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4
143화 저는 뭡니까?
나와 청소소는 분타에서 마련해 준 마차를 타고 구룡성으로 출발했다.
펄럭펄럭.
구룡성을 상징하는 아홉 마리 용이 그려진 깃발을 달고 말이다.
덕분에 편안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귀뚤귀뚤.
아, 편안하다는 말은 취소다.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소리 좀 지르지 마요. 우리 애가 놀라잖아요?!”
“애는 무슨! 자연으로 돌려보내 준다며!”
“청아가 안 간다고 하는데 어떡해요?! 우리 청아, 엄마하고 계속 살 거예요? 에구, 귀여워라.”
귀뚤귀뚤. 짜르르. 짜르르.
“…….”
뭐, 대충 이런 이유로, 오는 길이 그렇게 마음 편하진 않았다.
여하튼, 내내 청소소와 말씨름을 이어간 끝에 우리는 마침내 구룡성에 도착했다.
나는 청소소에게 짐 정리를 맡기고 곧장 외당으로 향했다.
‘아니! 이걸 왜 저 혼자!’
그녀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덕에 마차도 편안히 타고 왔으니 이 정도는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인 것을.
“구우! 료용!”
거의 석 달 만에 만나는 가립에게 최대한 각을 살려 경례했다.
원래는 북궁백을 먼저 찾았으나,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그에게 달려온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 먼저 인사하든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북궁백은 거의 출근하지 않다 보니 외당의 실권은 가립이 쥐고 있었으니까.
“……구룡. 그래, 잘 다녀왔나?”
“헤헤, 부당주님의 은혜 덕분에 아주 자알 다녀왔습니다요. 헤헤헤.”
“신수가 훤하군. 좋은 거 많이 먹고 온 모양이야.”
북궁백의 업무에 더해 내 업무까지 떠맡은 탓인지 가립의 말에는 꽤나 날이 서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 부당주님 걱정에 식음을 전폐하고…….”
“거짓말할 거면 그만 돌아가게나.”
“헤헤헤, 역시 부당주님의 심안은 당할 수가 없군요. 그래도 부당주님을 생각했다는 건 진짭니다. 여기…….”
나는 가져온 보따리를 가립에게 슬쩍 건넸다.
“이게 뭔가?”
“별건 아니고, 기력 회복에 좋다는 십 년 하수오와 고려 인삼을 좀 가져왔습니다. 최고급으로만 골라왔으니 달여 드시면 금실이 좋아지다 못해 터질 것입니다요. 헤헤헤.”
“허어, 내가 이런 걸 받자고 그런 것이 아닌데……. 크흠, 뭐 가져온 성의가 있으니 일단 받아 놓겠네. 하나,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뇌물은 뇌물. 다음부터는 가져오지 말게.”
가립이 슬그머니 보따리를 안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이고! 뇌물이라니요. 다 부당주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챙겨 온 성의입니다. 성의. 뇌물이라 그러시면 속하 서운합니다.”
“커험, 알았네. 오랜 기간 파견 나가 있었던 탓에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게나.”
그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가립이 작게 웃었다.
역시 세상 편하게 사는 데는 자본주의가 최고다.
“그럼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이걸 잊었군.”
“예?”
그가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슬쩍 살펴보니 문상의 도장이 찍혀 있는 명령서였다.
“외당에 복귀하는 대로 군사부에 들르라는 명령일세.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가야 할 것이네.”
살짝 불안해지는 명령이었다.
‘군사부와 얽혀서 좋을 게 없는데…….’
안 그래도 예전에 안 좋은 일로 엮인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 피할 방도가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 * *
“에구구, 머리야…….”
어젯밤, 오랜만에 만난 일조원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은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 같아선 다시 침대에 눕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끄응, 하여간 먹물 놈들은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군.”
바로 군사부에 들러야 했기 때문.
우물가로 가 대충 씻고 있으니 어디선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청소소가 앞치마와 걸레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침이라곤 해도 새벽이 갓 지난 시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가 일어날 시간이 아니다.
심지어.
‘세상에!’
그간 비워 뒀던 의원을 청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 뭐 하는 거야, 지금?”
“뭐 하긴요. 석 달 가까이 비워 놓은 의원을 청소하죠. 깨끗해야 환자들을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살포시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려 봤다.
“음……. 열은 없는데?”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욧! 남사스럽게!”
귀뚤귀뚤!
“혹시나 아픈 게 아닌가 해서…….”
“으으…….”
귀뚜울…….
아니, 저 귀뚜라미 대체 언제 버리냐고.
“크흠, 뭐 안 아프면 됐다. 다녀올 테니까 집 좀 지키고 있어.”
“잠깐만요.”
청소소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작은 주머니를 던져 줬다.
“숙취환이에요. 몇 개 넣었어요.”
“굿. 센스 있네.”
“뭐, 뭐요? 굿? 센스?”
청소소를 뒤로하고 곧장 군사부로 달려갔다.
언제나처럼 문지기들과 인사하고 들어서니 군사부의 서생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언제 한번 외당 지옥 훈련에 강제로 참여시켜야 하는데 말이야.’
그때가 되면 피티 8번의 참맛을 보여 주리라.
그들을 보며 미래를 그리느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자 안내하던 시비가 나를 재촉했다.
“문상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갑니다. 가요.”
그렇게 시비를 따라 도착한 곳은 문상의 집무실.
“왔나?”
“예.”
문상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가져왔다.
“들게나.”
“네.”
쓰다.
몇 번이나 마셨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다.
“입에 맞지 않나 보군.”
“써서 말입니다.”
“흔히 머리가 맑아지는 맛이라고 표현하지.”
