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말은 위협적으로 했지만, 실제로 뽑으려는 건 아니다. 어디서든 기선제압이 중요하지. 특히나 나라마저 버리고 떠난 만 단위의 난민이라면 본인들의 힘을 오판하고 엉뚱한 짓거리를 시도할 수 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면 풍부해진 유기물로 올해 농사가 풍년이라는 것 말고는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 미리 기를 죽여 놓는 것이다.
나는 황급히 머리를 땅에 박는 다이스에게 말했다.
“이름이 다이스라고?”
“예, 예. 그렇습니다.”
“귀족인가?”
“아······ 그렇습니다.”
다이스가 포기한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귀족이라면 그에게 얻을 정보가 많다. 난민들을 큰 소란 없이 이끌었으니 나쁜 대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스를 펜 백작에게 넘기고, 난민들을 본다. 난민들은 대지의 장벽과 위에 올라선 병사들에게 잔뜩 겁을 먹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한곳에 옹기종기 모였다.
‘기선제압은 끝났고, 우리 측 준비는?’
나는 뒤를 돌아봐 일렬로 쫙~ 늘어서서 책상과 의자, 서류 준비를 끝마친 행정관들을 확인했다.
그룹 아이돌 악수회 준비를 보는 것 같은 풍경이다. 아이돌 대신 일에 찌든 아저씨, 팬들 대신 당장 내일 먹을 것도 없는 난민들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쨌건, 준비를 끝낸 행정관들과 뒤에 도열한 병사들을 보고는 두려움에 수군거리는 난민들. 그들에게 확성 마법을 걸어 말한다.
“자. 난민놈들아. 네놈들이 그토록 원하던 게리소님 입국 심사를 시작하겠다. 제일 먼저 기술자. 치료사, 초보 연금술사, 하다못해 십장(什長)일을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 뭐든 좋으니 ‘나는 기술을 익혔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놈부터 온다.”
“저 요리삽니다!”
“양심 있으면 요리사는 빼고. 이 새끼야.”
요리사랍시고 손을 든 녀석을 앞으로 끌고 와서 대가리를 박게 한다.
원산폭격을 한 요리사를 앞에 두고, 이어 말한다.
“그다음이 가족들. 너희도 일 일찍 끝나면 좋지? 가족들부터 훅훅 분류해서 사람들을 빼자고. 개인은 신분패, 인명 장부, 용병증. 뭐라도 좋으니 자기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걸 보유한 사람만 와라.”
내 말이 끝났지만, 아무도 행정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이거 다이스를 다시 불러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시점.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 거적때기를 입은 여자가 꼬질꼬질한 아이 세 명의 손을 잡고 용감하게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병사에게 명령해 그 여자를 가까운 행정관에게 안내하라고 말했다. 책상에 마주 보고 앉은 여성과 행정관. 행정관이 무덤덤한 음색으로 물었다.
“순서대로. 이름, 성별, 나이, 관계, 배우자.”
“니, 니보라입니다. 나이는 서른···하나? 서른둘입니다. 옆에 애들은 제 자식 한 명에 언니네 자식 둘. 남편하고 언니네 가족은 죽었습니다. 순서대로 이름은······.”
“음. 신분증.”
“어, 없습······.”
“···어디서 왔는지만 얘기해.”
여자가 더듬더듬 출신지를 말한다. 행정관은 심드렁하게 그것들을 적고는 뒤로 넘겼다. 뒤에선 보조 사무관이 종이를 받고, 두꺼운 종이에 표를 만들어서 여성과 아이의 신원을 적는다.
그런 뒤, 간이 신분패를 대강 만들어서 행정관에게 전달한다. 간이 신분패 네 장을 받은 행정관이 그것을 여성과 아이들에게 건넸다.
“받아라. 잃어버리면 벌금이다. 병사들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하라는 대로 해라.”
“저, 저기로 가면······.”
“전염병이나 위험물질 있는지 확인하는 거니 어느 쪽에도 해당 안 되면 안심해도 좋다. 대신 옷은 다 벗어야 하니 반항하지 마라. 다 끝나면 가라는 데로 가서 씻고, 옷하고 지원물자 받고, 묻는 거에 꼬박꼬박 잘 대답하면 아무 일 없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정말로 감사······.”
