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75
374화 신이 되는 길(2)
신백이 가져온 물건은 총 세 가지였다.
묘향이 보낸 눈물 젖은 서찰과 최고급 홍화주, 그리고 설음수액이었다.
신백이 진 봇짐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느낀 사조는 해남검파에서 도둑질에 입문한 경력을 살려 단숨에 쌔비더니.
“이거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빙의하여 설음수액을 들고 유레카를 외쳤다.
“와…….”
필요한 때에 맞춰서 영약이 도착하다니.
이 정도면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
심지어 소소가 가지고 있던 설음수액은 이미 다 써 버린 지 오래였던바.
저건 친정에서 뜯어 온 것이 확실했다.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가문의 보물을 내준 장인어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어버이날 노래를 되새겼다.
‘아아아~ 보답하리이~ 스승의……. 아니, 이거 아닌가?’
뭐, 가사보단 마음이 중요한 거지.
“크흠, 그럼 이제 전왕(戰王)류를 전황(戰皇)류로 바꿔 줄 비약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렇고말고. 이 정도면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거다.”
“오오! 그럼 이제 사자맹주 모가지를 꺾을 날이 머지않은 겁니까?!”
“그건 좀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
“……그렇긴 하죠.”
사자맹주의 압도적인 위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옆에 있던 신백의 앳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얘 아직 어리지?’
친부를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나는 건데 관심도 안 주다니.
정말 사조는 아비 노릇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나저나, 얘는 왜 이름이 사부랑 똑같이 백(百)이야.
사조는 태어난 줄도 몰랐다고 했으니 북해천에서 알아서 지어 준 거 같은데 말이다.
“……해왕용연단과 만년빙정으로 내부를 구성하고…… 공청석유로 둘을 섞은 뒤 나머지 영약들로 외부를 구성하고…….”
여하튼, 나는 정신이 없어 보이는 사조를 대신해서 신백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다. 저번 사자맹 침투에서 가족들을 지켜줬다면서? 미안하다. 명색이 당주씩이나 돼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
“궁보?”
“뭐야?”
상태 왜 이래?
“궁보! 궁보!”
“이봐. 괜찮아? 주화입마에 걸린 건 아니지?”
“궁보오…….”
뭔가 뇌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아니면 주화입마가 온 건가?
뭐가 됐든 형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빠악!
“꾸엑!”
신백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니 그제야 맑눈광의 눈빛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디긴 어디야. 구룡산맥이지.”
“헉! 찾았다!”
대체 뭘 찾았다는 건지 몰라도 녀석은 매우 기뻐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내려가시죠.”
내려가긴 뭘 내려가.
전황류의 완성이 머지않았구먼.
빠악!
“꿱!”
“정신 차려. 인마. 저기 네 아버지도 계시는데 인사 안 드릴 거야?”
“헙!”
그제야 사조를 발견한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아버지가 왜 여기 계세요?”
“아니, 너는 여기 어떻게 온 게냐?”
분명 방금 얼굴을 봤음에도 이제야 서로를 인지한 부자.
“그간 무탈하셨죠?”
“오냐.”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나는 저기서 영단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방해하지 말거라.”
“당주님은 저랑 같이 내려가시죠. 사흘 이내로 도착해야 궁보계정과 마파두부를 열세 번 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
서로를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정말.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똑 닮았구나.’
사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반나절 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사조가 나를 불렀다.
“궁보오…….”
또다시 이상한 소리를 읊는 신백을 뒤로하고 동굴로 들어가니 사조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어라? 뭐 하십니까?”
사조와 내가 익힌 전왕류는 기본적으로 가부좌와 거리가 멀다.
운기도 동공으로, 집기도 동공으로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평생 가부좌를 틀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웬 가부좌? 그것도 안 어울리게 무게까지 잡고.
“앉거라.”
“……예.”
“거기 말고. 내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라.”
사조가 자신의 바로 앞을 가리켰다.
“너무 가까운데요?”
“쓰읍!”
“예예, 앉을게요.”
마주 봤으면 숨이 닿을 거리에 앉자마자.
퍼퍼퍽!
사조는 내 등에 있는 다섯 군데의 혈도를 찔렀다.
“켁!”
한 군데도 아니고 다섯 군데 요혈을 동시에 타격받으니 몸이 움직일까.
그것도 나와 같은 경지의 무인에게.
“갑자기 이게 무슨!”
노력하면 풀 수는 있겠지만 이, 삼분은 족히 걸릴 듯했다.
하지만, 사조는 내 항의를 무시하고 앞으로 돌아와 아혈을 짚었다.
“오늘만큼은 가만히 있거라. 다 너를 위한 일이니.”
“…….”
장난기 있는 평소와 다르게 진중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에 나는 혈도를 푸는 걸 그만두었다.
“어디서부터 말해 줄까 하다가 내 아버지 때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오늘만큼은 지루해도 끝까지 들어라.”
“…….”
“내 아버지께선 북궁가를 재건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전왕류에 매진하셨다. 대성하여 천하제일인이 되면 세가는 자연스럽게 재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게지. 하지만, 반쪽짜리 천금지체를 타고난 탓에 지옥경이 한계였다.”
“…….”
“그때 아버지께서는 깨달으셨다. 전왕류를 대성하려면 완전한 천금지체를 타고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완전한 천금지체는 이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
“그래서 아버지는 세가를 재건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술독에 빠져 사시다 돌아가셨지.”
