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 * *
“다두의 고향이 여기였냐?”
“예. 그리고 저기 북서쪽에 보이는 자그마한 원형 도시가 목적지인 쏠트리먼의 수도입니다. 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요.”
“너는 어디 살았는데.”
“어…….”
다두는 땅을 둘러보았다. 과장 좀 보태서 말하자면 행성 한쪽 극에서 반대쪽 극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고도로 상승한 둘이다. 하지만 그 높이에서도 그의 고향, 로만은 볼 수 없었다.
로만이 그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가 아니다. 로만은 두 줄기의 높고 기다란 산맥이 V자로 합쳐지는, 중간의 분지에 있었기에 마을이 산맥에 가려졌다.
대신 위치는 안다. 다두는 로만을 가리고 우뚝 선 해발고도 2,000여 미터 이상의 산맥 한 자락을 가리켰다.
“저 산 바로 뒤에 있습니다.”
“허!”
쉘리 반데스는 다두의 고향 위치를 보고는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옛날 게리소님보다 더 시골 촌구석이군.”
다두는 발끈했다.
“시골 촌구석이라뇨. 그 말 취소하십쇼.”
“취소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겠구나. 세계대전에 휩쓸리지 않은 국가라니. 별놈의 신기한 세상이 다 있어.”
그러며 쏠트리먼을 한눈에 둘러본다. 쉘리 반데스는 쏠트리먼을 이루는 몇 안 되는 대도시와 수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코딱지만 한 땅)를 보다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런 곳에 숨어있으니까 세상을 이 잡듯이 뒤져도 모르는 거였어. 쯧쯧! 이스마일한테 미안한 짓을 했군.”
다두는 세상을 이 잡듯이 뒤졌다는 발언이 신경 쓰였지만, 그 이상으로 이스마일이 언급되는 것이 궁금했다.
“갑자기 이스마일이 왜 나옵니까?”
“아니, 음…….”
“음? 음? 이라고? 어르신……?”
이거 분명 무언가가 있다. 다두의 연속된 추궁에 쉘리 반데스가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다두는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년 단위로 쌓인 덕에 볼을 긁는 제스쳐가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노인네 또 뭔 짓거리를 저질렀구먼.’
다두가 미적근한 눈빛을 보냈다. 쉘리 반데스는 그의 시선을 피했지만, 참으로 공교롭게도 둘은 초장거리 이동 마법 탓에 딱 붙어있다. 시선을 피하려고 해도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
“…….”
계속되는 시선 공세. 백기를 든 것은 찝찝한 게 있는 죄 많은 노인네, 쉘리 반데스였다.
“에이! 뭐 빚 졌냐? 그만 쳐다봐라!”
“아니, 왜 먼저 화를 내시지? 어르신이 잘못 한 게 있으니까 스스로 찔려서 제 눈길을 피한 거 아닙니까?”
“…….”
“거 이스마일 좀 그만 괴롭히십쇼. 예전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게 얼마나 안쓰러웠는데. 아버지라는 분은 자식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지하도시에 틀어박혀서 마법 수련에만…….”
“아! 아아! 시끄럽다! 말 할 테니 그 입 좀 닫아라.”
백 살 넘은 할아버지가 백 살 먹은 자식 안 도와줬다고 잔소리를 듣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세상 어디 있을까. 쉘리 반데스가 진저리를 내며 다두의 설교를 막았다.
쉘리 반데스는 속사정을 말하는 게 못내 부끄러운 듯 손부채질을 하며 이스마일에게 미안한 이유를 밝혔다.
“큼! 그러니까… 대수림 북부 인접 국가의 정복. 그걸 강력하게 추진한 게 바로 나였다.”
“…예?”
다두는 믿기지가 않아 쉘리 반데스를 흘겨보았다.
과거 W자 형상을 한 게리소님 지도. 대수림이 동서로 넓고 길게 퍼져서 그 위로, 중앙 대륙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현재의 게리소님 지도는 케틀벨과 비슷하다. 대수림만이 아니라 대수림 북부 인근 국가까지 집어삼키는 무리한 확장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 무리한 확장 정책의 부작용과 집안 정리를 하느라 10년 동안 피똥을 싸고, 이스마일이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았나. 그거의 원인이 쉘리 반데스라고?
다두가 비난의 눈초리로 쉘리 반데스를 바라보았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는 양반이 제 능력을 오판해서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대규모 정책을 펼치면 대개 참혹한 실패를 하기 마련이죠.”
