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 * *
하늘 끝까지 치솟은 의지가 자그마한 점으로 압축된다. 성력과 마나, 초능력이 용암처럼 녹아내려 점 내부를 맹렬하게 휘돈다.
각기 다른 형태의 힘을 녹이고,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탄생시킨다. 극히 짧은 시간에 탄생한 이 에너지가 불안정한 융합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분리되기 전, 정신이라는 막을 씌운다.
그것은 태양을 베는 심상. 광속으로 뻗어 나가는 오러. 구름 너머, 우주권까지 솟구치는 파괴의 잔해, 공간을 희롱하는 칼날의 잔영이었다.
이전 다섯 번의 공격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에 있었다. 오러를 위한 무학, 나의 영혼, 심상, 공간의 한계에서의 자유, 물리적인 파괴력. 이 다섯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서 일반적으로는 재현 불가능한 초월자의 공격을 따라라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따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본 초월검이 아니다. 학의 몸짓을 따라 한 학권처럼, 태양을 재현하고자 했지만, 촛불이 탄생한 것처럼. 초월자의 그것을 어설프게 재현한 베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가. 태양을 노렸는데 촛불을 켰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라 촛불이라도 킨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것은 초월검이다. 원본 초월자의 초월검은 아니지만, 나의 초월검은 맞았다. 나의 초월검이, 언젠가 진짜 태양을 벨 욕심을 품은 오러가 반조를 향해 쏘아졌다.
우지직!
반조의 몸이 오므라들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초월검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붕괴하고 있었다. 둘째는 그는 생명력으로는 부족해서 사지, 상체를 이루는 세포의 생명에너지까지 전부 긁어모으는 탓에 몸이 쪼그라들었다.
퍽! 하고 반조의 잘린 왼팔 끄트머리가 가루가 되어 흐트러졌다. 그가 한 짝 남은 팔에 들린 검으로 전신의 생명력, 마나, 진원마저 몽땅 모아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번쩍!
노란 오러가 그의 검에 맺혔다. 마치 만월처럼 또는 매우 드물게 노란 형태가 똑바로 보이는 구름 낀 오후 즈음의 태양처럼.
아니, 그것은 달도 태양도 아니었다. 노랗게 빛나는 오러는 반조의 삶이었다. 미래가 없이, 언젠가 허무하게 꺼져버릴 그날을 기다리며 늘상 타오르기만 했던 그의 영혼이었다.
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공격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고… 그리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반조의 나머지 삼지(三肢)가 터지고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가는 것을 끝으로, 내가 재현한 초월검이 어두운 하늘을 찢고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슈와악!
바람이 불어온다.
무너진 왕성에 넘실거리는 불꽃은 사라졌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먼지도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초월검이 바람을 이끌고 불꽃, 먼지를 포함한 여러 ‘물질’을 없애버린 것이다.
초월검이 없앤 휑한 평야.
“…….”
어느새 싸움은 멎어있었다.
근처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에게 칼을 날리던 게리소님과 에이스헨의 익스퍼트들이 벙~ 찐 얼굴로 나와 사지가 터진 반조를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받으며 오연히 서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이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뭘까. 자, 다 좋은데 우리 하나만 확실하게 하자.
질문 하나. 션은 어째서 승천자의 무학을 그대로 쓰지 않고 션만의 검술을 창안하는데 10년을 바친 걸까?
답 하나. 승천자의 무학은 르암인의 신체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르암인은 르암인의 무학을 쌓아야 했고, 승천자의 무학은 그것을 도와주는 재료 역할로만 써야 했다.
그런데 나는, 승천자의 검법을 썼다. 그것도 소드 마스터 전용의 무술을. 겨우 르암인 따위의 육체를 가진 놈이.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승천자 전용 소드 마스터의 무술을.
르암인이 경솔하게 쓴다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꺄아아아악!’
엄청난 통증이 나를 덮친다! 아파! 진짜, 너무 아프다! 맹세코 이렇게 아플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숨만 쉬어도 아프다! 눈을 깜빡이기만 해도 아프다고?! 침! 침 삼키지 마! 침을 삼키는데 상체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이!!
온갖 고문을 훈련받았던 51번의 경험이 있는데도 이 고통을 버티기가 힘들다. 텔레파시로 정신을 마비시켜 고통을 피하려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나에 의한 부작용이니, 텔레파시로 피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거짓말 안 하고, 똥 지릴 것 같다. 이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정도가 아니다. 좀 더 정확한 비유를 하자면 비둘기가 불사조를 따라하려다가 온몸이 불에 타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미쳤지. 왜 이딴 짓을 했을까.
