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 * *
반데스 영지로 개명한 구 게리소님 영지 영주성. 이곳에는 지하 도시를 제외해도 집무실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외부로 드러난, 표면의 집무실. 업무 대부분은 이곳에서 처리한다.
또 하나는 영주성 지하에 위치한, 심층의 집무실. 이곳은 고위 마법사나 익스퍼트 이상의 실력자들만 출입 가능한 비밀 공간의 일종으로, 외부로 함부로 새어나가선 안 될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주로 사용되는 곳이다.
또한 과거, 뮤온 보트라와 가이노스가 아직 렉시놈의 탈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한 게리소님 영지에 왔을 때. 그때 영주성은 적대자를 섬멸하기 위한 여러 공격 마법을 준비한 적이 있다.
이 심층 집무실이 그 영주성에 퍼진 복잡다단한 마법 회로를 총괄하는 장소였다. 나는 그곳에서, 보통 영주만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책상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내 앞에는 이스마일이 있다. 이제는 이스마일 국왕님. 하지만 나는 당당했고, 두렵지 않았다.
과연 내 예상대로 국왕님은 감히 자신의 비밀 집무실 책상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이 건방진 신하를 처벌하기는커녕, 식사 중의 파리처럼 양손을 격하게 비비면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하하… 쟈기. 어떤가. 편한가?”
“아뇨. 딱딱해서 안 편한데요.”
“방석을 주지. 이걸 깔고 앉게.”
이스마일이 자신의 의자에 놓인 방석을 당장 내게 주었다. 이건 국왕이 아니라 아첨꾼으로 직업을 변경하는 게 나을 것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단단히 뿔이 난 나는 화를 풀지 않았다. 남자의 로망이 가득한 왕국 선포식에 나를 부르지 않은 서운함 때문도 있지만, 특히 반역자가 가장 화났다.
“농담한 거로 그렇게 삐치다니. 나는 쟈기 남작이 그런 성격 아니라고 믿네.”
“반역자가 농담이었습니까? 세상 참 좋아졌네요. 그런 농담을 무려 ‘왕의 입에서’, ‘자기 신하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말이죠.”
“……아! 귀족 작위 주겠네. 응? 귀족.”
“저 남작인데요. 쟈기 남작.”
“자작으로. 그것도 특별한 일 없으면 직계 혈통에게 무조건 전승되는 거는 어떤가?”
“어투가 가벼워서 싫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자작이건 뭐건 간에 무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세로 주면 받는 사람도 김이 빠진다.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어울리지 않게 아양을 떨던 이스마일의 눈꼬리가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역시 인생 경험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는지, 미소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안면 가득한 환한 웃음을 내비치며 내 어깨를 주물렀다.
보통 이쯤 오면 사람 좋은 이스마일이라도 크게 경을 쳐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만큼은 내가 절대 갑(甲)이어서 그런 것이다.
그가 친 고약한 장난 말고도 내가 갑이어야 하는 이유가 또 따로 있다. 나는 왕의 안마를 받으며 갑의 권한을 마음껏 누렸다.
옆에 있던 마냐툴이 말했다.
“쟈기. 네 수더분한 회색빛 머리카락을 깔끔한 흰색으로 물들여주마.”
“하이고. 지금 그걸 유혹이라고 하는 겁니까? 누가 지하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산 방콕족들 아니랄까 봐.”
“…….”
마냐툴이 벙어리가 되고, 할리가 나를 달랠 차례였다.
“쟈, 쟈기. 이거 보려무나. 라그랑쥬에서 새로 개발한 장난감이야. 어떠니? 재밌어 보이지 않니?”
딸랑딸랑!
다만, 그 ‘달래기’가 유치원생에게나 통할 법한 유치찬란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문제지. 이 사람은 대체 언제까지 나를 어린아이 똥으로 대할 건지 의문이다.
나는 할리에겐 할 말도 없어서 고개를 팩! 돌렸다.
왼쪽으로 돌린 시선에는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낀 시즈믹스가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휙! 하고, 그가 너무나도 당당히 손을 내밀자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노인장. 그 손바닥은 뭡니까?”
“내가 너한테 왜 꼬리를 흔드냐! 어서 내놔 인 마!”
“싫은데요? 그냥 보기만 하시죠.”
나는 으스대듯이 손을 펼쳤다. 내 손바닥 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주황색 구체가 만들어졌다. 어제까지 몇백 번이나 연습했던 비은다각형의 열기 집중 중첩.
개량과 경랑화를 거듭한 덕분에 나의 비은다각형은 이스마일이 알려주었던 초창기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고 신속했으며, 일체의 마나 낭비도 없었고, 심지어 마법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꿀꺽!
