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 * *
“왔다! 저 새끼야!”
리뷰라고 불린 흑마법사가 나를 가리키며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아빠 친구로 보이는데 자식뻘 애를 보자마자 욕질이라니. 이거 너무 서운하잖아. 나는 서운함을 참지 못하고 리뷰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움찔!
“얼음의 장벽!”
리뷰가 화들짝 놀라 사용한 마법에 그들과 나 사이가 가려졌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돌담이 우두둑 솟아나 시야를 가린다.
어슴푸레하게 비쳐 보이는 얼음 장벽 너머, 흑마력이 모여들고 흑마법사가 일제히 마법을 준비하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곧 나를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 마법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 무리의 대장이 다급하게 부하들 말렸다.
“정신 나갔어?! 한 명이 아니라 전부가 저 방향으로 공격 마법을 쓰면 주인에게 들킨다고! 저딴 놈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도망치는 데 집중해!”
“아, 으……. 예!”
“제스티버! 이 쓸모없는 버러지 새끼! 은폐장 유지하라 했지! 다들 신체 강화하고 바람 계열의 마법만 중점적으로 사용해! 저 미친 새끼는 현혹만 중첩해서…!”
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내가 노리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하지만 그도 실수한 게 있는데, 먼저 내게는 웬만한 정신 공격 마법은 통하지 않고, 두 번째로는… 나는 이미 공격을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리뷰를 가리킨 사이에 발밑으로 시전한 송곳 생성 마법이 대지를 타고 너희한테 가고 있잖아.
정식 명칭은 정화의 수정 송곳. 금성의 화살과 마법검 난마를 응용한 대(對) 흑마법사용 마법이다.
이거 못 막으면 큰일난다?
“끄아악!”
“내, 내 바알!”
아이고야. 못 막았네. 발밑에서 뾰족하게 돋아난 돌 송곳에 찔린 흑마법사들이 발바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쭉쭉 자라난 송곳은 쓰러진 흑마법사의 등, 배, 허벅지까지 빈틈없이 콕콕! 찔렀다.
절반이 넘는 흑마법사가 송곳에 찔려 전력이 약화되었다. 나머지 흑마법사는 그들을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중에 아빠와 흑마법사 무리의 대장도 있었다.
“가, 같이……? 이이?!”
발이 찔린 흑마법사들도 그들을 뒤따라가려다가 내부에서 일어난 이변을 눈치 채고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들이 쩔뚝이는 걸음걸이로 얼음 장벽에서 떨어지면서 도망치는 동료에게 손을 뻗었다.
“도와줘! 마법이 안… 아냐! 흑마력이 분해되고 있어!”
“왜, 왜 이러는 거야!? 이런 쌰앙…….”
정화의 수정 송곳을 이루는 성력이 그들의 몸에 침투하여 흑마력을 몰아내기 때문이지.
“기다려 바울만! 마, 마법이…! 마법이 안 써진다고오오!!”
대장의 이름이 바울만인가 보다.
바울만은 그들을 보더니 작게 혀를 차고는 대답도 없이 도망쳤다. 신체 강화 마법이 잘 걸렸는지 웬만한 육상선수 뺨칠 만한 속도로 험한 돌산을 주파한다.
동료애고 뭐도 없다. 아니, 기왕 죽을 거 시간이라도 끌기 원하는 건지 커다란 돌 장벽을 바로 뒤에 만들어 도주로를 막았다.
그러니까 순서대로 나, 리뷰의 얼음 장벽, 송곳에 찔려 흑마력이 분해되어 방구석 샌님이 된 버림 패 흑마법사들, 바울만의 돌 장벽, 도망치는 흑마법사들. 이렇게 배열이 되었다.
꿍!
쩔뚝거리면서도, 그나마 최선두를 달리던 흑마법사가 돌 장벽에 얼굴을 정통으로 박았다. 부러진 코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핏물에 나머지 쩔뚝이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나는 돌 장벽을 보고 희게 미소 지었다. 내가 어느 수준의 고수인지, 심지어 마법사인지 검사인지도 모르게 알아서 돌 장벽으로 정보를 차단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바울만의 성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검을 꺼냈다. 백색의 오러가 검을 타고 흐르다가 발검술을 통해 외부로 발출되었다.
