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word Seven Flesh Divine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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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움[學]
“네가 범어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나에게 알려다오.”
무명은 이소호칸의 옆에 앉아 자신이 배운 범어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범어를 말하는 것은 성대에 상당히 무리가 가는 일이어서 무명은 한 단어씩 차근차근 말하고 인간의 언어로 뜻을 전했다. 자습으로 습득한 언어였기에 명확히 맞는 뜻인지 확인하기 위해 뜻을 물었다.
“아니, ‘우으-엉’ 하는 부분은 네가 말한 ‘죽이는가?’라는 의문사 아니라 단답의 의미로 ‘죽인다’라는 의미이다. 의문사를 수식하기 위해선 성대의 울림과 음절을 달리해야 한다.”
이소호칸은 무명이 혼란스럽게 생각하던 뜻과 틀린 부분을 집어 말해주었다.
몇 가지 단어의 나열을 차분히 듣고 나서 이소호칸은 눈을 감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 그 단어들을 조합해서 문장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
“한번 해보겠습니다.”
무명은 이소호칸이 수정해준 몇몇 개 단어의 옳은 뜻을 잠시 조합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크르렁 크우르르(나는 죽지 않는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총명함에 놀랐다.
몇몇 단어와 문장에서 부정문을 수식하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었을 뿐인데 그것을 활용하여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이 아이의 혜안은 어디까지인지 쉬이 가늠하기 어려웠다. 무명이 단어만 모를 뿐이지 문맥을 이루는 구성 요소와 단어를 연결하는 배합은 확실하게 터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범족의 언어인 범어는 문장을 맺는 조합법이 상당히 까다로워 어려운 것이 대다수였다. 물론 단어를 발음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해당 단어의 음절과 순서를 조합하는 것이 아주 살짝만 틀려도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리는 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방금 한 말이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맞느냐?”
이소호칸이 무명에게 재차 물었다.
무명은 마루에 앉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아는 단어가 적어 문장을 길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는 범어로 ‘나는 죽지 않는다.’라 말하였습니다.”
“빼어난 재능이다.”
이소호칸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무명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찰나에 누각으로 한 호인이 올라왔다.
“대족장 어르신, 일조 문안드립니다. 간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고스보치가 푸른 정복을 입고 와 권상을 취하자 이소호칸이 맞받으며 말했다.
“아니, 편히 못 잤네. 편히 잘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소호칸과 고스보치가 범어로 대화하는 것을 무명은 열심히 들었으나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수준으론 무리였다.
이소호칸이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으며 무명을 쳐다보자 고스보치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무명을 보았다.
무명은 두 호인이 인사를 나누다 말고 자신을 쳐다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우고야 말았지 않은가.”
“네?”
이소호칸이 시선을 무명에게 두고 말하자 고스보치가 놀라 말했다.
고스보치는 도대체 이 인간 아이가 뭐기에 대족장께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는지 궁금증이 물씬 피어올랐다.
이소호칸의 표정을 흘깃 살펴보니 이 아이에게 화가 나거나 분노하진 않은 모양새였고, 오히려 푸근한 느낌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르신, 이 작디작은 인간 아이가 무엇인데 어르신의 잠을 방해한 것입니까?”
고스보치는 의문이 계속해서 불어나자 결국 입을 열어 이소호칸에게 물었다.
이소호칸은 고스보치에게 답하는 대신 무명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목소리로 무명에게 말했다.
무명은 그의 목소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은 울림이라 생각했다.
“무명, 방금 네가 말했던 문장을 고스보치에게 말해주어라.”
무명은 잠시 머뭇했으나 이소호칸의 얼굴과 고스보치의 얼굴을 스윽 보고는 성대를 울렸다.
고스보치는 무명의 목에서 나온 소리를 듣고는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리고 잠시 어깨를 들썩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이어 대답했다.
“노비츠 공에게 범어로 소리친 아이가 바로 이 아이군요.”
고스보치가 소리를 듣고 말하자 이소호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어냈다. 예상외로 고스보치의 눈과 귀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래. 정답이다, 고스보치. 소식이 빠르구나.”
“군영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도 대족장님의 소식은 늦어도 일, 이각이면 제 귀에 닿습니다. 특히나 노비츠 공이 언급된 소식이라면 말이지요. 전 어제 군사를 준비해 둘까도 고심했었습니다.”
고스보치는 거대한 몸집에 투박하게 생긴 생김새와는 다르게 섬세하고 치밀한 호인이었다. 이소호칸의 친우인 다한마의 아들이었으며 강함도 나름대로 백모 지파에서 손에 꼽을 만했다.
