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83)
84화 – 길드 레벨 제로! (2)
새까맣게 몰려온 몬스터.
그들 틈에 몇몇 뱀파이어도 모습을 보인다.
수호는 성벽 위에 서서 가만히 그들을 보았다.
묵묵히 시선을 고정한 모습이 비장해 보이기도 했고, 묵묵해 보이기도 했다.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직원은 수호의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얼떨결에 물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그냥 참, 많이도 왔네.”
“예?”
“많이 온 것 같다고요.”
“그게 다예요?”
“음, 경험치 좀 받겠다 싶네요.”
“아, 하하…….”
괜히 물었다.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답변.
13지부 공무원이 어색하게 웃고 말자 수호가 되물었다.
“아저씨는 무슨 기분이에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하하.”
박수호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조금 안심이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긴 매한가지. 그런 두려움에도 그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다.
“내 땅에서 사람 죽으면 기분 찝찝하죠. 걱정 마요.”
“무슨 작전이나 계획 있으세요?”
“계획이요?”
수호는 저 멀리서 몰려오는 몬스터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쓸어버릴까, 태워버릴까.
뭐가 됐든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행위다.
“뭐, 그냥 좀 더 가까이 오면 한번 묻죠.”
“예?”
“음. 적당하네요. 너무 가까우면 또 그렇죠?”
던전처럼 사라질 공간이 아니라 시체가 남을 테니까.
“갔다올게요.”
“넵. 화이팅입니다.”
휘리릭.
수호의 몸이 갈색 연기로 휩싸이더니 매로 변해 날아올랐다.
슈아아악.
힘찬 날개짓으로 날아가는 매를 향하는 카메라 화면에 평야를 가득 채운 몬스터 무리가 담기자 다시 식은땀이 흘렀다.
수만은 될 듯한 괴수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 압도적인 규모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누굴 붙잡고…….’
자신은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가?
지금 이 카메라에서 찍힌 영상이 송출되는 곳은 다름 아닌 청와대 상황실과 방위군 지휘실.
그 너머에 앉아 지켜보고 있을 고위급 인사들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괜히 실없는 잡담을 했다.
꾸구구궁!
심상찮은 파열음과 함께 매가 날아오르자 그 아래에 있는 땅들이 폭격을 맞은 듯 뒤흔들리고 솟구치며 난리를 피웠다.
쿠우우우웅!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던 몬스터들이 딛고 섰던 땅이 폭삭 주저앉았다.
구구구궁!
뒤늦은 지진이 수호 길드 성을 훑고 지나갔다.
흔들리는 지축에 나무들이 떨었고, 창이 깨지는 곳도 있었다.
“햐, 이거 뭐 영화 보는 것 같네.”
나무성벽 위에 올라 구경하던 길드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호가 던전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 봤지, 실제 어떻게 싸우는지는 처음 보는 그들이다.
몇 번 함께했다고 익숙한 최수영만이 묵묵히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슈아아악!
초토화되어버린 필드의 상공을 활강하던 매가 선회해 돌아왔다.
“웃차!”
착지 전에 사람으로 변해 내려선 그가 손짓하자, 입구가 없던 북쪽 벽의 나무 두엇이 비틀리더니 틈을 만들어냈다.
“다들 나갔다 와라.”
“아우우우우!”
“쿠어어어!”
늑대들이 뛰었고, 곰과 토끼도 깡충거리며 뛰어갔다.
“쿠우, 쿠우!”
“우끼기.”
거친 숨의 멧돼지도 돌진했고, 그 위에 탄 원숭이도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저었다.
야수들이 일거에 달려들어 숨줄이 붙은 몬스터들을 모조리 물어죽이기 시작했다.
“와, 토순이 봐. 덩치가 커졌어.”
온순하던 검은 토끼는 곰보다 커진 덩치로 오우거와 주먹을 주고받고 있었다.
평소 숲에선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야성적이고 잔인한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하면서도 침묵했다.
몬스터 무리 중에는 흡혈귀들도 있었으나, 무슨 영문인지 야수들의 공격에 맥도 못 추고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쑥쑥 커라.”
상대적으로 저렙의 야수들 중에는 단번에 레벨이 오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특히 집단으로 달려들어 사냥에 나서는 고양이 무리의 레벨업이 빨랐다.