순간, ‘그럼 나는 뭔데요?’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의 핏줄은 옅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십마련의 천가와 무황성의 이가, 북해천의 신가, 그리고 사자맹의 남궁 놈들 역시 같은 상황일 테지.”
“…….”
“문제는, 나는 그 반쪽짜리 천금지체마저도 물려받지 못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내 자식도 천금지체가 아닐 게 분명했으니까.”
사조가 처절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찾을 천금지체를 위해 반쪽짜리 전왕류를 익혔고 전왕기를 키웠다.”
사조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아니, 전왕류를 익히고 전왕기를 키운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된다는 건가.
당장 아혈을 풀고 묻고 싶었지만, 사조가 금방 말을 이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대가는 컸다. 사흘 걸러 한 번씩 찾아오는 주화입마. 쉬지 않고 몸을 엄습하는 고통. 피를 쏟을 때도 많았지. 또한, 무인으로서 이런 약점을 들킬 수 없기에 평생을 산에 숨어 살다시피 했다.”
사조가 평생을 유랑하며 살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백이 놈에게 유일하게 아비 노릇을 한 게 바로 전왕류 대신 천염공과 흑룡수를 전수한 일이다. 명색이 아비가 돼서 이런 고통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으니까.”
“…….”
“그러던 중 백이 놈이 너의 존재를 알려 주더구나. 심지어 완전한 천금지체라는 게 아니겠느냐!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이 고통도 끝이겠구나! 세가의 재건도 머지않았다!”
잠시 헛웃음을 짓던 사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월동월강, 월전월강(越動越強, 越戰越強). 전왕류의 당대 전승자인 너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거다. 한데 그런 의심은 안 해 봤느냐? 정말 그게 맞는지. 구결대로만 하면 전왕류를 대성할 수 있는지.”
“…….”
사조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전왕류는 치우의 가르침이 담긴 무공. 그리고 치우를 비롯한 신화 속의 신들은 수명이 수백 년이 넘는다. 애초에 많이 살아 봤자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수련해 봤자 대성하기는 힘들다는 뜻이지.”
순간 설마 하는 의심이 머리를 강타했다.
사조가 알아낸 전왕류의 비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금 대화의 흐름에서 예측한 결론.
사조는 전왕류의 전승자를 위해 그 고통을 참으며 전왕기를 키웠고 영약을 모았다.
이게 뜻하는 건 하나다.
격체전력.
바로 자신이 쌓아 온 내공을, 심지어 진원지기까지 건네주는 행위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나는 네게 이 영약들과 내가 칠십 년 동안 키운 전왕기를 모두 넘겨주려 한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다.”
사조가 하는 말은 내 예상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립니까?!”
곧장 아혈을 풀고 반문했다.
사조가 힘들게 훔치고, 구하고, 뜯어 온 영약을 먹어서 세지는 거? 얼마든지 오케이다.
우리 둘의 목표는 같았고, 애초에 제자는 사문의 어른들께 도움을 받는 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사조가 평생 모아 온 내공을 받는 건 상황이 다르다.
그의 나이 일흔이 훌쩍 넘었다.
평생 모아 온 내게 내공을 건네준다는 건 수명을 건네주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환갑잔치라는 게 왜 있는데.
그게 다 평균 수명이 육십이 안 되니까 있는 게 아니던가.
“끌끌, 듣기만 하라니까 기어코 아혈을 풀었구나.”
“그럼 어떻게 안 풉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그 영단인가 비약인가 하는 거나 만들어 주십쇼. 그거는 먹을 테니까. 대신, 진기는 못 받습니다. 다 늙은 사조 잡아먹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요. 아,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제가 누굽니까? 구룡…… 아니, 북궁가가 낳은 세기의 천재 진무전이 아닙니까? 한 삼십 년만 꼬박 노력하면 사자맹주 따위는…….”
“무전아.”
어딘가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예.”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구나.”
그 말을 들으니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억지로 전왕류를 익힌 대가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말해 줘라.”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후 결정했다.
“……준비, 되었습니다.”
“고맙다.”
사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앞에 앉은 사조의 몸에서 막대한 내력이 퍼져 나갔다.
전왕기.
내가 익힌 완전한 전왕류와 달리 경력으로 바꾸어 위력을 폭발시킨 형태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세심하게 조절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사조는 그 막대한 전왕기로 허공섭물을 써서 준비한 영약들을 한데 모아 영단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청석유를 퍼뜨려 해왕용연단과 만년빙정을 섞었고.
“공청석유의 순수한 자연지기가 용연단의 양기와 빙정의 음기를 어우러지게 할 것이다.”
인형설삼 두 뿌리와 만년화리의 내단, 천산설엽초와 용정과를 완전히 부숴 껍질을 만들었다.
“이건 앞서 만든 영단이 네 단전까지 안전하게 이동하게 해 주는 껍질이다. 다만 이것도 귀중한 영약이라 흩어지는 기운은 세맥에 녹아들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다.”
사조가 손을 내밀자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의 진원지기가 빠져나왔다.
그때 설음수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왕류는 음양의 조화가 완벽한 신공. 하나 나의 전왕기는 반쪽짜리에 불과해서 그런지 이렇게 양기를 띠더구나. 하여 이렇게 음기가 담긴 영약을 찾은 것이지.”
치이익…….
설음수액이 부어지자 그제야 사조의 진원지기가 음양의 조화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내 입으로 들어 온 영단.
“그럼, 부탁한다.”
곧이어 사조가 손가락을 들어 내 가슴을 찍었다.
콰르릉!
귓속에서 마치 천둥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