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3
201화 천하제일 면왕대회
“으어……. 힘들다.”
한중에서 구룡성, 정도맹을 찍고 다시 한중으로 돌아온 나는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렸다.
당연했다.
장장 사천 리가 넘는 거리였으니까.
캡틴 호올스 흰둥이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그놈의 별자리 운세는……. 쯧쯧.’
침대에 누워 정도맹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맹주는 끝까지 천기가 어쩌고 하며 별자리 운세를 신봉했다.
‘천기는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거 다 미신이라니까요.’
‘허어, 천벌을 받을 소리를 하는구나!’
‘아니!’
명색이 도사라는 양반이 그 모양이니 무림의 앞날이 어둡게만 느껴졌다.
진궁은 내 새끼손가락에 돌돌 감겨 있던 전주시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뇌, 뇌전시! 뇌전시를 어떻게 구했나?’
전주시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
덕분에 나는 전주시의 진정한 위력을 끌어낼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
‘전용 무공이 존재했다니…….’
명성에 비해 활용도가 딸린다고 느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하오문에 의뢰를 넣어야겠군.’
마지막으로 무황성으로 떠난 청가장주는 내 손을 붙잡고 연거푸 고마움을 표했다.
그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 그러니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뭐……. 이번만큼은 그냥 받아들였다.
그의 목숨을 구해 준 건 물론, 구룡성을 설득해 무림 평화 유지군에 정도맹을 참여하게끔 해 준 게 이 몸이시니까.
그래도 고생을 한 가치는 있었다.
‘이게 뭡니까?’
‘묘안석이네. 나와 청무대의 목숨값으론 턱없이 부족하나…….’
‘감사합니다!’
대가는 충분히 얻었으니까.
‘그나저나 조만간 날을 잡아야…….’
자꾸 청소소를 넘기려는 게 심히 불편했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번 청가장주 구출 작전의 성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SS급을 매길 수 있으리라.
그렇게 홀로 자축하며 누워 있던 차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으하암…….”
똑똑.
“들어가도 돼요?”
청소소였다.
“들어와.”
“아프다면서요?”
자리를 비운 지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그사이 볼살이 오른 걸 보니 내가 개고생하는 동안 잘 먹고 잘 지낸 듯싶다.
“보면 몰라. 아주 돌아가시겠다.”
“그러게, 누가 혼자 놀러 가래요? 심보를 고약하게 쓰니까 벌 받은 거라고요.”
“…….”
순간, 어이가 없어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내가 누구를 구하려다 이렇게 됐는데.
정말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은 계집애가 아닐 수 없다.
“어머? 열이 오르나 보네요? 문주님 같은 고수가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디 봐요.”
뭔가 오해를 한 청소소가 맥을 짚기 시작했다.
“흐음…… 심장이 강하게 뛰고 혈류가 빨리 도네요. 전형적인 화병의 증상인데……. 혹시 최근에 억울한 일을 당했나요?”
“…….”
화병의 원흉이 이러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심혈관까지 막히는 심정이었다.
청소소가 품에서 치료 세트를 꺼내 들었다.
“누워 봐요.”
“뭐 하려고?”
“뭐긴 뭐겠어요? 침을 놓으려는 거죠. 화병은 몰라도 피로는 풀어 드릴 수 있어요.”
병과 약을 동시에 주는 그녀였다.
* * *
이틀 뒤.
청소소의 치료 덕분인지, 아니면 참고 넘어가자는 자가 최면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밀렸던 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급했던 건 예산 편성이었다.
예산이 돌아야 전왕문과 한중이 돌아갈 테니까.
“……이로써 이번 예산안의 편성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질문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유소평의 말에 그 어떤 간부들도 손을 들지 않았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복식부기는커녕 산수도 제대로 못 하는 무인들이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있을까.
드르렁.
“…….”
심지어, 당양강은 회의 초반부터 지금까지 명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딱.
“으억!”
놈의 머리에 붓을 던지며 말했다.
