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2
53화
촤악.
뺨 위로 찐득한 혈액이 흩뿌려졌다.
지끈거리며 타오르는 작열감과 동시에, 머리 위로는 새빨간 사이렌 소리가 우렁차게도 울려댔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기습이라니.
검기가 제대로 파고든 어깻죽지를 한 손으로 지혈하고, 나머지 손으로는 허공을 짓눌렀다.
‘[공중 뒤돌아 차기].’
가볍게 정수리 아래로 흘려보내는 검기.
언뜻 놀란 암살범의 눈을 거꾸로 마주쳤다.
분명 이런 상황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한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뭐가 됐든,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확연했다.
“내가 등신이냐? 똑같이 두 번 당해주게.”
빠악!!
운동화의 앞코가 암살범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랭킹 101등. S등급 윤채희의 킥.
암살범은 충격에 비틀거리는 것도 잠시, [마나파도]로 벌려놓은 틈을 일격으로 내지르며 따라붙어 왔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이나 공격에 대응하는 궤도 같은 것이 보통 인간들의 품새는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면.
‘사람들을 많이 죽여 본 솜씨.’
전문 살인범의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였다.
카앙―!
금속이 마주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검을 사용하는 놈답게 근력 능력치가 상당한지, 웬만큼 힘을 쓰고 있다고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붙잡은 팔이 슬슬 뒤로 밀렸다.
새카만 복면을 뒤집어써 구분할 수 있는 인상이라고는 눈밖에 없는 암살범을 응시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최대한 공손함을 담아 던진 물음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쿠과가각.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나를 떠민 놈이 검 끝으로 사방을 긁어댔다.
일직선으로 쏜살같이 꽂혀오는 검기.
약삭빠르게 허리를 굽혀 아래쪽 빈 공간으로 피하면, 곧장 사선으로 치고 드는 칼날이 경로의 낭비 없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돋은 소름이 머리끝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합을 몇 번 나눈 결과.
‘이기지 못할 상대는 절대 아니다.’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듯싶지만, 놈에게도 패턴이라는 게 있었다.
그건 내가 가장 잘 읽어내는 것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부터 왼쪽 아래 사선으로 검을 그을 때는 이렇게.
‘왼손 엄지로 칼 손잡이를 두 번 까딱거린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동작이었다.
그러나 밤낮 뜬 눈으로 픽셀 단위 보스 패턴 분석을 해내던 내게는, 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보인단 말이지.’
예측한 동작을 그대로 피해내곤 [염화]로 암살범의 얼굴을 직격했다.
폭발 파동으로 튕겨져 나간 몸이 잿빛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지팡이를 고쳐 쥐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시간에도 놈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킬이 정통으로 들어간 건 맞지만, 이 정도로 쓰러질 녀석이었으면 진작 꼬리를 자르고 내뺐어야 했다.
그러므로.
“해치웠나.”
적과 싸울 때 99.9%의 확률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점점 잦아드는 화염 연기 속에서 새카만 인영이 튀어나왔다.
덤벼드는 기세는 전혀 꺾이질 않고, 오히려 가면 갈수록 맹렬해졌다.
내가 본인의 [난도]하는 검을 모조리 쳐내고, [빛무리]를 쏘아 보내는 순간에도.
‘……아?’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암살자는 압도적이라면 압도적인 실력 차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어떤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인 반응이라면 약간의 두려움. 혹은 반발.
흥분해 거칠어지는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게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예상할 수 있는 고인물들이 가진 여유였다.
그러나.
‘공격을 망설이지 않는다.’
정해진 일을 하는 것 같이, 여전히 정갈한 궤적이었다.
마치…….
‘일부러 끝을 보려는 사람처럼.’
이렇게 싸우다 나를 죽이면 좋은 거고.
그것도 아니면, 본인의 죽음도 불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처럼.
‘왜?’
그 즉시 간 보듯 장난치던 자세들은 모두 물렀다.