여자가 울먹거리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지만, 행정관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왜냐하면 난민들은 2만 명이 넘고, 일을 봐야 하는 행정관의 수는 스무 명도 안 되기 때문이다.
단순계산으로 한 명당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 일천 명을 넘는다. 앞날이 뻔히 보이니 상대방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해도 지겹기만 하겠지.
삐꺽! 여성이 의자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병사들이 친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까지 봤는데도 다들 발을 내딛지 못하고 구경만 한다.
나는 시간이 남자 재차 말했다.
“너희가 주의해야 할 걸 말해주마. 하나, 거짓말하면 죽는다. 둘, 신분패 가짜면 죽는다. 셋, 가족 아닌데 가족이라고 구라치면 죽는다. 가짜는 일 처리가 조금 복잡해지니까 양심껏 나중에 오고, 왔을 때 미리 가짜라고 말해라. 넷, 오면서 범죄 저지른 새끼는 죽는다. 다섯······.”
말처럼 다 죽이지는 않지만, 이런 건 분위기가 중요하지. 내 경고 항목이 10번째까지 이어질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천막으로 들어갔던 여성이 나왔다.
행색은 여전히 꼬질꼬질하지만 아까보다는 괜찮았다. 그녀가 품에 간소한 옷과 삭아가는 나무 그릇, 수저 등을 들고는 병사들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다.
비척······!
여성의 안전을 확인하자 용기가 생겼나 보다. 난민들이 하나둘씩 행정관에게 다가왔다. 몰려오는 난민들을 보자 내 뒤에 도열한 백여 명의 병사들이 잽싸게 앞으로 나와 난민들을 정리했다.
“줄 서! 새치기하지 말고! 당신 뭐야! 기술자? 얼른 간다!”
“자작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족! 기술자부터 온다! 너 뭐, 신분증? 기다려!”
덩치가 커다란 병사들과 기사들이 일차로 난민들을 거르고, 줄을 세운다.
“옷은 한 겹만 입어라! 무기는 미리 빼놓고!”
“손 주머니에서 빼라! 빼라고! 너 옷 안에 뭐 숨겼나? 팔 벌려! 양팔 벌리라고 이 새끼야!”
퍽퍽!
말을 안 들으면 무자비한 폭력이 기다린다. 뒤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행정관에게 신분을 읊던 이들이 움찔한다.
“야, 빨리빨리 말해.”
“아, 옙. 예전에 마법사님 도제(徒弟)로 일했습니다. 제대로 배운 건 없지만, 시약분류나 약초학은 익혔습니다. 필사(筆寫) 일도 해서 글도 읽을 수 있습니다.”
“흠··· 뒤로 가서 하라는 거 하고. 다 끝내면 여기 4번 보여줘라. 가. 다음! 앉아. 이름, 성별, 나이, 관계···. 음. 다음. ···다음. ···다음. ······너 아까 맞은 새끼지. 넌 위험분류다. -1번 들고 가라. 다음······.”
행정관은 폭력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귀찮음만이 가득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난민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업무량이 대폭 줄어들 테니까.
“어이.”
나는 반데스 영지에서 데려온 빛의 수호자 중 사무 업무를 보던 이들에게 고갯짓했다. 그 수는 16명. 내가 괜히 이들을 골라 데려온 게 아니다.
“알겠습니다.”
역시 척하면 척. 16명의 사무 업무자들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금세 깨닫고는 한 명씩 행정관에게 붙었다. 옆에서 행정관의 일을 보조하며 기본적인 업무 방식을 배운다.
말이 빛의 수호자 일반 조직원이지. 간단한 마법이라도 익힌 것 자체가 지식이 범상치 않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런지 몇 번 보는 걸로 금방 업무를 익히곤, 행정관의 업무량을 줄여주었다.
사무 업무자들이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빛의 수호자 측 익스퍼트 중급의 검사, 제논. 그가 난민 무리 중 한쪽을 가리키더니 내게 말했다.
“쟈기 자작님. 저는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제논도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듯했다. 그가 내가 함께 데려온 빛의 수호자 검사 여섯 명을 이끌곤 차례를 기다리는 난민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표는 건장한 남성들. 젊음과 힘을 무기 삼아 난민들을 빨아먹던 놈들이다.
하지만 제까짓 것들이 해봤자 마나 유저 중하급 수준의 용병들에 불과하지. 익스퍼트 중급 검사 한 명과 스칼러 여섯 명 앞에선 용병이나 오늘내일하는 90대 할아버지나 그게 그거다.
