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 * *
솔, 소니아 반데스. 스스로를 스파이 같은 존재라고 낮춰 부른 그녀가 어찌하여 게리소님을 다스리는 영주의 딸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중요한 것 같지만, 모르겠는 건 나중으로 넘기는 게 정신건강에 편하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소니아가 르데앙을 부르는 어투였다.
나는 소니아를 집중 관찰했다. 그녀가 르데앙을 부르는 말투에 어떤 감정이 묻어나오는가. 배신감? 적개심? 아니면 십 년 넘게 영지를 맡으며 키워온 행정 능력에 근거한 이해득실 판단?
다 틀렸다.
‘그리움과 반가움. 그리고 약간의 당황.’
적의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니아에게 르데앙은 여전히 친구였다.
웨일이 죽은 이후 둘이 만났는지, 둘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졌고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소니아는 르데앙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약점을 발견했으면 끝이다. 소니아는 거의 넘어왔고.
‘할리는 어떻게든 침착하려 하지만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한보는…….’
한보 기사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성자보다 신화검 뮤온 보트라가 이 촌구석에 있다는 것을 더 놀랍게 여겼다.
“말이… 말이 안 된다. 네가 뮤온 보트라 님과 끈이 닿아있다는 것이!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분이 어찌하여 이곳에……!”
한보 기사의 격정적인 외침에 할리도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할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뮤온 보트라 측의 공작원일 리가 없다. 12년 전, 너를 구해준 그 조직이 뮤온 보트라와 관련되어 있을 리가…….”
그 조직이 대체 뭐기에 거짓말 한 번 한 게 지금까지 주박처럼 들러붙어 있냐. 나는 깊은 피로감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너희보다 많이 안다. 하지만 쟈기의 현재 직위를 생각하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여러분은 저를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이미 지난 12년간의 행동으로 제 믿음을 증명했습니다.”
“거짓말!” 한보 기사가 발악하듯이 외쳤다.
나도 그에 맞서 목소리를 마주 높였다.
“도자기 장인 쟈기!”
“읍……!”
“그렇게 제가 의심되었으면 어찌하여 저를 게리소님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주요 물품인 도자기 장인 직에 앉힌 것입니까!”
“그, 그건 네가…….”
“제가 의심되기에! 그렇지 않습니까!”
“…….”
내가 그렇게 의심됐으면 어째서 나를 그 중요한 도자기 장인으로 추대하였는가. 왜 심문 따위를 하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도자기를 납품하게 게리소님의 본거지, 영주성 내로 출입을 허락하였는가.
인(因)이 드러났으면 과(果)도 쉽게 밝혀지기 마련이다.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저를 의심한다는 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오히려 제게 더 큰 기회를 주신 거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한보 기사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그랬다. 맞아… 그랬어. 그래서 너와 연관된 아이들을 모두 영지의 요직에 앉힐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저는 게리소님에 충실(忠實)했다고 자부합니다. 재작년, 중앙 대륙의 스파이가 은밀히 제게 접근했을 때도. 작년, 피랄 연합체의 돈을 받은 용병이 저를 납치했을 때도 저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실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사는 것도, 그렇다고 새로운 신분으로 사는 것도 귀찮아서 참은 거지만. 어쨌든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저를 키워주신 그분 또한 죽는 그 순간까지 조직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뮤온 보트라가 오지 않았으면 저는 이대로 도자기 장인 쟈기로, 또는 게리소님에 소속된 새로운 신분의 쟈기로 평생을 살아갔을 겁니다.”
응, 아니야. 적당히 관찰하다가 무해 판정 내리면 알테어로 떠날 생각이었어.
“12년 전 저를 구해준 의문의 조직과 뮤온 보트라 님이 속하신 조직. 과연 어떤 집단이 저를 가지고 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왔기에 쟈기의 삶을 포기하고 본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라 제가… 제가 사랑하는 게리소님이 전화의 불길에 휩싸일 것을 막기 위하여입니다!”
“크윽……!”
한보는 넘어왔고, 할리는 아슬아슬하다. 소니아의 정신은 딴 데 가 있었다. 이제 소니아 차례다. 나는 소니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조작되어온 삶이라지만, 제가 실은 배신자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선택지를 골랐지만……! 성자님께서 하시는 일에 정의가 있다고 믿어왔기에 이 길을 걷고자 결심한 거였습니다!”
