫄고 그러냐.”
[…….]“그러고 보니까 너…….”
[무, 무엇이냐?]“진짜 모르냐?”
[나는 모른다.]“아는 거 하나도 없냐?”
수호가 원하는 건 신계가 강요하는 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변태 같은 창조신이 침식 이후에 또 어떤 장치를 숨겨놓았을지 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야누스가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분명 지구5인 미드얼 행성의 독립으로 인해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낸 게 침식이라고 했다.
‘그럼 드래곤들이 자력으로 독립했다는 말인데.’
어떻게 신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를 직접 실행한 드래곤들인데, 지금 로드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너 말야.”
[말하라.]“겁만 많은 줄 알았는데, 아는 것도 없구나.”
[…….]“여기까지 와서 며칠을 날렸는데 얻은 게 없어.”
[그,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내가 기분이 아주 별로야.”
블랙 드래곤이 몸을 구부정하게 숙였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박차올라 날아가버릴 기세였다.
“한 발만 떼 봐. 죽여버릴 테니까.”
[아니, 대체!]블랙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나더러 어쩌자는 것이냐!]버럭하는 드래곤을 보며 수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진짜 아는 거 하나도 없냐?”
[네놈 말대로 겁쟁이에 비겁자인 내가 아는 게 무엇이겠나? 모든 건 에이션트가 행한 일.]“에이션트?”
[최초의 드래곤이자, 최초의 신이 된 고룡이시다!]“넌 결국 모른다는 거네.”
[…….]“너나 나나, 관리자가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참…….”
창조신은 관리자를 키우고 싶었던 것일까, 신계의 주민을 키우고 싶었던 것일까?
후우우웅.
그때 저 멀리서 색색의 드래곤들이 군체를 이루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수호의 눈이 잠깐 반짝였다.
“쟤들 중에 아는 애 있냐?”
[……없다.]신룡대전도 격어보지 못한 드래곤들이다.
그때 겨우 해츨링이던 녀석들 중엔 에이션트의 존안을 보지도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흐음.”
수호는 제법 가까이까지 다가온 드래곤들을 보며 잠깐 고민했으나, 그냥 두기로 하였다.
눈앞의 블랙 드래곤도 그냥 둔다.
괜히 녀석을 처치해서 미드얼 행성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았다.
다 죽어가는 이 행성에 미련은 없다.
위태로운 지구만으로도 버거우니까.
“그냥 갈 테니까, 오크들은 알아서 데려가라.”
[아, 알겠다.]“그럼 다음에 보자.”
[…….]끔찍한 말을 남기고 인간신이 떠났다.
아슬아슬하게 당도한 드래곤들이 그를 뒤쫓는 대신 로드의 안위를 살폈다.
[로드시여!] [어찌된 일입니까?] [저것이 정녕 인간신이 맞습니까?]한마디씩 해오는 드래곤들 사이에서 로드는 그저 침묵했다.
대꾸 없는 질문들이 몇 차례 이어지다 잠잠해지니, 블랙 드래곤 주위엔 행성에 살아남은 드래곤들 전부가 모여 들었다.
[로드께서 인간신을 내쫓았습니까?]로드의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
인간신이 부랴부랴 도망친 것을 보아하니,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다른 드래곤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내뺀 모양새다.
쉴 새 없이 날개를 저어 날아온 드래곤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그리 보였다.
점점 많은 드래곤들이 동조하며 인간신을 추격하려 했다.
그에 드래곤 로드는 침묵을 깰 수밖에 없었다.
[되었다.] [로드시여, 어찌 다 잡은 인간신을 놓아줍니까?]블랙 드래곤은 붉은색 드래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저 붉은 일족은 그 호전성 때문에 가장 먼저 멸족하리라.
락샤샤에 이어 라그낙이 죽었고, 이제 겨우 홀로 남은 레드 일족이다.
[라이쿠.] [예, 로드.] [너는 당장 지구로 가 오크들을 불러들여라.] […….] [어찌 대답이 없느냐?] [영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블랙 드래곤이 움츠렸던 몸을 폈다.
군말 없이 따라야 할 드래곤이 반문을 해온다.
[지구를 발판삼아 신계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닙니까? 그 길을 연 오크들의 마음이 갸륵하지 않습니까?]갸륵하기는 개뿔.
블랙 드래곤이 포효하듯 의지를 전했다.
[그것이 함정임을 어찌 모르느냐? 진정 멸족을 원하는 것이냐?] […….] [당장 불러들여라.] [……그리하겠나이다.]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버릴 것 같은 로드의 기세에 라이쿠가 마지못해 답했다.
[흐음.]노성을 발했던 블랙 드래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기감이 가장 뛰어나기에 그가 먼저 느꼈다.
곧 이어 다른 드래곤들이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개를 치켜 들었다.
[로, 로드시여.]불안한 의지를 전하는 그들이 아니라도 알고 있다.
‘에너지가 멈췄다.’
고갈되고 메말라 가던 행성의 차원에너지가 처음으로 반등해 서서히 증가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멈췄다.
[…….]인간신의 등장에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그 덕에 차원에너지가 갑자기 증가한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어졌다.
‘존재 자체로 에너지를 내뿜는 신이라…….’
차원 에너지.
아니, 창조력을 품은 신의 등장에 드래곤 로드의 고민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