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20
218화 마도 종결(3)
…….
적막에 휩싸인 회색빛의 세상.
아니, 사실 고요한 건 아니었다. 사방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삐이-
그저 인간의 귀로 인지할 수 없는 굉음이었을 뿐.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아냐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대신 설명해 줬으니까.
한순간에 터진 경력의 덩어리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땅이 뒤집혔고 바위는 모래가 되었다.
가히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를 만한 위력.
하지만 지옥경의 진정한 힘은 팽창에 있는 것이 아닌 수축에 있었다.
막대한 위력을 보인 경력이 자연지기로 돌아가지 않은 채, 다시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휘오오.
꾸꾸꾸꾸 으저적. 으직.
지구의 내핵에서나 볼 법한 인력이 발생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강철로 만들어진 무기는 작은 공이 되어 버렸고.
근처에 박혀 있던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날아가 가루로 화했으며.
주변에 있던 십마련의 마도들은 한 줌 핏덩이가 되었다.
마치 블랙홀과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목도하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게…… 지옥경?’
놀란 건 정도맹의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
“해치운 건가?”
플래그성 발언이 들려왔지만. 받아 칠 정신이 없었다.
“우웩!”
경지에 닿지 않은 채 억지로 펼친 탓에 온몸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했으니까.
한 올의 진기마저 뽑아 써 기의 흐름이 가닥가닥 끊긴 것은 물론, 몸 안에서 너무 많은 경력을 터뜨려 혈도가 크게 상했다.
욱씬.
특히 내력을 터뜨린 명치 부근의 가슴뼈가 전부 부러졌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지옥경을 정통으로 맞은 십마련주는 죽지 않았다.
“놀……랍군.”
지옥경이 선보인 말도 안 되는 위력에도 그는 약간 피곤한 기색만 보일 뿐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곳이 없었다.
“과연 천마신공과 필적할 무맥이라 인정한다.”
“……!”
십마련주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일곱 장로들이 득달같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금이라도 지쳐 있을 때 승부를 보기 위함으로 보였다.
후우웅!
표홀하기 짝이 없는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보랏빛 강기를 피워 내며 파고들어 갔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무당의 유운검이 하얀 운무를 내뿜어 십마련주를 감쌌다.
강맹하기 짝이 없는 소림의 백보신권이 십마련주의 가슴을 찍어 갔다.
일곱 초절정 고수가 평생토록 쌓아 올린 일격이었지만, 그들의 공격은 십마련주에게 닿지 않았다.
번쩍.
그가 검을 긋는 순간, 세상이 검은색으로 물들며 그 모든 공격이 무(無)로 화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멸.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죽음의 개념이었다.
“허억!”
내기를 가득 실은 공격이 소멸하자 일곱 장로가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십마련주가 그런 그들을 무심하게 흘겨보고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어떠한가?”
“쿨럭, 뭐, 뭐가 어떻다는 거지? 쿨럭.”
“천마의 무맥에 담긴 심상이.”
“무슨 개……소린 줄……. 쿨럭. 모르겠군.”
피를 토하며 답하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심상을 풀어 냈군. 그런데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서파무가 제대로 된 후인을 찾아낸 모양이야.”
저벅저벅.
그가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오늘이 끝이겠지만.”
옥색의 손이 내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파괴의 기운이 가득한 그의 손을 눈앞에 두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푸흐……흐. 쿨럭! 우웩!”
괜한 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십마련주를 막는 데 실패하면 도망치기로 했음에도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무사들.
“미친놈……들.”
너희들이라도 살아야지.
병신들아.
그들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십마련주를 올려다봤다.
“할 말이 남았나?”
절대자의 오만한 눈빛과 마주하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지옥에서 보자. 가족도 내팽개치고 혼자 빤스런 친 겁쟁이 새끼야.”
물론, 나는 천국에 가 있을 테지만.
십마련주의 얼굴이 악귀의 형상으로 변했다.
* * *
죽기 직전에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들 하지.
누군가는 영화 필름을 빨리 감은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일 분이 하루처럼 느껴진다고 하는……. 죽음을 앞둔 자만이 할 수 있는 경험.
전생에 이미 경험해 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누이…….’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이 떠올랐을 뿐이다.
죽을 때가 돼서야 확신했다.
나 역시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고.
‘그래 봤자.’
죽는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 환생한다면 작은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
기왕이면 흰색 말티즈로.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여움받는 게 부러웠거든.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내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순간.