옆구리를 꿰뚫어오는 칼날을 손바닥으로 덥석 붙잡았다.
해오던 것처럼 피할 줄 알았는지, 갑작스러운 돌진에 주춤한 놈이 뒷걸음질 칠 때마다 사악. 손바닥이 깊게 베이는 감각이 들었다.
핏물이 검의 결을 따라 방울져 흘렀다.
멈칫한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날을 붙잡은 손에 힘을 줘 암살범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팡이로 놈의 손목을 찍어 내렸다.
“이번에는 묵언수행 안 받는다.”
챙그랑.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바닥 위로 들리고.
“어디서 왔냐?”
피가 범벅된 손바닥으로 놈의 턱주가리를 붙잡았다.
암살범은 복면을 들춰내는 손아귀를 빠져나가기 위해 팔목을 죽죽 긁어댔지만, 이마 정중앙에 처박은 지팡이로 고요하게 만들어줬다.
놈도 이 정도면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발버둥 쳐 탈출하는 것보다 내가 본인의 머리에 구멍 내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포기한 암살범이 추욱 힘을 푸는 게 느껴졌다.
평범한 남성의 얼굴이 드러나고, 긴장감에 바짝 치솟았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일단은 모르는 놈이다.’
이 정도 흔한 얼굴이라면 애카에서 보았다 하더라도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다만,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겠다는 결의가 등등한 눈을 마주치자 입이 조금 말랐다.
채본인지, 명암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모아를 시기 질투한 다른 각성자인지.
걸리는 곳이 너무 많아 먼저 정체를 묻기도 뭐 했다.
그때, 아득.
“이 미친놈이.”
혀라도 씹으려는 수작인지 아구를 거세게 다무는 암살범의 턱주가리를 잡아챘다.
입안으로 본능적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살기가 거세지는 눈으로 나를 치떠 보는 놈을 질린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지금 누가 누굴.
“아저씨. 백날 씹어봐야 내 팔목 안 끊어지고, 완전 시간 낭비거든요.”
“…….”
“작작하지.”
치열을 따라 손가락을 더듬거렸다.
독이라도 있나 확인해보려는 행동이었는데, 어쩐지 유독 맨들맨들한 어금니 하나가 왼쪽 윗부분에서 만져졌다.
작게 혀를 차며 허공을 손으로 휘저었다.
【‘개구기’를 구입하셨습니다.】
【‘낡은 수갑’을 구입하셨습니다.】
【‘마력이 담긴 중급 포승줄’을 구입하셨습니다.】
“으, 디러.”
잇자국이 나 침이 늘어지는 손목을 확인하곤 개구기 낀 놈의 머리를 한 대 후드려 팼다.
물론 이 기분 더러움은 그 정도로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라는 게 나를 꾹 참게 만들었다.
‘죽으려고 환장한 놈을 친절히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내 손 더럽혀 버킷리스트 달성해주는 거랑 뭐가 다르냐.
개구기를 끼울 때보다는 조금 덜 발버둥 치는 암살범의 팔목을 강하게 묶었다.
어느새 피가 멎어 검붉은 혈흔이 굳은 손바닥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자냐? -Q]***
“아이고, 형님. 갑자기 이게 무슨…….”
정말 방금 잠에서 깨어났는지 머리로 까치집을 지은 용태가 심부름센터 문을 박차고 달려왔다.
불 꺼진 사무실.
익숙한 가죽 의자에 홀로 앉아 있던 나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그를 맞이했다.
딱딱한 검은 헬멧 위로 손을 얹었다.
‘이제 다시 여기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입맛이 씁쓸했다.
당연히, 번거로운 인사치레는 전부 넘긴 채 본론부터 들이댔다.
“너 침묵 물약 레시피 알지.”
“예? 아, 예. 압니다.”
“하나 만들어 와.”
“……갑자기요? 이 야밤에요?”
“불법 물약 만드는데 정해진 시간도 따로 있나?”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말입니다…….”
