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38
438화
* * *
다두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떻게라뇨. 이종족 연합지역에 악신을 이룰 블랙박스가 있다니까요? 중앙에 가서 몰래든 당당하게든 상관없으니까 자료만 보면 게임 끝입니다.”
“허이구……!”
쉘리 반데스는 다두의 주장을 듣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함부로 그 이야기를 꺼내면 소드 마스터고 뭐고 간에 무조건 척살이다.”
“척살이요?”
“그래. 인마. 척, 살. 말만 꺼내도 죽인다고.”
“……예? 그렇게까지 입단속을 철저히 합니까?”
“…이 새끼는 어디서 살다 온 건지……. 잘 들어라. 세계대전이 끝나고…….”
쉘리 반데스가 피곤한 얼굴로 이종족 연합지역의 사정을 다두에게 설명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후, 성자단이 흑마법 실험체라는 소문이 퍼졌다. 주둥아리가 170개가 넘게 있는데 소문이 안 퍼지는 게 말이 안 된다.
성자가 인공 생명체라는 믿기 힘든 소문. 아니, 진실. 익스퍼트가 될 천재아와 성자를 인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세상은 열광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인체실험 열풍이 전 대륙적으로 불었다. 웨일이 그토록 염려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유행에 합류하지 않은 국가는 단 셋. 흑마법에 코털만큼도 연관되고 싶지 않은 게리소님. 집안 관리에 여념이 없는 중앙 대륙 오대 강국, 피오드가 권력을 꽉 붙잡은 알테어뿐이었다.
나머지는 광분해서 생명의 금기에 마구마구 손을 대었다. 국가 비밀 사업으로, 영세한 마탑에서, 골방 실험실 마법사가,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법 관련 능력자가 비인도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심지어 흑마법까지 알음알음 사용하곤 했다. 웨일이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최악까지 가진 않았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반백 년 가까이 칼을 갈았고, 그에 따른 신속한 대처를 했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가장 먼저 성명서를 내놓았다.”
실험체의 탄생에는 악신의 뼈와 악신이 피에 담긴 초월적인 힘. 성자이면서도 소드 마스터와 싸워 이긴 기적의 검사, 션의 체세포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고, 공표한 것이다.
공표와 함께 세계 어디서든, 어느 국가에서든 인체실험의 ‘인’자라도 발견되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를 했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협박으로만 끝내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인공 성자 생산’ 열풍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고, 덕분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영유아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말로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최소 수십만에서 최대 이백만쯤 밖에 되지 않는다.
다두가 말했다.
“신속하게 처리했네요.”
“너무 신속해서 문제였긴 했지만.”
쉘리 반데스의 말대로였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너무나도 신속하고 과감한 일처리를 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우르르~! 몰려가서 영지를 뒤엎고, 마탑을 뒤진다. 의심 가는 게 발견이 되면 탑주의 손자의 불알친구까지 모조리 납치해서 사정을 쟁취하는 건 기본이었다.
거기서 끝내면 이종족 연합지역이, 복수에 맛이 간 신세대 성자들이 아니지. 그들은 과감한 정보조사 끝에 증거를 발견하면 귀족이든, 마탑주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목을 잘라 장대에 걸었다.
그렇게 인간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죽은 권력자, 능력자의 수만 수천을 훌쩍 넘는다. 개중에는 자기네 왕국에서 한 끗발 날리는 권력자에 왕족은 물론이고 왕까지 목이 잘리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나중에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이종족 연합지역에게 불만을 표출했지만, 이종족 연합지역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가혹한 증거 찾기 및 잔혹한 학살을 몇 년 동안 이어갔다.
이렇듯이, 인도적으로 성자 생산을 중단한 게 전혀 아니다. 과감한 무력행사와 피! 그리고 공포! 이 세 악기의 조화로운 삼중창이 대륙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와우…….” 쉘리 반데스의 설명을 듣곤 다두가 감탄을 토했다.
“혼란의 시기였군요.”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시점은 그야말로 혼란의 극치였다.