그러고 보니 강원도로도 몬스터 무리가 꽤 진군했다고 했으니, 이참에 야수들도 더 데려와야겠다 싶었다.
“…….”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아주 잠깐의 딜레이와 함께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부산은 서울과 워낙에 거리가 있기 때문인지 방송에서 연일 떠드는 개성발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체감이 덜했다.
“우성아. 늦어서 미안.”
“아녜요.”
매일 지각하는 형이라 따져봐야 그만 피곤하다.
이우성은 편의점 교대를 마치고 해변가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켜고 연일 업데이트 되는 속보를 체크하던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기록하는 의미가 있나.”
이우성.
아니, 이성우는 지난 50번의 회귀에서 대부분 일정하게 일어났던 사건들이 뒤죽박죽이 된 지금의 상황이 몹시 불만족스러웠다.
큼지막한 사건들의 발생시기가 전부 엇나가며 그 결과 또한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미래가 뒤죽박죽이면 회귀자의 이점이 있겠는가.
이렇게 기록이야 해두지만, 다음번 회귀에서 또 달라지면 의미가 없다.
기록은 자연스럽게 사건 중심이 아니라 박수호라는 개인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초월적인 힘이 있다면 미래가 불안하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 초월적 힘의 근원과 획득 지점을 알아야 한다.
노트는 미래일기에서 박수호의 관찰일지로 바뀐 지 오래다.
“이 새낀 진짜 회귀자는 아니네.”
놈도 미래를 모르는 게 확실했다.
그러니 수호 길드가 포위된 지금 상황에 한가하게 던전이나 돌고 있지.
7성 던전도 3분에 끝내는 놈이 겨우 5성 던전에 들어가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게 우습다.
“이번엔 진짜 서울 후퇴네. 일이 이렇게 되네.”
재밌다.
본래 대한민국은 의정부발의 7성 던전이 터지며 리치들의 공격을 받는다. 좀비와 언데드들의 공격에 버티다가 후퇴하게 되는 게 원래 시나리오.
개성발 7성 던전의 뱀파이어는 원래 북으로 진군해 평양을 영토로 삼았었다. 그때 이미 서울은 리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이성우는 뉴스 탭을 몇 번 넘겨 해외소식을 살폈다.
“타이베이가 벌써 터지네. 텍사스도 곧이고.”
7성 던전이 이래서 까다롭다.
6성 던전까지는 외계종의 지구 상륙인 느낌이라면, 7성 던전부터는 외계군대의 지구 침략처럼 변한다.
“슬슬 골 때리는 군주가 나올 텐데.”
차이점은 군주의 출현.
종이 다른 몬스터 무리를 군대로 아우를 수 있는 절대적 카리스마의 상위 몬스터.
그 자체로도 위협적인 종인 여러 몬스터들을 하나의 체계로 아울러 군대화시킬 수 있는 지성을 가진 존재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파괴될 것이고, 지구의 많은 땅들이 몬스터들의 세력으로 넘어갈 것이다.
“박수호. 어떻게 막을 테냐?”
웃음이 났다.
이 꼬이고 꼬인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리치 던전을 브레이크 이전에 소멸시켰으나 뱀파이어 던전이 이미 터져 몬스터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8성 최악의 몬스터 두꺼비군주보다 인류에게 더 까다로운 몬스터.
이제 서울은 한계다.
무너지는 댐을 한 손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자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었다면 굳이 자신이 세력 기반을 찾아다니지도, 동료들을 키워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 박수호가 수호 길드로 돌아왔다는 속보가 떴다.
“어디 중계해주는 데 없나.”
이리저리 찾아 보니, 공중파 중 하나가 서울 북쪽 게이트에서 멀리 수호 길드를 찍고 있었다. 드론뷰로 보이는 화면에 몬스터들이 진군해오는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했으나, 아직 대중에 공개할 생각은 없는지 방송 대부분을 아나운서 얼굴이 비춰졌다.
“한국은 이래서 안 돼.”
이 미친 나라는 세계가 멸망 직전인데도 힘의 결집을 마치지 못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이 강력한 통제력으로 모든 힘을 중앙정부로 재편하고 있는데도, 이 나라는 사분오열되어 길드라는 이름의 대기업들이 권력을 나누고 있다.
아니, 적극 이용했다. 서울을 13구역으로 쪼개어 방위를 분담한다지만, 실질적인 자치권 인정이나 다를 바 없다.
