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94)
495화 바다의 신 (1)
간략한 상황보고를 묵묵히 들은 김미소는 곧바로 교통정리를 마쳤다.
“네가 하면 되겠다.”
“네?”
김미소는 당황하는 이소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관리국 시절부터 자신을 따르던 신입 공무원은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큰 길드의 비서실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피난 지휘는 그대로 맡길게.”
“부사장님은요?”
“막으러 가야지.”
“아!”
이소진이 대번에 납득했다.
지금 김미소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보다는 ‘신의 대사제’ 그 자체의 능력이 필요했다.
일본의 침식구역과 호주의 침식구역을 모두 격리한 것이 김미소의 업적이다.
“막을 수 있는 거죠?”
“음, 해봐야지.”
김미소는 썩 자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럼, 계속 수고해.”
“네!”
밖으로 나온 김미소는 따라온 한동수를 불렀다.
“한 이사.”
“넵.”
눈치 빠른 동수는 재빨리 와이번으로 변신했고, 김미소가 훌쩍 뛰어올라 탔다.
“부, 부사장님.”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고상운 박사다.
“수호시로 복귀하시지 그러셨어요?”
당진철과 명진스님, 아키코는 지구로 귀환해 수호시티로 복귀한 터다.
“데려가 주십시오.”
“…….”
고상운 박사가 도울 일이 있을까?
“데려가죠. 어차피 저도 별 도움 안 되는데, 제가 지킬게요.”
동수의 말에 김미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타세요.”
“감사합니다.”
얼른 와이번 동수의 등 위에 올라타는 고상운 박사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자, 갑니다.”
동수가 두툼한 와이번 다리를 폴짝 뛰어 도약해 날갯짓했다.
도시를 떠난 와이번은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고, 곧 드넓은 남대서양을 아래에 두었다.
“조심하셔야 해요.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죽어도 좋습니다.”
대꾸하는 고상운 박사의 얼굴은 희열로 가득했다.
“종말이라면 그 역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는 게 되는 거고, 구원이라면 그 또한 마찬가지 이유가 아닙니까?”
“나나 한 이사는 면역이 있지만, 고 박사님은 침식구역에 닿는 순간 재가 되어 사라질 거예요.”
“압니다. 알아요.”
고상운 박사의 얼굴은 진지했다.
이것은 늙은 연구자의 호기심 충족 때문만은 아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기대감이 전혀 없는 김미소의 얼굴을 보며 고상운이 첨언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시야가 넓은 법이니, 직접적인 힘은 없지만…….”
“아!”
김미소가 탄식했다.
곧 미소 지은 그녀가 고상운 박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교만했네요. 제가.”
“아, 아닙니다.”
김미소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감사해했다.
반신이라 떠받들어지는 존재 중에서도 가장 앞줄에 놓인 김미소다.
어느새 자신의 사고개념이 이토록 변했단 말인가?
‘경계해야 해.’
김미소는 자책했다.
자각하기 전에 피어오른 이 우월감과 선민의식은 반신으로서, 신의 대사제로서 평범한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는 허울을 썼다.
침식지역은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킨다.
면역이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임명을 받은 사제와 기사들뿐.
진정 반신들만이 활보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인간인 고상운 박사를 염려했다. 하지만 그 마음 뒤엔, 인간인 그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나만이 가능하다.
특별한 우리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감사해요. 크게 깨우쳤어요.”
이것이 어찌 자신들만의 문제일까?
인간들 모두의 문제다.
박수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땠을까?
‘고 박사와 무엇이 다르다고.’
김미소는 겸손을 떠올리며 깊이 고개 숙였고, 고상운 박사는 당황해 연신 손사래 쳤다.
“아, 아닙니다. 말만 거창하지, 그저 이 두 눈에 담고 싶은 욕심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박사님의 그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에요.”
“허허, 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쐐애애애액.
창공을 가르는 와이번 동수는 자신의 등 위에 타서 서로 겸양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르릉거렸다.
“겸손 배틀은 그만하시구, 이제 다 왔어요.”
눈앞에 검은 선이 보였다.
선은 곧 섬처럼 보였고, 얼핏 바다 위에 올려둔 검은 바둑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거대한 크기.
거의 근접해 상공에서 바라보니 섬 수준이 아니다.
“으음.”
“맙소사.”
