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92)
93화 신라 길드 (2)
“남의 사냥터잖아.”
“어, 으음.”
김미소는 생각을 거듭했고 말을 신중히 골랐다.
“많은 시민들이 집을 잃을 거예요.”
“대장을 잘못 만난 무리는 항상 위태롭지.”
김미소는 생각했다.
크게 오해를 했구나.
그동안 수호를 움직인건 박애주의 따위가 아니다.
몬스터 대군이 향하는 길목에 수호길드의 영역이 있어 그들을 해치웠을 뿐이다.
“사장님은 사냥 안 하세요?”
“하고 싶어지면 하지.”
몇번만 더 단계가 오르면 S등급이다.
기대는 되지만 급하진 않다.
지금도 지구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는데 뭐에 쫓기는 것마냥 굳이?
지금은 적당히 수하들의 성장을 기다릴 뿐이다.
자신이 집을 비워도 충분히 이곳의 안전을 보장할 만큼. 때가되면 아루카행성을 탐험하러 갈거다.
“또 집을 비울 순 없잖아?”
이거구나!
김미소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위험하지 않아요.”
“응?”
“사장님 가셔도 A급 용병만 다섯이에요. 아니, 저까지 여섯이죠. 유사시에 어느 정도 버틸 여력은 있어요.”
“약하잖아.”
“…….”
기준을 사장님한테 잡으니까 그렇죠.
“언제까지 저희가 사장님 발목을 잡을 순 없잖아요? 아직도 사장님이 여기저기 편지 쓰듯 낙서한 게 보고되고 있어요. 이번 던전도 그럴지도 모르죠.”
“그건 천천히 하면 돼.”
“어디 멀리 가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겨우 6성 던전이데 며칠씩 걸리고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근데 보스만 잡기 아깝잖아?”
자신의 영역도 아닌데 남의 사냥터까지 가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데.
남의 집 앞마당에 똥만 치워주고 오는 건 사양이다.
“이참에 야수들을 좀 키우는 게 어때요? 일곰이와 몇몇 빼면 사실 큰 전력이 안 되잖아요?”
야옹이들은 여전히 F급도 못 된다.
차원에너지 측정기에 1000의 수치도 못 넘는다는 뜻. 그냥 길냥이와 다를 바 없는 녀석들이다.
“뭘 모르는 소리군. 모두가 전력일 필요는 없지.”
그런 잣대면 수호길드의 비전투원들도 전부 전투훈련을 해야 한다.
“변신 후유증 이거 생각보다 크다고.”
레벨이 엇비슷하기만 해도 자아가 뒤섞인다. 아직도 비룡이와는 한 번도 변신하지 않은 이유가 별게 없다.
비룡의 레벨이 높아서다.
변하는 건 수호에게 있어 거부감이 드는 감정이다.
변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난 세월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애들 성장을 막는 건 너무하잖아요.”
“으음.”
“굳이 그런 게 부담스럽다면 변신 안 하시면 되잖아요?”
“오오.”
수호가 새삼스런 눈으로 김미소를 보았다.
“설득력 있었어.”
변신해 봐야 단신.
그 혼자 힘을 모아 강해지는 것보다 야수들 여럿이 강해지는 게 더 낫다.
“좋아, 손에 쥔 거나 가져와 봐.”
“……네.”
수호가 계약서를 쭉 훑었다.
“이거 장비들은 뭐냐?”
“소형혈석엔진부터 차원산업에 필요한 기초 장비들이에요.”
배터리기술의 현신을 가져온 혈석은 차원산업의 핵심재원이다.
혈석을 에너지원 삼아 작동하는 장비들은 주변에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자동차를 굴러가게 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고.
드론의 비행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다못해 화물과 사람을 싣고도 수 시간 넘게 비행하는 진보를 이뤘다.
지금 수호시티에 설치된 발전기부터, 정수시설의 동력원까지 모조리 혈석엔진이 쓰인다.
신라길드로 부터 양도받을 장비는 초대형 정밀 3D프린터부터 초정밀 밀링, 용접 기계 등, 혈석 기계장비를 만드는 기초가 되는 여러 장비들.
이 정도면 거의 연구소를 차릴 수준이다.
“이것만 있으면 발전기 안 사고 이제 만들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기술자들이 있다면요.”
“흐음.”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좋은데?”
수호의 긍정적 반응에 김미소가 반색했다.
“각 기업들의 핵심보안장비라 어지간하면 얻어내기 힘든 거예요.”