알테어는 피오드의 전쟁병기 대량 생산, 게리소님은 극 남초화의 부작용, 전 세계적으로는 마법사들이 뒷구멍으로 배아체 생산.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수많은 문제점이 산적했다.
그뿐인가? 수년에 걸친 세계대전의 뒤편에서 힘을 키운 몬스터까지 득세하지. 쟈기에서 다두로 태어나는 데 7년이나 걸린 이유가 있었다.
참 슬픈 일은 이 잔혹한 실험과 혼란을 통해 세상의 과학 수준이 한 층 더 발달했다는 점이다.
과거, 투쟁의 시대 말기. 전 세계적인 협력으로 지식 교류를 하여 발전한 여러 학문 체계가 이번의 실험과 전쟁병기 양산으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세포학, 생물학, 유전학 등등의 분야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에 잇따른 강화 마법의 구조, 마나 운용술이 인체에 미치는 상세한 영향, 효율적인 마법 회로의 확장 등 곳곳에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발전이 이어졌다.
다두는 자세한 세계정세를 파악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비행정을 만든 거군요. 혼란과 발전. 그리고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가 두 번째 세계대전의 불씨를 일으킬까 봐 ”
“다양한 이유가 있는 거지. 게리소님은 여자를 수입할 경로를 찾기 위해, 알테어는 전쟁이 목적이 아님을 세계적으로 밝히기 위해, 이종족 연합지역은… 인공 성자를 만들려는 개놈들을 색출하려고. 그것 이외에도 몇몇 개가 더 있긴 하다만, 지금 설명하는 건 사족이니 줄이마.”
어쨌든, 중요한 건 악신과 관련된 정보다. 라며 쉘리 반데스가 스태프를 들어 다두의 명치를 찔렀다.
“이제 알겠냐? 악신의 뼈가 남아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내가 그걸 왜 조사할 생각도 안 했는지 말이다. 이종족 연합지역의 최대 금기는 악신과 실험체야. 너는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건드리겠다고 한 거다. 그거를 문제없이 처리할 자신은 있냐?”
“엄…….”
다두는 쏠트리먼에 처박혀 있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몸살을 앓았는지 깨닫고는 난감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실험체 생산법은 다두도 안다. 웨일이 읽고, 직접 파기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여기 와서 밝히면 눈치 빠른 쉘리 반데스는 웨일의 정체마저 알아내겠지.
더 이상 자신의 정보가 밝혀지는 건 금물이다. 더욱이나 악신의 뼈를 얻기 위해선 무조건 이종족 연합지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어쩌지. 르데앙한테 가서 내 정체를 밝혀야 하나? 아니 걔는 애가 좀 이상해. 잘 못 말하면 다 뒤엎을 것 같은데…….’
이걸 어쩌냐. 곤란에 빠진 다두의 안색을 읽고는 쉘리 반데스가 앓느니 죽겠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안면을 덮었다.
삐꺼억-!
쉘리 반데스의 불편한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듯이, 의자가 격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두를 흘겨보았다.
“이 새끼. 이거 알고 보니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선 거였어? 다시 봉인되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아니, 아뇨아뇨. 잠깐만.”
“잠깐이고 나발이고. 대체 얼마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으면 이것도 몰라? 너 병신이야?”
절반은 맞았다. 나머지 절반은 세계대전에도 참가 안 한 촌촌촌 촌구석 쏠트리먼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한몫했다.
‘뭐, 실험체 이야기는 라코아 선에서 검열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네.’
다두는 머리를 굴려 뒷사정까지 파악했다.
“쓰읍-! 잠깐만… 아! 지금 뭔가 떠오를 듯 해요!”
“거짓말 하지 마. 혓바닥부터 뽑고 시작하자.”
“아니, 진짜로! 라코아? 그리고 트라칸? 뭐가 될 듯한데?”
라코아와 트라칸. 마지막으로 알테어. 몇 가지 단서가 모이자 해법이 보인다.
사실 해법까진 아니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도저히 중앙에 접근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다두였다.
“좋아요. 이렇게 갑시다.”
에이. 모르겠다. 기왕 한 번 저지르는 거 통 크게 가자. 다두는 각오하고 쉘리 반데스에게 수정한 계략을 말했다.