비은다각형의 발현을 보자 누군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 모두 최소한 6결 마법사. 자세한 회로도를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쓴 비은다각형이 이전 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바로 이거다. 이스마일과 할리, 마냐툴 등의 신생 렉시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위 마법사가 내게 안면도 몰수하고 아첨을 하는 이유가 비은다각형과 오온의 눈의 개량 및 경량화 때문이었다.
개량과 경량화.
마법은 개발한다고 끝이 아니다. 내가 비은다각형의 회로도를 수정한다고 일주일 동안 외부 활동을 중단한 것처럼, 개량과 경량화를 끊임없이 하여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개량은 딱히 설명할 게 없지. 개량은 말 그대로 개량이다. 발전하는 이론에 발맞추어, 현대의 이론을 추가해 마법의 전반적인 위력과 효율을 높이는 것.
반면 경량화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경량화는 게임의 최적화와 매우 유사하다.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마법이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만들면 꼬불꼬불한 지렁이 수천 마리가 기어 다니는 지저분한 회로도가 탄생하고, 잘하는 사람이 만들면 깔끔한 한 줄짜리 회로도만으로도 정리가 끝난다.
이럴 땐 당연히 후자의, 깔끔한 회로도가 고평가를 받는다. 심플 이즈 베스트. 무엇이든지 간략하고,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회로도만 남길 것.
그것이 경량화다. 개량과 경량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쓸데없는 마법 회로가 많으면 그에 비례해서 마법사의 정신력과 마나 소모가 늘어나고, 시전 시간도 길어진다. 또한 다른 마법과 연계하여 연환 주문을 쓸 때도 파탄이 일어난다. 일종의 버그 비슷한 놈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마법의 4요소 중 정신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이론과 탐구의 중요성이 큰 학문을 근성으로 때우면 언젠가 크게 고꾸라진다. 그 때문에 마법사는 늘 자신이 익힌 마법의 개량과 경량화에 전념한다.
그게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면? 그런 놈들도 있지. 그거 안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300년 전의 화염구 마법. 그마저도 지저분하고, 위력이 약한데다가 시전 시간도 오래 걸리는 마법 회로만 주렁주렁 익힌 삼류. 화염구 하나만 가지고 50년을 우려먹는 사골의 달인. 보통 그런 놈들을 용병 마법사라고 부른다.
과거 내가 용병 마법을 익힌다고 뮤온 보트라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그가 차라리 렉시놈의 마법을 익히라고 권유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용병 마법은 미래가 없다.
어쨌든.
오온의 눈과 비은다각형은 탄생한 지 5년도 안 된 신생아. 개량은 물론이고 경량화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개발도상기의 마법이다.
특히 오온의 눈은 돼지 새끼처럼 탐지 등의 기능을 모조리 집어넣은 탓에 경량화가 쉽지 않았다. 나도 오온의 눈은 난이도가 너무 높고, 상대적으로 비은다각형보다 홀대해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경량화라도 과거의 두 마법과는 천지차이의 효율을 보인다.
새롭게 태어난 오온의 눈과 비은다각형.
원래는 가르침을 받은 은혜를 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주려고 했는데, 이스마일이 먼저 선을 넘었잖아. 그래서 이렇게 골려주고 있는 거다. 그런데 시즈믹스 저 노인네는 뭐가 잘났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지?
시즈믹스가 말했다.
“난 안 해도 되거든.”
“왜요?”
“나는 너한테 마법 알려줬으니까. 네 스승이나 다름없지. 제자의 연구 성과를 스승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 나이 먹으면 낯짝이 두꺼워진다더니. 옛말 하나 틀린 거 없네.
나는 ‘허!’ 하고 헛숨을 지으며 시즈믹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즈믹스는 진심으로 꺼리는 게 없는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맑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좋다. 나는 품속에서 수십 장의 종이 묶음을 꺼냈다. 개량한 오온의 눈, 비은다각형의 회로도와 그 설명, 수련법, 주의사항 등이 적힌 마법서였다.
“이거 받으세요. 시즈믹스는 가장 나중에 익혔으면 하는군요.”
휙! 하고 뒤로 던지자 이스마일이 돌고래 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돌고래 점프를 하듯이 뒤로 펄쩍 뛰어 마법서를 낚아챘다.
꿀바른 사탕으로 몰려드는 개미떼처럼 마냐툴과 할리가 이스마일에게 접근해 찰싹 달라붙는다. 세 사람이 원을 만들고, 그 중간에 내가 던진 마법서가 있었다. 당연히, 내 부탁대로 시즈믹스가 들어갈 틈 따위는 없었다.