면도칼 같은 예리함을 자랑하는 날카로운 오러가 얼음 장벽을 썩둑썩둑 썰었다. 오러는 막힘없이 얼음 장벽을 넘어서 그 뒤에서 쩔뚝이는 흑마법사의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크아아악!!!”
“끄……!”
열 명이 넘는 흑마법사가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인정사정없이 베여서 쓰러진다. 장벽에 코를 박은 녀석은 주저앉은 채로 다급히 일어서다가 재수 없이 가슴께가 베여서 즉사했다.
이러면 안 되지.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정보원이다. 몬스터 유인책에 절반이나 죽였는데, 이 이상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
나는 선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다리가 잘린 흑마법사들을 염동력을 이용해 한 곳으로 모았다. 그들이 기절하기 전, 성력을 절단면에 투사하고 회복마법을 걸어 상처를 치료해준다.
“꾸! 끕!”
“끄으읍!”
이런, 너무 우격다짐으로 한 곳으로 몰아넣은 탓에 숨이 막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이 질식하지 않을 자세를 적절히 잡아서, 열 명이 넘는 흑마법사를 공 형태로 뭉쳤다.
뿌드득! 빠득!
그 와중에 척추가 꺾이거나, 어깨나 고관절이 뭐… 거시기가 거시기 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살아서 다행 아닌가? 몸이 여기저기 꺾인 덕분에 기절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였다.
나는 넝쿨 채찍을 조종하여 공 모양으로 뭉친, 기절한 흑마법사 집단을 들었다. 그들을 들고 바울만의 돌 장벽을 뛰어넘어 흑마법사를 추적…….
꽈아앙!
갑자기 폭발한 돌 장벽이 내 생각을 막았다. 수천 개가 넘는 뾰족한 돌 조각이 사방으로 터지며 나와 공굴리기 흑마법사를 공격했다.
내가 안일했다. 바울만은 돌 장벽을 만들 때부터, 일정 크기 이상의 물체가 돌 장벽을 지나가면 자동으로 터지게 마법을 설계했다.
나야 상처 하나 없었지만, 사로잡은 공굴리기 흑마법사 중 셋이 사망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코앞에서 돌 장벽이 터지고 전신에 돌조각이 쑤셔 박히자 미처 뭘 할 틈도 없이 즉사한 것이다.
주르륵!
넝쿨 채찍 사이로 시뻘건 피가 흘러내린다. 나는 죽은 흑마법사를 공굴리기에서 분리한 뒤, 다시 남은 이들을 공 형태로 뭉쳤다.
“바울만! 이 개새끼가 소중한 정보원을 셋이나 죽여?”
뚝! 뚝! 뿌득!
흑마법사를 뭉치며 주위를 살피자 은밀하게 새겨진 함정이 곳곳에 널려있다. 파괴력보다는 저지력에 중점을 둔, 나의 추적을 방해하는 마법이 곳곳에 퍼졌다.
나는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돌 장벽의 폭발에 뾰족 바위 군락의 주인, 거북이 몬스터가 잡스러운 수백의 몬스터를 쳐 죽이다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다 죽이고 나면 다음 차례는 내 차례가 될 것이다. 나는 주인에게 반드시 죽고 주인은 그만큼 지치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이이제이를 노리는 것.
또한 공격 마법에 쓸 자원을 아껴서 도주에 투입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기까지 한다. 일석이조의 계책. 아주 좋다.
나는 웃으며 넝쿨 채찍 세 줄기를 빼내 죽은 흑마법사 셋의 육체에 박아 넣었다.
“보답을 해주지. 피의 추적 화살.”
꿀꺽! 꿀꺽!
