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9
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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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깬 것은 날깐이였다.
날깐이가 느릿느릿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스으윽! 번쩍!
검날에 태양 빛이 반사되었다. 은은한 오러에 둘러싸인 날은 빛을 무수히 많은 난반사를 일으키며 눈 덮인 대지에 빛을 뿌렸다.
그 순간, 그의 검에서, 빛에서, 오러에서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시작은 작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일자 땅에 가라앉은 눈이 살며시 위로 떠올랐다. 솔솔 뿌려지는 빛의 입자가 자그마한 눈 입자에 반사되더니 쩍! 갈라졌다. 그것은 프리즘과도 비슷했고, 직선형의 무지개와도 같았다.
무지개의 두께는 실보다도 얇았지만, 백색만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눈 입자 하나에 프리즘 하나. 선으로, 면으로 퍼져 나가던 빛에서 작은 무지개가 흘러나왔고, 이윽고 수많은 무지개가 눈밭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검에서 반사된 태양 빛이 만든 무지개의 군무! 고요하게 가라앉은 날깐이의 눈동자 표면에 무수한 무지개가 반사되어 드러났다. 미동도 없는 눈동자는 무엇을 포착하고 있는지 나조차 알기 힘든 심유한 깊이를 드러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기서 검을 내리친다면··· 날깐이는 익스퍼트 상급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높게 쳐든 검은 도무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슬프게도, 자연에 고정이란 없다. 올라가지 못하면 내려오는 길만이 남았다. 날깐이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상승하는 길에서 벗어났다.
당연하다. 함정 천재검이니 경지의 상승마저도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함정이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그 ‘고꾸라짐’에 저항했다.
부들부들!
고승(高僧)과도 같던 그의 얼굴이 깨지고, 억지로 숨을 참은 사람처럼 시뻘게졌다. 그의 눈알은 모세혈관이 터져 실핏줄이 도드라졌고, 이마에선 혈관이 징그럽게 튀어나왔다.
날깐이는 억지를 피우면서까지 검을 내리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몸 상태는 더욱 안 좋아져만 갔다.
스트랜돌이 그런 날깐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날깐이에게 손가락질했다.
“난 분명 ‘함정’ 천재검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인간이 익히면 죽어 나자빠진다고 경고까지 했고.”
“하, 하지만 성자님은······.”
“진짜라고 믿음을 줄 생각으로 종이를 뜯어 준거지. 그 자리에서 병신처럼 익히라고 준 게 아니야. 저 나이 처먹었는데 남 말 안 들어서 뒈지면 그게 내 탓이냐 저놈 탓이냐?”
“······.”
스트랜돌이 입술을 깨물었다.
털썩!
“커헉!”
동시에 날깐이가 아닌, 변태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졌다.
변태는 경지가 낮아 짧은 분석만으로 몸이 극단적으로 나빠질 성취를 얻는 게 불가능해서 코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걸로 끝났다. 하지만 네이드, 느억이는 차례대로 날깐이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날깐이가 동공을 마구 흔들며 쓰러진 변태를 바라보았다. 그가 깊게 갈등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내리치는 걸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하지만 익스퍼트 상급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단서를 찾았는데, 목숨이 아까워서 검을 내릴쏘냐!
날깐이의 네이드의 심리는 대강 위와 같을 거다. 그들은 억지로 검을 휘두르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이라는 유혹 때문에 또는 함정 천재검이 만든 심마(心魔)에 현혹되어 포기할 수 없었다.
꽈직! 쿵쿵쿵!
가만히··· 그들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밟는 걸 구경하고 있자니, 옆에서 한 번의 작은 파열음과 망치로 땅을 두들기는 굉음이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쿵쿵! 쿵쿵쿵······! 쿠웅!
무려 아홉 번이나 계속된 굉음이 끝나고, 내 발밑으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의 주인, 스트랜돌이 피범벅이 된 이마를 땅에 비비며 내게 애원했다.
“@#%!”
뭐라 애원하는 것 같은데 나는 별로 관심 없어서 깊게 듣지 않았다. 안 들어도 뻔하다. 날깐이를 살려달라 어쩌고 하는 거겠지. 나는 신경을 끄고 날깐이 등을 예의주시했다.
비직!
바지에 약간의 저항이 느껴진다. 스트랜돌 이 새끼가 참다못해 무릎으로 기어 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거다.