고상운 박사는 이 기이한 현상을 두 눈으로 보고 기함했다.
일본이나 호주 구역의 침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고상운 박사를 태웠기에 침식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계지점을 맴돌며 비행했다.
“더 접근하지 마세요.”
김미소는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훌쩍 뛰어내렸다.
바람에 휩싸인 그녀의 몸은 그대로 부유해 침식구역의 중앙으로 향했다.
고상운은 홀린 듯 침식의 경계구역을 보았다.
“한 이사님. 조금만 더 내려가실 수 있습니까?”
“네, 너무 고개 내밀지 마세요. 떨어지시면 진짜 죽어요.”
후우우웅.
천천히 날갯짓해 고도를 내린 동수는 경계지점까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세상이 나뉜 것 같군요. 아니, 지구를 우주가 베어먹은 것 같이……. 아니, 지구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 고상운은 박사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쏴아아아아.
경계 근처의 바다는 폭포처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침식구역과 바다 사이에 2~3미터 정도의 빈 공간이 있었는데, 마치 바다와 침식이 서로 자력이 있어 밀어내듯 일정한 공기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역시, 여기도 0과 1이군요.”
G등급 각성자들에겐 반쯤 짐덩이 취급을 받지만 고상운도 고위급 각성자다. 시력이 일반의 영역을 넘어선 그의 시선이 경계를 훑었다.
‘이진수다. 저걸 문자로 변환해보면 어떨까?’
0과 1은 지금도 미친 듯이 서로 숫자를 바꿔가며 어지럽게 변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집중력을 높여봤으나, 숫자들의 변화 주기나 규칙을 단시간에 찾아내기 어려워 보였다.
‘변화만 좀 느리면…….’
0과 1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의 숫자도 끊임없이 무작위로 변하고 있기에 더욱이 관측이 어려웠다.
‘아, 이렇게 하면?’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에 동수의 등을 두드렸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G급인 한동수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한 이사. 저 경계면의 숫자 보입니까?”
“이진수요? 보이죠.”
“영상기억으로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음? 되긴 되는데 전체는 어렵죠.”
넓은 시야로 저 바다의 경계를 담아서 영상으로 변환해봐야 확대해도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괜찮습니다. 숫자가 보이도록 영상으로 변환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한데 범위가 좁죠. 어딜 할까요?”
“저기부터 30초 정도씩 담아 주십시오.”
“넵.”
세로로 찢어진 와이번 동수의 눈알이 경계면을 향해 시야를 집중했다.
초점이 달라진 시야는 바다의 경계를 크게 확대해 눈에 담았다. 이 정도면 ‘영상기억’ 스킬을 이용해 변환해도 숫자가 남는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정신없이 변하는 그 숫자들을 담았다.
30초 정도 후에 한 번 눈을 감았다 뜨곤, 또 옆으로 옮겨 시야에 담았다.
“잘하고 있습니다.”
고상운 박사는 동수를 독려하며 저 바다 아래를 보았다.
침식과 바다가 자력으로 서로를 밀어낼 일은 없으니, 이 기현상은 모두 저 침식구역 중앙에 떠 있는 부사장 박준호의 능력에서 기인하리라.
‘이 넓은 바다를…….’
사제로 임명되며 물의 힘을 깨우친 박준호다.
아무리 물을 다룬다지만 이 어마어마한 면적의 바다가 주는 압력을 견디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철썩.
문제는 지금도 몇몇 길 잃은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튀어 올라 침식구역에 돌진하는 데 있었다.
츠츠츳.
검은 구역에 닿자마자 사라지며 흡수되어버린 물고기들.
표면의 둥근 침식구역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바다 아래 잠긴 반구형의 침식구역은 어마어마한 면적.
지금처럼 바다가 닿지 않게 공간을 틔우는 정도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예 격리시켜야 할 터인데.’
침식구역에 더 이상의 생명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완전한 격리를 이뤄야 할 터인데, 대사제 김미소 부사장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어지간한 대도시보다 더 큰 면적인데 김미소 부사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최대한 버티기라도…….’
박준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는데 지금도 겨우겨우 버티는 수준 같았다.
“벌써 사흘이니…….”
지구로 귀환하니 바다에 침식이 생겨난 지 3일이나 지나 있었다.