“…….”
유구무언의 가장 적절한 예시가 현재의 쉘리 반데스였다.
“거 참 잘하셨습니다. 예? 부모라는 분이 자식이 일군 땅하고 이룬 꿈을…….”
“닥쳐! 너 때문이라고!!”
“또 내 탓 하지? 노인네가 부끄러움도 없이 뭐든지 다 내 탓으로 돌리는 것 봐라. 당신의 양심은 건재하십니까?”
“진짜로 너 때문이라고!”
쉘리 반데스가 버럭! 화를 내며 사정을 설명했다.
“네가 어디서 태어날 줄 알고 남쪽 대륙에만 처박혀 있느냐! 반드시 중앙 대륙의 정보를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아…….”
“네 녀석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재능과 능력으로 두각을 드러내겠지. 키워드는 어린 나이, 천재.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면 금방 단서가 나올 거로 생각해서 억지를 부렸는데…….”
쉘리 반데스의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도 나쁜 뜻으로 추진한 확장 정책이 아니었는데, 정작 일이 나쁘게 돌아가자 면목이 없었다.
그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 세계적인 정보망을 얻기 위해 대륙간 순환 비행정이라는 어이 없는 계획에도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네놈은 이 촌구석에서 태어났으니……. 내가 어찌 허무하지 않겠냐.”
“…….”
다두는 할 말이 없었다.
게리소님이 고난의 10년을 보낸 이유가 돌고 돌아서 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는데 뭐라고 말할까. 그저 쉘리 반데스의 집착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 정도만 아는 게 전부였다.
이 이상 게리소님 사정을 파고들면 자기만 손해다. 다두는 수도 뒷산을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저기. 수도 뒤편의 사냥터로 내립시다.”
“이 조그만 국가에서 전용 사냥터까지? 아주 배가 불렀군.”
“아, 적당히 하시고요.”
어차피 게리소님 이야기는 계속 해봤자 쉘리 반데스도 속이 쓰리다. 그는 다두의 대화 돌리기에 협력하며 수도 뒤편의 널찍한 사냥터로 하강했다.
팡! 파앙!
속도가 극적으로 줄어들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형의 파장이 퍼졌다. 구름과 증기가 도넛처럼 고리형을 그리며, 그 중심을 타고 둘이 땅으로 접근했다.
음속의 몇 배에서 시작해서, 산보다 낮은 고도까지 왔을 땐 말이 달리는 속도까지 줄어든 두 사람의 하강 속도. 다두는 그즈음에서 왕성에서 누군가가 둘의 기척을 감지하고 바로 뛰쳐나오는 것을 느꼈다.
타앗!
십수층 높이의 첨탑에서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려, 천장을 밟는 두 번의 뜀박질로 성벽에 다다랐다. 성벽에서 솔개처럼 뛰어내려 저만치 앞에 착지!
그림과도 같은 깔끔한 동작으로 왕성을 벗어난 그가 두 사람의 착지지점, 뒷산의 사냥터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두 다리로 뛰는데 준마가 달리는 것보다 배는 더 빠르다.
“실력자군.”
구경하던 쉘리 반데스가 실력자라고 단언했다. 달려오는 남자는 그의 인정을 받을만한 고수였다.
쉘리 반데스가 물었다.
“어쩔 거냐?”
“제가 응대하겠습니다. 어르신은 얌전히 계시죠.”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무래도 한 판 할 분위긴데?”
“그러는 게 차라리 더 편합니다.”
쉘리 반데스는 ‘무인이란…….’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분사구를 조종했다.
착! 뒷산의 언덕 정상에 착지한 둘. 두 사람은 착지하자마자 수도 쪽의 내리막길로 시선을 돌렸다.
막 그 타이밍에 열심히 달려오던 남자도 언덕 밑에 당도했다. 수 킬로미터를 쉬지도 않고 전력으로 달렸지만, 고른 숨과 땀방울 하나 흐르지 육체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게 있었다. 쉘리 반데스는 남자의 옷차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광대야?”
화려한 복장과 달리 야성미 있게 삐죽빼죽 솟은 머리카락. 고급진 천 옷을 입었지만, 등에는 커다란 대검이 메여있고, 등과 상체를 대각선으로 감싼 가죽 대검집은 옷과 다르게 허름하고 낡기 그지없다.
무용수나 신을 법한 얄상한 신발을 신은 것과 대조적으로 손에는 징 박힌 수투를 착용했다. 목걸이와 귀걸이는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치품인데 팔찌는 강화 마법이 걸린 전투용 마법 무구다.
