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word Seven Flesh Divine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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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손실[失]
해가 아직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산 저편이 하얗게 밝아올 때 무명은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느낌을 받고 잠에서 일어났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죽은 듯 잠을 잤던 무명은 얼굴에 어제 흘렸던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일단 세수하렴.”
유기이가 일어난 무명 앞에 물 대야를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무명은 얼굴을 한껏 찌푸리다가 앞에 놓인 대야의 물을 두 손으로 펐다.
바깥에 있던 물인지 매우 찼다. 따듯하게 덥혀있던 손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푸아.”
물을 떠 눈물 자국으로 범벅된 얼굴을 씻어냈다. 시원한 물기를 머금은 손이 얼굴 전체를 훑어 내리며 지난날의 추레함을 떨쳐내었다.
시원한 물이 무명의 얼굴을 말끔하게 만들고, 깊은 고민 또한 한순간 잊게 해주었다. 옷깃을 당겨 얼굴의 물기를 제거한 무명은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전날에 있었던 끔찍한 기억을 다시 추스르고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무명이 채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유기이가 무언가를 건넸다. 빵이었다. 말려놓은 것이어서 상당히 단단하고 텁텁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 거주지에서 배급받는 음식보다는 질이 좋았고 크기도 컸다.
무명은 빵을 보자 급히 허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기이가 건네준 빵을 받아 들고 감사를 표하며 한입 베어 물었다. 구수한 밀 향이 입안으로 퍼졌다.
무명은 먹을 것이 목 뒤로 넘어가자 다시 한 번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마진과 공진희가 떠올랐지만 어제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무명은 강한 아이였다. 슬픔에 빠져 침울하게 있는 것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전 이곳으로 잡혀오는 와중에도 그랬지만 무명은 어떻게든지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먼저 바꾸는 경향이 있었다.
아직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더 나은 상황을 위해서 마음을 죽이고 행동을 보다 냉철하게 하는 것이 무명의 태도였다.
무명은 빵을 먹다 말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수에르가 보이지 않았다.
“수에르 형은요?”
유기이는 방 안 한편에서 온주로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었는데 무명 쪽으로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도를 휘두르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보내줬지. 뒷마당에서 휘두르고 있을 거야. 2각 이내엔 돌아올 거야.”
유기이의 말에 무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바라보았다. 문에는 창호지가 두껍게 발라져 있어 빛이 많이 스며들어 오지 않았다.
방 안에 초롱불을 켜놨기에 시간관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무명은 다시 유기이에게 물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거 같은데요?”
“응, 해는 아직 뜨지 않았어. 어제 저녁 일로 혹시 모르니 일찍 일어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깨운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준비는 해야 할 테니까.”
“그렇군요.”
말이 끝마친 무명은 다시 빵을 집어 들어 조금씩 뜯어 먹었다.
“목마르면 옆에 물도 있으니까 마셔.”
무명이 빵을 먹기 시작하자 유기이가 말했다.
무명은 빵을 우물거리면서 물 잔을 찾고 유기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물을 들이켜며 무명은 제 얼굴만 한 빵을 뱃속으로 넣었다. 빵을 다 먹자 방 안은 초롱의 심지 타는 소리만 들렸다.
유기이는 수에르가 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기에 무명은 적막한 방에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태도를 정해야 할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명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으나 차분히 하나하나 변수를 대입해 가며 기로를 선택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오갔다. 최악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반드시 타개책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명은 어떻게든 활로(活路)를 열고자 애썼다. 그 끝이 어둠과 암흑밖에 없다 할지라도 방도는 찾아야 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사색에 잠겼다고 생각할 즈음에 방문이 열리고 수에르가 들어왔다. 검을 얼마나 휘둘렀는지는 몰라도 땀 냄새가 온몸에 가득히 절어있었다.
아마 수에르도 나름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도를 휘두름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다듬은 것이 틀림없었다.
수에르가 들어오자 유기이는 젖 위에서 곤히 잠든 온주로를 살며시 포단에 내려놓고 수에르와 무명 사이로 다가왔다.
수에르의 얼굴은 상당히 피폐해 보였지만 몸에서 퍼지는 훈련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아 패도적인 인상이 더욱 강렬해 보였다.
“미안, 도를 휘두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수에르는 사과하며 방문 앞에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숨소리는 상당히 거칠었지만 흥분하지는 않은 듯했다. 어투에서는 냉정함이 그득했다.