이번엔 신라길드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 얻어낼 수 있었다.
“이걸로 자동차 같은 것도 만들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그 한마디가 수호의 결정을 도왔다.
“실력 좋은 장인으로 알아봐.”
계약서를 돌려주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난 애들 좀 키워 올 테니까.”
6성 던전이면 A급까진 금방금방 자란다.
한둘이 독식하면 S급 까지 노릴 수 있지만 이번엔 그냥 골고루 키워줄 생각이다.
수호시티의 영역이 넓어졌고, 몇 명의 용병이 관리하는 것보단 차라리 야수들이 양적으로 더 성장하는 게 낫다 싶었다.
“이왕이면 맹수가 나오는 던전이었으면 좋겠는데.”
넓은 땅을 얻었으니 새 식구를 채우긴 충분했다.
“당장 준비하겠어요.”
김미소가 기쁜 마음으로 현장지원팀 서민수를 호출했다.
*“타시죠.”
“이야, 서 팀장 이런 것도 운전할 줄 알았어?”
“이래보여도 포탈관리팀 에이스였습니다. 하하.”
너스레 떨 것도 없는 게 수송드론 운전은 어지간한 어플 조작 수준이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었다.
서민수 외에도 현장지원팀 스텝이 셋 더 있었다.
첫 던전지원이 어쩌다보니 사장님 던전공략이 되어버린 신입사원들이었다.
부우웅.
수송드론이 살짝 떠올랐다.
배웅하는 길드 사람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네, 다녀오세요.”
“늬들은 순번 정해서 돌아다니고.”
“걱정 마.”
준호가 가슴을 탕탕 쳤다.
“족발집 얼른 장사 시작하라 그래.”
“네, 다녀오시면 바로 맛 보실 수 있게 할게요.”
수호시티의 비어 있던 건물들에 여러 가게가 들어섰는데 첫 번째로 들어온 곳이 족발집이다.
어디 시장에서 30년 장사하시던 분을 어렵게 모셨다는데…….
“여긴 걱정 말고 얼른 다녀오세요.”
“음, 좋아. 출발하지.”
“넵.”
부우우웅.
수송드론이 날아올랐고 아직은 휑한 수호시티를 아래로 두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들판을 늑대 새끼들 몇이 뛰어다녔다.
“잘 노네.”
가장 개체수가 많은 늑대들은 벌써 번식에 들어가 새끼를 깠다.
그 모습을 수호가 흐뭇하게 바라봤다.
드론이 곧 남문에 다다르자 출입관리를 위해 상주하는 직원 셋과 보디가드 겸 수문장 역할의 일곰이가 보였다.
부부부부붕.
수송드론을 보고 손을 흔드는 곰을 보고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디서 암놈하나 모셔 와야 하는데.”
일곰이 이후 곰을 만나지 못했다.
외로운지 요즘 조금씩 포악해져가는 녀석을 보니 얼른 이곰이를 들여야겠다 마음먹었다.
“물 꽤 찼네.”
“그렇죠. 중랑천이 아예 반토막이 났으니까요.”
바닥이 꺼졌으니 어디서 물이 모이고 있다 싶었는데 반토막 난 중랑천 물이 해자를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호수 같은 크기의 해자가 시티를 빙 둘렀으니 수위를 다 채우려면 아직 며칠이 더 걸릴 것 같았다.
흘러넘치는 물이야 알아서 물길 만들어 흐를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부부부붕.
수송드론이 속도를 높였고 곧 필드 위를 날았다.
“요즘 확실히 필드 위에 몬스터가 많네요.”
두셋 정도씩 무리지어 다니는 몬스터가 많았다.
서울 인근이 이 정도면 강원도엔 제법 큰 무리를 이룬 녀석들도 있을 것이다. 점점 필드가 더 위험해진다.
조금만 더 지나면 용병들 호위 없이는 다닐 수도 없을 거다. 도시간 물류비용이 더 뛸 것이고 물가도 더 올라 시티가 점점 더 팍팍해질 거다.
시티 내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더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기를 들고 용병이 될 거다.
시민의 희생이 더 커질 테고, 몇몇은 아예 필드로 나가 약탈자가 될지도 모른다.
상상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드넓은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번 7성 던전 등장으로 몇몇 대도시는 아예 멸망의 길을 걸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몇몇 무리는 몬스터보다 약탈자들을 더 조심해야 할지도.
