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4
74화
“그 능력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개인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요.”
쩌저적.
알에서 깨어나는 새처럼 본인을 깔아뭉갠 시멘트 덩이를 반 가르고 태어난 온이헌은 여전히 은은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진정한 미친놈다운 그 태도에 되레 질린 건 내 쪽이었다.
“욱, 웨엑…….”
비명 대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헛구역질 소리가 양 귀에 서라운드로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돌에 짓이기다시피 찢긴 피부 거죽이 버섯 균처럼 차오르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신물이 차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이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대신, 이를 악문 채 온이헌을 응시했다.
“비주얼 진짜 험난하네. 좀비도 아니고.”
볼 안쪽을 혀로 불룩하게 밀어냈다.
그래. 고작 이딴 공격으로 놈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천지가 뒤바뀔 정도로 상황이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킬은 결국 ‘정신력’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
천장에 꽂은 칼로 폭발을 일으켜 진이 흐려진 찰나, 나는 온이헌 대신 발목 묶인 사람들에게로 뛰어들었다.
약해진 주문 위에서 반쯤 잠긴 사람들을 건져내고, 꾸불대며 발목을 잡아당기는 검은 융털들에게 빛을 쏟아부었다.
먼저 빠져나간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을 붙잡고 서로를 끄집어내는 모습이 일반적인 구조 현장보다는 빠릿빠릿했지만, 문제는 상대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고작 1분.’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짧았을까.
온이헌의 재생은 예상보다 빨랐고, 내 공격은 예상보다 미미한 효과였다.
살아남았지만 채 1cm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각성자들이 절망에 젖어들고 있었다.
붉게 비치는 옅은 흔적을 제외하면 이제 거의 완벽히 아문 뺨.
그 위로 가볍게 손을 얹은 온이헌은 일그러진 얼굴들을 눈에 새겨 넣듯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선득한 시선이 마지막으로 맞닿은 건, 역시나.
“안타까운 선택이네요.”
나였다.
개미처럼 타고 오르는 눈길을 오롯이 받아내며 등 뒤로 각성자들을 숨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온이헌은 잔뜩 묻어나는 침울함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둘 중 하나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슈우욱― 파앗!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샌 소리가 난 것도 그때였다.
시야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빠른 구체가 누군가의 가슴께를 뚫고 지나갔고, 소리도 내지 못한 육신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온이헌의 손아귀에는 거칠게 쥐어뜯긴 심장.
아직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듯 박동하는 날것의 근육이 집혀 있었다.
“주어진 선택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과욕을 부린다면 다른 사람도.”
핏기가 역력한 장기가 온이헌의 손안에서 새까맣게 부패했다.
잿가루가 된 심장은 눈송이처럼 그의 살갗 아래로 녹아들고 있었다.
혈관 아래로 불룩 솟아오르는 검은 피.
그 힘을 만끽하듯 눈꺼풀을 내리감은 그의 뺨이, 이제는 옅은 흔적도 없이 새하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온이헌이.
“본인도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감은 눈을 떴다.
콰아아앙!
정신을 얼얼하게 만드는 굉음.
몸이 허공에 떠있다고 느낀 건 한순간이었다.
자각하자마자 철골에 부딪힌 등이 으스러진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파도처럼 순차적으로 밀려오는 둔통이 몸을 불태웠다.
하지만 일어서야 했다.
허공으로 새로운 문자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듯이, 바퀴벌레처럼 온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흑마법.’
등골이 찌릿해질 정도의 살기.
사물의 경계가 없이 짙은 어둠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악을 막아서기 위해 지팡이를 억세게 쥐었지만,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서야만 했다.
‘쓸 수 있는 스킬이…….’
[유니버스]도. [그레이브]도.하다못해 [마나 파도]를 사용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휩쓸릴 것이다.
지킬 것이 없는 자와, 모든 것을 구해내고 싶은 자의 행동 제약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온이헌은 굳은 나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곤.
피식.
새어 나오는 명백한 조소.
온이헌은 곧 이 상황의 목줄을 움켜쥔 주인인 양 공허 한가운데에 몸을 세웠다.
가는 손가락이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이제 더 정확히 아셨겠죠.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
“보통 인간들 같았다면 처리하고도 남았겠지만, 여러분은 분명히 선택받은 인류이고, 저의 자매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의 손이 내가 무너트린 천장을 가리켰다.
미약한 햇빛이 비치는 구멍은 온이헌의 주문이 닿지 않는 유일한 빈틈이었다.