“…이 씨발 완전 쳐 돌아버린 미친 새끼가.”
수정한 계략을 들은 쉘리 반데스의 감상이었다. 한 단어로 줄이면 ‘동의’라는 뜻이었다.
* * *
약 한 시간 후. 실험실에서 챙길 것을 챙긴 다두와 쉘리 반데스는 밖으로 나왔다.
“잠시 기다리거라. 떠나기 전에 처리할 일이 있다. 반데스 영지에 은거한 뒷방 늙은이라도 나름의 영향력은 있으니까. 미리미리 말 해둬야 혼란이 없지.”
쉘리 반데스는 위와 같은 말을 하며 다두를 가까운 별장으로 안내했다. 사람들 몰래 다두를 별장 건물 최상층에 처박고는, 그는 여행을 떠날 사전준비를 하러 영주성으로 향했다.
다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쉘리 반데스를 말없이 배웅했다. 쉘리 반데스가 사라지자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고, 화려한 형상의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장난 아니네. 내가 죽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보면 볼수록 반데스 영지의 건물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기회만 생기면 새로운 마법 회로의 실험이라는 명분으로 헌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 건물 올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반데스 영지!
그 탓에 반데스의 건축물은 전위예술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된다. 예를 들어 다두가 머무르는 건물은 10층 건물 두 채가 DNA처럼 나선형으로 비비 꽈여 있는 형태였다.
어째서 건물 두 채를 나선으로 꼬아 만들 필요가 있는 걸까? 정작 건물에 머무르는 다두도, 이 건물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 건물을 올린 마법사들만이 알겠지. 어이없는 마법사들의 창의력이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 기묘한 형태의 건물이 반데스 내에서 그나마 얌전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보니까 아주 엉망이네.”
옥상에서 합쳐지는 나선형의 건물. 건물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가관이 따로 없다.
어떤 것은 T자형으로 어떤 것은 가운데가 텅 빈 8자 형 9층 건물이 또 어떤 녀석은 마치 인간처럼 대(大)자로 건물이 세워져 있다.
마법의 힘으로 어디까지 공학적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지. 한계를 실험하고자 하는 정신에서 나온 전위예술적인 건물들. 때문에 반데스 영지는 근대도 현대도 아닌 꽤나 아스트랄 한 모습을 했다.
이러한, 마법 건축학의 한계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건물 제작 유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마법사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가장 옛날 건물을 부수곤 그 자리에 그들의 멋진(다른 말로는 병신 같은) 아이디어를 적용한 건물을 세웠다.
그야말로 자원 낭비에 재능 낭비에 인력 낭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영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현란하게 세워진 건물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다두는 반데스의 잠재력을 계산하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의 말대로 반데스의 웃기는 유행은 돈만 퍼부으는 헛짓거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기괴한 건물들을 올리며 삼차원적 마법 회로의 노하우와 공학을 뛰어넘은, 마법학 적으로 효율적인 건축물을 세울 기술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몬스터를 몰아내고 식량 생산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인구 폭발이 20세기의 지구처럼 가속화 된다면. 반데스 마법사들의 건물 제작 능력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돈을 쓸어 담으리라.
다두는 그날이 기대되었다. 꼭, 반드시 세상의 최신형 건물 기술 저작권을 독점한 반데스 영지를 보고 싶었다. 그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밤새도록, 말 없이 반데스 영지를 내려다보았다.
“잘 있었냐? 오랜만의 반데스 영지 구경은 즐겼고?”
다음날 오전. 쉘리 반데스가 다두가 머무르는 건물에 왔다. 다두는 짐을 챙기고 방을 나갔다.
“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적어도 몇 개월은 외출해도 괜찮다.”
“좋습니다. 갑시다.”
두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쉘리 반데스가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쳤다.
옥상이 번쩍! 빛나고 두 사람의 몸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 둘이 천천히 가속하며 하늘 끝까지 솟구친다. 과거 쟈기와 이스마일, 시즈믹스가 만든 초장거리 비행 마법의 발현이었다.
