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7
067화 등천각 파견(2)
xx
오랜만에 찾은 서각은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서각에는 대부분 기본공과 중급 무공만 구비되어 있을 뿐 상급의 무공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나는 틈만 나면 이곳을 찾아왔다.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뒤 입각한 내성 팔 당 출신의 기재들과 다르게, 당시의 나는 정말 개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박룡십삼투라는 내게 딱 맞는 무공을 찾았으니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이라고 할 만했다.
“흐음, 이쯤이었는데? 에이, 역시 없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룡십삼투가 꽂혀 있던 자리를 뒤져 봤지만 역시나 빈자리였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에 꽂힌 비급을 이것저것 뒤졌으나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서책을 다시 집어넣고 근처 서탁에 앉아 내부를 구경했다.
박룡십삼투의 비급을 찾고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보고 나가서 펼쳐 보고 다시 들어와서 읽고 나가 보고.’
그냥 빌려 가서 보면 될 것을 뭐 하러 그렇게까지 했는지 싶다.
‘그때만큼 무공을 재밌게 익혔던 적이 없었지.’
정말 미친 듯이 매달렸다.
눈을 감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투로를 그렸고 걸음마다 손과 발을 내뻗으며 연습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미친놈이었지.’
잠시 추억을 곱씹다 보니 북궁백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싸움터에서 생사를 가르며 벽을 넘어섰다. 네 무공의 시작이 등천각이니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살펴보는 것이 벽을 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래서 가 보라고 한 건가?
확실히 원점으로 돌아오니 무공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박룡십삼투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이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말이다.
갑자기 생겨난 의문에 곧장 서각 앞 공터로 향했다.
박룡십삼투를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먼저 펼친 초식은 일 초식, 평범한 정권 찌르기였다.
쉬익.
내공을 전혀 싣지 않고 초식을 펼쳤음에도 매서운 소리와 함께 주먹이 쭉 뻗어 나갔다.
여태까지 수없이 펼친 초식이었지만, 생각을 달리하니 뻗어 나간 주먹이 새삼스럽게 신기해 보였다.
생각만 해도 절로 몸이 움직이다니.
‘마치, 무공을 입은 것 같다.’
경지에 이르러서였을까?
예전보다 훨씬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그동안 추리닝을 입은 것처럼 느꼈다면 지금은 타이트한 빨강 내복을 착용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니 곧 답이 나왔다.
‘연환경을 억지로 펼쳤을 때부터로군.’
약 오백 냥을 치료비 조로 터뜨려 버린 그때부터 박룡십삼투가 가까워졌다.
곧장 팔을 움직여 이 초식을 뿜어 냈다.
파앙.
목표한 지점에 팔꿈치가 닿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삼 초식이 저절로 펼쳐졌다.
순식간에 마지막 초식까지 모두 펼친 뒤,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공을 싣지 않아도 기가 움직인다.’
어디서? 왜? 어떻게?
곧장 쏟아지는 의문에 다시 한번 박룡십삼투를 펼쳤다.
아까와는 다르게 최대한 빠르게 펼쳐 보았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에 내 쪽으로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시선 따위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파파파팡!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 이 수련으로 인해 박룡심삽투의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몸을 움직이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박룡십삼투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치기 시작했다.
‘전왕십삼투?’
오만의 극치였다.
겨우 전왕기를 실어 경력을 터뜨리는 변화 정도로 이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수준 얕은 무공이 아니다.
그렇다고 절학이냐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다른 무공을 익힌 적이 있어야지 평가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다만, 성장 가능성이 커다란 무공임은 확실한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무공인 전왕류와 닮아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펼칠 때마다 외부의 기가 딸려 들어간다.’
전왕류 역시 펼칠 때마다 외부의 기를 받아들인다.
원래부터 박룡심삽투에 있던 효험인가?
혹은 전왕류를 익혔기에 덧입혀진 효험인가?
전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왕류와 결이 같다.’