퍽.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
내 머리가 터져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눈을 떠 보니 십마련주가 당혹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제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철로 만들어진 작은 나비가 얕게 박혀 있었다.
‘철접이 왜 여기에?’
이게 여기 있을 리가 없다.
철접은 녹룡당의 직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암기였으니까.
즉, 철접이 있다는 건…….
“암……왕!”
“성주님?”
성주가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혼자 온 것도 아니었다.
콰아아!
곧게 뻗어 오는 흰색의 강기.
한 줄기 강기가 해를 떨어뜨릴 기세로 빛살처럼 다가왔다.
척.
“큽!”
십마련주가 검을 들어 수비하려 할 때, 화산파의 장로가 내 뒷덜미를 잡아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쿠와아아앙!
흩어지는 강기 속에 가득 담긴 현기가 제 주인이 누군지를 알려 주었다.
“태청진인께서도 오셨다니……. 정말 다행이군. 천운이 따로 없어.”
“푸흐흐, 쿨럭, 련주 놈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쿨럭. 우웩!”
통쾌한 마음에 말을 하다 피를 토했다.
“자네, 괜찮나?”
“죽을 거 같……습니다.”
“이만 물러가지. 어차피 우리 역할은 여기서 끝이 난 거 같으니.”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식경은 버틸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의 끝은 봐야 하니까.
“나도 함께하지. 다들 이리 와서 젊은 영웅을 지켜 주는 게 어떻겠나.”
“좋소.”
“물론입니다.”
그의 말에 일곱 장로가 모여 내 주변을 감쌌다.
전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당연했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긴 전쟁의 승패가 갈릴 테니까.
“오래간만이군.”
“클클, 죽었다 살아났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뭣 하러 혈겁을 일으키는가.”
구룡성주와 태청진인이 십마련주 앞에 마주 섰다.
“어째서 총타로 가지 않았지? 분명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왔는데?”
십마련주뿐만 아니라 여기 있던 모두가 궁금해하던 내용이었다. 련주의 물음에 태청진인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신강 사막을 들어가기 전에 천기를 살폈지. 천살성이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더군. 그 덕분에 이렇게 쫓아올 수 있었지.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세상에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맞히다니.
“역시 천기는 피할 수 없지.”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나 무엇이든 놓치는 법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내려 주신 은덕이시지요.”
“천기만큼 정확한 게 없긴 하죠. 쿨럭, 쿨럭.”
어느새 별자리 운세의 신봉자가 되어 버린 나였다.
“……과연, 도가 하늘에 닿았다는 태청진인답군.”
“하늘은 아니고 구름쯤에 닿았네.”
십마련주가 무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합공할 셈인가?”
“그러려고 이렇게 둘이 오지 않았겠나?”
“정파의 기둥이라 불리는 두 사람답지 않군.”
“마도의 하늘을 죽일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정도맹주는 혼자 덤볐다.”
“……!”
구룡성주와 태청진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를……. 죽였나?”
피식.
“체면도 잊은 채 살려 달라고 빌더군.”
“이노옴!”
태청진인의 몸에서 폭발하듯 기세가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와 친구였던 맹주였으니 태청진인과의 인연도 깊었을 것이다.
십마련주가 그런 태청진인을 비웃었다.
“한데, 언제까지 시간을 끌 셈인가? 하독이 끝났으면 그만 덤비지 그러나?”
성주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그 어떤 기색도 느끼지 못했건만.
무색무취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정파의 위선자들이여.”
십마련주가 검은색 검을 내림과 동시에 성주의 손이 움직였다.
촤르륵.
평범한 철접.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평범하지 않았다.
쾅! 쾅! 쾅!
“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제각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철접들을 막아 내던 십마련주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쿠와아아!
사일검 후예사일.
지상을 구원하기 위해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후예의 전설이 강림했다.
콰아앙!
련주의 검은색 검에서 흑색의 빛이 번쩍이며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런 모습들을 보다 보니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단기 결전.’
그렇다.
두 사람은 단기 결전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작부터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공들을 퍼부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 증거로 한 차례 격전을 치렀음에도 두 사람은 다시금 공격을 준비했다.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족히 일천 개는 넘어 보이는 암녹색의 암기들이 성주의 몸을 휘감았다.
사천당가를 구룡성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녹룡당의 신공절학, 만천화우였다.
가만히 두기엔 부담스러웠는지 십마련주가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태청진인의 검이 그에게 닿는 것이 먼저였다.