용태가 잠시 침묵하며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암살범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으으! 으으아!
연신 무언가를 말하려는 놈의 콧대를 주먹으로 때려주었다.
용태는 잠시 자기가 맞은 것처럼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열 개 가져와. 30분 준다.”
살벌한 명령에 용태 놈은 왔던 것과 똑같이 푸닥거리는 뒷모습으로 심부름센터를 빠져나갔다.
단 하나의 희망을 놓쳤다는 듯 암살범은 즉시 고요해졌다.
그의 뺨을 툭툭 두들기며 경고했다.
“조용히 있어. 원하는 대로 시체로 만들어놔도 신원 파악은 할 수 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놈의 정보는 이미 오 사장에게 넘겨놓았다.
적어도 하루, 이틀 사이에는 어디에서 날 죽이려고 청부살인을 보냈는지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또.
‘모가지를 베자니 소름 끼치고.’
어디로 데려가자니, 마땅한 곳이 없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암살범을 납치 감금해 놓을 장소가 이 뒷골목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근데 이놈은 이미 내 정체가 이모아인 걸 알고 있으니, 입을 놀리게 해두면 무슨 참사가 벌어질지 몰랐다.
놔둬봤자 쓸모 있는 정보를 토해낼 것 같지도 않고…… 차라리 일시적이라도 목소리를 잃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냥 혀를 자를까.”
그게 더 쉽고 빠른 방법이긴 할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암살범이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죽는 건 안 무섭고. 혀 자르는 건 무섭고.
헬멧 뒤로 팔을 두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희미한 여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
…… 님. …… 장님.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간을 좁히고 몸을 뒤척였다.
단잠을 방해하던 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이번에는 성가시게 어깨를 두드려오기 시작했다.
파리 쫓듯 휘휘 손을 내저었다.
딱 오 분만 더 잘게, 오 분만. 어?
잠결에 투정처럼 내뱉은 말을 버석한 목소리가 일깨웠다.
“사장님.”
헉. 숨을 들이마시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 아.
‘센터에 왔었지.’
앞에서 멀뚱히 서 있는 무명을 보며 급작스런 현실 파악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세상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이는 여상한 표정이었지만, 나의 등장에는 꽤 놀랐는지 조금 들뜬 느낌을 내고 있었다.
대충 헬멧 쓴 머리를 털어내고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무명 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덕분에요. 근데 사장님은 여기 무슨 일로…….”
“바지 사장이어도 가끔은 둘러보러 와야죠.”
물론 뻥이다.
이번 일만 아니었으면 평생 손절하려고 했다.
사무실 직원이 즉각 떠온 냉수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깨웠다.
그러니까, 어제 용태가 가져온 침묵 물약 10개를 암살범 놈한테 한꺼번에 먹이고, 용태가 부작용으로 평생 말을 못하게 될 수 있다고 한 다음에 ‘오히려 좋아’라고 답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제가 데려온 놈 어디 뒀는지 알아요?”
암살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명이 모닝 믹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대답했다.
“네. 구 대표님이 맡기신 일 하겠다고 회의실로 데려가던데요.”
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기절하기 전에 신원파악 해라, 명령했던 말을 용태가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양쪽에서 조사하면 더 답이 빨리 나올 수도 있으니까.’
개고생한 거 이럴 때 안 써먹으면 또 언제 써먹겠나.
그런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일어서자 부축하려는 듯 무명의 팔이 빠르게 다가왔다.
“주무시려면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주무시죠. 근처 호텔이라도 잡아드릴까요?”
“괜찮아요. 그것보다 저도 회의실로 좀.”
가봐야겠는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콰앙! 부서져라 철제 문이 열렸다.
토마토처럼 두피가 끝까지 달아올라 숨을 쌕쌕 내쉬는 용태 놈이 절망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며 불안한 직감이 스쳤다.
그가 울상인 얼굴로 소리쳤다.
“혀, 형님! 도망가십쇼!”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