“$23!” “$!!”
시끄러운 소리도 몇 개나 겹쳐서 들려온다. 느억이도 위험해지는 걸 확인한 정보요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내게 부탁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청각을 닫고, 심지어 눈까지 감았다. 눈을 감은 나를 오해했는지 스트랜돌이 징그럽게 울기 시작했다. 짜증 나 죽겠네.
우직!
나는 징그럽게 꽥꽥대는 스트랜돌의 턱주가리를 발로 찼다. 뼈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꽥꽥거림도 사라졌다. 정보요원도 그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요 속에서 마나를 일으켜 감각을 극도로 강화했다. 초능력 파동까지 써서 그들의 몸을 살핀다. 미쳐 날뛰는 심장과 찢어지기 직전의 혈관이 내지르는 비명이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내게 전해져왔다.
마침내 날깐이, 느억이, 네이드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기 전!
“그-마-안!!”
으르렁!
쩌렁쩌렁한 외침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마나가 담긴 음파공격은 그들의 몸에 흐르는 마나에 강한 제동을 걸었다.
“컥!”
파동에 실린 성력이 그들의 피부에 스며들었다. 초능력 파동은 그들의 육체를 한계까지 압축했고, 그 탓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혈관이 안정을 되찾았다. 성력은 봉합된 혈관, 근육, 신경에 스며들어 세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극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초 회복! 정순한 나의 마나와 그들이 쌓은 마나, 성력의 상승효과로 무너지기 직전의 육체가 일순간에 회복되었다.
풀썩!
세 명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망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육체는 전신 근육통이 온 것과 같았으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한 스트랜돌에게 추가로 성력을 주입한다. 찰리에게 손짓하자 정보요원이 우르르 뛰어나와 4인을 들고 왕성으로 데려왔다.
“서, 성자···님? 이······ 이건?”
날깐이가 버석버석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느억이와 네이드도 말은 못할 뿐, 의문에 가득 찬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초능력 파동을 이용해 내장 출혈과 뇌출혈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질문에 답했다.
“몰라서 물어? 함정 천재검이라니까. 내가 안 말렸으면 셋 다 저기서 죽었을 거야. 날깐이 너는 머리통이 터져서, 느억이는 척추 혈관이 작살이 나서 즉사, 네이드는 그대로 등 근육이 다 찢어져서 며칠을 골골대다가 고통 속에 죽었을 거다.”
“그, 그런···. 날······. 예? 날, 뭐라고요?”
“아니, 니웨. 넌 머리가 터져 죽었을 거라고. 그리고 넌 이름이 뭐야.”
느억이가 답했다.
“크램이라고 해요.”
“그래, 크램. 넌 척추 혈관이 찢어지고, 그 폭발력 때문에 척추뼈와 신경, 인대도 박살이 났을 거다. 다행인 건 즉사라서 고통은 없어.”
“아아······.”
“네이드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예······.”
“위험한 순간, 바로 그 직전에 멈췄고, 성력으로 회복했으니 며칠 푹 쉬면 멀쩡해질 거야. 경지도 상승했겠지만, 다시는, 다시는! 저걸 읽지 마. 떠올리지도 마라.”
나는 그리 경고하며 손을 뻗었다. 함정 천재검 세 장이 스르륵 날아와 내 손아귀에 잡혔다. 삼인은 저것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아쉽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대로 내버려두면 혼자서 연구한다고 지랄하다가 죽을 게 뻔히 보인다. 나는 종이 뭉텅이 세 개를 날깐이와 느억이, 네이드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
“보완본이다. 함정 천재검에 매달리지 말고 이거나 열심히 익혀. 그러면 뭘 얻어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런 뒤 스트랜돌에게 눈짓한다. 그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날깐이의 종이 뭉텅이를 조심스럽게 잡아들었다.
“······.”
끄덕.
스트랜돌이 무언으로 날깐이에게 허락을 받고 종이 뭉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그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몇 분 후 지저분하게 침과 콧물을 튕기며 경악에 빠졌다.
“푸하! 이, 이이···. 이게 무슨······!”