제논과 검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접근하자 그들이 금방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꼴에 대장 짓거리 며칠 해봤다고 눈빛에 반항심이 가득하다. 제논이 건들거리며 다가와 남자들에게 경고했다.
“거기 남자들. 뒈지기 싫으면 짝다리 풀어라. 무기 내리고, 우리 인도에 따라서 이짝으로 와라.”
“뭐, 뭡니까······?”
“뭡니까? 이 새끼가 죽으려고 말대꾸를.”
퍽! 퍼억!
제논의 다리가 희끗해지더니, 열 명이 넘는 남자들에게 날아 차기가 작렬했다. 두 명이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섯 명이 쓰러지며 손목 골절을 일으켰지만, 그의 손속에는 사정이 없었다.
소란이 일자 남자들이 이대로는 당할 수 없다는 듯 무기를 들었다. 검사들이 유령과도 같은 몸놀림으로 접근해서 녀석들을 제압하고 무기를 뺏는다. 가장 질이 좋은 장검이 제논의 손에 들렸다.
부우웅!
귀여운 반항은 제논이 든 무기에서 치솟은 적록색 빛 무리, 오러를 보자마자 끝이 났다.
“이 시팔 것들이. 좋게 말하니까 안 듣지. 다 대가리 박아.”
꾸왕!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대지에 지름 5미터, 깊이 2미터가 넘는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순간부터 난민 폭력단은 순종한 양이 되어 제논과 검사들의 명령에 따랐다.
제논은 그들을 데리고 가서 따로 신분 검사를 실시했다. 펜 백작이 손짓하자 병사 몇 명과 기사들이 빠져서 제논의 신분 검사에 행정적 도움을 주었다.
나는? 나도 할 일이 있었다.
“저놈는 왜 용병인데 노동자로 위장하냐?”
“잡겠습니다.”
“야, 가족들은 웬만하면 모르는 척하는데 저건 너무 뻔히 보이잖아. 딱 봐도 애새끼들 납치한 건데··· 저놈도 잡아.”
“예.”
“···저거는 왜 손에서 사람 피 냄새가 나. 그냥 다툰 게 아니라 아주 피범벅이··· 어쭈? 신선도 보니깐 오늘 아침에 막 묻혔는데? 애들 데리고 가서 제압해. 반항하면 죽여.”
“알겠습니다.”
이게 내가 할 일이다. 초능력 파동과 텔레파시, 성력의 칠감, 마법의 분석으로 심사를 받는 난민들 발언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암살자나 도둑놈 또는 용병처럼 억센 일을 한 녀석들을 분류한다.
“약초꾼이라면서 손에서 왜 약 냄새가 안나. 잡아. 대장장이? 물집 보니깐 망치 용병이 뭔 놈의 대장장이라고··· 두들겨 패서 제일 뒷줄로 보내.”
기술자라고 뻥 치는 놈도 다 나한테 걸린다. 내 감각을 벗어나는 놈이면 그놈도 그놈대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니 일일이 신경 날카롭게 세울 필요가 없었다.
“건축가? 잠깐, 너 이리 와봐. 이 냄새 어디서··· 이거 마약인데? 죽여. 너는 옷 안감에 뭐가 있냐? 쟤 죽은 거 봤지. 안 뺏으니까 죽기 싫으면 꺼내. 마법 단검? 뭐? 전쟁 중에 주웠다고? 일단 빠져. 너는··· 너 지금 행정관한테 현혹 마법 걸었어? 얘도 죽여.”
한창 사람들을 솎아내는 와중, 차분하게 신상 명세를 읊는 난민 한 명을 가리킨다. 본인 말로는 몬스터 해체 업을 전문으로 하던 정형 기술자라는데, 내 감각은 못 속인다.
“저 새끼. 잡아. 암살자다.”
“옙!”
슈라드 영지의 기사, 랄포드가 이유를 묻지도 않고 난민에게 접근했다. 그가 손을 뻗자 정형 기술자라 말한 난민이 벌떡 일어나 그의 손길을 피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내 손을 피해? 이것도 피해 봐라.”
“어, 어이쿠! 살려 주십시오!”
휘익!
