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69
368화 초월자
지이익.
마치 텐트를 가르듯이, 너무나도 쉽게 회월의 장막을 자르고 들어온 남자를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왕류와 제왕검형이 부딪쳐 생겨난 이곳은 시간과 중력, 자연지기가 모두 법칙에서 어긋나 있는 공간이다.
그 증거로, 당장 바로 앞에 있는 돌멩이가 튀어 오른 상태 그대로 멈춰 있지 않은가.
한데 그런 공간을 가른 것도 모자라 피시방 흡연실에라도 온 듯이 걸어 다니다니.
‘이거 뭐야?’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남자가 ‘빠빠라밤, 여기까지 무림 MMORPG의 베타 테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그아웃을 시켜 드릴 테니 그만 현생으로 복귀하십시오.’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남자를 쳐다봤으나 그는 내게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지나쳐 갔다.
그리고.
툭.
그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러 회월과 남궁유룡의 검이 접한 점을 때렸다.
쏴아아…….
그러자 둘 사이에 끼어 있던 엄청난 내공이 허공에 증발하며, 팟 하고 검은색 장막이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작은 동산 하나 정도는 충분히 무너뜨릴 만한 기가 응축된 상태였다.
그걸 어린아이가 쇠막대기 휘두르듯이 펼친 검격으로 없애 버리다니.
심지어 튕겨 낸 것도, 터뜨린 것도 아니라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이걸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털썩.
기는 물론이고 코가 막히고 심혈관까지 막히는 광경에 입만 떠억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쓰러진 남궁유룡을 챙긴 남자가 몸을 돌렸다.
그제야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다 못해 칠흑이란 말이 어울리는 머리카락.
이 미터는 넘어 보이는 큰 키와 그에 어울리는 길쭉한 팔다리.
헐겁다 못해 치렁치렁한 붉은색 장포 안에 보이는 마른 몸.
마치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들이나 보일 법한 공허한 눈빛.
가장 놀라운 건.
‘이럴 수가.’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레이더를 방해하는 재밍에 맞은 것처럼 말이다.
오로지 눈만 보이는 그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전왕류로군.」
소리가 들린 것이 아니다.
그의 의지가 내 뇌로 전달된 거다.
텔레파시처럼 말이다.
“……그러는 아저씨는 누구십니까?”
얼떨결에 한 질문에 그의 공허한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혹시 사자맹주…… 아니, 남궁세가의 가주 되십니까?”
서둘러 질문의 내용을 고치니 그의 의지가 들려왔다.
「그렇다.」
예상했던 답변이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현기증이 났다.
이 사람이 사자맹주라면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구룡성의 무인 중 대체 누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한 손이 여러 손을 이기지 못한다지만.
또한 고수 한 명이 전세를 뒤집지 못한다지만.
저 정도 되면 말이 다르다.
홀로 구룡성의 지휘부를 괴멸시킬 수도 있으며, 전장 한복판에 툭 튀어나와 대량 학살을 저지른 후 훌쩍 빠져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아군 진영 한복판에 커다란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조와 사부, 내가 한꺼번에 덤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무황성주 정도는 되어야 한번 비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급한 건 전쟁의 승패가 아니다.
지금은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것이 숙제였다.
남궁가의 주인인 그와 북궁가의 후계자인 나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니까.
문제는.
‘빌어먹을, 이렇게 죽나 보네.’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도망쳐 봤자 잡힐 게 뻔하고, 또 함께 온 결사대를 두고 갈 수도 없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고 말지.
하지만 육학의 복수도 못 했는데 그냥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죽더라도 턱주가리 한번은 후려쳐야 편안한 마음으로 HTX(Heaven Train eXpress)를 탈 수 있지 않겠는가.
‘가더라도 한 대는 때려 보고 간다.’
약간의 시간밖에 벌지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위지풍을 비롯한 결사대는 도망치게 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전왕기를 끌어 올리려던 그때.
「살려 주마.」
“……예?”
그가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의지를 쏘아 냈다.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다시 봤을 때.
“어라……?”
털썩.
온몸에 힘이 빠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 * *
구룡성의 본진은 단단한 진형을 유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사자맹으로선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되었지만.
이는 문상이 의도한 바였다.
‘이긴다 해도 양패구상을 면하기 힘들다.’
이에 그는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정도맹과 무황성에 각기 다른 서찰을 보냈다.
무황성에 보낸 서찰은 구룡성의 요청으로 파견 나온 일천의 무사가 죽어 미안하다는 내용.
일견 위로의 말로 보이나 실상은 자존심을 건드려 추가 파병을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정도맹엔 하루빨리 참전을 재촉하는 내용의 서찰을 보냈다.
그리고 보름 뒤.
느릿느릿하게 진군하던 구룡성의 본진이, 황하를 넘는다는 핑계로 발을 멈춘 지 이틀째가 되던 날.
용마산이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정도맹의 일천 무인이 계수를 넘었다고 하오.”
바로 천 년 문파들의 연합, 정도맹이 참전한다는 소식과.
“또한 무황성에서 출발한 검귀들이 탕산을 지나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소.”
무황성의 전력이 진군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문상은 손을 들고 만세를 외칠 뻔했다.
사자맹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숨어 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되면 해볼 만하다.