소드 마스터가 되어서 괜찮지 않을까… 했던 방심이 절반, 반조의 삶에 가장 어울리는 검공을 쓰려고 했던 마음이 절반이었다.
여하튼, 나는 사나이의 마음가짐으로 초월검을 썼고, 후폭풍이야 어쨌든 그걸 훌륭하게 성공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반조에게 다가가 그의 유언을 듣는 것이다.
나는 저 멀리, 구석에 처박힌 반조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터벅!
와. 잠깐만. 한순간 눈앞이 까매졌어. 설마 나 걸음 하나 옮겼다고 기절한 거야? 아니지? 아닐 거야.
터벅.
어. 이런. 기절한 거 맞네. 또 까매졌어.
타박. 타박.
까매졌다. 돌아왔다. 까매졌다. 돌아왔다.
이거 참. 잘 가다가 마지막에 와서 폼이 무너지는구먼. 쪽팔리기도 해라.
터벅. 시신경 프로그램 다운과 리부팅을 마흔 번쯤 반복했을 무렵, 나는 죽어가는 반조의 바로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흔쩌.”
너무 아파서 혓바닥이 잘 돌아가지 않고, 청각도 정상작동하지 않는다. 나 지금 반조라고 똑바로 말한 거 맞지? 다행히 제대로 반조라고 발음했는지,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초월검을 정면에서 맞은 반조는 전신이 멀쩡한 데가 없었다. 우선, 그는 사지가 몽땅 터졌다. 얼굴은 본래 형상을 알기 힘들게 뭉개졌고, 전신은 3도 화상을 입은 환자처럼 피부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수십 초 안에 죽는다. 죽기 전에 유언이라도 말하라고 충고해야겠어.
“너흐 쓰쪼! 아네 쭈으꺼야.”
“…뭐?”
“유언.”
“…….”
반조가 으스러진 눈알을 굴려 하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마지막에 그거. 또 보고 싶어.”
“앙대.”
앙 댄다. 절대로 앙 댄다.
반조의 열의에 감탄해서 나도 모르게 태양육본참을 썼지만, 원래 이 검술은 ‘문명’이 자리 잡은 항성권에서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유는 당연히, 항성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 태양육본참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항성을 반으로 똑! 가른다. 이 얼마나 가슴 두근두근한 말일까. 하지만 만약 세상이 지금보다 한 100배 쯤 발전한다면, 그 시대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목록 중에는 ‘항성 쪼개기’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착한 어린아이들아 절대로 항성 쪼개지 마라. 어떤 어리석은 초월자처럼 말이지.
태양육본참 육검, 초월검의 창시자인 초월자는 분명히 항성을 쪼갰다. 언월도가 수박을 쩍! 가르듯이, 초월검이 수백만 킬로미터의 원자 바다를 단숨에 반으로 나누었다.
모든 게 좋았다.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우주에게 있어선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고, 지성종족에겐 일어나선 안 될 악몽의 시작이었다.
항성은 반으로 갈라졌다가, 중력에 의해 빠르게 다시 합쳐졌다. 중력은 정상작동 했지만, 반으로 갈라진 탓에 항성 내부의 핵융합 과정이 급작스럽게 멈췄다.
반으로 쩍 갈라진 수박 절단면이 다시 붙은 것이다. 아니, 겨우 수박 따위가 아니라, 최소 양(壤) 또는 구(溝) 단위로 무게를 세야 하는 수소~헬륨 원자가 떨어졌다가 붙는 것이다.
그만한 질량의 원자 구름이 떨어졌다가 붙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량이 얼마나 될까. 멈춘 핵융합 과정은 또 어떻고?
핵융합 에너지에 방해를 받지 않고 합쳐지는 힘+중력에 의해 한점으로 급격하게 수축한 항성은 중력 붕괴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항성은 충격파와 함께 내부 물질을 외부로 날려 보냈다. 간단히 설명해서, 일어나선 안 될 시기에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초월자는 초신성 폭발에 휘말려서 신체를 이루는 분자 하나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항성권에 빌붙어 살아가는 문명 또한 행성째로 폭발에 휘말려 스러졌다. 그렇게 승천자 이상의 발전을 이룩할 잠재력을 지닌 문명은 초월자의 힘자랑에 휘말려 멸망했다.
대체 그들이 무슨 정신머리로 초월자가 항성을 베는 것을, 그것도 그네들의 태양을 베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멍청한 새끼들. 승천자 이상의 잠재력은 무슨.