전체적으로 언밸런스한 복장. 하지만 기세만큼은 쉘리 반데스가 실력자라고 단언할 만한 고수였다. 그자가 팔짱을 낀 채 쉘리 반데스와 다두를 흘겨보다가 뇌까렸다.
“구름보다도 높은 곳에서 내려왔다라…….”
남자가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둘에게 물었다.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군. 고인이 이 외진 왕국엔 무슨 일이오?”
“오오!”
다두는 대답하려다가 감탄을 참지 못하고 탄성부터 터트렸다.
‘저 지랄 맞은 인간이 고급진 어휘를 구사하다니.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겨우 저걸로 고급지다고 평가하는 건 어폐가 있다. 그러나 다두는 남자의 과거를 알기에 사소한 변화에서 감동했다.
하지만 쉘리 반데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필사적으로 숨고 살아야 했던 반세기 전과는 다르게 유명세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아는 요즘이었다.
때문에 쉘리 반데스는 ‘유명하고 위대하신 마법사인 쉘리 반데스’를 몰라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가리켰다.
“나를 몰라?”
“몰라?”
말이 짧다? 라고 남자가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길거리 양아치처럼 침을 퉤! 뱉고는 쉘리 반데스를 노려보았다.
“그래. 모른다. 어쩌라고. 다 늙어 빠져 뒈져가는 노인네 면상을 내가 기억해야 해?”
“…….”
이 저렴한 반박에는 쉘리 반데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아버지로 대우받으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폭언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단 한 번 문답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둘 사이의 호감도 수치가 최저치를 갱신한다. 다두는 급히 쉘리 반데스를 말리고 앞으로 나섰다.
“어르신. 제가 하겠다니깐요.”
“그래. 젊은 놈이 양심 없는 늙다리보다는 예의가 있겠지. 어디 한 번 소개해봐라.”
꼭 한 마디를 지지 않는 남자였다. 그의 발언에 쉘리 반데스가 폭발하기 전, 다두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예. 저희는…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는 이들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호라. 세계 평화라.”
남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가 팔짱을 낀 손을 풀고, 건들건들한 자세를 잡았다.
“한 30년 전 쯤 인가. 세계 평화를 입에 담은 등신 새끼들이 있었지. 그놈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저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는지라.”
“내가 알려주지. 그 등신 새끼들은 세상 거의 모든 국가한테 다구리를 쳐 맞고… 뒈졌다! 이 개새끼야!”
쿠왕!
번개 같은 기습! 등에 메인 대검이 어느새 남자의 손에 들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올려친다. 대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가 다두와 쉘리 반데스가 올라선 언덕을 통째로 폭발시켰다.
화산 폭발하듯이 터져나가는 언덕. 용암과 쇄설류 대신에 솟구치는 녹색의 오러 블레이드! 오러 블레이드가 흙먼지를 뚫고 위로 피하는 다두와 쉘리 반데스의 허리를 노리고 쳐들어왔다.
다두는 롱소드를 들고 가볍게 허공을 끊어쳤다. 면면부절하게 이어지는 검무와 더없이 간결하게 끊어치는 연속 동작에 하체를 습격하는 오러 블레이드가 튕겼다.
하지만 그 공격은 페이크! 아니, 다음 공격을 위한 견제기에 불과했다. 남자는 오러 블레이드가 막힌 것에 실망하지 않고 후속타를 날렸다.
폭쇄창(爆碎槍)!
길쭉하게 날아드는 오러 블레이드! 창과도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폭포수처럼 솟구치는 흙의 흐름을 때렸다.
꽝! 언덕을 이루었던, 수백 톤을 우습게 넘는 흙더미의 중심이 한 번의 폭발에 뻥 뚫렸다. 녹색 오러 블레이드는 흙더미를 터트렸음에도 기세나 속도가 전혀 줄지 않고 그 너머의 쉘리 반데스를 향해 날아왔다.
쉘리 반데스가 안색을 굳히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의 앞에 반투명한 막 백여 개가 중첩되어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개변상수치환(改變常數置換)!
천국의 계단 5대 마법, 방어의 개변상수치환. 힘을 변환시키는 백여 개의 방어막이 쉘리 반데스를 보호했다. 쏜살같이 날아든 오러 블레이드가 방어막을 때렸다.
챙강!