‘저 침식과 지구가 교차하는 지점의 이진수에 비밀이 있을 터다.’
늘상 이 세상을 게임에 비유해온 고상운 박사다.
이것이 정말 그의 주장대로 게임 같은 가상현실이라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오류로 인해 화면이 깨어진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이 없지만, 고상운 박사는 추측을 계속하며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조사해 의견에 힘을 보탤 뿐이다.
고상운 박사는 조용히 응원하며 자신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
휘이이잉.
바람을 딛고 선 최수영은 하늘로 향했던 손을 모았다.
위이이잉!
바람결에 실려 온 조화력이 그녀의 손에 가득이다.
바람을 타고 내려온 그녀가 박준호의 앞에 섰다.
“으으으.”
꽉 깨문 이 사이로 벅찬 신음을 뱉으며 박준호는 버티고 있었다.
이미 허옇게 부르튼 입술 주위엔 마른 피딱지가 가득이고, 쭈뼛 솟은 머리는 감전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
파파팟.
최수영이 조화력을 건넸다.
바람덩어리의 모양이었던 조화력의 기운은 박준호에게 흡수되어 힘을 보탰다.
“크흠.”
충만한 조화력에 준호가 더 힘을 끌어올려 바다를 밀어냈다.
지금도 조금씩 해양 몬스터나 어류가 유입되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침식구역이 커지고 있다.
‘후, 언제 오냐?’
김미소 부사장이든, 형이든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신에겐 이 무거운 사태를 해결할 힘이 없다.
그저 바닷물을 밀어내 최대한 침식구역과 떨어트려 놓는 미봉책뿐.
“조금만 더 힘내세요.”
최수영의 응원에 대꾸할 힘이 없다.
말하려 입을 벌렸다간 왈칵 피를 쏟아낼 것 같다.
그저 감사의 눈빛만 주었다.
그녀가 나눠주는 조화력이 아니었으면 고작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터다.
“어?”
최수영의 놀람에 박준호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알을 굴렸다.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후, 시발. 됐다.’
김미소다.
수호 길드 2인자가 돌아왔다.
박준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드디어 무거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것도, 자신 외에 더는 대안이 없다는 것도, 한낱 인간이 버티기엔 너무 과중한 압박이다.
기대감이 가득한 박준호의 시선을 받은 김미소는 서둘러 조화력을 끌어와 그에게 들이부었다.
조화력.
생명의 에너지는 박준호에게 흡수되어, 여기저기 무리가 가던 그의 몸을 빠르게 안정화했다.
기운이 충만해지니, 바닷물을 밀어내는 데 한결 수월하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어떻게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지금도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박준호의 입에서 나온 빠른 음성은 잔뜩 갈라져 있었다. 삼 일 만에 말다운 말을 했으니 그럴 만했다.
“제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에요.”
박준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도 겨우 버티고 있건만.
“하지만 신을 모셔올 수는 있어요.”
“빠, 빨리 부탁드립니다.”
“시일이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 부사장님이 버텨주시는수밖에 없어요.”
박준호의 눈빛이 흔들렸으나 곧 평정을 찾았다.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서두르죠.”
박준호는 다시 이를 깨물었다.
김미소는 박준호의 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언니.”
“수영아.”
김미소는 파리한 안색의 최수영을 보며 대견한 듯 눈웃음 지었다.
“이곳에 신전을 세울 거야.”
“응?”
“제법 시간이 걸릴 거야. 그때까지 박 부사장이 버텨야 해.”
“내가 도울 거야.”
“너 하나로는 안 돼. 모든 사제들을 불러와.”
지금은 세계에 퍼진 신급 군주의 사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구에 뚫린 이 거대한 구멍을 메우지 못하면, 몇 개 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인류 자체가 멸망의 수순을 걸을 터다.
“알겠어.”
“항상 고맙다.”
김미소는 즉시 조화력을 끌어올렸다.
충만한 생명의 기운.
그분께 대사제로 임명되며, 의식 속에 저절로 스며든 몇 개의 스킬.
츠츠츳.
초록빛 나무정령. 생명의 기운들이 모여 형태를 빚었다.
‘이곳에 재단을 지어 당신을 기리니, 부디 강림하시어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파파팟.
김미소가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았다.
은은한 광채가 그녀의 주위를 감싸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숭배자들이 재단을 만들어 그들의 신을 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