마치, 두 무공의 뿌리가 하나인 것 같은 느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박룡심삽투를 조금씩 변형해 가며 펼쳐 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이윽고 여든 번째 펼쳤을 때.
“아!”
무언가 뇌리에 번뜩였다.
그리고 시작된 여든한 번째 박룡십삼투.
파앙!
열세 번의 초식을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단 한 번의 파공음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콰아앙!
사방으로 터져 나간 경력이 서각 앞 공터를 파괴하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켰고.
서거억! 콰지직.
노린 지점에 극사경이 터지며 아름드리나무 밑동을 숭덩 잘라 내었다.
박룡십삼투에 전왕류의 경력을 섞은 것이 아니라 아예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이제야 전왕십삼투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다.
‘북궁 당주의 충고가 맞았구나.’
내 무공의 원류를 찾은 것만으로 이런 기연을 얻게 되다니.
역시, 북궁백은 일타 강사가 맞는 것 같다.
* * *
“무공을 수련하다 서각을 박살 내? 네 놈을 대체 어찌해야 좋겠냐?”
“······죄송합니다.”
전왕십삼투를 완성하긴 했는데 그만 힘 조절에 실패해 서각의 한쪽 벽면을 완전히 결딴내 버렸다.
덕분에 멸절진인에게 불려 와 훈계를 듣는 중이었고.
그러기를 한 식경.
오랜 훈계에 반발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무공 좀 수련하다 벽 정도는 부셔 먹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곧장 따지기 위해 고개를 들었으나.
“뭐?! 왜?”
“아, 아닙니다.”
멀절진인의 살벌한 인상에 곧장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한참을 더 훈계를 거듭한 뒤에 멸절진인이 판결을 내렸다.
“물어내라.”
아니 이럴 거면 처음부터 물어내라고 하지 훈계를 여태까지 왜 한 거야?
“거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쪼잔하시네. 얼마나 한다고······. 얼맙니까? 바로 드리려니까.”
“서른 냥.”
“······뭐가 그렇게 비쌉니까?”
내가 따지자 멸절진인이 작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수리비 청구서였다.
혹시라도 눈탱이를 친 곳이 있다면 곧바로 따져 물을 생각에 청구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비급 팔십 권이 찢어졌군요.”
“그거 필사하려면 문사들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야 하는지 아느냐? 종이는 또 얼마나 많이 들어갈 거고.”
매우 정확한 내용에 그만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간의 정리도 있는데 조금만 깎아 주시면 안 됩니까?”
“정리는 무슨 정리? 네 놈을 내 눈앞에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우리가 남도 아닌데 너무 하십니다.”
“남이 아니면 무엇이냐?”
“가족이지요.”
“그런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냐? 사형이 그렇게 애원했음에도 도사가 되길 포기한 건 네놈인데 가족은 무슨 가족! 그리고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 해서 공공기물을 파손한 걸 어찌 그냥 넘어가겠느냐?”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 * *
가까스로 스물다섯 냥으로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생각지도 않은 지출에 속이 쓰려 왔지만, 내가 부숴 먹은 건 사실이기에 그냥 잊어버리······기는 개뿔.
아까운 마음에 자다가도 눈이 떠졌다.
꼬르륵.
아까운 마음에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다.
파견 대금을 부풀려 손해를 벌충하는 수밖에.
생사지도를 감시하던 중 다쳤다고 하며 치료비를 요구할 수도 있고, 탈진한 기재에게 요상단을 먹여 약값을 부풀려 청구하는 등 방법이야 많으니까.
해결책을 생각한 뒤에야 마음 편히 등천각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고아라는 사정을 듣고 불쌍하다며 고기반찬을 챙겨 주던 식당 아저씨.
무공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해 줬던 교관들.
성으로 내려갔다 올 때면 간식거리를 사다 줬던 등천단의 단원들.
마지막으로 내가 구룡성까지 호위를 했던 남만 대족장의 아들 타곤까지.