게걸스럽게 피를 집어삼킨 채찍이 주둥아리를 모아 퉤! 하고 뱉었다. 뱉어진 피가 화살 형태로 다듬어져 먼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특정한 성질의 마나, 지금을 예로 들면 흑마력을 목표로 자동 추적하는 피의 추적 화살. 마나가 다 떨어지거나 은폐장이 내 예상보다 뛰어나지 않는 이상 바올만과 아빠는 피의 추적 화살을 못 벗어난다.
전력으로 달리면 이딴 것 필요 없이 금방 따라잡을 수야 있지만, 이미 다 잡은 먹잇감이다. 괜히 서두르다가 아까처럼 바울만이 동료를 죽이는 것 보다 이렇게 천천히, 확실한 함정으로 몰아넣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기다려요. 아빠. 꼭 갈테니까.”
나는 음산한 미소와 함께 피의 추적 화살을 따라갔다.
* * *
승천자의 감각와 피의 추적 화살을 이용하여 흑마법사를 추적한다. 함정은 대부분 피했지만, 일부러 소리가 크게 나는 함정은 발동시킨다.
펑! 퍼버벙!
내가 접근하니 경계하라고 대놓고 알리는 역할이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내 감각에 흑마법사의 도주가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피의 추적 화살이 사라지는 감각이 들자마자 준비된 다음 마법을 쏘았다.
“금성의 화살. 20연발.”
금성의 화살을 쏘면서도 불안불안하다. 겨우 이거에 죽을 리는 없겠지? 죽으면 어쩌지? 바올만 그 개새끼가 내 아빠를 고기 방패로 쓴다면?
‘죽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적에게 공격하면서도 죽지 말라고 기도하는 꼴이라니. 이런 경험은 또 태어나서 처음이다. 너무 신선해서 하루 종일 이러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난은 슬슬 끝내야지. 흑마법사들도 뾰족 바위 군락을 절반 쯤 벗어났다. 저들이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게임을 끝내야 한다.
제한시각은 아마…….
나는 달리는 와중에 높게 솟은 돌 산 사이로 은근히 비치는 붉은빛을 확인했다. 붉은빛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범위를 넓히며 뾰족 바위 군락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부하들도 잘하고 있군.’
용기가 나면 따라오라고 한 부하들. 녀석들이 이제야 마음을 다잡았는지 작전을 실행했다. 뾰족 바위 군락을 감싸는 붉은빛. 그것은 바로 부하들이 퍼뜨린 화염이었다.
일전에 뾰족 바위 군락을 어떻게 공략할지 부하들과 토론을 했는데, 결국 고전적인 화공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안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 때문에 화공을 쓰기가 힘들다. 조그만 불꽃이라도 튀면 말벌집을 쑤신 것처럼 수백의 몬스터가 우르르 튀어나와 불을 지른 놈을 찢어발겨 죽일 것이다.
해서, 나는 흑마법사도 쉽게 처리할 겸, 불을 끌 몬스터의 수도 줄일 겸, 입구에서부터 몬스터를 모조리 중심지로 유인했다.
거기에 흑마법사의 도움 아닌 도움마저 받아 전투 고조 마법까지 사용해서 뾰족 바위 군락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을 싸움에 미친개로 만들었다.
즉, 불을 끌 몬스터는 모조리 중심지로 모여들었다.
부하들이 어디서 불을 붙이든 간에 적당한 땔감만 있다면 방해꾼 없이 활활 잘 타오를 것이다. 거기에 내가 불이 더 잘 타라고 여러 수단까지 썼다.
역방향으로 뾰족 바위 군락을 날던 독 구름은 인화성 가스다. 성냥 한 개비만 떨어뜨려도 망아지가 뛰어다니는 것처럼 빠르게 불이 번질 것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는 시들어가는 대지로 물을 말라붙게 하고, 강탈로 식물의 수분을 몽땅 빼내서 땔감으로 쓸 것도 넉넉하게 만들었다.
길목마다 널브러져 죽은 몬스터도 일단 불이 붙으면 좋은 땔감이 될 것이다.
‘이거면 거북이 몬스터도 끝이지.’