하나의 빛줄기.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왜 사일검에 후예의 전설이 담겨 있다고 하는지를.
‘관통……!’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연지기마저 뚫어 내는 사일검과 흑색의 천마검이 충돌했다.
파아아. 콰아아아.
소멸과 관통의 싸움.
결과는.
“허억. 허억.”
천마검의 승리였다.
사일검은 천마검에 약간의 흠집만을 낸 채 사라졌다,
파스스.
사일검을 펼친 태청진인의 애검도 허공에서 증발해 버렸다.
“쿨럭.”
털썩.
그가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공격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촤르륵. 뚝. 뚝.
어느새 준비를 마친 성주의 만천화우가 쏟아져 들어갔던 것이다.
하나하나가 강맹하기 짝이 없는 위력을 품고 있는 일천의 암기가 련주를 향해 날아갔다.
치이이.
극독까지 발라져 있는지 암기에서 튄 작은 물방울이 흙바닥을 녹였다.
‘자유.’
만천화우와 사일검이 품고 있는 심상을 보고 나서야 아까 십마련주가 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하늘을 뒤덮은 암기가 십마련주를 덮쳤다.
치이익. 치익. 챙. 챙챙챙챙.
그의 검이 쉼 없이 움직였다.
쳐 내고, 쳐 내고, 또 쳐 내고.
마침내 천마검의 마지막 초식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 세상을 검게 물들인 그의 검 앞에.
샤아아.
일천의 암기가 모두 증발했다.
“큭.”
내상을 입었는지 성주의 입가에도 피가 흘러내렸다.
평생 쌓은 무를 펼쳤음에도 대적을 쓰러뜨리지 못한 게 분했는지 그가 붉은 눈빛으로 십마련주를 노려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십마련주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완벽하게 막아 낸 줄 알았던 사일검에 의해 손목이 부러졌고.
천마검 최후의 오의를 펼쳤음에도 만천화우의 한 가닥이 허벅지에 박혀 있었다.
암기를 뽑으며 손목을 끼워 맞춘 십마련주가 검은색 검을 세웠다.
구오오오.
검은색 기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태청진인과 성주가 손을 쓰려 했지만, 련주가 한발 앞서 검을 휘둘렀다.
번쩍.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219 마도 종결(4)
절대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봐서일까.
아까와는 다르게 천마검에 담긴 심상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멸(滅).
과연 천마의 무맥이며 최악 최강의 무공이라 칭할 만했다.
파츠츠…….
오른팔이 통째로 사라진 태청진인이 피를 토했다.
뒤늦게나마 사일검을 펼쳤으나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심각한 내상은 피했다는 거다.
“쿨럭.”
반면, 성주는 목숨이 위험했다.
외적으로 상한 곳은 없어 보였지만, 검은색 피를 토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천마검이 그의 내부에 커다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물론, 두 사람은 절대고수.
일방적으로 당한 건 아니었다.
사일검이 십마련주의 손목에 적중하여 왼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른쪽 눈과 복부에도 철접이 박혀 있었다.
철접 하나하나에 극독이 발려 있던 탓에 그의 입에선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다……!’
십마련주는 마음마저 강했다.
저벅저벅.
그런 중상에도 그는 고통스러운 티를 내기는커녕 두 사람을 끝장내기 위해 걸어 나갔다.
“이, 이런!”
곁에 있던 일곱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상 때문에 운신하기도 힘들었지만, 두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주는 우리를 막았다.
“나……서지 마시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몰골에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지만, 그 짧은 말 안에서도 큰 각오가 느껴졌다.
우리는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발을 멈추었다.
“어떠한가?”
우리를 만류한 성주가 다가오는 십마련주를 보며 작게 웃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이걸 말하는 건가? 아니면 이거?”
십마련주가 눈과 복부에 박힌 철접을 뽑아냈다.
단혼산에 중독됐는지 눈알은 이미 녹아 없어졌고 복부에선 싯누런 고름이 뚝뚝 흘러나왔지만, 그는 담담하게 웃을 뿐 고통스럽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겨우 그걸 물었을까.”
성주가 힘에 겨운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음이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한가를 물었을 뿐이다.”
“당가의 단혼산을 믿고 그러는 거라면……. 소용없다고 얘기해 주고 싶군.”
십마련주의 답에 성주는 고개를 저었다.
“단혼산 정도로 당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한데 왜 내게 죽음을 묻는 것이지?”
누가 봐도 패색이 짙은 쪽은 아군이다.