“소인의 머리는 이미 맑습니다.”
“든 게 없어서 맑은 건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한 방 먹었다.
문상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곧 찻잔을 내려놓고선 말했다.
“한중 분타를 아주 잘 이끌었더군. 금룡당주의 목숨 또한 구했고.”
“제가 워낙 뛰어난 인재라…….”
“흐음…… 하는 짓을 보면 딱 망나니인데 능력은 또 있단 말이지. 무공도 뛰어나고.”
파직.
문상의 도발을 듣자마자 찻잔을 부수고 말았다. 실수로 손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참을성은 또 없구먼그래.”
아무리 상대가 문상이라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
“할 말 없으시면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높은 사람일수록 부하를 잘 다독…….”
“포상을 주려고 불렀네만?”
“……이시는 문상님을 보며 항상 제갈무후의 현신이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그래, 무얼 가지고 싶나?”
“헤헤, 소인은 큰 욕심 없습니다요. 그저 상여금 정도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소박하게 금자 천삼백 냥 정도…….”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쉽지 않은 협상임이 불 보듯 뻔한 상황.
나는 현대 한국에서 가장 매섭게 협상이 이루어지는 휴대폰 가게에서 일하며 익혔던 스킬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그럼 얼마까지 주실 수 있는지요.”
바로 ‘선제시’였다.
“공을 봐선 금자 스무 냥쯤은 줘도 무방한데…….”
여기까지 듣고는 속으로 대박이라는 말을 수십 번쯤 외쳤다.
금자 스무 냥이라니.
그 정도면 마적질로 번 돈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지는 문상의 말에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 절차를 무시하고 십마련의 영역을 공격한 죄가 있으니 감경해야겠네.”
“아니!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분명 혈살문으로 위장해서 들어갔는데?
이어지는 문상의 말에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흑호단은 성주님의 보검이 아닌가? 비밀이 있을 리가 없지.”
단주 영감탱이가 배신을 했구나!
‘빌어먹을 영감탱이! 가만두지 않겠다!’
절로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문상과의 협상이었다.
나는 최대한 참으며 자기변호를 시전했다.
“한중을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한 일이니 그냥 넘어가는 것이…….”
“순수하다고 보기엔 도적질로 얻은 돈이 엄청나더군.”
“……!”
금액까지 불다니.
당장이라도 흑호단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단주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그에 대해서는 따로 문제 삼진 않지. 대신 포상금은 지급하지 않겠네.”
개같이 고생했는데 상여금도 주지 않는다니.
무슨 현대판 좆소기업이냐고.
“하나.”
문상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금룡당주의 목숨을 구한 공로가 크니 구룡병창의 갑급 무구를 포상으로 지급하라는 성주님의 명이 있었네.”
“헉.”
“축하하네. 갑급 무구라면 금자 스무 냥보다 몇 배는 가치 있는 보물. 성주님께서 특별히 베푸시는 것이니 감사하도록.”
“아니.”
그냥 돈으로 주지…….
* * *
구룡병창에 들어가는 날은 삼일 뒤로 결정되었다.
무슨 진법을 해제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나, 뭐라나.
아, 혹시나 해서 가져다 팔아도 무방하냐고 물었다가 욕만 뒈지게 먹었다는 건 비밀이다.
여하튼, 군사부를 나온 나는 흑사로에 있는 북궁백의 집으로 향했다.
한중에서 얻은 의문점에 관해 묻기 위함이었는데.
“…….”
도착하자마자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뒤뚱뒤뚱.
“헥헥. 거기 청소 다 했냐?”
“후욱, 후욱, 아직입니다.”
“빨리빨리 하거라. 곧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까. 헥헥.”
한때 식스팩을 자랑했던 십마련 간자들이 하나같이 씨름선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북궁백이 놈들을 모조리 묻어 버린 뒤 새로 하인을 뽑은 거라고 오해할 뻔했다.
“헥헥……. 누구……. 으헉! 지, 진 조장님이 아니십니까?”
“……왜 그렇게 됐냐?”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다. 당주님 안에 계셔?”
“산보를 나가셨습니다. 나가신 지 좀 되었으니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그가 뒤뚱거리며 사랑채를 가리켰다.
예전에 청소소가 자기 방으로 쓰던 곳이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금방 차를 올리겠습니다.”
“그래.”
뒤뚱거리며 걷는 놈의 뒤태를 보니 왠지 모르게 돼지 수육이 먹고 싶어졌다.
‘으음…… 간만에 미산객잔에 들러야겠군.’
다른 메뉴가 없어서 그렇지, 수육 하나만큼은 괜찮게 하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마시며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북궁백이 돌아왔다.
“구우! 료용!”
“귀찮다. 들어가라.”
“옙.”
곧장 나가 칼각 경례를 올리니 그가 귀찮다는 듯이 손짓했다.
역시 탈권위의 상징, 북궁백다웠다.
“집에서 쉬지 뭐 하러 왔나?”
“석 달 만에 본 오른팔 같은 부하에게 그 무슨 섭섭하신 말씀입니까.”
“오른팔은 무슨, 오른쪽 엄지발가락 정도지.”
“아니.”
나도 상처라는 걸 받는 남자예요.
충격적인 평가에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마음을 다스리고 말했다.
“물을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피식.
“그렇군.”
마치, 올 게 왔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가 손을 휘젓자 덜컹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경지에 오른 자만이 쓸 수 있는 허공섭물의 수였다.
“누구 있으면 술을 가져와라.”
“…….”
하인들에게 명령한 그가 작게 웃으며 눈을 마주쳤다.
“오래간만에 한잔하지. 안주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도록.”
* * *
“들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수육을 앞에 두고 북궁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중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