“그러니까, 걷힌 세금이 천삼백 냥이고 써야 할 돈이 팔백 냥이라는 거 아냐.”
“정확하십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한중은 달에 한 번씩 세금을 걷는다.
이는 묘향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일인데, 필요한 예산을 빠르게 충당할 수 있을뿐더러 납세 주기가 짧아 외부로 돈을 빼돌리지 못하게 되니 탈세도 방지되었다.
“지출 규모가 생각보다 적네?”
“예, 큰돈이 들어갈 일이 마무리되었고 흑룡문이 보호세를 염가로 받는다는 소문에 주루와 식점을 개업하는 백성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자영업이 활성화되었군.”
역시, 북궁창을 영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한중을 좀먹는 무림 문파들을 쫓아낸 건 창조신의 한 수였고.
“하여 군사부에서 한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군사부라고 해 봤자 너랑 호평이 밖에 없지 않냐?”
“다섯 명이 더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애초에 적룡당 소속이잖아.”
“임시직으로 채용했습니다.”
“…….”
유소평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한중에 미식이라는 가치를 더하고자 합니다.”
“미식?”
“예. 현재 한중의 경쟁 도시는 산서상방이 위치한 태원과 휘상들의 본거지인 합비입니다.”
“경쟁이 안 되지 않나? 각각 한중보다 세 배는 큰데.”
“그러니까 한중을 더욱 발전시켜야지요.”
유소평의 설명은 이러했다.
상업 도시인 한중에 ‘맛’이라는 가치를 더해서 더욱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것.
“……아주 좋은데?”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인간에게 있어 맛이란 돈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였으니까.
“아주 일리가 있어.”
“감사합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미식이란 가치를 더할 건지 의견들을 나눠 보자고.”
대전에 있던 간부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 * *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방울이 나오는 법이라더니, 장시간 이어진 회의 끝에 몇 가지 괜찮은 의견들이 나왔다.
가장 먼저 유소평.
그는 군사답게 체계적이며 정직한 의견을 내놨다.
“전왕문에서 인증서를 지급하는 겁니다.”
“인증서?”
“예. 평가 후 맛이 훌륭한 곳에 전왕 일 성, 전왕 이 성, 전왕 삼 성으로 나뉜 인증서를 배포한다면 주루와 식점의 주인들은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맛도 좋아질 테고요.”
“…….”
‘전슐랭이라…….’
식당별로 경쟁을 시켜 전체적인 질을 향상시키자는 정직한 방법.
하지만, 즉효성은 아니기에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해 보였다.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렇긴 합니다만, 장기적으로 음식의 질을 유지하는 데는 효과적일 겁니다.”
“좋아. 추진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두 번째는 웬일인지 육학 아저씨가 의견을 내놨다.
“크흠, 오랜 시간 돌아다녀 본 결과, 지역의 특산물이 있으면 먼 길이라도 찾아가게 되더군.”
진부하지만 좋은 의견이었다.
무릇 클래식은 계속해서 팔리기에 클래식인 법이니까.
문제는.
“그런데 한중의 특산물이 뭡니까?”
한중에는 특산물이라고 불릴 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건…… 음…….”
농사를 지어야 뭐가 나와도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난감함은 당양강의 의견으로 한 방에 해결되었다.
“무엇이든 존재하는 게 한중의 특징이 아니오? 밀어붙이려면 그걸로 밀어붙여야지. 어디 보자, 그러려면 국수가 제격이겠군. 육수를 끓이고 고명을 얹으려면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 법이니까. 마침 산서성은 국수의 고장이기도 하고.”
“…….”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고 당양강에게 시선을 던졌다.
회의 때마다 잠이나 처자던 녀석이 이런 번뜩임을 보여 주다니.
짝짝짝.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되었다.
“으음…… 이거 부끄럽구만.”
전왕문의 개파……. 아니, 외당이 존재한 이래로 처음 받는 박수 세례에 당양강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리고 오늘 회의의 대미는 차를 가져오던 묘향이 찍었다.