방어막 하나가 깨지고 오러 블레이드에 담긴 힘이 0.몇 퍼센트 감소한다. 열 개가 깨졌을 땐 5퍼센트 가까이 힘이 줄었다.
꽈앙! 그 즈음에 오러 블레이드가 2차 폭발을 일으켰다. 한순간에 방어막 열댓개가 와장창! 깨졌고 열 번에 걸친 에너지 변환은 흙더미 수백 톤에 구멍을 낸 막대한 폭발을 산들바람으로 바꾸는 위엄을 선보였다.
쨍강! 쨍강! 꽝! 쨍강! 콰광!
뚫고, 폭발하고. 뚫고 또 폭발하고!
개변상수치환의 방어막을 뚫을수록, 그리고 폭발할수록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이 줄어든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방어마법으로 막을 수 있을 만큼 오러 블레이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흐트러짐. 일그러져라, 막고 휘어라.”
쉘리 반데스는 그걸 알기에 중간중간 몇 개의 사소한 마법을 써서 오러 블레이드의 응집력을 흐트러뜨리는 데 주력했다. 수십 개의 마법과 개변상수치환의 힘에 힘입어 오러 블레이드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조차도 남자의 노림수가 아니다! 계속된 폭발에 기감과 시각이 흐트러진 틈을 타서 남자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가 폭발소리에 발을 묻고, 흐트러지는 오러 블레이드에 기세를 실으며 둘에게 접근했다.
꽈앙!
꺼지기 일보 직전의 폭쇄창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큰 폭발을 일으키며 소멸한 순간, 사라진 남자의 신형이 둘의 위에서 나타났다. 그가 풍차처럼 대검을 휘두르며 둘에게 떨어져 내렸다.
“죽으라고! 시대에 뒤떨어진 새끼들아!”
연환폭쇄만곡류(連環爆碎灣曲流)!
올챙이 수천 마리가 모여 물속에 그들만의 흐름을 만들었다. 오러 블레이드로 이루어진 올챙이 수천 마리가 다두와 쉘리 반데스를 노리고 떨어졌다.
그 궤도는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조종되는지 기묘하기 짝이 없고, 안에 담긴 기운은 닿기만 하면 웬만한 방어막은 걸레짝처럼 찢어발길 폭발력을 품었다.
– 다두 위험하다.
쉘리 반데스가 경고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란 게 고약했다.
상대는 죽일 각오, 나는 죽이지 않을 각오. 그 차이는 자신보다 하수를 상대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 제가 막죠.
다두가 나섰다. 그가 자세를 묘하게 비틀며 폭발하려 하는 오러의 올챙이 옆면을 때렸다. 본래라면 연환폭쇄만곡류의 오러를 때리면 그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나야 하지만…….
티잉-!
올챙이가 터지지 않고 튕긴다. 션의 여의반검의 발현이다. 여의반검 음양경합을 이용해서 음의 오러로 오러의 폭발을 막고, 양의 오러로 오러의 방향을 튕긴 것.
오러 폭발을 막은 다두는 막힘없이 쾌검을 뿌렸다.
따다당!
다두의 주위로 수천 개의 오러 올챙이가 튕겨 나간다. 튕긴 오러 올챙이는 엉뚱한 곳으로 흐른 뒤, 땅을 부수고는 땅속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기이한 현상에 남자가 잠시 공격을 멈췄다.
“……?”
연환폭쇄만곡류를 막은 검법이 눈에 익다. 남자는 다두를 경계하며 뒤로 조금씩 물러섰다. 마나를 휘돌아 컨디션과 감각이 정상임을 확인하고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는다
“씨발. 젊은 마스터에 늙다리 고위 마법사? 너네 진짜 누구야?”
벌써 세 번이나 늙었다는 말을 들은 쉘리 반데스가 폭발했다. 그가 나서서 남자를 지팡이로 가리켰다.
“너는 뭐 하는 새끼가 이 시골 촌구석 비행정도 안 드나드는 외지고 발전도 더딘 데다가 사람들도 안 오는 쇠락한 국가의…….”
부사가 좀 길다. 잠자코 들으려던 남성의 얼굴이 쉘리 반데스의 현란한 수식어가 멈추지 않고 계속될수록 형편없이 구겨졌다.
“망해가는 촌구석의 시대에 뒤떨어진 주술 따위를 배우면서 검술도 등신 같고 산에 둘러싸인 머저리 같은 지리적 위치를 자랑하는 주제에 도심지로 가는 길은 또…….”
쉘리 반데스는 늙다리의 앙심을 잊지 않았다.