초장거리 비행 마법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을 데리고 음속으로 구름 위까지 실어 날랐다. 목표는 북쪽. 다두의 고향, 쏠트리먼이었다.
* * *
“어, 어어?”
쉘리 반데스에게 몸을 맡긴 채 이어지는 비행. 다두는 비행 고도가 이상하리만치 높아졌음을 알아챘다.
평상시는 아무리 올라가도 성층권 하부가 끝인데. 지금은 그보다도 높이, 거의 오존층을 넘보고 있다. 다두는 쉘리 반데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존층마저 뚫어버릴 기세로 상승하자 그를 말렸다.
“너무 높이 상승하는 것 아닙니까?”
“이 시대에 뒤떨어진 까막눈아. 전국적으로 초장거리 비행 마법에 대한 대처가 삼엄하다. 대류권이나 성층권 하부에서 저아음속 이상으로 나는 물체는 무조건 광범위 탐지에 걸려.”
중간권까지 올라가야 안전하다고 말한 뒤, 실행에 옮긴다. 한참을 위로 날아오른 쉘리 반데스는 중간권에 도달하고서야 상승을 멈췄다.
중간권. 거의 온 대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이. 쉘리 반데스는 그 높이에서 방향을 틀어 북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기온 조절, 유해 광선 방어, 대기 유지 마법을 거는 걸 보면 한두 번 이 높이까지 올라온 솜씨가 아니다. 다두는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꽤나 자주 올라온 듯하신데요? 어디까지 가 보셨습니까?”
“나? 헤헹! 듣고 놀라지나 마라.”
쉘리 반데스는 으스대며 그의 최고 기록을 말했다. 다두는 기록을 듣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놀랍군. 거의 외기권, 위성궤도 수준이잖아?’
거의 1만 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까지 밖으로 나간 사나이. 맨몸으로 수천 킬로미터는 우습게 돌파한 비행기록을 자랑하는 쉘리 반데스였다.
“초장거리 이동 마법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 고도까지 올라가기. 내 몇 안 되는 취미생활 중의 하나였지. 높이 날기가 쉬워 보이면서 은근히 어려운 점이 많더구나.”
“정확히 어떤 부분이요?”
“으음… 그게…….”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다두가 관심을 보이자 어제의 대치는 까맣게 잊고 고도 상승에 잇따른 문제를 열거한다.
“온도와 대기는 쉬웠다. 하지만 일정 속도 이상이 되니 마찰력이 심해지더구나. 그래서 마찰력 감소에 에너지 변환까지, 쓸 수 있는 에너지 제어 마법은 있는 대로 가져다 썼지.”
마찰력 감소, 에너지 방향성 제어, 물리적 에너지의 변환. 중위 수준의 마법사만 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범용적인 마법. 하지만 범용적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마찰력 감소 하나만 해도 현대의 물리학적 난제를 우습게 해결할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쉘리 반데스는 그것을 깨닫고는 초장거리 비행 마법을 대기권 돌파를 위한 마법으로 개조했다.
십 년이 넘는 개량. 두 개의 성게 마력석까지 이용한 끝에, 그는 마침내 외기권까지 날아가는 기함할 기록을 달성했다.
쉘리 반데스는 짜릿한 그날을 회상하고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기억은 정말이지…….”
어둡디어두우며 춥디추운 우주. 그가 백 년하고도 반세기 넘게 희로애락을 누리던 세계는 엄지손가락보다도 좁은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쉘리 반데스는 그때의 경험을 매우 충격적이며, 감흥 깊은 일로 기억했다.
“아니, 감상이고 뭐고를 떠나서.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위험하다마다? 돌아오는 데 죽는 줄 알았어.”
죽는 줄 알았던 게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 쉘리 반데스는 탈출속도 계산을 잘못해서 복귀하는데 돌아오는 마나가 부족해 곤란에 처했었다.
다행히 우주라서 한 번 행성 쪽으로 추진력을 발생시키면 중력 우물까지 알아서 떨어지지만, 거기까지 가는 시간과 추락 보호가 문제다.