소니아의 입술이 바르르… 떨려왔다. 소니아도 반쯤 넘어왔다. 거의 다 됐다. 할리하고 소니아에게 마지막 결정타만 넣으면 되었다.
나는 죽여달라는 듯이 뒷목을 드러내며 깊게 읍소했다. 목소리도 은은하게 떨리게 준비까지 끝냈다.
“소니아 공녀님. 할리 마법사님. 두분이 저를 의심하는 것은 지당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서 죽여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영웅이 이 자리에 온 것만큼은 부디 의심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
“제 목적은 단 하나입이다. 저를 키워준 게리소님, 제 고향 남쪽 대륙에 이는 전화를 막기 위하여! 십 년 동안 숨겨왔던, 저도 평생을 몰랐고 어제야 알았던 진정한 저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할리에게 대검을 내밀었다. 그에게 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리 마법사님. 어린 시절의 제게, 게리소님을 구원한 새로운 작물이라며 찐 감자를 건네주셨죠. 그 맛은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호의로 제가 존재할 수 있었으니 이번엔 저의 목숨을 바쳐, 저의 호의로 여러분의 미래를 구하겠습니다.”
나는 대검을 비스듬히 들고, 경동맥에 가져다 댔다.
‘어라? 이게 아닌데?’
어, 잠깐만.
이거 도를 넘었는데? 분위기를 타서 대검으로 목을 썰다니. 내가 미쳤나?
하지만 여기 와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말짱 황이 된다. 행동은 망설임 없이 대검을 들이민다. 속은 타들어 가지만, 내 눈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
야, 야야야야야!
말려! 빨리! 솔직히 이 정도까지 했으면 말려야지!
빨리 말려라. 할리 이 새끼야. 너 안 말리면 나중에 진짜 뒈진다.
1초를 천으로 나눈 무수한 순간.
스걱!
마법 금속으로 제작된 날카로운 대검 날이 피부를 베는 감촉이 똑똑히 느껴진다.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이 멍청이.’
솔직히 죽어도 상관없다.
죽지 않으면 렉시놈 바로 옆에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고, 만약 죽는다면… 그래도 살 방법이 따로 있었다.
몸이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귀식대법(龜息大法)과 초능력, 성력의 조화로 최대 5일 동안 심장박동을 멈을 수 있었다.
즉, 이대로 쟈기는 죽고 며칠 후에 신원 불명의 자유민이 탄생하게 된다. 예정보다 빠르지만, 알테어로 떠나면 되겠지.
렉시놈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서 아쉽군. 뮤온 보트라가 호락호락한 인물도 아니고 한 번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볼 테니 감시역도 제대로 해주겠지.
스륵……. 나는 눈을 감았다.
따당! 퍽!
그때. 세 개의 파열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할리가 쓴 마법탄과 소니아의 지풍이 동시에 내 대검을 때리고, 한발 늦게 한보의 권풍이 대검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가 맨바닥을 부쉈다.
목을 타고 흐르는 피가 어깨를 적신다. 혈관이 5분의 1쯤 찢어졌다. 단련된 육체가 아니었으면, 혈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혈관이 찢어졌겠지.
“일어서라.”
나는 할리의 말에 일어서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할리가 착잡한 눈을 한 채 나를 보더니만 품에서 포션을 꺼내 내 목에 부어주었다.
“…똑같군. 백색 오러를 가진 이들은 다들 그런가? 네 신념대로 행하는 건 말리지 않겠다만, 함부로 목숨을 버리지 말거라.”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이겼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었이냐. 아니, 우리가 어찌 행동했으면 되겠느냐.”
좋다. 다 끝났다. 이제 그들에게 얌전히 뮤온 보트라에게 협력해서 절정으로 치닫는 사건을 봉합하라고 부탁하기만 하면…….
‘그러면 되는데…….’
그러면 끝인데! 이 빌어먹을 반골정신!
남이 깔아놓은 판에 끼고 싶지 않다는 내 본성!
‘안 돼!’
이 새끼! 헛생각하지 마! 어서 뮤온 보트라에게 협력하라고 말해!
“그…….”
아니야. 그거 아니야. 쟈기 침착해!
“그게…….”
