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0
150화
미션?
돌발?
버프?
단상처럼 떠오르는 단어들을 한 카테고리로 묶어내기도 전에 발이 미끄러졌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중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몸이 흔들리고, 주변 형상이 배는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당연하게도 보통 인간의 것이 아닌.
그 모든 물리 법칙을 배반한 속도위반의 종착지는 한군데였다.
리오.
소리가 나지 않는 입술이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낸다.
획을 긋는 창조자의 손이 초마다 프레임 단위로 끊어져 보였다.
분절된 시간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15%.
한계를 뛰어넘은 퍼센트 속에서.
“잡았다.”
리오의 팔목을 붙잡았다.
느리게 넘어지고 있는 그의 등을 받치고 눈을 마주쳤다.
리오는 나를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을 가지고 반사적인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그 순간.
도로록.
모든 것들이 조금씩 느리게 떨어지는 공간에서 창조자의 고개가 비틀어졌다.
그것은 순리를 따르듯 여전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텅 빈 면상만은 호두까기 인형마냥 덜걱거렸다.
【이 세계 는 나 의 것】
【그건 무 슨짓을 해 도 바 뀌 지 않아】
그러나 창조자는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명백하게, 그것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이모아가 있었다.
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왜?’
생각하기도 전에 밀랍 같은 팔이 끈적한 액체에서 빠져나오듯 꾸물거리며 나와 리오 사이를 가로질렀다.
품 안에 가둔 리오를 붙잡으려 뻗어오는 손이 맹렬했다.
하지만 창조자는 알아두었어야 했다.
“나도 알아.”
스스스슷.
손끝부터 목덜미까지.
피어오르는 장미 넝쿨처럼 전신을 휘감은 룬 문자가 마침내 콧잔등 위로 흉터 같은 일자 문양을 남겼을 때.
“그러니까 있는 거 없는 거 다 짜내 쓰는 거 아니냐, 지금.”
귓가의 흑옥이 공명했다.
꽈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에 휩쓸린 몸이 나가떨어졌다.
회전력을 받은 전신이 채 멈출 방법도 찾지 못하고 끝없이 굴렀다.
기어이 폭발 장소에서 한참 떨어졌다 생각이 들 때쯤이 되어서야 등이 철푸덕 바닥을 향했고, 대자로 뻗은 내 팔 위로는.
“리오, 괜찮아요? 살아 있어요?”
묵직한 무게감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그를 흔들었다.
【이동속도 증가 버프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짧막한 알림창이 떴는데도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리오는 아직 15% 느려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구슬같이 투명하고 새카만 눈동자 위로 내 모습이 비쳤다.
그의 눈 속에는 희미한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건조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말했다.
그건 뭐랄까.
나를 향해 말하고 있긴 했지만, 리오의 기나긴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멍한 초점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게 맞는 거라고, 나는 살아 있어선 안 되는 거라고. 죽어도 다 속죄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계속…….”
계속.
“채희 님이 저를 구해요.”
꺼지는 불씨처럼 그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이제 분명히, 리오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호수의 표면 같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든 이야기를 한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젖어 스산한 기척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툭 하면 넘쳐 버릴 것 같은 얼굴로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자꾸만 착각하게 돼요. 나도 살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누군가는 간절히 내가 살길 바라는구나. 내 행복을 바라주는구나.”
“…….”
“채희 님.”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미지근한 체온이 상체를 지탱하고 있는 내 손등을 덮었다.
“반드시 채희 님을 지킬게요.”
바람처럼 몸을 일으킨 리오가 귓가에 속삭였다.
까앙! 까앙! 까앙!
한팔로 굳건히 지탱하고 있는 방패에 나무뿌리처럼 구불거리는 창조자의 머리칼이 부딪혔다.
언제부터 주변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공격을 가로막은 방패를 뚫을 듯이 맹렬하게 퍼붓는 충격에 튕겨 나갈 것처럼 몸이 흔들렸지만, 리오는 이를 꽉 깨문 채 공격을 버텨냈다.
내 등을 감싸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사나운 안광을 빛냈다.
잠시 멍해진 내 머릿속에 전에 없이 견고한 목소리가 이야기했다.
“반드시 채희 님을 구해낼게요. 그것만은 해낼게요.”
그러니까.
“가서 해야 하는 일을 해주세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풀어진 얼굴로 작게 미소 짓는 리오의 낯빛은 평소에 내가 알던 그 리오의 것이었다.
그러나 뭐가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싸하게 내려앉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구하겠다. 지키겠다.
리오가 그렇게 말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기묘한 불안감이 목덜미를 적셨다.
까앙! 까앙!
방패를 부술 듯이 두드리는 창조자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체가 가까워진 거겠지.’