아무리 한쪽 눈과 손이 없어졌어도 이 자리에서 십마련주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반면, 성주는 이미 회광반조의 상태.
반쯤은 저승에 발을 들여놓은 것과 같다.
그를 도와줄 태청진인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그럼에도 십마련주를 마치 죽은 사람처럼 취급한다는 건.
‘서, 설마?’
아직 한 발 더 남아 있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아직 눈치채지 못했나 보군.”
성주가 작게 웃음과 동시에.
쿠웅!
진각에서 일어난 진동이 땅을 크게 울렸고.
“잘 지냈냐?!”
늙은 거지 하나가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십마련주에게 돌진했다.
이에 십마련주가 대경하며 외쳤다.
“전왕!”
그랬다.
성주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는 현 무림에서 가장 신출귀몰한 고수인 전왕이었다.
전왕.
비록 출신도, 이름도, 어디서 활동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아 사왕이라 불리지는 않지만, 그는 십대 고수 중 상위에 꼽히는 무림의 최고수 중 하나였다.
특히, 다수를 상대로 한 난전에선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그런 인물을 동원했음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성주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져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 냈다.
즉.
‘성주…….’
복수를 위해 모든 걸 걸었다는 뜻이다.
부르르.
자신이 짠 판에서 싸우는 전왕과 십마련주를 바라보는 성주의 입가에 만족스러워 보이는 웃음이 걸렸다.
“크흐흐, 끝……이로군.”
처연한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한편, 눈을 돌려 두 사람의 전투를 보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콰르릉. 쾅! 쿠아아아!
십마련주를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전왕의 무공이 엄청나게 익숙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기를 쪼개 경력으로 사용하는 걸 제외하면 같은 무공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지금 전왕이 사용하는 무공은 전왕류와 똑 닮아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분명 북궁 사부의 말로는 전왕류의 전승자는 나 하나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왕의 손에서 발휘된 폭사경.
우우웅.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며 커다란 인력이 발생했다.
스거어어억!
기를 극한까지 압축한 극사경의 칼날이 십마련주의 목을 위협했다.
그리고.
꾸우우우. 으지직. 으직.
내가 일으킨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지옥경이 펼쳐져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크흑!”
“튼튼하네? 싸울 맛이 난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공격에 십마련주가 침음성을 흘리자 전왕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팟. 팟팟팟. 퍼퍼퍼퍽.
이형환위를 연달아 펼쳐 그의 주변을 돌며 공격을 쏟아 냈다.
평범한 주먹질과 발길질.
모양만큼은 유흥가에서 기도를 서는 삼류 잡배의 그것과 똑같아 보였지만, 그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쾅! 쾅! 쾅!
하나하나가 내가 전력을 다해 펼치는 폭사경의 위력과 필적했던 것이다.
순간, 정도맹주 화산검선이 죽기 전 베풀었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극에 이르면 뭐든 평범해지는 법이지.’
‘단순할수록 강한 힘을 품는 법이지. 하나 복잡함을 깨닫지 못한 채 단순함만 추구한다면 진리에는 이르지 못할 게다.’
극에 이르면 통한다는 강호의 오랜 격언처럼 전왕의 투법은 검선의 검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으하하하! 재미있다! 재미있어!”
마치 맹수가 공격을 쏟아 내는 것처럼, 그의 공격에는 격식이 없고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부웅!
쾅!
몸을 뒤로 접어 검을 피하면서 낭심을 향해 각법을 후려 차질 않나.
뻐엉!
성주의 암기에 당한 곳을 집요하게 노리는 한편, 어디서 주워 왔는지 대뜸 모래를 뿌리며 주먹을 날렸다.
촤악!
“큭!”
“아직 미숙하군!”
덕분에 십마련주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고.
쾅쾅쾅쾅쾅!
십삼투의 연타에 암기가 박혀 있던 옆구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끄헉!”
그야말로 미친 듯한 광기.
때리고 후려치고 걷어차는 모습을 보다 보니 하나의 심상이 느껴졌다.
‘이건……?’
살(殺).
무(武)란 기본적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행위.
이를 공부하는 방법을 무공이라 하고, 무로서 도를 찾아 무도라 칭하며 무를 익히는 사람을 무인이라 한다.
하나, 지금 전왕의 무공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진리만을 담고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쾅쾅쾅쾅!
수 없이 떨어지는 그의 공격 속에서 십마련주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멸(滅)의 기운이 가득 담긴 검은색 기류가 전왕을 향해 쏘아졌지만.