스트랜돌이 천하의 보물을 얻은 것처럼 눈을 벌겋게 물들이며 종이 뭉텅이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가 허겁지겁 네이드에게 다가갔다.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종이 뭉텅이를 잡은 뒤 돌돌 말에 품에 넣는다. 그 후 정보요원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찰리는 그의 오버스러운 행동을 보고 내가 준 게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은밀하게 신호를 보내 남은 이들을 크램 주위로 모여들게 했다.
나는 대강 일이 끝났음을 확인하자 왕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끝났지? 나, 간다.”
“예?”
할 일 다해서 간다고 하니 스트랜돌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내게 보내는 간절한 시선은 정보요원에 대한 강한 불신을 담았다.
늑대인간 때문에 일시적 동맹을 맺었지만, 그들은 본디 서로 죽기 직전까지 싸우던 사이. 중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던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줄 몰라 불안해하는 것!
‘그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해줘야 돼?’
나는 살짝 짜증을 담아 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야! 너! 너네는 대륙의 유방.”
“유산입니다만.” 찰리가 말했다.
“너네는 릴스테아 왕국의 5대 검가.”
“맞습니다.” 스트랜돌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 성자.”
“그렇습죠······.”
“성자가 준 물건인데······배신하고 뺏을 거야?”
“예에?!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
찰리가 미친 듯이 헤드뱅잉을 했다.
스트랜돌도 안색이 새하얘져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내가 모르는 민간신앙적인 맹세까지 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이 물건 가지고는’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도대체 성자라는 인종이 뭐 하는 놈이기에 그거 가지고 협박을 하니 저렇게 죽을 상을 쓰는 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이 공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평화를 깰 것 같아 물어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래도 성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 나중에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답이 나오겠지. 나는 마음을 편히 먹고 떠날 준비를 끝냈다.
“그럼 됐네? 수련실로 가서 며칠 쉬고 오던지? 늑대인간 시체 때문에 불안하긴 하지만 거기만큼 안전한 데가 없잖아?”
“그, 그리하겠습니다.”
마침 늑대인간의 피어 때문에 소형 몬스터도 도망쳤겠다. 철문만 닫으면 며칠은 안전하게 쉴 수 있었다. 정보요원이 쓰러진 네 명을 부축하고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때 크램, 느억이가 찰리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찰리가 귀를 떼곤 느억이의 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다. 손수건의 질감은 르암인의 면직물 가공 기술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안경 닦기처럼 부드러웠다.
손수건을 건네주는 건 아닌가 보다. 손수건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손수건을 풀자 브로치가 하나 나왔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쯤 되는 브로치는 시계와 비슷한 형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빛 금속으로 이루어졌고, 중심에 내포물이 하나도 없는 유백색 월장석(月長石)이 있었다. 그 월장석에 좁쌀에 반의반도 안 되는 금 알갱이가 다닥다닥 박혀있었다.
찰리가 말했다.
“혹여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이걸 상의에 끼우시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대륙의 유산이 성자님을 도와주러 오겠습니다.”
나는 알겠다고 확답하지 않았다. 사실 운이 좋아 일이 좋게 끝났지, 뭔가 하나만 잘못되었으면 우리 세 집단은 하나만 남을 때까지 서로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아슬아슬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대륙의 유산의 정체도 모르겠고, 도둑놈들치고는 고수의 수와 연결고리도 권력자와 지나치게 연관되어있다.
정체를 알기 힘든 어둠의 조직과 친하게 지내면 괜히 나만 피곤하다. 그렇다고 아예 멀리할 수도 없는 노릇! 해서, 나는 조용히 손수건을 고이 접어 품에 대충 쑤셔 넣었다.
나는 지하미로로 하나둘 들어가는 정보요원들에게 급히 손짓했다.
“알겠어! 잘 가! 너도 잘살고! 죽지 말고! 안녕!”
그런 뒤, 고개를 돌려 바로 왕성을 떠났다.
“서, 성자··· 릴스테······.”
날깐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지만, 할 거 다 했는데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나는 왕성을 나오자마자 위로 솟아올랐고 외성, 감시구역을 향해 비행기처럼 쏜살같이 날았다.
*****
슈육! 척!
여덟 시간 만에 돌아온 서쪽 감시구역. 이곳은 내가 7년을 보낸 그 왁자지껄하고 음험한 기운이 감도는 장소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휘유웅!