서민수는 서울의 미래가 보이는 듯해 조금 착잡한 기분이었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자본의 시대가 저물고 힘의 시대가 도래했다.
김미소의 부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호길드를 택한 건 지금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다.
상념에 빠진 서민수의 옆구리를 누군가 툭 쳤다.
“왜 대답이 없어?”
“예? 뭐라고 하셨죠?”
“심심하니까 이참에 같이 들어가자고.”
“예?”
“뭘 그리 놀래? 아깐 알겠다며.”
“저 D급인데요?”
“그러니까 말야. 얘들은 다 각성 안했잖아.”
현장지원팀의 신입 셋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는 던전 못 들어가지 말입니다.”
“아쉽습니다. 저희도 사장님과 함께하는 던전 공략을 경험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너희는 다음에 가자고.”
수호가 아직 얼어 있는 서민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냥 말동무나 하자고.”
6성 던전이 그냥 말동무 삼아 같이 들어갈 던전인가?
“저 장비도 두고 왔는데요.”
“어휴, 필요 없어. 사냥 안 해도 돼. 그냥 같이 산책이나 하자고.”
“그치만…….”
공격대로서 서민수의 던전경험은 최고 3레벨.
지난번 수호의 공략영상을 찍기 위해 4레벨에 딱 한 번 간 게 전부다. 그때도 그냥 구경만 했었다.
“뭐 그렇게 핑계가 많아? 갈 거야 안 갈 거야?”
“가, 갈게요.”
설마 죽기야 하겠나.
“좋아.”
수호가 만족한 듯 웃었다.
액션캠도 챙겼고, 모든 공략 준비가 끝났다.
*신라길드 본사 앞에 드론이 착륙했다.
용병 하나에 스텝 넷.
다섯 명이 내리자 쭉 대기하고 있던 신라길드 사람들이 환대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별로 안 먼데요?”
“하하, 그렇지요. 가까운 이웃끼리 앞으로 자주 왕래하고 지냅시다.”
억지로 웃으며 인사하는 신라길드 사장은 쓰린 속을 삼켰다. 수호길드가 4구역 내의 아주 작은 클랜이던 시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카웃했어야 했는데.
“사장님은 공략 준비하셔야 되니 절차는 저랑 이야기 하시죠.”
“아차차, 곧 전장으로 떠나실 분을……. 제가 주책 넘었습니다. 이번 던전만 잘 처리해 주십시오. 앞으로 신라길드가 수호길드의 든든한 우군이 되겠습니다.”
신라길드 사장이 내미는 손을 수호가 잡았다.
“좋죠.”
수호의 시원시원한 모습에 신라길드사장은 조금 뜻밖이었다. 부사장하고 협상할 때만 해도 아주 지긋지긋한 느낌이었는데.
“그럼 준비하시지요. 필요한 모든 걸 돕겠습니다.”
신라길드 지원부서의 스텝들이 대기 중이다. 한쪽에 주차된 트레일러 네 대엔 필요한 모든 보급품이 있다.
목록만 말하면 알아서 꾸려 올 것이다.
“준비는 무슨.”
수호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갔다 오면 맛있는 밥이나 한 끼 먹읍시다.”
“하하하하, 역시 챔피언이라 그러신지 여유로우십니다.”
수호의 여유가 허언이 아니길 바랐다.
그가 못해내면 이 던전은 누구도 못 건든다.
“무사귀환을 빕니다.”
아부가 아니다. 진심으로 수호가 공략에 성공하고 오길 바랐다.
“그럼 이따 뵙죠.”
수호가 호기롭게 던전에 입장했고, 눈을 질끈 감은 서민수가 임당수에 던져진 심청이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파팟!
던전에 입장한 서민수는 바짝 긴장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려 6성 던전 아닌가.
S급 용병도 방심할 수 없는 던전에 박수호에 대한 믿음 하나로 입장한 D급 용병.
서민수는 수호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좀 떨어져.”
“아, 넵.”
수호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휘이 둘러보았다.
그사이 입구포탈이 사라지며 지구와의 연결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보스를 잡기 전까진 출구가 없다.
수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선채 주변을 둘러보고만 있자 서민수가 덩달아 긴장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게…….”
수호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서민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설마 이제와 자신없는 건 아니겠지?
“너무 익숙한 곳이야.”
“예?”
수호는 숲 사이에 키가 두 배는 크게 홀로 우뚝 선 나무.
홈트리를 보며 굳은 인상을 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