나는 오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일을 발판으로 남쪽 대륙을 정복하십시오.”
아이고! 이 등신아!
* * *
“뭐… 라고?”
내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항상 침착하던 할리 조차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당황스럽다. 이 미친 성격 때문에 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여기서 또 지랄이네. 사람은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는 꼰대들의 말이 나를 통해 증명되었다.
당황은 당황이고, 기왕 나온 말. 할 말이나 똑바로 하자.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이번 일을 빌려 입에 담았다.
“저는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게리소님에는 저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기라성 같은 고수가 득시글거리는데, 어째서 그 좁은 곳에 갇혀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죠.”
반쯤 사실이었다. 장로급 흑마법사는 거의 죽지 않고, 그들을 통해 훌륭하게 자란 2세대 렉시놈 마법사는 질만 따지면 이종족 연합지역 못지않았다.
또한 게리소님에는 ‘그자’가 있었다. 마법으로 소드 마스터조차 뛰어넘는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 쟈기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마나 파동만으로도 그자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뿐일까? 소니아나 할리와 비슷한, 악신의 살을 통해 강화된 인간도 수천을 헤아린다. 이종족 못지않게 신체가 강해진 자들도 수백이 넘는다.
“게리소님을 다스리는 권력자시여. 그런 힘을 가지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이 작은 땅에 만족하는 겁니까. 어째서 당신들의 품이 필요한 연약한 이들의 비명을 외면하시는 겁니까.”
뭐, 작은 건 아니지. 게리소님과 위성도시의 총 면적은 대한민국 광역시를 몇 개 합친 수준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능력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작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힘만으로 따지면,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후대를 성공적으로 키운 렉시놈은 남쪽 대륙을 모조리 집어삼켜도 될 자격을 지녔다.
“저 얼간이들이 평범한 이들의 삶을 괴롭히지 못하게, 중앙 대륙이나 제가 속한 비밀조직 같은 외세(外勢)가 남쪽 대륙을 침범하지 못하게… 마지막으로 다시는 저와 같은 첩자가 여러분의 심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게리소님이 남쪽 대륙을 먹으시길 바랍니다.”
게리소님에게도 아주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기편이 십만 명인 것과 백만 명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만약 수십 년 후에, 혹시 내가 모를 흑마법 생존자가 게리소님의 근본이 지옥의 세 지파 중 하나라고 밝혀내는 일이 온다면?
남쪽 대륙의 시골 촌구석 영주가 부정하는 것과 남쪽 대륙을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 공식 선언문을 통해 아니라고 발표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즉, 지킬 게 많아질수록 자기편도 많아지는 법.
지난 12년 동안의 관찰로 렉시놈이 진정으로 인체실험과 흑마력에서 손을 뗐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거는…….”
할리가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내 제안에 망설였다. 그가 어찌할 줄 모를 때, 소니아가 정신을 차리고 할리의 앞을 막았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마. 지금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전쟁의 불씨를 막는 것이겠지.”
“예.”
“뮤온 보트라와 성… 자 님은 어디에 계시나.”
“라그랑쥬입니다.”
“띠알렌은 적이 아니군. 그렇다면 델리오도라인가? 아니면 다른 늑대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뮤온 보트라는 제게 모든 걸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아는 걸 고하라.”
“예. 그는…….”
빛의 수호자는 숨기고, 뮤온 보트라가 했던 말을 고대로 반복한다. 설명을 들은 소니아가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코로미트 이 멍청한 새끼. 왕이라고 대접해 줬더니 중앙 대륙을 끼워 넣어?”
피랄 연합체의 공동 왕 중 하나인, 코로미트 머시기 왕을 말하는 거군. 그 새끼 잘 걸렸다. 이왕 하는 김에 죽여버려라.
나는 소니아가 옛날 성격을 드러내자 반가웠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뮤온 보트라가 원하는 것은?”
“피를 최대한 적게 보고, 그들이 불러온 불온한 기류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교류회는 끝났다. 죽은 몬스터를 다시 살릴 수 있겠는가?”
너희 흑마법사잖아. 흑마법사는 할 수 있는데?
나는 목젖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뇌의 명령에 따랐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뮤온 보트라 측에서 불러온 재앙이니, 그는 ‘교류회’를 원상복구 하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자기 체면을 위해서 우리를 수족처럼 부리겠다?”
