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콩짚 날개는 오직 우투리 차원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설화 아이템이었다.
사실 차원에 배치가 됐다고 알게 된 순간부터, 걱정보다 먼저 떠오른 아이템.
그걸 구하러 가면 되겠구나 계획했던 아이템이었다.
콩짚 날개는 첫 착용 시 민첩 숙련치를 증가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더불어 장착한 순간 바닥에서 3cm 정도 떨어져 둥둥 날아다니게 해주는 부유 이펙트도 있었다.
사실, 날아다니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좀 필요 없긴 한데…….
‘재밌어 보이긴 해.’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이 설화 차원에 들어온 처음부터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니들이 원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주지 않겠다.’
눈에 뻔히 보이는 함정에 빠져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일어나는 윤채희.
그걸 보여주려고 했다.
어차피 민첩도 딸렸겠다.
차원 관리자로 채본 끄나풀 한 명이 붙을 건 알고 있었으니 나름 엿도 맥이고.
나는 강해지고.
일석이조의 계획이었단 말이다.
…… 그게 이런 식으로 틀어질 줄은 몰랐지만.
“마나 파도!!”
파앙!
빛이 터지며 반경 안에 있는 마수 떼가 모두 밀려났다.
아까도 만났던 소머리 병사들은 물론이고, 이번엔 말대가리 병사, 닭대가리 병사까지 모두 추가되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마수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있는 이 현장.
바로.
‘외나무다리 위.’
콩짚 날개를 얻으러 가기 위해 꼭 지나가야 하는, 난간도 없는 절벽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날카로운 창이 옆구리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유연하게 움직임을 파악해 피하면 또 그다음은 눈.
그다음은 다리를 향해 칼, 창, 도끼들이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의 우락부락한 동물 팔다리가 눈앞에서 움직였다.
“아아악!!”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며 지팡이를 휘둘러댔다.
마나 파도 덕분에 몇몇 마수들이 절벽 밑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내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장면이었다.
나는 점점 다리의 끝으로 떠밀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 대 다수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광역기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불평할 시간은 여기서 끝.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해내야 한다.
일단, 수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마나 파도로 전진하면서 주변에 있는 놈들은 떨구고, 가까이에서 달려드는 놈들은 빛무리로…….
이론적으로 착착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던 그 순간.
“어?”
균형을 잃은 몸이 기우뚱,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빳빳이 발을 붙이고 서 있던 내 탓은 아니었다.
너무 많은 마수가 몰린 탓에 무게 중심을 잃은 다리가 그대로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아니.
‘뒤집힌다.’
고개를 쳐들지 않는 이상 보일 리 없는 구름 낀 하늘이 시야에 가득 찼다.
“아아아악!”
소리치며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
풍차처럼 휘두른 팔로 겨우겨우 판자 하나를 붙들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다리 위에 있던 마수들은 거의 다 튕겨져 나갔다.
비처럼 쏟아지는 동물 병사들을 보며 뒷목이 식은땀으로 척척했다.
저 낙사 반열에 참여할 수 없다.
그 일념 하나로 손끝에 온 힘을 다 줬다.
허공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몸이 아찔했다.
여기서 판자를 놓치면.
‘그냥 끝이다.’
그러나 한 손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달리 붙잡을 곳도 없어 손마디가 점차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설상가상.
다리 끝쪽에서 또다시 마수 몇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저놈들이 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해 창질이라도 한 번 한다면…….
‘하늘이시여.’
나는 이번에야말로 조금 울고 싶어졌다.
마수들이 달려오는 진동이 손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게 끔찍했다.
이승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카운트다운 같았다.
툭. 툭. 툭.
판자를 붙잡은 손가락이 떠밀렸다.
이제 정말 한마디도 남지 않은 힘으로, 안간힘을 써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타앙! 탕탕!
멀리서 기적처럼 총소리가 들렸다.
마수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정아성이었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거든요!?”
지금은 존심이고 뭐고 세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놈에게 소리쳤다.
정아성은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나를 발견했는지, 눈이 마주치곤 무표정하게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살았구나.
안도감에 눈물까지 고일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지금의 사태를 견딜 수 없는, 아주 엷고 물렁한 새가슴이 존재한다고.
벌벌 떨리는 고개로 코앞까지 다가온 정아성을 올려다봤다.
놈은 싸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
그저 그렇게 내 위에 서 있을 뿐.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 감사합니다?”
미리 인사를 받고 싶어서 그러나, 싶어 고마움을 표했다.
여기서 올려주기만 한다면 감사가 뭐야.
열 번 정도는 싸가지없어도 참아줄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정아성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았다.
빨갛게 피가 몰린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죄송한데 제가 진심으로 떨어질 거 같아서 좀 잡아주실래요?”
얼른 구해주지 않고 뭐하냐고, 욕을 기관총처럼 쏴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예의 있게 부탁했다.
지금 내 목숨 줄을 잡은 쪽은 저 쪽이다.
상냥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번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는지, 정아성이 곧 쭈그려 앉아 내 팔로 손을 뻗었다.
이제 됐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톡.
정아성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판자에서 떨어트렸다.
겨우 균형을 잡고 있던 몸뚱이가 허공으로 떨어졌다.
마치 놀이기구라도 탄 듯한 무중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점점 멀어지는 정아성의 실루엣을 쳐다봤다.
이럴 거 같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럴 거 같았다고.
그래도 사람의 양심과 도리라는 게 있으니까, 절벽에서는 구해주리라 미약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야, 이 싸이코패스 새끼야아아아악 ̄!!”