싸늘한 겨울바람이 인적 없는 도시를 내달렸다. 골목길, 대로에 쌓인 눈은 아무도 치우지 않아 바람에 흩날렸고, 인적 없는 도시를 반짝이는 백색의 보석처럼 빛나게 해주었다.
바람 사이사이로 옅은 혈향이 느껴진다. 냄새가 향하는 곳으로 가서 확인해보니, 검술단이나 정보조직원이 죽어 나자빠진 걸 볼 수 있었다.
사인(死因)은 단 일검의 검격. 일검에 수 명이 넘는 이들이 주요 동맥을 베여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망 시각은 얼어서 자세히 알기 힘들지만, 핏자국을 보아하니 죽은 지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바로 시작했군.”
내가 떠나자마자 작전을 시작한 게 확실하다. 나는 그들의 시체에 난 흔적을 조사한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몇 시간. 자경단은 그 짧은 시간에 감시구역을 손에 넣고, 수만 명이 넘는 인간을 끌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눈이 밟힌 흔적을 따라갔다. 흔적은 도시 외곽 구역, 보통은 자경단의 본거지로 사용되는 넓은 저택에서 끊겼다.
“저···택?”
나는 자경단의 본거지를 보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호화스러운 5층 저택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휑한 땅만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정원 구석에 내 키보다 높게 쌓인 눈덩이가 있었다. 눈덩이를 치우자 건물 잔해가 드러났다.
거대한 파리채로 건물을 짓뭉개고, 아파트만 한 빗자루로 잔해를 정원 구석으로 치우면 이런 모양새가 나올까. 차라리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가 오러로 건물을 때려 부수고, 한구석으로 밀어버렸다는 게 더 올바른 해석이겠지.
무너진 집터 한구석에 지름이 10미터도 넘는 널따란 지하통로가 존재했다. 통로는 수레도 넉넉하게 지나갈 만큼 넓었고, 그 길도 탄탄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별동대라고 했나? 헛소리하고 있네.’
지하통로는 십 몇 킬로미터가 넘게 이어졌다. 보통 별동대는 근거리에 숨은 적을 습격하지 않나? 세상 어느 별동대가 10 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곳까지 가나?
길은 중간부터 땅의 색이 바뀌고, 지지대도 허접한 재질로 바뀌었다. 마치, 최근 몇 년 사이에 급하게 통로를 새로 판 것처럼. 그리고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가 오러를 이용해 길을 만든 것처럼 윗부분이 동그랗다.
‘일단 가자.’
늦어도 너무 늦었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나는 빠르게 지하 통로를 지나쳤다. 통로 끝까지 가자 나온 것은 어느 돌산, 가파른 언덕길에 있는 동굴이었다. 새하얀 절경을 따라 시선을 밑으로 내리면 꽝꽝 얼어붙은 거대한 강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워낙 강하게 휘날려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지만, 그 강줄기 사이사이로, 흰색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작은 이물질이 눈에 들어온다.
“션? 맙소사. 설마 너였었나? 살아남았군!”
이물질을 물끄러미 보자니, 활기찬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선을 위로 들자, 쪼그려 앉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벌떡 일어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남성이 나를 반겨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탁!
5미터가 넘는 높이였지만, 남성은 무릎도 굽히지 않고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그가 한 손을 내밀며 나를 반갑게 환영해주었다.
“천재검은 포기했나? 잘했어! 그런 허망한 검술에 목숨을 함부로 낭비해선 안 된다고! 어서 우리와 함께 도망가지!”
“···드레이.”
드레이. 감시구역 4대 조직 중 하나, 자경단의 수장. 그가 음울한 내 기색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션? 무슨 일이야? 설마 다치진 않았겠지. 으음······. 어쩔 수 없네.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가자. 나는 혹시 모를 합류자를 생각해서 동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어.”
드레이가 동굴 위로 가볍게 올라갔다. 그가 ‘어서 올라와!’ 라며 상냥하게 손짓했다. 역시 친절한 녀석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드레이. 대외적으로는 익스퍼트 하급, 하지만 실제로는 익스퍼트 상급의, 영세한 왕국에서도 겨우 넷밖에 없는 절세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
그리고···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왕성에 만만치 않은 몬스터가 있다.’ 고 말한 인물.
나는 그에게 말했다.
“드레이, 말 해. 천재검은 어디 있지?”
드레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050. 욕심의 끝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