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word Seven Flesh Divine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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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탈출[出]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울고만 있을 거요?”
가주레가 무기력한 이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에 매우 과묵했지만 동료가 어려운 일에 처해있다면 두 발 벗고 묵묵히 도와주는 그였다.
그는 이마진의 일이라면 더욱 신경을 써왔다. 그가 이곳에 와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고 오래 같이 지낸 벗이 이마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주레는 그걸 은혜 입었다고 생각했기에 평소에도 알게 모르게 이마진을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말 좀 해보소.”
가주레가 이마진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이마진은 넋을 놓고 있어 가주레가 흔드는 방향으로 고개가 흔들거렸다.
“내가… 어떻게, 무엇을…….”
이마진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횡설수설 대답했다.
“가야지! 가서 구출해 와야지!”
가주레의 말에 이마진이 혼비백산하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마진이 정색하며 고개를 흔들자 가주레가 어깨를 쥐었던 두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말했다.
“형님은 공진희를 사랑하지 않았소?”
가주레의 말에 이마진은 멍하니 가주레를 바라보았다. 대답이, 혀가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진희를 사랑한 형님은 진심이었소. 이곳에서 형님을 본 어떤 때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단 말이오. 그런 것들이 전부 이런 무기력함에 치우쳐질 정도로 사소한 것이었소?”
가주레가 말하자 이마진의 뇌리에 공진희와 지낸 지난날들이 다시 영상이 되어 흘렀다. 지금까지는 상상을 하면 공진희가 처해있는 상황이 계속 덧씌워져 마냥 슬펐지만 가주레의 말을 듣고 되새겨보니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공진희를 사랑한다.”
이마진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자기가 느끼고 간절히 바라던 감정은 그 어떠한 것보다 확실했다. 주저하고 답하지 못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구해야 할 것이 아니오.”
간단한 말이었다. 그 단어가 힘이 쭈욱 빠져있던 이마진의 몸에 다시 온기를 돌게 만들었다.
“그건 네 말이 맞다, 가주레.”
이마진은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공진희를 구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마진이 이를 뿌득 갈면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려 할 때 처량하게 구겨진 서신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유기이가 마지막에 쥐어준 것이었다.
날이 어둡고 워낙 경황이 없었던 터라 이마진은 서신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이건…….”
이마진은 꾸깃꾸깃해진 서신을 펴보았다. 손에 난 땀들이 글씨를 묽게 만들었지만 이마진은 어렵지 않게 서신의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후 일은 원컨대 원하는 대로. 오늘 저녁, 약속 장소와 만나는 시각은 그대로.
무언가 암호같이 쓰인 말이었지만 이마진은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약속 장소와 만나는 시각은 그대로라는 말은 무명이 공진희와 이마진이 만나게 되는 날에 암구호처럼 사용한 말이었다.
“그건 뭐요?”
가주레가 묻자 이마진은 내용을 유추하여 말했다.
“오늘 저녁에 공진희를 보러 갈 때 나오던 곳으로 오라는 서신인 거 같다.”
“무명이 보낸 거요?”
가주레가 아니꼽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이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레는 무명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가봐야겠어.”
이마진이 잠시 생각한 후 말을 꺼내자 가주레는 묵묵히 그를 응시하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무언가 방도가 있으니까 나오라 말한 거겠지. 지금은 달리 수가 없다. 무명에게 기댈 수밖에.”
가주레는 이마진의 말에 진중히 생각하며 이마진과 눈을 마주쳤다.
“만약 공진희 누나를 구해낼 수 있다면 동쪽으로 탈출하는 게 좋을 거 같소.”
가주레는 잘게 나있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마진은 탈출이라는 말이 너무나 생소했지만 가주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 아이 몇이 탈출을 위해 오랜 기간 동쪽에 길을 터놓고 결국 북쪽으로 가다 잡히지 않았소. 그 길을 이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소. 그 길이라면 그때 아이들이 내게 약도를 준 게 있소. 형님이 그쪽으로 가신다면 그 첫 길에 몇 가지 도구와 식료품을 아이들과 함께 숨겨놓겠소.”
가주레가 말하자 이마진이 놀라 그를 주시했다.
가주레가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또한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바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너, 너도 여기를 나가려고?”
이마진이 급히 묻자 가주레는 콧잔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답했다.
“형님, 언제까지나 여기에서 있을 순 없지 않소. 언젠가를 대비하기 위해 그 애들이 준비할 때 나도 좀 거들었었소. 그, 일전에 동쪽으로 도망친 애들은 잡히지 않은 적이 있었지 않소이까. 그래서 동쪽에 길을 놓았지요. 결국 동쪽 끝에 가망이 없어 보여서 그 녀석들은 북쪽으로 길을 바꿔서 잡혀 죽었지만 말이오.”
가주레의 말을 듣고 이마진은 지난 일을 곰곰이 꼽아보았다. 확실히 동쪽으로 간다고 한 아이들의 대다수는 다시 잡혀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너도 여기를 나가려 준비를 했었구나. 난 전혀 모르고 있었네.”