씨익.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형환위를 펼쳐 피해 냈다.
“……!”
보고 피한 게 아니었다.
이쯤에서 이런 공격이 나올 거라고 예측해서 피한 거다.
비록 부상 때문에 십마련주의 검이 느려졌다곤 하지만 놀랍기 그지없었다.
‘저걸 저렇게 피하다니…….’
왜 난전에서는 그가 최강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구오오.
십마련주도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검에 검은색 기류가 몰려들었다.
성주와 태청진인을 패퇴시킨 천마검 최후의 절학을 펼치려 하는 모양.
하나, 부상 때문에 한 풀 기세가 꺾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주르륵.
‘독이 듣고 있나?’
싸움이 지속될수록 그의 눈과 복부 근처에서 싯누런 고름이 뚝뚝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아마, 단혼산을 막고 있던 내공까지 끌어다 쓰는 모양.
그 말인즉슨.
‘바닥을 보이고 있다!’
십마련주 역시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끝이 보이는구나!”
전왕 역시 이를 눈치챘는지 기세를 끌어올려 십마련주의 검에 맞섰다.
그렇게 십마련주가 검을 긋자.
번쩍.
세상이 검은색 어둠에 휩싸였고.
꾸꾸꾸.
전왕의 손에서 지옥경으로 추정되는 회색의 구체가 폭발했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는 검은색 기류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회색 구체의 싸움.
결과는.
으저저적.
회색 구체의 승리였다.
천마검의 패배를 확인한 십마련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까매졌다.
단혼산이 온몸에 퍼진 것이다.
털썩.
그가 검붉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절대자의 마지막이 다가온 것이다.
“끄응…….”
전왕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걸어갔다.
“고통을 덜어 주마.”
십마련주가 그런 전왕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시간을 조금 줄 수 있나? 저들에게 할 말이 남아서 말이지.”
“그 정도야.”
전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신이 데려온 마도들을 향해 외쳤다.
[마도의 자식들이여-!]웅혼한 목소리가 전장에 퍼져 나갔다. 십마련의 마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천마현신-! 신교불패-!
그가 작게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천산에 모든 안배를 해 두었으니 돌아가 마도의 재건을 위해 힘써라.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말아라.]천마현신-! 신교불패-!
“……?”
그의 명령에 전왕과 나를 비롯해 구정동맹 모두는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십마련주를 바라보았다.
지금 천산에는 구룡성의 전력이 모여 있다.
심지어 북궁 사부까지 함께 있는바, 구심점이 없는 저들이 돌아간다면 십중팔구 전멸을 당할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자 그가 죽음을 앞둔 구룡성주를 바라봤다.
“당신의 소원대로 마도의 씨를 말렸다. 이제 만족하나?”
“……왜 그런 멍청한 명……령을 내린 거지?”
“내 손으로 마도를 멸망시키고 싶었으니까.”
“뭐?”
“마도의 손에 가족을 잃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지 않나.”
“그……렇군.”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반정으로 가족을 잃은 그는 애초에 천하를 통일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전쟁도 마도의 명맥을 끊기 위해 일으킨 거다.
십마련을 멸망시키기 위해.
모든 전말을 들은 성주가 허탈해하는 표정으로 죽은 녹룡수의 이름을 불렀다.
“성아야……. 어디 있느냐……. 할아버지가 왔다…….”
꺼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바라보던 십마련주가 후련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도의 후계자로 태어나 정파의 기둥을 둘이나 죽였으니 후회 없는 삶이 아니던가.”
제 손으로 마도를 멸망시켜놓고선 마도의 후계자는 개뿔.
‘미친 새끼.’
무슨 사이코패스를 보는 것 같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를 죽이려는 게 아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죽을 텐데 뭘.
“둘이 아니라 하……나다. 쿨럭.”
그가 이룬 업적의 절반을 날려 버리기 위함이었다.
“……?”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십마련주의 눈앞에 작은 환단을 보여 줬다.
“대라활선단.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기적의 약이지. 이걸로 성주를 살릴 거거든.”
그의 표정이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너, 너!”
순간적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가 칠공에서 피를 쏟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십마련주의 마지막이었다.
“이, 이걸 성……주께 먹여……. 그리고 어디 가지 말……고 남아 있어 주……십시오. 할 말이…….”
전왕에게 대라활선단을 건네는 것을 끝으로 그날의 기억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