“도를 휘두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유기이도 무명도 아마 각자 생각해 둔 바가 있겠지. 일단 나부터 말할까 한다.”
수에르가 서두를 던졌다. 확실히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무명만이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수에르와 유기이 둘 다 각자의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무명은 수에르의 정리된 생각을 듣기 위해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지금 상황은 아마 최악이겠지. 가장 먼저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은 바로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이야. 죽음을 가정한다면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겠지.”
수에르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자기가 말해도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이마진과 공진희를 살리겠다는 희망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둘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침울하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무명은 수에르가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실감했다. 스스로에게도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 사태의 공모자로 나를 주시하고 계실 것은 분명해. 무명 너까지도. 증거가 없을 따름이지. 거의 확정 지었다고 할 만큼 용의자로 낙점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파에서는 증거가 없어도 심증만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대족장 어르신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우리를 심증만으로 처벌하시진 않겠지.”
무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선택할 것인지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유기이와 나는 이미 뜻을 정했다. 우리는 이마진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우리의 행동에 후회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확고히 각오했지.”
수에르가 단호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무명은 적지 않게 놀랐다. 둘이 그렇게 결단을 내렸을 줄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둘의 슬하에는 온주로가 있었다.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에르와 유기이는 친우와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결단이 아닐까요?”
무명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의 결단이 매우 단호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삶을 쉽게 포기하게 두는 것은 옳지 않다 판단했다.
“나와 유기이는 오히려 무명 너라면 이마진과 함께하겠다고 명확히 할 거 같아서 이리 정한 것인데…….”
수에르가 무명이 한 말의 중심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무명이라면 이마진과 함께하겠다 동조하리라 생각하고 내린 결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문(死門)의 길이 아닌 활로(活路)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이마진 형과 공진희 누나와 뜻을 같이하겠다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에르 형, 이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직 일러요. 저희가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무명이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여 말했다. 살 수 있다면 살아야 했다. 죽음의 길을 자초하는 것은 무명의 성격상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무명이 잠시 뜸을 들이자 수에르와 유기이가 더욱 무명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가 아니라 이마진 형과 공진희 누나가 우리에 대해 밝히면 그때 선택해도 늦지 않습니다.”
무명은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훑었다.
“형이 말하셨죠, 이마진 형과 공진희 누나를 살릴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요. 그 말에 부정하고 싶고, 믿지 않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형 말대로 둘을 탈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둘은…….”
한마디 말을 꺼내는 것이 이리 어려울 줄이야.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무명은 이야기해야 했다.
“죽은 것이죠. 지금은 살아있지만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수에르와 유기이는 굉장히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누구보다 둘을 사랑하는 무명이 이렇게 가혹한 말을 할 줄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따라 죽는 것도 있지만 산 자 또한 산 자 나름대로 죽은 자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죽은 자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지요.”
말을 마치고 무명은 이를 꽉 깨물며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잠시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유기이였다.
“무명, 네 말 또한 옳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범족은 친우를 저버리지 않는다. 종족이 다르다 할지라도 나나 수에르는 친우의 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자백하려 하는 거야. 이마진이나 공진희가 우리를 공모자라고 고발하여 친우의 입을 더럽히고 우리의 명예를 잃는다면 그것은 범족의 자존심 모두를 잃는 것과 같아.”
유기이가 무명에게 온화하게 말했다. 무명은 유기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도 수에르 형이나 유기이 누나의 선택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두 분처럼 선택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무의미한 죽음이라구요. 형과 누나에겐 저기 자고 있는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온주로가요. 죽은 자를 위해서, 죽을 자를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에요. 수에르 형과 유기이 누나는 최선을 다했잖아요. 더 이상의 희생은 어떻게든지 막아야 해요. 죽음은 어떠한 형태라도 최악의 수입니다.”
무명은 수에르와 유기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둘의 눈은 무명이 언급한 온주로에게 가있었다.
“더 이상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도 자의로 말이에요.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살아야지요. 죽은 자의 무게는 삶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지, 같은 죽음으로 짊어지면 아니 된다 생각합니다. 그거야말로 책임 회피지요. 어린 제가 이렇게 수에르 형이나 유기이 누나에게 말하는 것이 괘씸하고 어불성설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가서는 거의 울부짖듯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스스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말이었다.
“확증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마진 형이나 공진희 누나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우리가 아닌 이마진 형과 공진희 누나의 선택에 삶을 맡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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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