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8
068화 등천각 파견(3)
xx
생사지도의 진행 과정은 예전 내가 겪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다섯의 기재들은 험하디험한 구룡산맥의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절벽을 오르며 나아갔다.
그렇게 이틀, 기재들이 선두와 중간, 후미 그룹으로 나뉘었다.
사전에 말을 맞춘 대로 교관들이 선두와 후미, 우리는 중간 그룹을 맡았다.
외당 무사들 실력으로 선두는 따라잡기 힘들었고, 중간 그룹의 기재들을 따라가다 놓치면 후미의 교관들과 교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놓칠 것을 염두에 둔 포진이었다.
물론, 외당의 이들 역시 무인은 무인.
자존심상 아이들을 쫓아가지 못해 놓치는 게 좋을 리 없었기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따라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존심에서 비롯한 정신력도 슬슬 바닥났는지 다들 지쳐 가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발이 무겁다. 경공의 기본도 모르나?!”
“훈련이라 생각하고 임해라!”
“운기를 하며 발을 내디뎌라! 내공이 달려? 여태 심법 수련도 하지 않고 뭐 했나?”
우제준이 중심을 잘 잡아 줘서 다행이었다.
일조의 조원들이 그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졸장 밑에 용장은 없는 법.’
우제준의 리더십이 곧 나의 리더십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나저나 어디쯤 왔으려나?’
지도를 펼쳐 산세와 대조해 보니 대충 중간 정도 온 것 같았다.
‘꿀이군.’
이틀만 더 가면 생사지도가 끝나기에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천각에서 열흘을 보낸 뒤, 실제 업무에는 나흘밖에 투입되지 않았으니까.
뭐, 돌아가는 데도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거야 비천풍이나 수련하며 가면 되니 걱정되지는 않았······.
‘잠깐, 무공을 수련하면서 간다고?’
갑자기 든 의문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닭살이 돋았다.
얼마 전 같으면 개고생이라고 투덜거렸을 먼 거리.
백 미터 이상이면 무조건 택시를 타고 다니던 전생의 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먼 길을 가는데 ‘무공 수련할 기회’라고 퉁 치고 넘어가다니.
아무래도 최근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무언가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
배워서 남 주는 건 아니니까.
뭔가 마음이 편해져 느긋하게 걷던 중 앞서가던 기재들이 발을 멈추었다.
해가 지기 직전이라 오늘은 여기서 쉬려 하는 모양이다.
중간 그룹의 기재는 총 넷.
그들이 잘 곳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제준에게 말했다.
“사냥이라도 해 올 테니까 자리 좀 지키고 있어.”
혹시 몰라 건량을 챙겨 오긴 했지만, 사냥을 해서 바로 구워 먹는 고기가 또 별미가 아니던가.
몰래 챙겨 온 백주와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기에 오늘도 안줏거리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제준 역시 요 며칠 그 맛을 봤던지라 입맛을 다시면서 대답했다.
“예, 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곧장 비천풍을 펼쳐 산속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기감을 확장하여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사슴 하나만 잡아 가자.
그렇게 감각을 돋우어 주위를 살피던 중.
‘피 냄새?’
느껴져선 안 될 무언가가 느껴졌다.
맹수가 지천으로 깔린 산에서 피 냄새 자체는 얼마든지 날 수 있다.
문제는.
동물의 피라면 섞여 있어야 할 진한 노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마?’
제발 아니길 바라며 냄새의 진원지로 날듯이 뛰어갔다.
“시발······.”
시체가 보였다.
그것도 등천각 교관의.
곧장 다가가 살펴보니 온몸에 자상이 가득하였다.
‘최소 셋 이상의 합공.’
검집에 검이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반격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구룡성의 영역인 구룡산맥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
공교롭게도 생사지도라는 훈련 기간에 발생하였다.
‘우연일 리가 없다.’
흉수가 누군지는 몰라도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살인일 리가 없다.
또한, 일류 이상의 무위를 지닌 교관이 손도 내밀지 못하고 참살당했다는 건 적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
나는 교관의 시체를 둘러업고 산 아래로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장님!”
시체를 업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우제준이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격이다. 지금 당장 기재들을 데려와.”
내 명령에 조원들이 빠르게 흩어져 기재들을 데려왔다.
시체를 본 기재들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
기재 중 한 사람이 두 눈을 찢을 듯이 부릅떴다.
“사형!”
아무래도 죽은 교관과 친분이 있었던 모양.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슬픔을 풀어낼 여유 따윈 없었다.
콰당.
나는 시체를 끌어안은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던짐과 동시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안 차려!?”
“······.”
“우제준.”
“예.”
“네가 책임자다. 기재들과 조원들을 이끌고 후미에 따라오는 이들과 합류해.”
“······조장님께선 어쩌실 생각입니까?”
“나는 먼저 간 기재들과 교관들을 찾아 데려오겠다.”
“예.”
“그리고, 혹시나 목숨이 위험할 것 같으면 항복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여의찮으면 도망쳐도 좋고.”
“저희도 검을 쥔 무인입니다.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의 말에 조원들이 눈을 형형히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랄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 줄 테니까. 그리고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쓸데없이 자존심 챙길 생각하지 말고 목숨부터 챙겨라.”
“······예.”
불만이 가득한 대답이었지만, 더는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앞서 나간 무리가 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살아서 보자.”
그 말을 끝으로 곧장 비천풍을 펼쳤다.
* * *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구룡산맥답게 난관이 이어졌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깎아지른 듯한 산길을 빠르게 내달리다 깊은 계곡이 나오면 내공을 실어 한달음에 넘었고, 빽빽이 들어찬 나무숲을 마주칠 때면.
