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처남 구출(9)
무림에서 그물이라는 무기가 나오는 게 조금 생뚱맞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고수를 상대로 이만큼 효과적인 무기는 많지 않다.
고수는 하수와 다른 시간대를 산다.
방심하지 않는 이상, 눈먼 칼에 맞을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수를 상대할 때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물로 움직임을 제한한다면?
더군다나 그 그물이 신병이기여서 떨쳐 낼 수도 없다면?
십중팔구 죽는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처럼 말이다.
쿠아아아!
사방에서 날아오는 무기가 전룡기 위를 때렸다.
하나같이 고수 아닌 이가 없어, 수십 번의 공격을 잡아먹자 전룡기가 크게 흔들렸다.
공격을 조금만 더 허용한다면 전룡기에 한계가 찾아올 게 분명한 상황.
즉, 상당한 위기였다.
물론, 대처 방안이 없었다면 말이다.
푹. 푹푹. 푹. 쾅!
은밀하게 날려 보낸 전주시가 주변 세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지막엔 기를 더해 폭발을 일으켜 적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 무슨……!”
별안간 벌어진 기습에 적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비록 검도의 최고봉이라 여겨지는 이기어검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무기의 특성상 은밀함은 훨씬 나았다.
움직임도 더 자유롭고 말이다.
이런 타이밍에 출수하면 아무리 고수라도 목을 꿰뚫릴 수밖에 없다.
“너희만 신병이기가 있는 건 아니지.”
“이익! 뭣들 하느냐! 당장 놈을 죽여라!”
적들의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본래라면 전룡기를 터뜨리며 수비부터 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물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물을 치워야지만 뭐가 되어도 되기 때문.
“가랏! 전주몬!”
전주시가 그물을 쥐고 있는 놈의 정면으로 한줄기 빛살처럼 날아갔다.
“흥!”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놈이 그물을 회수하여 자신의 앞에 펼쳤다.
펑! 쾅!
반으로 접혀 두 겹이 된 그물이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펴졌고, 전주시가 폭발음을 내며 그 위를 때렸다.
그렇게 두 기보가 서로를 향해 힘겨루기를 시작했을 때.
퍽퍽퍽.
“큽.”
사방에서 날아오는 무기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용린갑이 아니었다면 중상을 면치 못했을 위력.
심지어 다리에 찍힌 창상에서 불같은 고통이 올라왔다.
‘금강불괴라도 익히든지 해야지.’
으득.
각오했던 공세가 끝났으니 이제는 내 턴이다.
이를 악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십 성의 비천풍과 십이 성의 전왕보가 어우러지자 주변의 풍경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쿠웅!
극상의 이형환위.
“……!”
그물을 조종하고 있는 놈의 코앞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머리통을 향해 폭사경을 터뜨렸다.
콰아앙!
눈 한번 깜빡일 시간에 일어난 공격이었지만, 놈은 그 짧은 순간에 장법을 펼쳐 폭사경을 막아 냈다.
“크흐. 막았다.”
“잘했다. 이 자식아.”
폭사경에 대응하게 만들어 그물을 조종할 수 없게 하는 것.
이게 바로 내 노림수였다.
푸욱!
“끄억!”
폭사경을 막아 내느라 그물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전주시가 총알같이 날아가 놈의 팔뚝을 꿰뚫었다.
그럼에도 그물을 쥔 손을 놓지 않아 나는 준비하고 있던 작은 극사경을 발현해, 손목을 통째로 잘라 냈다.
스거어억!
“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각법을 펼쳐 내 머리를 후려쳤다.
뻥! 툭툭툭.
몸이 밀리며 십 미터 이상을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그만큼, 각법에 실린 내력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아찔한 통증이 느껴지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크흐흐.”
신병이기를 빼앗았는데 이깟 아픔이 뭐고 부상이 대수일까.
이 정도는 얼마든지 맞아 줄 수 있다.
‘오히려 좋아.’