그 역시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마지막 기회는 남겨두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두세요.
연설하듯 팔을 벌린 온이헌이 다정한 눈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더듬었다.
“만일 이곳에서 여러분이 죽게 된다면…….”
그건 저 어리석은 각성자의 판단 때문이라는 걸.
날카로운 송곳니는 온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욱.
숨결이 느껴지도록 온이헌이 바짝 다가왔다.
그늘진 목소리가 내게만 속삭였다.
“기다릴게요.”
신의 은총이 항상 당신과 함께하길.
물크러진 미소가 이마 위로 닿고 사라졌다.
후두둑.
그가 사라진 출구로 잔돌들이 떨어졌다.
모든 일은 아주 순식간에 벌어지고, 끝났다.
온이헌이 장소를 빠져나가자마자 시작이라는 것처럼 고요하던 주문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팽팽 돌아가는 암흑의 사슬들 사이.
이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우그러트릴 듯이 다가오는 암자색 진을 보며 사람들이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윤채희는 그 질척한 낙담들 속에서 가만히 생각했다.
‘신의 은총이 함께 하라.’
그건 끝장나는 모욕이자, 운명이 거들지 않는다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온이헌의 결론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 걸맞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저 새끼를 내 손으로 잡아야 한다.’
혹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부딪치는 두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날아갔다.
지금 온이헌을 따라 나가는 것은 이곳에 온 목적 그대로였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놈의 뒤꿈치라도 잡고 제대로 싸워볼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 나갈 때까지 물고 놓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이 붕괴되면 그땐 늦어.’
말 그대로, 강한 마력 파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매장의 벽면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이미 진에 삼켜져 버둥대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가는 건 몰살해도 된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각성자들의 스킬이 벽 위로, 바닥으로 솟구칠 때마다 갈퀴 같은 검은 손들이 더 깊숙이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갈라지는 벽이 점점 늘어나 붕괴 시간만 앞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패닉에 젖은 사람들은 그 사실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만!”
처절하게 외치는 내 목소리에도 그들은 마지막 생명을 태우는 불나방처럼 용을 썼다.
아니, 그것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겠지.’
노력해도 불가한 것이 있다.
당신들은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러니.
‘복종해라.’
온이헌은 사람들의 깊은 인식에 그 생각만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죽음이 다가온 상황에서 새겨진 신념은 맹목적이다.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약육강식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 각성자들은 온이헌의 편에 서게 될지 몰랐다.
본인이 가진 힘으로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한 한계를 느끼고, 자신들보다 약한 사람을 해쳐도 된다는 당위성.
혹은 강한 사람에게 들러붙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기생충 같은 삶을 유지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여기서 개죽음당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이 역시 끔찍한 세상에 태어난 피해자일 뿐.
어느새 허벅지까지 밀려들어 온 까만 오오라 밑으로 지팡이를 처박았다.
하반신이 잘려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짙은 암흑.
한 번 숨을 들이켤 때마다 악의를 걸러내지 못한 몸속으로 더덕더덕 검은 기운이 축적되는 게 느껴졌다.
그건 흑옥과 대치할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해로운 것에 잠식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좀먹어오는 느낌.
내가 신성계의 성향을 가졌기에 그 움직임을 좀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인간을 발끝부터 오독오독 씹어 삼키려는 검은 욕망이 온몸의 살갗을 벗겨내고 있었다.
그래. 더 이상은 주저할 수 없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그레이스】.’
내게 미션을 진행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세상을 구해내는 것보다, 중요해진 것이 무엇인지.
작은 빛줄기가 흐린 어둠 밑으로 번개처럼 퍼져나갔다.
꾸구궁―!
물에 잠긴 것 같은 아득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한 번 휘청거렸다.
빛의 파동으로 발밑에 있던 검은 융털들이 파사삭,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그 반동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옆으로, 뒤로 기울며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젠장.’
이를 악물며 욕지거리를 참아냈다.
사방을 막아선 진을 한꺼번에 걷어내기 위해선 광역기의 사용이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이미 지반이 약해진 건물이 더 이상의 데미지를 버텨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사람들을 구조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고, 이미 반쯤 패닉이 온 각성자들의 절반은 포기한 것처럼 어둠에 몸을 맡긴 상태였다.
수없이 돋아나는 작은 손가락들이 그들을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바닥이 없는 공허를 허우적대며 헤엄치고, 가까운 곳에 있는 각성자의 뒷덜미를 잡아 세웠지만, 그뿐.
‘가라앉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지상 밑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