“아, 닥쳐!”
“너나 닥쳐라. 덜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권력 한 조각 얻었다고 광대 같은 분장이나 한 개새끼…….”
다두가 쉘리 반데스를 말렸다.
“두 분 계속 말싸움하실 겁니까? 저 아직 말 안 끝났는데요?”
남자가 다두에게 검을 겨눴다.
“너도 닥쳐라. 세계 평화라니. 빛의 똥구멍 새끼들이 후임 하나는 제대로 키웠군.”
“빛의 똥구멍이 아니라 빛의 수호자입니다. 그리고 뭔가 오해하시는 듯한데 저희 그쪽 인간 아닙니다.”
“안 믿는다고.”
거 참 고집 한 번 세다. 남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다두에게 오러를 날렸다. 당할 리가 없지만, 일단 경제용으로 날린다는 의도다.
다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날아드는 오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본 남자의 눈이 빛났다. 이번의 오러는 아까의 폭발하는 오러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는 마나를 심었다.
아까와 다르게 폭발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맞서려다가는 꽝! 하고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폭발을 일으켜서 부상을 당할 것이다. 참으로 악독한 노림수를 담은 오러.
스르륵~!
그러나 다두의 검술에는 소용이 없었다. 다두가 부드럽게, 바람에 나풀거리는 천과도 같이 횡으로 검을 베자 오러는 폭발을 일으키지 않고 다두의 검격에 당연하다는 듯이 옆으로 흘려졌다.
“……어?”
남자가 멈칫했다. 그의 오러가 폭발하지 않게 조절한 다두의 마나 장악력이 대단해서도 있지만, 다두의 검술에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아, 아니야… 설마……?”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오러를 날렸다. 아까와 같은, 음류폭(隱劉爆)의 오러.
그 숫자는 하나가 아니고 무려 수십! 기이 망측한 궤도로 위에서, 아래에서, 좌우에서, 심지어 다두의 뒤에서까지 쳐들어오는 음류폭.
다두는 남자가 뭣 때문에 이러는지 알고 피식 웃었다. 그가 여봐란듯이 기수식을 잡고는, 나풀거리는 검무를 추었다.
흐느적거리는 검술. 무술이라기보다는 춤과도 같은 동작. 그러나 그 가벼운 몸짓에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바위를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힘을 품은 음류폭이 비실비실해진다.
힘을 잃은 음류폭은 다두의 검이 이끄는 대로 이끌려서 저만치 멀리 날아갔다. 남자는 술 취한 새처럼 날아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음류폭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두를 가리켰다.
“너, 너 그건… 아니, 잠깐. 설마 아까 쓴 기이한 방어도……?”
다두는 롱소드를 납검했다. 그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당신의 예상대로 그분의 비전, 유수화접과 여의반검입니다.”
유수화접과 여의반검. 특히나 유수화접은 오로지 션만을 위한 기술. 그의 제자인 해피조차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전 사용을 못 하는 전설의 검법.
그것을 다두가 썼다는 것에 남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두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다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그분의 기운을 이어받았으니까요.”
“네가… 네가 션의?”
“예. 그 전에, 오랜만입니다. 폭왕 트라칸, 저를 기억하시나요? 예전보다 복장이 많이 화려해지셨군요.”
“…나를 알아? 아니, 당연히 나를 아니까 나를 찾아왔겠지. 그런데 말투가…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남자, 폭왕 트라칸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을 본 다두가 익히 예상했듯이 싱긋 웃었다.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트라칸 님. 저는… 과거, 근 1세기도 더 전. 당신과 뮤온 보트라 님, 베이누스 프솔리아네 님과 션 님에게 구원받았던 그 아이, 에일이라 합니다.”
“어엉?!”
트라칸이 입을 떡 벌렸다. 그가 다두를 요리조리 쳐다보더니 더듬거렸다.
“뭐? 네, 네가… 네가 뭐라고? 애새끼 에일이 왜 갑자기 여기서 나와?”
다두가 막힘없이 말했다.
“그야 제가 ‘그 애새끼 에일’이니까요. 더 정확한 예시를 들자면 ‘에일’과 하나 되었다는 설명이 어울리겠군요. 대충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트라칸이 말했다.
“뭐? 이 시팔?”
믿을 수 없다는 트라칸의 표정. 다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했다. 앞으로 이 설정을 밀고 나가야 하는데 겨우 한 사람이 믿지 못한다고 당황해해선 곤란했다.
세상을 속일 사기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