랄포트가 내지른 주먹질을 난민이 대경실색하며 피했다. 스칼러 중급 고수의 공격을 난민 따위가 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예상대로 어디서 한 가닥 배우고 온 놈이다.
녀석이 품에 손을 집어넣는다. 병사들이 사전에 엄격하게 검사하는데 어떻게 속였는지 안에 단검을 한 자루 숨겼다. 그것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뻗었다.
퍼엉! 푸스슥!
공기 폭발이 암살자의 오른쪽 팔뚝을 터뜨렸다. 피와 조각난 살점이 사방으로 치솟고, 정형 기술자로 위장한 암살자가 ‘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곧장 병사 몇 명이 달려와 암살자의 팔다리를 묶는다. 떨어진 팔뚝은 지혈도 해주지 않는다. 죽으면 제 복이고, 살면 모진 고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질질 끌려가는 암살자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서류 심사를 받는 이들의 신상을 살폈다.
이렇듯이, 위험분자 색출도 내가 맡은 임무였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특히, 타 국가에서 어둠의(ㅋ) 조직(ㅋㅋ)에서 일하던 길드원은 한 놈도 빼놓지 않고 색출한다.
그들은 다 제논에게 보내졌다. 비밀조직의 최상위계층, 빛의 수호자에서 일하던 제논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들은 분류에 포장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죄의 경질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상황을 깨닫고 도망치려는 놈들은 포위한 병사들의 화살, 제논의 오러, 내 마법에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들 봤냐? 안 들킬 자신 있으면 와라. 없으면 솔직하게 불고 자수해서 광명 찾자고. 거짓말했는데 반항까지 하면 저 새끼처럼 죽는다.”
판결? 심사? 그런 게 왜 필요하냐.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귀족이 까라고 하면 까는 세상이다. 내가 죽이라면 죽이는 거고, 살리라면 살리는 거였다.
“용병패 줏었습니다. 사실은 병사입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서 도망쳤습니다.”
“통과.”
“제 친구 자식이라고 거짓말 했습니다. 사실은 오면서 불쌍해서 거둔 아이들입니다.”
“오케이. 통과.”
“저, 저기··· 도둑 길드에서 일했고 대외적으로는 기름장이 였습니다만, 이게 돈이 더 벌려서······ 헤헤! 도둑질에서 손 씻은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일단 통과. 너는 이거 들고 2번 분류로 가라.”
역시 몇 명쯤 죽여야 말을 잘 듣는다니까.
질서 정연하게 착착 이루어지는 난민 분류를 보자 펜 백작이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짜 신분패를 들어도 들여보내 주는 건가?”
“가짜라고 막으면 저들 중 절반 이상은 돌려보내야 됩니다. 그렇다고 얌전히 돌아갈 리가 없고··· 한 1만 명 정도 죽여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거 다 죽여도 안 끝나고 이후로도 매일 백 명 씩은 죽여야 됩니다만.”
펜 백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속으로 계산을 마친 그가 투덜댔다.
“시체 치우는데 들어가는 인력하고 그 탓에 낭비되는 노동력을 생각하면··· 쯧! 일이나 제대로 해주게.”
“걱정 마십시오. 야! 재봉일 한다는 놈이 웬 피 냄새를 이렇게 풍겨! 저놈도 뒤로 빼!”
대화하는 도중에도 이상한 놈들을 솎아낸다. 펜 백작은 그런 나를, 난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영지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영주성으로 복귀해 본인의 업무를 하다가 다시 방문한 펜 백작이 일천 명이 넘는 난민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벌써 이만큼이나 들어왔군.”
“기존에 해 놓으신 게 있으니깐요.”
난민들의 입국 심사는 내가 일을 잘한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이루어지는 절차와 행정인원, 기타 필요 자재 등은 펜 슈라드 백작이 3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놓았고, 나는 그가 닦아놓은 길을 걷는 것에 불과했다.
왜 펜 슈라드는 3개월부터 준비를 했음에도 막상 난민들을 받지 못한 걸까. 이후에 올 여러 골칫거리 때문이었다. 펜 백작이 그것을 입에 담았다.
“받는 건 나야 환영할 일이다만, 입은 어떻게 채울 건가? 또 그들을 지원하는 방법은?”
우선, 2만 명이 먹을 식량을 날라야 한다. 그것들을 옮기는 짐꾼, 말과 마차, 운송업자, 보호를 위한 병력, 서류처리까지. 식량 하나를 나르는 데만 해도 엄청난 보조 인력이 필요하다.