리오가 아무리 정신을 차렸다 하더라도 창조자와의 맞다이 현장에 존재하는 건 위험했다.
내가 싸울 때 멀리서 얌전히 살아 있으라고 [칠전팔기] 스킬을 떠먹여 준 게 당연한 일.
지금으로선 날 지키겠다고 의지를 품은 리오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깨를 거칠게 부여잡은 뒤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거짓말하면 안 돼요.”
리오에게 확답받듯 강한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나 구해준다고 했어요. 그 전까지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네.”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리오는 그 동작을 바라보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유치했나?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절대 깰 수 없는 맹세의 증표라고 했잖아요.”
나는 처음 리오와 손가락을 걸던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패 너머로 창조자의 인영을 확인하며 ‘빨리’ 하고 그를 채근했다.
더듬더듬. 똑같이 내민 새끼손가락이 조심스레 얽혔다.
“조심해요.”
쏜살같이 방패 너머로 튀어 나갔다.
예상대로, 창조자는 몇 걸음만 달리면 닿을 것처럼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무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허공에 떠올라 머리카락을 조종했다.
방패 밖으로 나오자마자 몇 가닥 털이 밧줄처럼 손발을 묶으려 했지만, 다행히도 쉽게 끊어낼 수 있었다.
힐긋 곁눈질한 리오는 내가 바라던 대로 멀리멀리 물러서는 중이었고, 창조자의 시선이 종종 그에게로 향할 때마다.
“어딜.”
이를 악물고 대응했다.
둥. 둥. 둥. 둥.
흑옥의 공명이 명치 아주 깊숙한 곳을 울렸다.
온몸이 심장이 된 것처럼 두근거렸고, 머리끝까지 활짝 열린 혈관 속으로 마나가 솟구치는 게 얼얼할 정도로 느껴졌다.
[심판], [성운], [그레이브], 또다시 [심판], [빛의 메아리]…….1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못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을 남발했다.
마나는 계속 발목 밑에서 찰랑대고 있었다.
창조자의 공격을 막아서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가락 까딱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탈력감이 휘몰아쳤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싸워.’
윤채희. 일어나서 싸워.
쉼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러나.
“커헉……!”
바닥에 내팽개쳐져 부서질 것 같은 몸을 힘겹게 갈무리했다.
여기가 유리 같은 프랙탈 바닥이 아니라 진짜 땅이기라도 했다면, 지면이 내 모양대로 쩍쩍 갈라졌을 법한 충격이었다.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아무리 맞고, 부딪히고, 피하며 싸워대도 게임처럼 창조자의 패턴을 알아내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것은 내 공격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어떤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이건 진짜 싸움이었다.
그걸 깨달을 때마다 입이 바짝 말랐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는 팔이 휘청거렸다.
창조자는 회복되기를 기다려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머리맡에 둥둥 뜬 채로 감흥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투둑.
바닥 위로 핏자국이 몇 방울 떨어졌다.
‘한계가 오고 있구나.’
손등으로 대충 코피를 닦아내며 비린 맛을 삼켜냈다.
이모아의 몸은 곧 깨질 것처럼 고통으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흑옥을 이용해 억지로 힘을 증폭시키고, 채울 새도 없이 몰아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왜 다시 일어나는 거지?】
그것이 물었다.
【알 수가 없구나】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건 혼에 새겨진 우매함이란 말인가】
【내 손이 어찌 이런 것을…… 】
한탄하는 목소리가 흐려졌다.
하지만 나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섰다.
경쾌하게 딴 물약들을 몸에 퍼붓고, 꿀꺽꿀꺽 삼켜냈다.
그래봤자 바닥까지 떨어진 마나에는 기별도 안 가는 효과였지만, 상관없었다.
“덤벼.”
객기와 오만이라고 해도 좋았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괜한 시간 낭비에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고 모두가 비웃어도 언제나 괜찮았다.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래서 일어서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고인물의 조건을 평균 이상의 플레이 타임.
장비며 레벨의 높은 등급이나 특정 보스를 때려잡을 수 있는 재능이라고 내걸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고인물은 원래 오기로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눈앞에 있는데.
꼭 손에 잡힐 것 같은데,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걸 위해 쏟아부은 노력, 연구,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서 포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가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멍청할 만큼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멍청이란 소리에 화를 안 내는 거야.”
창조자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곱게 포기할 줄 알았으면 여기까지 안 왔어.”
손날 끝으로 터져 나오는 빛을 내질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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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창조자’를 공격해라!
― 분류 : 돌발
* 유효한 타격 시에만 MISSION이 완료됩니다.
보상 – 1단계 보호막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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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돌발 미션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세계의 기적도, 우연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모아.’
그 아이가 벌벌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