그렇게 초월자가 사는 문명은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초신성 폭발에 원자단위로 분해되었다. 이것이 승천자가 오기 수천 또는 수만년 전에 일어난 멸망의 원인이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 승천자는 이 초신성 폭발의 원흉인 항성의 질량과 나이, 기대수명을 따지고 보았을 때, 수십억 년이나 빠르게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 것에 의문을 품고 성운 지역을 방문했다.
그러다가 멸망한 성운 근처를 떠돌던 초월자의 의지를 수거하여 위의 사실을 알아내었다. 초월자의 마지막 무학, 항성 베기 또한 그때 수집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 탓에 태양육본참은 문명이 자리 잡은 항성권에서 쓰면 안 된다. 하지만 반조에게 그걸 일일이 설명할 순 없는 노릇이지. 나는 다른 이유를 대서 반조를 설득했다.
“이거 쓰면 내 몸이 너무 아파. 이번 한 번만 쓰고 평생 봉인이다.”
짧은 사색의 시간 동안 초능력과 성력으로 발성기관과 청각을 겨우 회복했다.
내가 명확한 발음으로 이유를 말하자 반조가 혓바닥을 쭉! 내밀어 밑을 가리켰다. 하는 행동이 꼭 손가락으로 자기 몸을 가리키려는데 손가락이 없어서 혓바닥으로 손가락을 대신한 것 같았다.
“내 몸을 봐. 난 아픈 게 아니라 조금 있으면 죽는데?”
“죽는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지 내가 대신 사는 게 아닌데, 왜 너 죽는 걸 내가 신경 쓰냐?”
“어…….”
할 말 없지? 이 무식한 놈아.
킥킥. 반조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러다가 컥! 하며, 입에서 새까맣게 탄화된 가루를 내뱉었다. 그가 가루와 검은 핏덩이를 몇 리터나 내뱉은 후에, 후련한 어조로 말했다.
“재밌었어.”
“그러냐.”
“다음에 또 놀자.”
그렇게 반조는 죽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손을 내밀어 반조의 머리통을 꽉 움켜쥐었다.
녀석의 머리를 잡고, 높게 치켜들곤 외쳤다.
“에이스헨의 소드 마스터 반조는 죽었다. 다들 항복해라! 당장 싸움 그만!”
퍼억!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느억이의 채찍이 익스퍼트 상급의 여성을 꿰뚫었다. 복부가 꿰뚫린 여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깔깔!”하는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쓰러졌다.
반조와 나의 싸움에 전투를 멈추고 우리 둘을 구경하던 나머지 익스퍼트 또한 전의를 잃었다. 11명 생존한 에이스헨의 익스퍼트가 얌전히 무기를 버리고 기사들에게 구속되었다.
“…….”
고요만이 남은 땅. 대부분 싸움을 멈췄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는 두 명의 인영이 남아있었다. 바로 소니아와 익스퍼트 최상급의 거지 사내였다.
“차핫!”
소니아와 익스퍼트 최상급의 싸움은 비등비등하게 흘러갔다.
최상급에 들어선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소니아. 반면에 최소 10년 이상 최상급에 머무른 사내.
둘의 전력을 비교하자면, 신체적 조건은 소니아의 압승이다. 체력, 근력, 반사신경, 마나량, 내구도는 물론이고 검술마저도 소니아가 월등히 뛰어나다.
반면에 사내는 온몸이 흉터 투성이었다. 흉터는 관절과 인대를 가로지르는 위치도 많이 뒤덮었는데, 그 때문에 몸을 격하게 쓰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실전경험 또한 소니아의 압승. 그녀는 수십 년 넘게 렉시놈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몬스터와, 인간과 싸운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위의 우세가 있음에도 싸움은 소니아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이유 하나. 실전경험이 소니아가 많다고 해도 그것은 익스퍼트 이하의 고수와 싸운 경험에 불과하다. 같은 수준의 고수,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초고수와 싸운 경험은 사내가 월등히 많았다.
이유 둘. 사내는 생사의 간극을 볼 수 있었다. 칼날이 맞부딪히는 순간, 소니아 수준의 달인도 놓치는 만분의 일의 간극을 사내는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다. 죽음에 이르는 실전 대련이 사내에게 그 한순간을 파고 드는 감각을 선물해주었다.
상대가 나보다 월등히 힘이 강해도 똑같이 오러 한 번 제대로 찔리면 죽는 인간에 불과하다. 사내는 그 한 번의 틈을 노리며 소니아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소니아는 점점 손과 발이 묶여서 검술에 제약이 발생했다.