“나야 워낙 과묵하고 형님 외엔 아무도 신경을 쓰지를 않으니 비교적 행동하는 게 쉬워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마진은 가주레를 찬찬히 훑어보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워낙에 말이 없고 진중한 녀석이라 속내를 잘 모르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었다.
“예전 같았으면 크게 혼을 내도 아주 크게 혼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네 덕분에 마음이 놓이는구나. 한데 동쪽 끝에 가망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야?”
가주레는 이마진의 말에 살짝 침묵하다 답했다.
“동쪽 끝에는 바다가 있소.”
“바다?”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웅덩이오. 그 길을 내고 동쪽으로 탈출하려던 아이들이 사흘 정도 갔다가 바다가 있었기에 돌아와 북쪽을 택했었수. 물로 막혀있어서 더 이상의 진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럼 그 아이들 생각대로 그쪽 진로로 가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이마진이 묻자 가주레는 고개를 옆으로 천천히 저었다.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수. 오히려 그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우. 동쪽은 바다로 막혀있기 때문에 아무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오. 그러니까 호인들도 도망치면 동쪽 수색은 가장 나중에 염두에 두겠지요. 어차피 도망가봤자 막혀있을 테니까. 형님, 하지만 바다를 막혀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오.”
가주레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내 고향이 바닷가였소. 바다 쪽으로 도망치면 이점이 있지요. 첫 번째는 바닷바람과 바닷물로 몸의 냄새를 지우고 추적을 어렵게 하는 것. 둘째로는 먹을 것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점. 셋째로는 이동이 용이한 점이 있소. 숲이나 평야를 지나칠 때엔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식량을 구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지만 바다는 해변을 따라가고 바다에서 먹거리를 찾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점이 많소.”
가주레가 말을 마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이마진은 그의 말에 신용이 가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마진의 모습을 보고 가주레는 걸음을 옮겨 자신의 베개를 가져왔다. 베개 속에 손을 넣더니 조그마한 무명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아주 간략하게 그려 넣어서 설명이 좀 필요하우. 형님, 동쪽 길을 이용하실 거요?”
가주레가 묻자 이마진은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진의 표정과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가주레는 방그레 웃으며 지도의 한쪽 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우리가 이전 농장에서 작업하던 곳의 동쪽 숲을 표시해 놓은 곳이오. 여기에 들어가다 보면 나무 세 그루가 서로 몸을 붙이고 자라나있는 곳이 보일 거요. 그쪽에서 좌로 5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첫 번째 참호가 있소. 몇 가지 물건을 계속 넣어 두었지만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우. 오늘 저녁 내로 아이들과 그곳에 도구나 식량을 채워놓겠소. 그리고 참호의 동쪽으로 가다 보면 흰색 바위가…….”
가주레의 설명은 상당히 세밀했다. 그 작고 초라해 보이는 천 조각엔 동쪽 바다까지 가는 길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해당 길목에 있는 주요 이정표들만 그려져 있었는데 가주레는 이정표들을 설명하며 바다로 이르는 방법을 이마진에게 전했다.
이마진은 가주레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집중했다.
가주레가 대강 설명을 마치고 다시 한 번 똑같은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이마진은 가주레의 말을 머릿속에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여기, 가지고 가시오. 형님.”
가주레가 설명을 마치고 지도를 접어 이마진에게 넘겨주었다. 이마진은 가주레와 굳은 눈빛을 마주치고서는 그 지도를 받았다.
“이곳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던 것은 형님뿐이오. 부디 공진희 누나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으면 하오.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시오.”
가주레가 문밖으로 나갔다. 이마진은 가주레의 뒤를 눈으로 좇았다.
가주레는 잠시 후 조그마한 행낭을 손에 들고 이마진 앞에 섰다.
“지금까지 내가 조금씩 모아왔던 거요. 형님이 써주었으면 좋겠소. 모쪼록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오.”
그 행낭에는 식량들과 몇 가지 도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주레가 지금까지 탈출을 위해서 모아놓은 것들이 분명했다.
이마진은 가주레의 마음이 가득 담긴 그 행낭을 받아 들고 가주레를 끌어안았다.
가주레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아이들이 그제야 한두 명씩 몰려오더니 이마진을 깊이 포옹했다.
그들도 이마진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다. 이마진은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만 우시오. 사내가 눈물이 흔해서야 쓰겠소. 혹 모르니 그 약속 장소에 어서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겠소.”
가주레가 웃으며 이마진을 배웅하자 아이들도 따라 배웅했다.
이마진은 멋쩍게 웃으며 아이들과 헤어졌다. 공진희로 인해 아프고 슬펐던 감정들이 아이들로 인하여 조금 회복된 듯했다.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니 축 늘어졌던 손과 발도 어느 정도 온기가 돌고 힘이 돌아온 듯했다.
이마진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언제나 힘을 얻고 웃음을 지을 수 있던 것은 저 아이들과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 뒤로 자신을 배웅해 주는 아이들에게 이마진은 속으로 수백, 수천 번의 감사의 말을 하며 약속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마진에게 주어진 선택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공진희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랍기 그지없는 결단이었지만 이것이 이마진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마진은 공진희를 그 어떠한 것보다 사랑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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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