‘성인 한 명이 굶어 죽지 않는 수준의 식량, 바싹 마른 곡물을 하루에 200g씩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지. 그러면 하루에만 4톤이 넘는 곡물 포대를 날라야 한다.’
근데 식량만 주면 끝이냐? 식량을 넘어, 도둑질 따위를 하지 않게 필요 최저한도의 옷과 식기 등까지 제공한다면 필요 노동력의 수는 단번에 두 배 이상 치솟는다.
여기에 집을 짓는데 들어가는 자재까지 포함한다면··· 말이 난민 2만 명이지 저들의 의식주, 새로운 신분과 일자리 제공을 위해 몇천이 넘는 인력이 들어간다.
현재 게리소님은 사무 업무를 볼 수 있는 지식인, 치료사를 비롯한 전문 기술자 한 명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수요가 공급을 몇 배나 초과하는데 난민들을 위해 전문 인력을 뺄 여유가 나지 않는다.
결국,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난민들을 방치한 것이다. 그러다가 3개월 동안 쌓이고 쌓인 인원수가 2만을 넘겨,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고.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는데 위의 모든 계산은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라는 것. 그리고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마법사다.
나는 펜 백작에게 말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부디 합당한 근거가 있었으면 좋겠군.”
“제가 죽어라 일하면 됩니다.”
“···? 아아··· 감찰관 때 그걸 말하는 거군. ······열심히 하게.”
펜 백작이 안쓰럽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타닥! 타닥!
그날 밤. 몇 개의 커다란 모닥불을 두고 두 무리로 나뉜 난민 캠프.
한쪽은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만 수천 명. 다른 한쪽은 새로운 신분을 임시로 획득한 게리소님 국민(가) 수천 명이 머무르는 장소였다.
그곳을 여러 병사와 제논 등이 돌아다니며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관리한다. 나는 제논에게 다가가 밤새 수고해달라고 말한 뒤, 슈라드 영지로 들어갔다.
게리소님과 위성도시, 몇몇 주요 도시는 벌써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의 설치가 끝났다. 나는 영주성으로 들어가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날았다.
‘알테어에 지하철이 있으면 게리소님은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으로 물류 이동의 혁신을 이루었어.’
7결 마법사가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보조 마법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 한 번에 십 톤이 넘는 물자 이동이 가능하다. 여기에 내가 몰래 초능력까지 쓴다면 감당할 수 있는 질량은 두 배를 가볍게 넘긴다.
두 배 이상은 들킬 위험성이 있어서 참으니까 자제해야겠지만, 그 밑은 간당간당하게 괜찮지.
한 시간을 날아간 나는 마탄 항구에서 곡물가루 수십 톤을 받아와 마탄 영주성의 초장거리 비행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 슈라드 영지 앞, 난민 캠프에 전달했다.
쿠웅!
“야, 아까 요리사라고 말했다가 대가리 박은 놈 나와라. 너야? 너 저기 기사 보이지. 저분한테 가서 일꾼들 뽑아가지고 이걸로 꿀꿀이 죽 대량으로 제조해. 내일 아침까지 못 하면 또 대가리 박는다. 어? 어, 너 오늘부터 난민 요리사야.”
좋다고 펄쩍펄쩍 뛰는 요리사의 머리를 쥐어박고, 다시 영주성으로 들어가 초장거리 이동 마법으로 근처 영지를 순회한다.
그곳에 가서 목재나 금속 자재, 곡괭이나 삽 등을 한 아름 들고 슈라드 영지로 나른다.
철그렁! 철컹!
와르르! 철커덩!
밤새도록, 쉬지 않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나르고 날라. 거진 백여 톤의 원자재를 슈라드 영주성 앞에 동산처럼 쌓았다.
“에휴!”
한숨도 자지 못하고 짐을 날랐지만, 아직 쉴 때가 아니다. 전문 지식인이 필요하다. 빛의 수호자 중에서 몇 명을 더 데려와야겠어.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반데스 영지를 향해 날았다. 그렇게 오늘도, 그 다음 날도 오전과 오후에는 심사받는 놈을 가려내고, 밤은 식량과 자재를 날랐다. 휴식 없는 노동은 근 일주일 동안 이어져서야 겨우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