콰앙! 콰직.
그냥 몸으로 부수며 나아갔다.
내공과 체력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앞서 나간 이들을 구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으니까.
칠흑 같은 산길을 달리며 적들의 정체를 유추하였다.
‘십마련이다.’
사천성 중간부터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구룡산맥.
그리고 그 산맥의 끝은 십마련의 영역인 청해성과 맞닿아 있다.
애초에, 놈들 아니고선 감히 구룡성의 영역에 침범하여 이런 대범한 짓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이 개새끼들이!’
그렇게 이를 악물고 나아간 지 한 시진.
“크륵.”
달빛 아래 한 명의 기재가 가슴께에 칼이 박힌 채로 숨을 헐떡이는 게 보였다.
척.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가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망.”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심극기체(心極氣體).
마음이 움직이니 몸과 기가 동시에 움직였다.
퍼엉.
순간적인 손짓에 적 하나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파지직. 파직.
그와 동시에 전왕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펼쳐진 전왕십삼투.
쿠릉. 콰앙.
단 한 번의 폭발음이 터지며 다섯 놈의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한 수 한 수 폭사경의 경력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이익!”
정보를 듣기 위해 살려 둔 놈이 검을 세우고 휘둘러 왔지만, 그 전에 내 손이 놈의 목을 움켜쥐었다.
꽈악.
“몇 명이나 왔나?”
“크륵.”
간단한 물음. 하지만 놈의 대답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주르륵.
순식간에 혀를 깨물더니 스스로 심맥을 터뜨려 자살을 해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놈을 내팽개치고 죽음을 앞둔 기재의 앞으로 다가갔다.
“잘 버텨 줬다.”
“크흐······. 동기들을······. 부탁.”
축.
그가 동료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무섭고 차가운 죽음.
그 모습에 속에서 천불이 치솟았다.
* * *
한편, 우제준이 이끄는 일조와 네 명의 기재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조심한다고 안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오히려 빠르게 가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전을 처음 겪는 기재들을 생각했을 때 차라리 조심스레 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게 우제준의 판단이었다.
정신없이 겪게 되는 첫 실전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기를 반 시진.
척후로 보내 놨던 하진형이 대경하며 뛰어왔다.
이유는 들으나 마나 뻔했다.
“제암진을 펼쳐라!”
우제준의 말에 열다섯의 인원이 검을 빼 들고 앞을 막아섰다.
나머지 다섯과 기재들은 그들의 뒤에서 자신들의 무기를 빼 들고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곳이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숲이라는 거였다.
즉, 시간을 끌기에 좋은 지형이었다.
우제준이 이를 악물며 전방을 바라봤다.
스물의 외당 무사, 형편없다면 형편없는 전력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남만 대전에서 얻은 경험이 있었다.
동료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적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쁜 놈이라는 것을 티 내기라도 하는 듯이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무리.
외형으로만 봐서는 어떤 놈들인지 알 수 없었다.
우제준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냐- 냐-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주변에 퍼져 나갔다.
혹시라도 돌아오던 무전이 들을까 해서 일부러 소리친 것이다.
그런 우제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거한이 비웃음을 흘렸다.
“잔머리가 좋구나. 흐흐, 그래 봤자 네놈들이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적 중 가장 앞에 있던 거한이 말했다.
“흥! 이곳은 구룡성의 영역, 우리에게 손을 대고도 네놈들이 살아 나갈 수 있을 성싶으냐?!”
“구룡성 따위가 무서웠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답을 들은 우제준은 속으로 침음성을 내뱉었다.
구룡성이란 이름을 듣고도 적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건 적들의 세력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죽여라!”
거한의 외침에 서른의 흑의인들이 질풍처럼 들이닥쳤다.
직도를 든 우제준이 제암검의 초식을 펼치며 선두를 막아섰고 그 뒤를 조원들이 받쳤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파지직.
발걸음을 내딛자 터져 나간 경력이 주위를 휩쓸며 낙엽을 퍼뜨렸다.
한 놈을 잡아 가슴께에 전왕십삼투의 공격 초를 꽂아 넣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먹이 적의 머리통을 부쉈다.
푸욱.
동시에 어깨에서 차가운 검날이 파고드는 감촉이 느껴졌다.
뻐엉!
돌아보지도 않고 터트린 각법이 검을 찌른 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목에서 뜯겨 나간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일별하고 전방을 살폈다.
앞에는 스물이 넘는 적들이 서 있고, 바닥에는 서른의 시체가 몸을 뉘고 있었다.
“하악, 하악.”
뒤늦게 숨이 차오르며 몸 곳곳에서 격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들에 의해 다친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뚫고 들어오면서 받은 충격이 누적된 탓이었다.
하지만 나는 격통을 참아 내며 다시금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손아귀에 걸린 한 놈의 울대가 뜯겨 나갔고.
우드득.
벼락같이 터진 각법이 다른 놈의 갈비뼈를 모조리 박살 냈으며.
푹.
내뻗은 주먹이 또 다른 놈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잔인한 손속 탓인지 남은 놈들이 주춤거렸다.
“흐으, 흐으, 에휴, 이 시발 새끼들아.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남의 집 애새끼들의 목숨을 노려? 너희 집 부모님들이 그렇게 가르쳤냐?”
“죽어랏!”
대놓고 비아냥거리자 참지 못했는지 한 놈이 내 몸통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터엉.
허망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용린갑 덕분이었다.
푹.
당황하는 놈의 머리를 후려쳐 날려 버렸다.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
바로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 의도대로 적들이 하나둘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파지직. 파직.
나는 전왕기를 잔뜩 끌어올리며 말했다.
“한 놈만 살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