이 싸움의 결말은 극단적인 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몇 시간이고 싸우는 체력전. 체력전으로 가면 소니아의 압승이다. 반면에 앞으로 몇 분 안에 결판이 나는 속도전. 속도전으로 끝나면 사내의 압승이었다.
체력전이냐 속도전이냐.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 고수의 수 싸움이 펼쳐지는 화려한 현장.
그래. 다 좋은데. 내가 싸움 멈추라고 했잖아. 이 건방진 새끼야. 화려하고 뭐고, 당장 칼 안 내려?
퍼벙!
나는 화염 폭발을 소니아와 사내의 중간에 떨궜다.
소니아는 내 쪽으로 백 텀블링을 해서 폭발을 피했고, 사내는 파리 쫓듯이 검을 휘둘러서 화염을 흐트러뜨렸다. 화염을 벤 그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만, 망설이지 않고 내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카앙!
내 목을 베려는 사내의 검을 소니아가 막았다. 그녀가 찻! 하고 검을 크게 휘둘러 사내를 밀치곤 내 앞을 가로막았다. 소니아도 말은 안 했지만,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번에 함께 한 마나튤과 6결의 반데룸도 나의 좌우를 가로막아 사내를 경계했다. 둘이 치켜든 스태프에 새파란 불덩이가 맺혀있었다.
“킥킥킥! 소드 마스터를 죽인 검사에 익스퍼트 최상급, 그리고 마법사 할아방구 둘이라…… 참 사치스러운 죽음이군.”
할짝! 하고 사내가 입술을 핥았다. 그는 계속 덤비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나는 사내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상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길고, 깊은 흉터가 있었다. 흉터는 전면만이 아니라 후면부도 뒤덮고 있었다.
나에게도 있는 동일한 상처. 반조의 괴검에 당한 거다.
대단한 녀석이군. 반조의 괴검은 나라서 진피층까지만 베인 거지, 일반적으로는 사람 허리 두께만 한 금속 봉도 일격에 벨 수 있는 날카로움과 힘을 자랑했다. 괴검을 정면에서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은 아마 저 최상급의 남성이 유일하리라.
나는 사내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거. 많이 아팠지 않나?”
“앙?”
사내가 뭔 개소리 하느냐는 듯이 자기 몸을 내려다보다가 내 몸에 죽죽 그어진 혈선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와. 미친. 그거 설마 ‘이거’야? 너도 이거 맞았어?”
“내 몸에 난 상처 안 보여? 네 눈에는 이게 문신으로 보이냐?”
“허…! 지… 진짜로? 진짜로 그만큼 베이고도 살아있는 건가? 당신 정말 인간이야?”
“시끄럽고. 이름이 뭐야?”
질문은 내가 한다. 내 폭거에 사내가 입을 꾹 다물더니 작게 대답했다.
“아스바이.”
“좋아, 아스바이. 다들 투항했는데 홀로 검을 든 모습이 사내다워서 아주 좋군. 설마 죽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나는 씩 웃으며 반조의 시체를 그에게 내던졌다. 털썩! 쓰러진 반조를 내려다보는 그에게 유혹하듯이 말했다.
“내가 죽여주지. 단, 지금은 안 되고 몸이 최상으로 회복되면 그때 가서 죽여줄게. 어때?”
“그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
“오…? 오오!”
나는 기뻐서 양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설마 얌전히 투항하라는 내 말뜻을 알아듣다니! 넌 천재다!
미친 광대, 윌리엄에 이어 반조까지. 하나같이 말이 안 통하는 또라이 새끼들하고 대화하다가 평범하게 눈치가 있는 아스바이를 만나니 기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난 지 1분도 안 됐지만, 아스바이에 대한 호감도가 마구마구 상승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네게 검사다운 죽음을 안겨줄 테니. 제발 그때까지만 얌전히 있어달라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오오오!”
질문하기 전에 허락까지 받는 예의라니! 아스바이! 네가 바로 에이스헨의 보물이다!
나는 뭐든지 물어보라는 듯이 양팔을 활짝 폈다. 아스바이가 내 행동에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질문을 했다.
“나머지 놈들은 어떻게 할 거지?”
살아남은 에이스헨의 익스퍼트. 그들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 묻는 것이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포섭하고, 안 되면 죽인다. 이들 또한 내가 직접 죽여주지. 검사 대 검사로서 말이야.”
“알겠어. 투항하겠다.”
딸그랑!
아스바이가 칼을 내리고 양팔을 위로 들었다. 그의 항복과 함께, 에이스헨 침투 작전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