“으잉?!”
시즈믹스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팔락이며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집무실을 걸어 다녔다. 그런 나를 보던 시즈믹스가 역정을 내며 이스마일에게 다가갔다.
“야! 야, 이 배은망덕한 새끼! 내가 왜 제일 뒤야!”
마냐툴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시즈믹스를 슬슬 놀렸다.
“시즈믹스. 자네 차례는 나중이네. 어서 줄 서게나.”
할리도 은근히 시즈믹스를 막았다.
“실례하죠. 선배님.”
“어? 내가 이 새끼야! 스톤 그놈이 뭔 거지같은 수련법에 몸 상했을 때 몰래 약초값 깎아주면서까지 돌봐줬는데, 그 은혜를 이렇게 갚아?”
시즈믹스가 길길이 날뛴다. 그리고 거지같은 수련법이 아니라 괴괴괴괴 마나 운용술 초안이다.
“아, 예. 그런 적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감사하다가 끝이냐! 아이고! 요새 젊은 놈들이 은혜로 모르는 쌍놈이 넘쳐난다더니! 내가 그 꼴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쯧쯧!” 노인네가 추하게 왜 이러시나.
나는 혀를 차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내가 막 밖으로 발을 디디기 전, 마법서를 살펴보던 이스마일이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아, 참. 쟈기, 잠깐만! 줄 게 있었지! 소니아!”
다과를 먹으며 마법사들의 변태 짓거리를 구경하던 소니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책상 서랍에서 금박 된 종이와 인장, 몇 가지 서류, 땅문서 등을 들고 와 내게 전해주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그것들을 받았다. 가장 위에 있는 금박된 종이에는 나를 자작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자작! 그거 장난이 아니라 진짜였습니까?”
“농담인 줄 알았나? 20대 중반에 익스퍼트 중급, 마법을 제대로 익힌 지 5년 만에 이론 하나만큼은 고위 마법사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장한 천재 마검사를 남작 따위로 놀리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소니아가 이스마일의 말에 실실 웃으며 화려하게 장식된 브로치를 내 가슴에 달았다.
“중앙 대륙의 거대 왕국이면 이것보다 더한 걸 줬을 거야. 오히려 이 정도밖에 못 해줘서 미안한걸. 뭐 더 바라는 거라도 있어? 영지라던가, 아니면… 음, 맞선은 어때?”
이스마일이 말했다.
“맞선은 무서우니까 나는 상관하지 않겠네. 그 대신 영지는……. 쟈기, 가는 길에 집무실에 들러서 시녀장에게 영지수여 목록을 달라고 하게. 그중에서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걸로 고르게.”
“영지요?”
안 된다. 내가 이스마일이나 전생에서 피오드가 일하는 걸 보고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누군가를 다스리는 위치는 놀려고 하면 얼마든지 주지육림에 빠질 수 있지만, 한 번 마음먹고 덤비면 내 개인 생활을 몽땅 포기하고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부서의 구분이 지구처럼 세밀화되지 않은 이 세상은 영주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스마일 쯤 되면 개인 생활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소변을 볼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다.
어찌나 바쁜지 이스마일은 약 한 달 전, 페로스를 점령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련할 짬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지금은 천국의 계단 5대 마법이라는 주제 덕분에 시간을 낼 수 있던 거였다.
그러니 내 결론은.
“영지는 필요 없습니다. 수련하기에도 바쁜데 사람들 관리는 무슨.”
“겸손도 과하면 실례야. 전공 1순위가 영지를 마다하면 밑의 사람들도 그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되네. 싫어도 고르게나.”
“천국의 눈 고급 마법을 익히는 걸로 대신하면 되지 않습니까? 왕이 속한 마탑의 비전 마법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텐데요?”
“으음… 확실히 그렇긴 한데…….”
이스마일이 인상을 오묘하게 구겼다. 그가 이마를 긁적이더니 곤란한 어투로 나를 설득했다.
“그냥 영지로 받으면 안 될까.”
“아니, 왜요?”
“오온의 눈, 비은다각형, 개변상수치환. 5대 마법의 세 개를 익혔으니 나머지 두 개를 알려달라고 귀찮게 할 게 뻔하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자네를 선포식에 부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야.”
“……예?” 아니, 진심?
“선포식에 무슨 짓거리를 할지 알 수 없으니. 칩거한 틈을 노려 후다닥 도망쳤지.”
그의 말에 소니아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마법서를 읽던 시즈믹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둘의 반응을 보고 심히 억울했다.
저 둘은 설마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 거야?
“제가 아무리 정신머리가 없어도 공식 행사 자리에서 그런 짓을 할 미친놈으로 보이십니까?”