거북이 몬스터가 초월적으로 강력하다고? 물도, 먹을 것도 없이 황폐해진 땅에서 저만한 체구를 유지할 영양분을 어떻게 얻을 건가.
거북이 몬스터는 승자의 쾌감 속에서, 며칠에 걸쳐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녀석이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까지 간다 해도 가는 도중에 사막에서 말라 죽겠지.
오늘부로 뾰족 바위 군락은 사라진다. 승자가 어떻게 되든 간에, 무조건 사라진다.
나는 확신과 함께 흑마법사를 뒤쫓았다.
십 수 분에 걸쳐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흑마법사가 죽지 않게 힘을 쏟다가 정신을 차리자 사방이 불바다로 변해 있었다.
멀리서 아른거리던 붉은빛이 백 수십 미터 앞까지 가까워졌고, 뾰족 바위 군락도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빠르게 불에 포위되었다.
‘빠르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산과 불. 자연과 자연의 만남은 때로는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흑마법사를 뒤쫓다가 그 자연의 엄청남을 목격했다.
활활활!
산이 탄다. 뾰족한 돌산이 통째로 불타고 있다.
흑마법사의 도주도 끝을 고했다. 앞에는 불타는 돌산 여러 봉우리, 뒤에는 꾸준하게 쫓아오는 나. 그들은 탈출구도, 퇴로도 막힌 것을 알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불타는 돌산을 보며 뾰족 바위 군락이 빠르게 불타오른 이유를 알아냈다.
‘덩굴식물 때문이군.’
밑에 고인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돌산을 감으며 성장한 덩굴식물이 돌산을 불산으로 만든 주범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열렬하게 타들어 가는 덩굴식물이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흩어지며 불길을 더욱 빠르게 퍼 날라주기까지 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뾰족 바위 군락 먹이사슬에서 최다 에너지 생산량을 자랑하는 생산자인 덩굴식물. 그 덩굴식물이 뾰족 바위 군락의 멸망을 몇 배나 빠르게 가속해주다니.
나는 고소를 지으며 흑마법사를 응시했다.
그들은 넘실거리는 화염에 흑마력도 잘 모이지 않는지 아까처럼 기세등등하게 도망칠 힘도, 기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얼마 남지 않은 흑마력으로는 화염과 열기에서 몸을 보호하고, 산소를 공급받는 데 쓰는 게 고작이겠지. 천만 다행으로 일행이 줄진 않았다. 아빠도 멀쩡히 있다.
“아빠 이제…….”
“제기랄, 닥쳐! 다가오지 마! 누구냐 너는!”
바울만이 앞서서 나를 막았다. 딱딱하게 긴장된 안색, 주황색과 적색으로 물든 세상이 그의 얼굴을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비록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지만, 인상이 처음과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음?”
나는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한손에는 흑마법사 공굴리기를 쥐고, 그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내 모습을 보고 바울만이 질린 얼굴로 양손을 내밀었다.
양손에는 암흑의 창 마법이 영창되어 있었다. 나머지 흑마법사도 거북이 몬스터의 주의를 끌지 말라는 경고를 잊고, 최후의 흑마력을 끌어 올려 다종다양한 공격 마법을 준비했다.
그 순간.
“끄와아아악!”
뒤쪽 멀리서 거북이 몬스터가 내지르는 외침이 내 등을 짜릿하게 강타했다. 승자의 포효이자, 죽음을 알리는 스타트 신호였다.
거북이 몬스터의 포효에 맞추기라도 한 듯, 바울만이 비명을 지르듯이 내게 외쳤다.
“대체…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거냐고!!”
나는 말했다.
“아빠! 왜 도망쳐요? 나라니깐!”
“누가 네 아빤데! 이 미친 새끼야!”
“나! 나야 나!”
“그러니까…….”
“나라고! 나야 나!”
“…….”
“나야! 나야 나! 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나야나! 나나나나나나나!!”
나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바울만이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울먹였다.
“제, 제발…….”
이건 너무했나?