하지만 이소호칸은 그런 의미로 고스보치를 신임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스보치는 강함만을 추구하는 백모의 호인들 가운데서도 지략과 지모가 가장 뛰어났다. 그렇기에 이소호칸은 그의 의견 듣기를 즐겼고, 그를 늘 곁에 두었다.
고스보치는 이소호칸의 심중을 잘 읽었으며 그의 지략과 지모는 다른 호인에게까지 신뢰를 주는 것이어서 금번 전투에서도 백모 지파의 선봉에 그를 세웠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제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노비츠가 사신단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고스보치는 무력을 행사하여 사신단을 내쫓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혹여나 노비츠가 이소호칸의 심기를 건드려 죽임을 당했다면 그와 그의 병사들은 강제를 반하고서라도 백모 지파의 명예를 걸고 싸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노비츠와 이소호칸이 반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백모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고스보치는 미리미리 노비츠에게 눈을 붙여 거의 실시간으로 그의 행적을 모두 보고받고 있었다.
그래서 범어를 하는 소년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어르신께서 흥미를 가질 것이라 넌지시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이를 대동하시고 군영으로 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고스보치가 재빠르게 이소호칸의 내심을 알기 위해 물음을 던졌다.
이소호칸은 그런 고스보치를 보고 털털하게 웃으며 무명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이 아이에게 범어를 가르쳐 보고자 한다. 그리고 차후에 이 아이가 인간과 범족의 소통의 끈이 되어줬으면 하네.”
이소호칸이 커다란 손을 무명의 어깨 위로 올리고 말했다.
무명은 그 둘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이소호칸이 자신을 소개하려는 상황임을 짐작하고는 고스보치에게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저와 병사들은 그에 따를 것입니다.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장원 밖의 녀석들입니다. 아직도 인간들 자체를 경멸하는 녀석들이 있어 그쪽에 불화가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족장님께서 인간 소년을 들이시겠다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습니다.”
“흐음, 확실히 녀석들이 문제지.”
이소호칸은 손을 들어 인중을 매만졌다.
인간이 범족의 노예로 사용된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이었으나 아직까지도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힘의 권력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는 구시대적 이론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약한 인간들을 노예로조차 부리려 하지 않고 죽이려 했고 범족보다 약한 종족을 경멸하고 멸시했다.
아직도 다른 지파에서는 그런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동쪽, 이소호칸의 백모 지파에서는 그런 편견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이소호칸이 나이를 먹어가며 갈수록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으면서 인간 노예를 중요하게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백모 지파는 풍요롭고 부유해져 곡식으로 술을 빚을 정도로 안락한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예전 범족은 술을 매우 좋아했으나 먹을 곡식으로 술을 빚을 여유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식욕을 자랑하는 이들이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술을 빚을 정도의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다른 지파에서는 술이 상당히 귀했다.
이소호칸은 백모 지파가 이렇게 부유함을 얻은 것이 모두 인간의 손재주 덕분이라 여겼다.
그렇게 이소호칸 덕분에 백모 지파의 많은 호인들은 편견을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소수의 호인들은 인간을 경멸했다.
“이 소년을 그렇다고 장원 안에서 우리와 같이 생활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아이를 가르치신다 해도 주거지는 인간 거주 구역에 두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내 오전에는 이 아이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인간 거주지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고스보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무명은 이소호칸에게 속삭였다.
“어르신,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너를 어찌할지 처우를 논의하고 있다. 아, 소개를 아직 안 했구나. 내 친우 다한마의 아들인 고스보치이다. 내가 믿고 신뢰하는 자이지.”
이소호칸의 말이 끝나자 고스보치가 눈을 뜨고 손을 포개어 놓으며 말했다.
“어르신, 지금 이 아이를 병사들에게 소개하실 요량이십니까?”
“그러네. 일조 점호에 병사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려 하고자 여기 왔다네.”
“병사들의 뜻은 모두 저와 같을 것입니다. 아이를 가르치시는 것이 어르신의 생각이라면 저희는 모두 그 선택에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고스보치는 무명을 보며 살짝 뜸을 들였다. 그가 무명에게 보내는 시선은 명백하게 걱정이 깃들어있는 것이었다.
“장원 바깥의 자들은 어르신이 인간을 가르치신다 하면 분명히 불화가 생길 것입니다. 어르신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쓰진 않겠지만, 이 아이에겐 분명히 강경적인 수단을 도입할 것이 자명합니다.”
고스보치와 이소호칸 사이에서 약간의 정적이 생겼다.
고스보치는 그 정적을 조심스럽게 끊었다.
“백모 지파의 일원으로 같은 지파 내에 불화가 생기는 것은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백모의 아버지이시여, 아이를 가르치신다면 따르겠으나 그 결정을 다시 한 번 재고해주실 순 없겠습니까?”
고스보치의 말에 이소호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것은 호의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순간 냉랭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찬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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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