쉘리 반데스는 대기권 보호 마법을 위해 마나를 아끼느라 우주 공간에 몇 분 동안 생으로 노출되었다. 악신의 살 신체 개조자도 한없이 절대 영도에 가까운 온도를 버티지 못하여 사지가 얼었고, 심장은 근 10분 넘게 멈췄다.
만약 대기권 복귀 시간이 5분만 늦었다면, 그는 진정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아슬아슬했던 한 때였다.
“짜릿하더구나. 죽을 위험성만 아니라면 몇 번이고 다시 즐기고 싶은 경험이었어.”
실제로도 쉘리 반데스는 그만한 높이는 아니지만, 그 밑의 초고도 비행을 즐겼다. 가끔씩은 열권 위로 상승해서 행성을 돌아다니는 취미도 있었다.
‘할 건 다 하고, 즐길 건 다 즐기며 사는 노인네군.’
이렇게 밖으로 싸돌아다니니까 반데스 영지에서 정보를 모아도 출몰 기록이 없다시피 하지. 다두는 쉘리 반데스가 이상하리만치 반데스 영지에서 조용히 지냈던 게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궁금증이 든다. 다두가 물었다.
“진심이었습니까?”
“뭘 말이냐.”
“정말로 저와 함께 1만 년 동안 봉인할 각오를 하셨습니까?”
“…….”
백오십을 넘어, 이백을 코앞에 둔 노인네가 정력도 좋게 열권 비행을 즐길 정도로 인생을 즐겨 산다.
그런 자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지하 봉인 생활을 만년이나 각오하고 함정을 만든 걸까? 다두는 그게 궁금했다.
“…그래.”
“놀랍군요. 어째서죠?”
다두는 쉘리 반데스의 각오가 놀라웠다. 딴 게 아니라 게리소님 왕국 초창기에만 반짝 도와주고 남은 시간은 마법에만 전념하던 마법 오타쿠가 세상을 위해서 희생을 하려 한다니?
대체 쟈기가 죽고 다두를 만날 때까지의 28년 동안 그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쉘리 반데스는 생각의 변화를 앞서 말한, 외기권 비행을 이유로 들었다.
“그만한 고도까지 상승해서 행성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더구나.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고…….”
“허무하고 짜릿하다?”
“음, 뭔가… 있잖냐. 이 작고 푸른 행성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그 기분. 그러니까…….”
쉘리 반데스가 민망하다는 듯이 다두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최대한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놀랍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다. 쉘리 반데스는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세상이 다두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마법사 쉘리 반데스의 유일한 욕망에 다른 각오가 끼어든 순간이었다.
“이곳이, 이 아름답고 잔인한 생존의 장이 너만을 위한 무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어. 하지만 내 예상이, 쟈기가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괴물이라는 미친 생각이 맞다면 그를 죽이는 건 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봉인하겠다? 다두를 아예 무대에서 끌어 내려버리려고?”
“맞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훌륭합니다. 쉘리 반데스.”
다두는 그의 각오를 잘 알았다. 당장 악신을 변명삼아 그를 설득하지 않았으면 꼼짝 못 하고 최소 수십 년을 봉인 당해야 했지 않는가.
그저 다두가 위험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이라서가 아니다. 쉘리 반데스는 그 나름대로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의 각오를 받아들인 다두는 쉘리 반데스를 용서했다.
“화나는 배신이었지만, 봐 드리죠.”
다두는 쉘리 반데스를 존중했다. 쉰둘이 북방의 악마를 배신한 쏜을 용서했듯이, 다두는 쉘리 반데스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의 의지를 존중했다.
뭐, 막상 봉인되면 봉인을 해제하자마자 대화도 없이 죽일 거였지만, 그건 그거고 존중은 존중이었다.
마음에 남은 한 가닥 티끌을 훌훌 털어 넘긴 다두가 장난스레 물었다.
“아 참. 것 같은 겁니까?”
“그래. 것 같은 거야.”
“그렇죠. 것 같은 거죠.”
것 같은 거였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은 거였다.
대화를 마친 둘은 침묵 속에서 아름다운 것 같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북쪽을 향해 하염없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