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7
48화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와 피격 소리.
그리고 반으로 갈라지는 마수의 비명 소리만 뒤섞인 공간.
터엉.
돌진하는 퓨나의 성체를 방패로 받아낸 리오가 반사적으로 지끈거리는 어깨를 붙잡았다.
땀에 젖은 고동색 머리칼이 이마로, 붉게 상기된 뺨 위로 치덕치덕 달라붙어 있었다.
[빛무리]로 형상 한가운데를 꿰뚫자 도넛 모양으로 구멍이 난 마수가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졌다.쉴 틈 없이 등 뒤를 습격해 오는 퓨나를 막아선 그가 뚝뚝 끊어지는 말소리로 물었다.
“채희 님, 이거, 언제까지…….”
“내가 미안합니다. 미안한데.”
나도 뒤질 거 같으니까 이따 말해요.
소리치며 바닥 위로 완드 끝을 꽂아 넣었다.
‘성운.’
피이이잉!
폭죽이 쏘아져 올라가는 소리 같은 것과 더불어, 거대한 운석 더미가 지면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쿠우웅! 콰아아앙!
몸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모래와 돌들이 비산하고, 미처 유성을 피하지 못한 마수들은 잿더미가 되어 또다시 모래와 뒤섞였다.
흡사 전쟁 영화 같은 광경 한복판.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고, 눈앞을 가리는 땀을 손등으로 대충 훔쳐내며 아련하게 생각했다.
‘응. 윤채희. 오지랖 미쳤다. 니 무덤을 니가 팠다.’
한 종족을 말살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
바깥에서 해결해야 할 돌발 포탈이라면 차라리 시간차 페이즈라도 있지.
여긴 뭐, 한 무리를 끝냈다 싶으면 또 그다음 무리.
그것마저도 흙으로 돌려보냈다 싶으면 그 옆 동굴에서 또 다음 무리가 튀어 나왔다.
4단계로 성장한 화염계 스킬 덕분에 광역기가 하나 더 생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이 어딘가 시원시원하질 못했다.
아무래도.
‘찰떡같이 붙던 신성계 스킬들이랑은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할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로 두 속성이 결합된 베타 스킬을 주요 공격 스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가면 갈수록 극심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봐.
“구웨에엑.”
잠시 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 했다.
입안으로 들이부었던 퍼런 마나 물약이 턱가로 왈칵 흘러나왔다.
[성운]이 그래도 나름 고위급 스킬이라고, 소모되는 마나량이 심상치 않은 게 또 하나의 문제였다.따져보면 [심판]이나 이거나 빠져나가는 기운은 고만고만하긴 한데, 투자 대비 뽑아내는 효율성이 구리니 어딘가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내내 맴돌았다.
갑작스런 게워냄에 놀란 리오가 달려오려는 걸 손으로 막아섰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이야기했다.
“배불러서 그래. 배불러서.”
물배도 정도가 있지.
대충 상태를 알아챈 그의 동질감 섞인 얼굴을 끝으로, 또다시 뭉친 퓨나들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
“으아아.”
앓는 소리를 내며 황무지 위로 주저앉았다.
가만히 있어도 달달거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억세게 주물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지막 마수를 처리하던 리오도, 그 자리에 한쪽 무릎으로 꿇어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요?”
“……방패 다루는 방법은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절대 괜찮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검은 눈동자가 피로함에 젖어 느리게 깜빡거렸다.
등급 차가 있는 포탈인 것 치고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서식지라지만, 나오는 마수 수가 양심이 있어야지.’
체감상 5천 마리쯤 죽였다 느낀 후부터는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텼다.
수포처럼 부풀어 오른 살갗 위로 물약을 뿌리던 리오가 살짝 찡그린 얼굴로 신음성을 꾹 참았다.
나야 오는 족족 공격으로 쪼개 버리니 괜찮았지만, 나도 보호하랴, 자기도 막으랴 정신이 없던 리오는 꽤나 상태가 너절해졌다.
미묘하게 코끝을 스치는 지방 타는 향을 맡으며 주머니에 처박아둔 핸드폰을 꺼냈다.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포탈에 진입한 지…….
‘4시간 반.’
아까 확인했을 때가 3시간쯤 지났을 때였으니, 장장 1시간 30분여의 전투가 마무리된 참이었다.
그사이 내 [성운] 스킬은 2레벨을 찍었고, 한참 레벨이 올라있던 [화우]나 [빛무리]도 한 단계씩 성장했다.
처치한 마수의 양에 비하면 전혀 놀랍지 않은 성과이긴 했다.
‘등급이 올라간 것도 아니고.’
뻑뻑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상태창을 열었다.
–
【상태】
이름 : 이모아 / 16세
칭호 : ‘시작에 선 자’, ‘■■■■의 해방자’
종합 헌터 등급: S
근력 : B
지능 : S
민첩 : BBB
전용 스킬 : 미약한 온기(Lv.2)(잠금)
–
이모아의 현재 지능 수치는 S.
S등급 이상부터는 능력치가 등급과 매한가지인 +, -로 표시되기 때문에, 이모아의 지능 값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S등급의 평균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 헌터 등급이 S라는 것은 다른 능력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지능의 풀이 넓다는 말과도 같았다.
한마디로.
‘이제 등급을 올리는 건 보통 훈련으론 부족하다는 소리.’