한 명 한 명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과거를 추억하니.
어느새, 지옥의 생사지도가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교관 아홉, 외당 일조 소속의 무사 스물.
그런 그들의 앞에 선 열다섯의 구 년 차 기재들.
멸절진인이 그들의 앞에서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천릿길을 걸어 구룡산맥을 넘는다.”
저거 거짓말이다. 아니 속일 의도가 없으니 틀린 말인가?
아무튼, 이 시대의 지도라는 게 정확하지가 않다.
당연히 거리상 오차는 존재했는데, 문제는 목표 지점이 청해성 바로 앞, 구룡산맥의 끝이라는 거다.
넓디넓은 중원 무림의 세계관을 생각해 보면 모르긴 몰라도 천 리는 훌쩍 넘을 것이다.
하루빨리 정확한 측량 기술이 도입되어야 이런 피해자들이 사라질 텐데.
속으로 빠른 기술 발전을 기원하는 사이, 드디어 멸절진인이 길고 긴 훈화 말씀을 끝냈다.
“······해서,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예-!
기재들의 우렁찬 대답으로 생사지도가 시작되었다.
열다섯의 기재들이 각자 무기 한 자루씩만 가지고 길을 나섰고 교관들과 일조의 무사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번에도 단운 같은 놈이 있으려나?’
흥미롭게 보고 있자니 기재 하나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고 교관이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떠올라 실소가 터져 나왔다.
“푸흐흐.”
옆에 있던 우제준이 실소의 이유를 물어 왔다.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냐,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단운 놈은 이 훈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했다.
비록 도중에 힘이 빠져 속도는 느려졌을지언정, 끝까지 달린 것을 보면 대단한 놈이긴 했다.
그래봤자 사전에 먹을 것을 숨겨두고 지름길을 숙지해 둔 내게는 졌지만.
‘힘만 쓰는 놈은 머리 쓰는 놈을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쓰는 녀석이 보였다.
검은색 옷을 겹겹이 겹쳐 입은 놈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의 동태를 살폈다.
기회를 봐 먹을 것을 숨겨 놓은 곳으로 향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비천풍을 펼쳐 한걸음에 놈의 옆으로 다가갔다.
“걸렸으니까 그냥 가는 게 어떻겠냐?”
“투룡 선배님이십니까?”
“그래.”
“역시 선배님이시군요. 한눈에 알아차리시다니. 알겠습니다. 포기하겠습니다.”
역시, 머리가 있는 녀석답게 말귀를 빨리 알아들었다.
“그래 인마,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꼼수를 쓰면 되나.”
“생사지도 최초로 부정행위에 성공하신 분이 선배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거, 누가 말해 줬냐?”
“등천단의 조상만 선배가 말해 줬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입단속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이 사실이 멸절진인 귀에 들어가면 정말 내 다리를 분지른다며 검을 휘두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원래 걸리면 범죄고 안 걸리면 전략인 법이다. 그리고 그거 비밀인 거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이름이 뭐냐?”
“전광이라고 합니다. 회룡당주님께서 제 아버지이십니다.”
전묵의 동생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녀석을 다시 살펴봤다.
작은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이 미터는 될 법한 키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전묵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전묵과 완전 딴판인데?”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너도 곡괭이질로 수련하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너무 뒤처지면 나중에 힘들 것 같으니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수고해라.”
작게 읍을 한 전광이 살짝 앞서 나갔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짜식, 한 번 봐줬다.’
놈의 옷, 정확히는 장포 안 무복의 안감과 겉감 사이에 육포가 숨겨져 있었다.
원래는 압수하는 것이 맞지만, 그냥 넘어갔다.
무식한 무인들이 많이 모인 세력일수록 저런 지혜를 갖춘 인재가 필요한 법이니까.
‘구룡성의 미래가 밝구나.’
저런 인재를 키워 내다니, 과연 구룡성 최고의 교육 기관인 등천각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