기왕 날아간 거, 나는 몸을 돌려 도망칠 준비를 했다.
“잡아랏!”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금영대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음에 보자고.”
내겐 비천풍이란 절세의 신법과 전왕보라는 희대의 보신경이 있는 것을.
쿠웅!
손목에 대롱대롱 달린 그물을 등에 진 채로 이형환위를 시전해, 황제가 사는 대전 쪽으로 달려 나갔다.
* * *
찾아라-!
이쪽이다!
갑조는 동쪽으로! 을조는 서쪽을 수색하라!
통전관은 어디 있느냐?!
금영대는 폐하를 모신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혼란의 도가니탕이 따로 없었다.
당연했다.
백성들이 사는 외곽에 불이 나도 군대가 출동하여 불을 끈다.
황궁에 불이 났으니 더더욱 난리가 날 테고.
더군다나 방화범인 내가 사라졌으니, 상당수는 황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 목적은 황제가 아니었지만.
화르륵.
‘푸흐흐, 잘 타는군.’
혹여 죄 없는 사망자가 나올까 싶어 최대한 외곽 쪽을 돌며 불을 질렀다.
불을 놓기 전 안에 사람이 있는지 칠감도를 펼쳐 체크한 건 당연했고.
그러기를 일각.
볼도 번졌겠다, 시간도 끌었겠다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된 것 같아 철수하려던 그때.
“이런 무능력한 놈들! 황궁을 지키는 놈들이 이 무슨 추태더냐!”
서른에 가까운 금영대에 둘러싸인 이무청이 보였다.
순간 놈을 여기서 죽일까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쯧, 이 이상 일을 키우기엔 조금 애매하지.’
무림의 상류층으로서 낄끼빠빠는 지켜야 하는 덕목이었으니깐 말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렇게 이무청을 뒤로 하고 비천풍을 펼쳐 황궁을 빠져나갔다.
금군이 모두 황궁으로 튀어가 불을 끄고 있는 지금, 남문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유룡이 말해 준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룡과 우제준, 사마흔이 기절해 있는 묘산을 지키고 있었다.
“…….”
날 보는 유룡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지만 말이다.
“눈을 왜 그렇게 떠? 세모나게 안 뜰래?”
“시선을 끌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대로 끌었잖아?”
“아니.”
유룡이 두통이 치솟아 오른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학사들을 구출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이런 걸 보면 장수의 비결은 역시 마음가짐에 있다.
일을 훨씬 더 많이 한 나는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스트레스가 진정이 되었는지 유룡이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 공자……. 아니, 진 당주님이 크게 날뛰어 주신 덕분에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지요. 하나, 황궁에 불을 내다니요!”
“황제만 안 죽었으면 됐지, 뭐.”
유룡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내비치며 입을 떠억 벌렸다.
덜컥.
한숨을 돌리며 등에 메어 놨던 그물을 벗어 내려놨다.
그렇게 격렬하게 달려왔음에도 잘린 팔목이 아직도 붙어 있는 걸 보니 전 주인의 집념이 느껴졌다.
그 순간, 유룡이 손가락질을 하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 그거 설마……!”
“아는 거야?”
“알다마다요! 황제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무관에게 친히 하사하신 황실의 보물, 천라포망(天羅布網)입니다!”
“오오오! 비싼 거냐?”
“상제가 썼다는 전설이 있는 보물입니다.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래, 이 정도는 챙겨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지.
“허, 한데 천라포망이 어찌 진 당주님의 손에 있는 겁니까? 여기 달린 손목은 뭐고요?!”
“싸워서 뺏어왔지. 끝까지 안 놓길래 아예 손목째로 잘라 가지고 왔어.”
전주시에 꿰뚫리면 알아서 놓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폐하가 가장 총애한다는 금영대 부대주의 손목을 자르셨다는 말입니까?”
“그럼 누구 손목이겠냐.”