전쟁은 사업이 되어버렸고, 국가비상사태에 각성자 전력을 강제징집하지 못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을 비롯해 몇몇 나라 뿐일 것이다.
이 나라는 이미 길드라는 이름의 소국들로 사분오열된 지 오래다.
지난 50번의 회귀로 그 내막을 전부 알고 있는 이성우의 입장에서는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이 구도를 바꾸기 위해 몇 번 노력은 해봤으나 결국 포기했다.
나누어진 권력은 위기상황에서도 좀처럼 하나로 뭉치기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하나로 결집된 일본으로 일찌감치 건너가 내부에서부터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박수호의 등장으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제와 억울하진 않다.
이번 생은 어차피 망했고, 다음 생에 그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아등바등 발버둥 쳐 봐라.”
치열한 현장에서 한발 비껴 서서 이렇게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구나.
벤치에 앉은 그는 휴대폰을 보고 한참을 그렇게 실없이 웃었다.
*청와대 비상 상황실.
“이게 말이 됩니까! 서울이 아작 나게 생겼어요!”
“기다려봅시다.”
“더 기다리다가 놈들이 코앞까지 옵니다. 벌써 흡혈귀 하나 발견되었다지 않습니까!”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이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불과 5시간 전 타이베이가 뱀파이어들에게 점령당해서다.
놈들은 일반적인 물리력으로는 대항할 수도 없어 화력무기가 무용지물이었으며, 그나마 통하는 화염마법도 고위급 뱀파이어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높은 등급의 각성자들이 은으로 된 무기를 들고 맞설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신성력을 가진 각성자들의 스킬이 필요한데, 세계적으로 뒤져도 100명도 되지 않는 그들은 불행히 서울에 한 명도 없다.
“지금 당장 핵 쏴야 합니다.”
“아니, 핵이 무슨 만능입니까? 뱀파이어 놈들이 핵 맞아도 안 죽으면 어쩝니까?”
“그건 그때 돼서 생각해봐야 할 것 아니오!”
“어허! 박 차관, 말 가려서 하시오!”
“아니, 시발 내가 말 가리게 생겼소? 당장 타이베이가 어떻게 넘어갔는지 알잖소? 이제 저놈들은 단순한 몬스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도시에 숨어든 뱀파이어들이 시티의 기득권들을 암살해버렸다.
타이베이 시장이 그렇게 죽고, 도시의 명령체계가 붕괴되고,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 타이베이 1할을 날려버렸다.
평정심을 잃은 사람들이 고성을 주고받았다.
뱀파이어가 숨어들면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것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경비 인력도 최상의 각성자 전력으로 꾸려야 할 판.
“후, 답답합니다. 지금 당장 국가소속 고위각성자들부터 소집해야 합니다!”
작전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경호인력부터 충원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참다못한 류담 대통령의 한마디에 눈치받은 박 차관이 궁색한 변명을 이었다.
“아니, 대통령님의 안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아닙니까?”
“기다려 봅시다.”
“…….”
하필 이럴 때에 12개 길드의 선발대와 국가 최고 전력인 77특공대 모두 던전 공략에 나서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죄다 6성 던전 레이드에 나섰는지라 언제 귀환할지 특정할 수 없었다.
“박수호라도 여기 소집 하시지요.”
교통부 이 장관이 혀를 찼다.
“무슨 망발입니까?”
“대한민국 위기상황입니다. 한국 최고 각성자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허울 좋은 핑계다.
“어허, 수호 길드와 맺은 조약은 다른 길드와 맺은 방위조약하고 달라요.”
“아니, 국가 비상사태 아닙니까! 나라가 있어야 길드가 있지! 이기적으로 제 땅만 지킨다고 할 일입니까?”
“그 땅이 지금 몬스터 진군로요.”
한창 불안감에 고성이 오가는 그때 비서실장이 나섰다.
“영상 준비되었습니다.”
“다들 조용하세요.”
대통령이 회의실 스크린에 뜨는 수호 길드 실황중계에 시선을 주었다.
“보고 판단합시다.”
소형전술핵 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가 비상대기중이다.
박수호가 저 몬스터 대군을 막는 데 실패하면 즉시 이륙할 것이다.
박수호가 해내든 말든, 정부는 대응시간을 번다.
“…….”
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고, 비상 상황본부는 해결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