괜히 S등급이 각성자들의 번아웃 생성기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숙련도도 이 정도 쌓였는데, 리오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이상했다.
흘린 피와 땀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기대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힐끗 그를 곁눈질했다.
“어떻게. 그래서 등급에는 좀 변동이 있었어요?”
“아…… 예.”
상태창을 확인하듯 잠시 침묵한 그가 방패를 수납하며 말했다.
“B입니다.”
헤에엑!
놀라 샌 소리를 내뱉는 나를 확인한 리오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해봤자 B-정도 아닐까 생각했던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자랑스럽다는 감동의 의미를 잔뜩 담아 어깨를 팡팡 두드리자, 리오는 몸 둘 바를 모르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아닙니다. 그 전부터 채희 님도 많이 도와주셨고, 또 사부님께서 여러 무공서들을 익히게 도와주셔서 그 스킬들 덕분에…….”
“리오.”
그의 말꼬리를 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항상 그렇게 남들한테 공을 돌리려고 하는지.
자신의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윤산영은 여전했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똑같이 알려줘도 못 해내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잘한 거 맞으니까 그냥 즐겨요.”
“……감사합니다.”
리오가 발갛게 달아오른 귀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꼬물락대는 그의 검지에는 내가 명계에서 구해다 주었던 묘안석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별거 아닌 칭찬으로도 부끄러워하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나는 인생을 통달한 노인처럼 끌끌 혀를 차며 설명했다.
“그래도 정찰 나올만한 마수들은 다 쓸었나 봐요. 그렇다고 안에 남아 있는 퓨나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채비를 좀 하고 들어가자고.”
“모조리…… 말살해야 된다고 하셨죠.”
이내 평소의 진중한 얼굴로 돌아온 리오가 ‘말살’에 포인트를 주며 물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맞아요. 더 이상 전송할 마수도 없는데 계속 포탈을 열어놓는 건 저쪽에서도 주파수 낭비니까.”
물론 여기서 ‘저쪽’이라는 건 최종 보스를 일컫는 말이었다.
놈이 모든 채널의 개폐를 세세히 계획하고 관장하는 건 아니었지만, 개폐를 위해서는 반드시 놈의 힘이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 보스 놈이 쓸모없어진 포탈 연결에 헛된 능력을 소모할 리 없다.
한마디로, 더 넓은 의미의 ‘인스턴스 배리어’라고 생각하면 쉬웠다.
‘어쨌든 한쪽이 몰살되면 닫히는 건 똑같으니까.’
그러나 리오의 표정은 모호했다.
무언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 앙다문 입술을 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돌발 포탈 속에 들어와 본 적이 없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보통 돌발 포탈의 목표는 빨리 닫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지, 연결된 포탈 너머의 차원을 때려 부수는 게 아니었다.
후자의 방법도 있긴 했지만, 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지금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딱 이 말이 어울렸다는 소리였다.
정말, 굳이?
‘그걸 내가 해내고 있긴 해.’
어쨌든 친절히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입을 달싹인 순간.
“근데 왜…….”
리오가 먼저 운을 떼었다.
말하라는 듯이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채본은 막지 않았을까요.”
순진한 그의 질문에 타격을 맞은 건 나였다.
리오는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미간으로 인상까지 찌푸리며 물었다.
“저희야 전력도 둘 뿐이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포탈 처리하는 시간이 길지만, 채본은 이름 있는 랭커들만 몇 명 투입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걸 왜 몇 년 동안 끌어왔는지…….”
“채본을 믿어요?”
내 반문에 리오의 입이 서서히 닫혔다.
그제야 무언가 생각하고 있던 상식을 박살 낸 것 같은 얼굴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걔네가 이 포탈을 왜 가만히 내버려 뒀겠어요. 뭐 대단한 뜻이 있어서? 방법을 몰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리오처럼 이타적인 건 아니에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속삭였다.
“걔네들 입장에서는 끽해봐야 몇 달에 한 번씩 터지는 A급 포탈 하나 살아남아 있다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귀찮은 짓을 사서 왜 하겠냐고. 여기다 S급 각성자 파견하는 것도 인적 낭비지.”
“…….”
“채본한테는 이게 큰일이 아니니까.”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4층짜리 작은 빌라.
그 네모난 창 안에 들었을 8개의 각기 다른 삶을 생각했다.
전투의 흉터가 고스란히 머무는 집 안에서도,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찬민이의 집 안을 떠올렸다.
그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나쳤을까.
그러니까.
“같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소시민끼리 돕고 살아야지, 뭐.”
미션 내용이 달라져 선 성향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 포탈 안에 뛰어든 이유에는 그런 마음도 작게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고.
무기력한 어둠이 몸뚱이를 집어삼켜 터져 나오려는 절규를 꾹꾹 되삼키며 잠들었던 밤을…….
‘나도 아니까.’
지금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지만.
가벼운 회상을 끝으로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사용한 물약들 숫자도 체크 해야 했고, 혹시나 다급히 필요할 해독제나 마비약들을 주머니에 챙겨 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
인벤토리 한구석, 끄트머리에서 날카로운 금속 같은 것이 만져졌다.
손끝에 걸려 나온 귀걸이 하나를 빤히 응시했다.
‘이거…….’
애카 최대의 암시장.
에서 뺏어왔던 명암의 악세서리.
만약 애카의 서사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어쩌면 이태환의 유품이 되었을…….
‘흑옥 태환이식(太環耳飾).’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