“하지만 책임을 지려는 것만큼은 진심입니다. 그는 그것을 위하여 성자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
성자라는 단어에 소니아가 분노를 삼켰다.
그게 네 문제야. 성자가, 르데앙이 약점인 걸 대놓고 드러내잖아.
“…알겠다.”
소니아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짐승처럼 미소 지었다. 그녀가 익스퍼트 상급에 걸맞은 기세를 드러내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나, 교류회는 그대로. 둘,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만큼은 피를 적게 본다. 그것이 뮤온 보트라가 바라는 것이겠지. 받아들이마.”
“…공녀님?” 할리가 진심이냐는 듯이 묻는다.
“그만! 이번 판도는 그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춰주지. 하지만 쟈기, 그에게 가서 똑바로 고하라. 이 일이 끝나면 성자와 함께 반드시 게리소님을 방문하라고. 그녀가 내가 아는 그녀라면, 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속마음은…….
‘큰일났다아!!’
이거 어쩌지? 르데앙이 아니라 가이노스인데?? 가이노스 그 멍청한 년은 렉시놈을 모를 텐데, 일 끝나고 중앙 대륙으로 훌쩍 떠나면 어떡하지???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 전에 이 난리를 말리겠다고 짠! 하고 등장한 그 순간 르데앙이 아니라는 게 만천하에 밝혀질 것 아냐. 르데앙이 아니라 가이노스라는 걸 안 소니아가 과연 그때에도 뮤온 보트라와 협력할까?
거짓말쟁이의 말로가 이렇다.
“떠나라. 쟈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움직이겠다.”
“예. 저도 그와 함께 제게 내려질 심판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타닷!
우리 넷은 창문을 박차고 떠올라 둘로 나뉘었다. 소니아, 할리, 한보는 게리소님 측으로, 나는 은밀히 숨어서 라그랑쥬에 침투했다.
은신술로 적진 중앙까지 파고든다. 띠알렌과 그의 호위, 뮤온 보트라와 그가 데려온 20명의 무력이 있는 곳. 그곳에서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차장!
“누구냐!”
“아니, 이 무슨!?”
뮤온 보트라가 나를 감지하고 칼을 뽑은 기사들을 말렸다.
“멈춰라! 그가 내가 말한 쟈기다!”
“쟈기… 게리소님의 그자가 어떻게 이런…?”
아, 다 꺼져. 나 지금 심란하다고. 나는 복잡한 얼굴을 한 채, 뮤온 보트라에게 다가갔다. 그가 내 어깨에 묻은 피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쟈기? 그 피는?”
“별것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대국(大局)에서, 권력자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자기 목숨도 걸어야 하는 법이죠.”
“그 말은…….”
이 병… 뮤온 씹… 다 네 탓이야.
내 안의 뮤온의 평가가 검사에서 변태에서 스토커에서 병신으로 수직하락했다.
그도 그럴게. 반 천년 가까이 빛의 수호자의 초기 맴버로 있었으면서 아랫것들 관리를 이렇게 못해?
어? 너희가 싼 똥을 내가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치워줘야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내심을 숨기고 믿음직한 얼굴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공했습니다. 뮤온 보트라.”
“저, 정말이냐! 잘했다! 쟈기!”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야? 당신 실력이면 검 몇 번 그으면 다 끝나는 일인데. 빛의 수호자 측 배반자가 만만치 않은가? 왜 그리 안심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는 장하다며 내 어깨를 으스러지라 붙잡은 뮤온 보트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띠알렌과 가이노스를 확인했다.
“역시…….”
띠알렌 이 새끼는 뭐가 역시라는 건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흐음…….”
가이노스는 흥미로운 눈길로 나를 구경한다.
예뻐졌구나. 가이노스. 그 소심한 훌쩍이가 소드 마스터의 제자도 되고. 인생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네. 그런데 말이야…….
너 직장 잘못 골랐어.
빛의 수호자도, 피랄 연합체도, 한 다리 걸치러 온 델리오도라도. 심지어 눈치 없는 늑대들까지. 다 얼간이에 머저리밖에 없다.
이 얼간이 새끼들이 제멋대로 일을 벌이느라 혼란에 빠진 교류회가 서서히 종막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