유룡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십시오. 진 당주님의 정체가 들통나지 않도록 적당히 둘러대어 반환하겠습니다.”
“미쳤냐?”
“예?”
“힘들게 싸워서 뺏은 걸 왜 돌려줘.”
“아니……! 이건 일개 전리품이 아니라 황실의 보물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구룡성의 살아 있는 보물이야. 그리고 내가 졌어 봐. 내 물건들 전부 뺏어갔을 거 아냐? 안 그러냐?”
우제준과 사마흔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고 말고요. 당주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내 밑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인지 옳은 말만 내뱉었다.
“그것 봐라. 얘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으냐. 어라? 눈깔이 또 이상하네?”
“…….”
유룡이 또다시 한숨을 내뱉더니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황궁에 불을 지른 것만으로도 대역죄나 다름없습니다. 한데 황제 폐하께서 아끼시는 보물까지 빼앗아 오다니요! 이건 절대 안 됩니다.”
“대역죄는 개뿔이. 그럼 얘는 뭐 죄를 지어서 죽을 뻔했냐?”
“…….”
묘산을 가리키며 말하자 유룡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객잔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을 때, 후문에서 금군이 우르르 몰려왔다.
“뭐야?”
순간 함정인가 싶어 손을 들었지만, 금군의 사이로 우도독, 조산명이 등장했다.
정순한 기파가 절로 느껴지는 걸로 보아 개인적인 무공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고생했구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다. 수천의 금군이 하지 못한 일을 너 혼자 해낸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네 공이 어찌 작다 할 수 있겠느냐.”
조산명이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유룡의 공을 치하했다.
중요한 일은 내가 다 했는데 말이다.
불만 섞인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자니 조산명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떠나기 전에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소?”
“남경의 물이 저와 맞지 않는지 며칠 전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군요. 그냥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히!”
“그분이 뉘신 줄 알고!”
무시에 가까운 거절에 조산명이 데려온 수하들이 발끈했지만,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않겠는가.
깡그리 무시하고 그물을 챙겨 일어서니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전.”
기절해 있던 묘산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신을 잃었던 일반인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다니, 절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십중팔구 우도독이 수를 써서 묘산을 깨웠을 게 분명하다.
“우도독과 대화를 나눠 줄 수는 없겠나?”
“안 돼. 바로 집에 갈 거야. 그냥 돌아가.”
지금 출발해야 결혼식 시간을 맞출 수 있으니깐 말이다.
“……천고의 충신이시다. 그런 분과의 대화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네 누나 혼례식.”
“……!”
묘산이 눈을 끔뻑거리며 입을 떠억 벌렸다.
푹.
마혈을 짚어 다시 그를 기절시켰다.
“묘 학사 역시 우리가 대화하는 걸 원하는 것 같소만.”
“들었듯이 제가 혼례식에 참석해야 해서 말입니다.”
“강서성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증명서를 써 주겠소.”
이러면 해야지.
“좋습니다. 단, 일각만입니다.”
“충분하오.”
* * *
잠시 후.
나는 객잔 후원에 있는 빈방에서 조명산을 마주했다.
“음…….”
갑옷을 입었을 때는 약점인 목을 물고 절대 놓아 주지 않을 것 같은 역적의 포스가 흘러넘쳤지만, 평상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또 달랐다.
“우도둑.”
그래.
딱 우(牛)도둑의 느낌이다.
“응? 불렀소?”
“아…… 예. 저를 왜 보자고 하셨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나는 손에 쥔 그물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드리는데……. 이건 제 겁니다.”
“제국이 있어야 보물이 있는 법이지. 공에 비하면 과한 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상이 아니라 전리품이죠. 제가 싸워서 빼앗은 거니깐 말입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혹시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 없소이까? 내 대우는 최고로 해 주겠소.”
“섬망(譫妄:치매) 오셨습니까?”
“…….”
군대를 두 번 가라니……. 정말 끔찍한 소리를 하는 소도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