나로선 순수하게 기뻐서 날뛰는 거다. 내 전생을 통틀어서 이만큼 격하게 기쁨의 감정을 표현한 적은 거의 없다.
진귀한 광경이니 잘 보라고 솔직하게 표현한 건데, 흑마법사는 공포에 질려 애원하는 걸로 보답했다.
맨날 인체 실험이나 하는 놈들이라서 강단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 뭐에 저렇게 겁을 집어먹는 거야? 나는 김이 새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 씨. 됐다.”
“허?”
“죽이진 마라.”
“뭐, 뭐라고?”
“팔다리만 자르라고.”
“너, 무슨 소리를…….”
바울만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다. 화염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불길을 감싼 돌산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둘 들려왔다.
“알겠소.”
“알겠습니다.”
“…뭐…?”
화염 속에서 들려온 대답에 바울만이 경악하며 뒤를 바라보기 전, 붉고 푸른 쌍색(雙色)의 오러가 화염에서 튀어나왔다.
스거걱!
붉은 오러는 여섯 줄기로 나뉘어 하늘을 나는 뱀이 되어 뒤에 옹기종기 모인 흑마법사들의 팔다리를 잘랐다.
푸른 오러는 바울만이 양손에 모은 암흑의 창을 강타했다. 암흑의 창이 폭발하며 바울만의 양손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의 상체가 새까맣게 탔다.
나는 쓰러진 바울만에게 다가가 양손과 상체에 성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넬리카처럼 정성을 다해 치료하진 않았고, 그냥 딱 죽지 않게만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바울만의 생존을 확인한 나는 불길을 걸어나오는 두 남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바리다, 갈리어드.”
“별말씀을.”
“아닙니다.”
올스의 바리다와 흐라탄의 갈리어드. 익스퍼트였던 둘이기에 집단으로 모인 흑마력을 느끼고 추적해왔던 것.
불산 뒤에서 흑마법사를 습격하려다가 내가 온 것을 알자 대기하고, 명령을 받자마자 신속하게 흑마법사를 무력화시켰다.
쓰러진 흑마법사를 빤히 바라보던 갈리어드가 찜찜한 얼굴로 뾰족 바위 군락 안쪽을 가리켰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심하게 빠르군요. 어서 탈출하시죠.”
“그래. 나도 죽을 뻔했다.”
“아, 웨일 님. 죽을 뻔했다기에 생각난 건데, 조금 전의 그 포효… 설마 뾰족 바위 군락의 전설이 사실이었습니까?”
나는 쓰러진 흑마법사들에게 응급처치와 성력 주입을 끝내고는 그들을 공굴리기에 합류시켰다. 그리곤 불길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무슨 전설인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정보를 다 말 안 했다는 건 알겠군. 있다 보겠어.”
그 전설인지 뭔지에 거북이 몬스터가 등장하겠지. 그것만 미리 알았으면 흑마법사를 몇 놈 더 살릴 수 있었을 거 아니야.
내 눈빛을 받고 갈리어드가 쩔쩔매며 변명했다.
“아뇨. 워낙 유명해서 당연히 아시는 줄 알고…….”
“깜빡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나 사막에 온 지 3개월밖에 안 됐어.”
“그건… 아……!”
갈리어드가 안면을 감싸 쥐었다. 바리다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미안하오! 웨일 님은 워낙 괴상하신 분이고 편집적으로 정보 수집을 중요시하니 시시콜콜한 전설 따위야 당연히 알 거로 생각했소!”
“당연히 알 거라니. 저 씨발 놈의 괴물 새끼를 내가 어떻게 안다고.”
“어떻소이까? 뾰족 바위 군락의 전설은.”
나는 어깨를 쓰다듬었다.
“무시무시했지.”
“과연……!”
무시무시했고, 며칠이 지나면 시들시들해질 예정이었다. 거북이 몬스터는 나중에 다시 와서 처치하든지 하고, 지금은 흑마법사가 중요했다. 나는 기절한 아빠를 보며 불길에 휩싸인 뾰족 바위 군락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