천 년을 자랑하는 역사를 쌓아온 정도맹 삼 파의 무공은 깊이를 알 수 없고, 소림의 백팔나한진은 예로부터 대규모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또한 무황성의 검귀들은 어떠한가.
비록 남하했던 일천 검귀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지만, 무황성은 중원을 지키는 북벽이 아니던가.
한번 패배했으니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전력을 보내왔을 것이 틀림없을 터.
“황하를 넘는다. 사자맹의 앞마당에 도착하여 아군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문상은 드디어 진군을 명령했다.
그렇게 구룡성 본진이 황하를 넘어 사자맹의 본단으로 달려갔다.
* * *
짹짹. 짹.
따스한 햇볕, 산 내음과 함께 들려오는 새소리.
마치 숲속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숲속임을 깨닫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괜찮은 거냐?”
“뭐야. 여기 어디야?”
“남경 근처 야산이다.”
“대체 무슨 일이…….”
“너와 남궁유룡이라는 자가 싸우던 중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땐 적들 모두가 사라져 있었고.”
그제야 또렷해지는 기억.
순간, 남궁유룡을 구해 갔던 남자가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사흘이 지났다.”
“뭐?!”
휘청이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일어섰다.
“아직 움직이기엔 무리다. 적어도 이틀은 쉬어야 진원지기에 불이 붙을 거다.”
“그래도 가야 해.”
후들후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억지로 걸으니 위지풍이 나를 붙잡았다.
“안 된다니까. 사흘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한 몸으로 어딜 간다고.”
“가지 않으면 본진이 몰살당한다고.”
“뭐? 무슨 말이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위지풍에게 사자맹주에 관해 이야기를 해 줬다.
“……그런 인물이 존재하다니. 네 설명대로라면 살아 있는 무신이 아니더냐?”
“그러니까 말리지 마.”
“허어…….”
위지풍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스승의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힘이 빠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동요도 잠시뿐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뭐야?”
청량하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 담긴 목함.
“일광신단이다.”
“그게 여기 왜 있어?”
아는 이름이다.
그동안 예산 문제로 만들지 못했던 묵룡당의 비전. 도가의 물건답게 육신을 정화하는 데 특화된 비전 영약이었다.
“혹시나 위급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가져왔다.”
그가 일광신단을 꺼내 통째로 내게 건넸다.
“먹거라. 말라 버린 진원지기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걸 만드느라 묵룡당 식구들이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맸을지 상상이 되었지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구룡성의 진군을 막아야 했으니까.
꿀꺽.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 버리는 일광신단.
청량한 기운이 몸에 퍼지자 말라 있던 진원지기가 차오르며 내공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고마워.”
“금방 뒤따라가마.”
나는 위지풍과 결사대를 뒤로하고 앞으로 달렸다.
* * *
일광신단이라는 묵룡당의 비전 영약을 먹었음에도 단전은 겨우 삼 할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경지가 높아져 단전이 넓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마르다 못해 가뭄을 맞은 논처럼 쩍쩍 갈라진 진원지기를 원상복구 하는 데 들어간 기운이 많았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천하에서 가장 효율적인 신법인 비천풍의 효과 덕분이기도 했고, 구룡성의 패퇴를 막겠다는 의지의 힘이기도 했다.
절강성 남경에서 출발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휘에 진입하고, 곧이어 황하를 넘었다.
“하악, 하악!”
숨이 턱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고, 계속 굶은 탓에 배에선 천둥이 쳤으나 계속 달렸다.
그리고 사자맹 본단에 도달했을 때.
“이런…….”
살아 있는 지옥을 목도했다.
일견 보기에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 시체가 평원 곳곳에 널려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가 고여 개울이 만들어졌다.
피비린내가 얼마나 나는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체 대부분이 아군이 아닌 사자맹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사자맹을 공격하는 건 구룡성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쪽에는 무황성의 오백 검귀가.
서쪽에는 소림의 백팔나한을 앞세운 일천의 정도맹이.
남쪽에서 칠천이 훌쩍 넘는 구룡성의 대병력이 사자맹의 무사들을 차근차근 죽이며 본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미 많은 피가 흘렀지만, 아직은 싸움을 말릴 수 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전쟁의 광기.
곧장 달려가 사자후를 터뜨린다고 해도 광기에 휩싸인 아군이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십중팔구 개 짖는 소리 취급도 받지 못할 거다.
아예 백색소음 취급을 받고 무시당하기가 십상이지.
‘최대한 임팩트 있게 등장해서 주목을 받아야 한다.’
그다음에 싸움을 멈추든 정전 협상을 하든 해야 한다.
“후우.”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전왕기를 끌어 올렸다.
최대한 힘을 모아 양 진영 사이를 갈라놓기 위함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운기를 하자 진원지기에서 시작된 인력이 주위의 자연지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왕류가 이전과 달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파스스…….
주변의 나무와 식물들이 순식간에 색을 잃고 바스러졌던 것이다.
‘……!’
그와 동시에 전왕기가 갑자기 차올랐다.
이전에 자연지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일이었다면 지금은 십이 훌쩍 넘는 속도.
‘이게 대체…….’
하지만 의문도 잠시.
나는 운기를 멈추고 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사자맹 가장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온 무리로 인해 전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