내 목소리가 절벽을 타고 점점 멀어졌다.
어떤 장치도 없이 바닥으로 수직 하강.
나는 절벽 끝으로, 그대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
“응?”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시감에 박주철이 반쯤 몸을 일으켰다.
숨소리도 죽인 채 주변 기척을 살폈지만.
“잘못 들었나…….”
시무룩하게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에 혼자 남겨진 지 어느덧 두 시간 이상이 지났다.
구워놨던 고기는 배가 불러 다 먹지도 못한 채로 널어놓았고, 하늘도 점점 어두컴컴해졌다.
처음 한 시간은 사슴 마수가 나온다고 해서 바짝 긴장하며 기다렸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네.”
타닥타닥.
풀 타는 소리만 고요히 들릴 뿐이었다.
“확씨, 그냥 돌아다녀?”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박주철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도 아주 잠깐일 뿐.
그는 곧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모아가 한 부탁이니 거절할 수는 없었다.
흐. 흐흐. 생각만 해도 음흉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모아.
이름 석 자만 제목에 달랑 적어도 훌륭한 어그로가 끌릴 화제의 인물.
잘만 하면 화랑이랑 어떻게 엮여볼 지도 모르고, 중요한 일을 해내줘서 고맙다며 인터뷰라도 한 번 응해줄지 모를 일이었다.
고분고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모두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선발전 이후, 이모아는 모든 언론의 취재를 거절하고 ‘무응답’ 속으로 숨었다.
그게 더 상상의 여지를 자극해 정작 사람들에게 장작을 던져주는 일이라는 걸 모르고.
먹금이 통하는 건 대중성이 있다, 없다 하는 B급 인생들의 이야기다.
이모아는 그런 레벨이 아니었다.
무슨 정보라도 듣는 순간 인생 역전.
구독자 수 폭증은 따 놓은 당상.
안 그래도 이모아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은 수준인데.
차원 안에서 같이 있었던 썰만 풀어도 얼마나 짭짤할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게다가 이미 핸드폰에 대한 빚이 있으니 더 수월할 것이다.
설화 차원에 배치된 것도 좋은 먹잇감이다 생각했는데, 그 안에 더 큰 황금 대어가 있었으니.
“그렇게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아.”
잔디 위로 풀썩 누운 박주철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또다시 적막하고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들었다.
박주철은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 작아진 불 위로 풀떼기 몇 개를 뜯어 던져주고, 일어나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걷기 시작했다.
빽빽한 참나무들을 지나 더 깊은 숲속으로 진입했다.
한참을 걷다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엔 잘 정리된 고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줄지어 자라난 작은 콩나무들.
푸른 이파리에 윤기가 흘렀다.
이모아가 손도 대지 말라던, 바로 그 콩밭이었다.
“흐음…….”
박주철은 그 앞에 쭈그려 앉아 무릎 위로 턱을 괴었다.
실은, 주변을 알아야 대비를 할 수 있답시고 순찰하다가 한참 전에 발견한 곳이었다.
아까도 홀린 듯이 콩잎들을 바라보다가 뺨을 치고 돌아갔는데, 툭툭 벌어진 콩 껍질들을 보니 자꾸만 군침이 돌았다.
원래 사람 심리가 참 희한한 게.
그냥 있으면 별생각 없는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저거 따악, 열어다 불에 구워 먹으면 진짜 고소하고 맛있는데…….
간 안 해도 앉은 자리에서 콩 백 개는 먹을 수 있는데…….
“…… 바닥에 떨어진 콩 몇 개만 주워 갈까.”
마음의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콩 절대 건드리지 마요!’ 심각한 얼굴로 신신당부하던 이모아의 얼굴이 생각났지만 잠시뿐이었다.
직접 콩나무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떨어진 낱알 몇 개 주워가겠다는 건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박주철은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주위 눈치를 한 번 살폈다.
진짜 몇 개만.
바닥에 떨어진 콩 낱알로 손을 뻗었다.
***
“푸하악!”
물속에서 구르던 몸을 간신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정신도 못 차리고 온 얼굴의 구멍으로 물들을 쏟아냈다.
매캐한 감각에 죽을 것 같았다.
이걸,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정아성 진짜 이 미친 새끼.”
분노에 찬 주먹으로 수면 위를 내리쳤다.
쎄하다, 쎄하다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리 위에선 끝도 보이지 않던 절벽 아래는 넓고 깊은 강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떠내려가면서 내가 떨어트린 것 같은 동물병사들도 몇 마주쳤다.
그보다 더 최악인 건.
“저길 언제 다시 올라가, X파알!”
안개에 가려 원래 있던 곳이 보이지도 않았다.
내 기필코 저 새끼를 조지고 말겠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일단 가까운 뭍을 향해 헤엄쳤다.
지금 상태로는 여기가 어디쯤인지 위치를 파악하는 게 가장 시급했다.
물에 젖어 무거운 옷들을 짜며 풀길 사이를 헤쳤다.
점점 더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완전히 날이 저물기 전에 뭔가 발견하지 않으면…….
“엥?”
탄성이 터진 건 그때였다.
나무들 사이로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집 모양 하나.
노란 불빛이 멀리서도 새어 나왔다.
발걸음을 점점 더 빨리 했다.
우투리 설화에서 집이라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곳이 맞다면.
‘우투리 어머니의 집.’
나는 뜻밖의 장소에 도달하고 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