“나도 자네를 믿고, 더더욱 맹렬하게 믿고 싶네만… 페로스에서 자네가 한 짓을 잊었나? 비은다각형과 개변상수치환을 알려달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사람을 귀찮게 했으면서.”
“그거야…….”
“쉿. 그만. 쟈기, ‘귀찮게 했다.’는 건 굉장히 점잔은 표현이란 걸 알아주게. 자네는 심했어. 아주… 굉장히 심했다고.”
이스마일의 질린 듯한 말에 시즈믹스도 한소리 했다.
“암요. 그럼요.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온 걸 귀찮게 한다고 하지는 않지.”
책상을 정리하던 소니아도 끼어들었다.
“페로스 기사들을 쥐 잡듯이 패고, 영주성 복도를 네 발로 걷게 하면서 아버님이 집무실을 나올 때마다 그 장면을 보게 한 것도, 보통 귀찮다고 표현하진 않아.”
“미친놈입니다. 미친놈. 내가 그 장면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 있지 않습니까? 공녀님도 그거 보셨습니까? 페로스 사용인들이 저보다 저놈을 더 무서워하던걸?”
“…쿡쿡.”
마법서를 읽던 마냐툴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서 멀어졌다.
“그런 짓까지 했어?? 이거 완전 사이코패스 아니야?”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시즈믹스가 낄낄대며 웃었다.
“오해? 그럼 네가 한, ‘오해하지 마라! 너희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이 남아서 몸이라도 단련하는 거다! 아아! 정말! 나도 정신없이 바빠지고 싶다! 하루종일 수학(修學)에 매진하느라 팔굽혀펴기할 시간도 없었으면 좋겠다아아!’ 는 말도 오해가 맞나 보군.”
“…….” 내 말투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게 정말 화가 난다.
척!
나는 이스마일을 손가락질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시즈믹스 노인네를 마지막 순번으로 미루는 건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걸 영지 보상으로 대신하죠.”
“음! 알겠네. 나만 믿게나.”
이스마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직한 얼굴로 가슴을 퉁! 때렸다. 그런 뒤, 할리와 마냐툴을 데리고 숙덕거리며 마법서를 읽었다.
시즈믹스가 나와 이스마일을 번갈아 보더니 비 오는 날 버림받은 개와 같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야. 진짜 이러지 마.”
억울한 척은 있는 대로 다 하긴. 페로스에 있을 때 팔중 연쇄 마법 개량을 도와줬는데 양심이 있으면 순번이 뒤로 밀려도 참아야지. 노인네가 욕심만 많아서.
“본인이 가진 거나 열심히 익히시죠. 팔중 연쇄 마법에 심상 더하고, 나선 기하 구조를 프랙탈 구조로 바꿔서 무한 마법 발현을 이루면 그게 곧 비은다각형입니다.”
“진짜?! 진짜루?”
“예. 심지어 그건 곡선 회로도 추가할 수 있어서 여덟 번에 한정하면 팔중 연쇄 마법의 공격력이 더 우월합니다. …이렇게.”
나는 손을 내밀었다.
포옹~!
콩알만큼이나 작은 불덩어리가 손바닥에서 튀어나온다. 1결이니 2결이니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한, 기초 중의 기초인 속성력 발현. 굳이 나누면 0결 쯤 되는 것.
그 속성력 발현을 기반으로 팔중 연쇄 마법을 펼친다. 콩알만 한 불덩이가 폭발하고, 바람을 맞아 크기를 불리고, 수정이 더해지며 형태를 이루고, 다시 폭발하여 열을 불리고…….
한 마법에 여덟 번의 증폭이 이루어지자 기초에 불과한 속성력 발현이 3결 수준의 화염의 창과 비슷한 수준까지 위력을 불렸다.
거의 3결이나 되는 증폭. 물론 고위 단계로 가면 해봤자 한 단계 상승이 고작이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증폭만이 아니라 연쇄 과정을 바꾸면 둘로 나눌 수도 있고, 페이크를 걸 수도 있는 뛰어난 마법이다.
“허어……!”
시즈믹스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 했다.
“그러니까 그거나 먼저 숙련하세요. 그러는 만큼 비은다각형을 배우는 기간도 단축될 겁니다.”
나는 손에 쥔 자작 작위서를 팔랑이며 시즈믹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은은한 콧노래를 부른다.
‘자작이라…….’
이전에 말했듯이, 자작 작위 정도로 기뻐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기쁜 것은 이전보다 더 폭넓은 권한을 가졌다는 것. 나는 이 권한으로 뭐를 할지 행복한 고민에 잠기며 계단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