“아예 대회를 개최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한중을 대표하는 요리도 생기고 주위의 관심을 한 번에 끌 수도 있을 테니까요.”
“퍼펙트!”
제1회 천하제일 면왕대회의 개최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보름.
그동안 유소평을 비롯한 군사부 일동은 천하제일 면왕대회를 철저히 준비했다.
주변 현에 대회의 개최 소식을 널리 알리는 한편, 상련 소속 상단들의 협찬을 얻어 재료들을 공수했다.
더욱이 요리 대회치곤 엄청난 액수의 상금까지 마련했는데.
‘우승 상금이 이백 냥, 준우승하면 백 냥이라…….’
현대의 가치로 이억 원이 훨씬 넘어가는 상금을 걸어 재야의 국수 고수들을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뭐 하고 있었냐고?
뭐 하긴.
탁탁탁탁.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지.
무릇, 국수의 최고봉이라 하면 라면이 아니겠는가.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콩나물 넣은 칼칼한 라면 한 그릇이면 황제가 부럽지 않다.
더군다나 내 목표는 단순히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중원 제일의 식품 기업의 오너가 되리라.’
한중에 라면 공장을 짓는 것.
성공하면 중원의 돈이란 돈은 싹쓸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물론 정체는 숨기고 참가할 예정이다.
내가 원하는 건 라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거지, 부정한 대회가 아니니깐 말이다.
“휘유…….”
보글보글.
“이제 이것만 넣으면 되는 건가?”
끓이던 육수에 산초 가루를 풀었다.
만일을 대비해 품에 지니고 다니던 것으로 아직 생산되지 않는 고춧가루를 대신하여 넣은 것이었다.
문제는.
“퉤. 입맛만 버렸네.”
기억 속의 그 맛이 전혀 안 난다는 데 있었지만.
“청양고추만 있었어도……. 어떻게 방법이 없나?”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움이 커져 갔다.
“후우…….”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없는 걸 탓해 봤자 시간만 지나갈 뿐, 해결책이 나오진 않으니까.
‘재료의 한계 때문에 매운 라면은 힘들다.’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대체품은 총 세 가지.
하얀 짬뽕 라면과 꼬꼬댁 라면, 짜장 라면이다.
“이게 먹힐까?”
이곳 한중의 경우 사천의 영향과 산서의 영향을 고루 받은 지역.
맵고 짠 자극적인 맛이 먹힐 가능성이 크다.
순한 맛의 라면을 만들었다간 예선에서 광탈할 가능성이 크다.
“으음……. 어쩔 수 없군.”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마음을 먹은 나는 곧장 묘향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야말로 자타공인 가정식 요리의 대가이기도 하고…….
무림에 환생한 후로는, 내게 집밥은 그녀가 해 준 음식뿐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집밥 묘선생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똑똑.
“누이, 들어갈게.”
그렇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멋! 무, 문주님!”
“지금 이게 대체……?”
널브러진 재료들.
방안 곳곳에 퍼져 있는 밀가루의 흔적.
심지어, 화로 위엔 냄비가 올라가 있었다.
“설마?”
묘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맞아요. 대회에 저도 참가할 생각이에요.”
“누이가 뭐가 아쉽다고…….”
“우승하면 면왕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면서요?”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하냐고.”
“왜긴요. 문주님께 최고의 국수를 대접하려 하는 거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세상에 없던 맛을 느끼게 해 드릴 테니까요.”
그녀가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누, 누이…….”
아직도 나를 저렇게 생각해 주다니.
엄청난 감동에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역시 양팔을 벌렸고.
하지만.
“헉!”
그녀가 경쟁자가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주님?”
더는 다가가지 않자 묘향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으음…….”
창밖에서 달빛이 쏟아져 묘향을 비추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미안.”
라이벌과 가깝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그녀를 밀쳐 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문주님!”
묘향의 목소리가 전왕각에 울려 퍼졌다.
“불을 지폈으면 책임을 져야죠!”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