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
8화
“다녀왔습니…….”
“아가씨이이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길드에서 구서복이 나를 반겼다.
물론 기쁜 느낌은 아니고, 거의 실신할 것 같은 모양새로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퍼스널 스페이스도 없는지 바짝 다가오는 얼굴을 밀어냈다.
“저 피곤해요. 나중에.”
“피곤이고 자시고, 지금 그게 중요해요? 어디 갔다 오셨어요. 말도 안 하고 어디로 쏙 튀셨던 거냐구요!”
“멀쩡히 잘 돌아왔으면 됐지 뭘 그래요.”
구서복은 말문이 막혀 현관 한복판에 멈춰 섰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통수로 들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사춘기인가……?”
그에 보답하듯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천 원짜리 알바 치고는 너무 힘든 거 아니냐.’
오늘 파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망팟.
망한 팀플 그 자체였다.
‘현수 님? 뭐 하세요!?’
‘아, 제, 제가, 풀독이 심해서…….’
‘죄송한데, 제 스킬은 플럼피들이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수이 님 계열이 어떻게 되세요? 예? 대지요?…… 예상 속성 안 보고 신청하셨어요?’
유민호가 있어서 다행이지.
내가 저 사람들을 데리고 포탈을 깼다가는 몬스터한테 죽는 것 보다 살인이 먼저 날 뻔했다.
어중이떠중이가 따로 없었다.
결국 뒤로 빠져 은근슬쩍 버스나 타보려던 내 계획은 철저히 실패했다.
무딘 감각으로 식물종 D급 마수, 플럼피를 열심히도 불태우고 왔다.
한마디로 뭣도 아닌 내가 버스를 태워줬다, 이 말이다.
‘진짜 개노답 오형제였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중간에는 차라리 검을 훔쳐올 걸 그랬나.
잠깐 후회도 했다.
걔는 그냥 썰면 썰리기라도 하지, 마나 전투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는 이모아의 몸뚱이가 문제였다.
하나 있는 스킬을 쓰기 위해 발동을 걸면 불길이 허공에 뭉쳐 지려다가도 흩어지기 일쑤였다.
그 후에는 역으로 돌아온 마나 때문에 가벼운 탈진 증세가 몰려오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도 배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것 같고, 손이 달달 떨릴 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급체라도 한 것처럼 몸이 저리더라니까.
마나를 맘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일은 처음이라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게임에선 그냥 키보드만 몇 개 누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고 그러는데…….
“되는 일이 없네.”
처음이란 건 원래 다 그렇다지만.
온몸을 두드리는 근육통과 함께 남은 건 전리품으로 떠넘겨진 플럼피의 잎사귀 몇 장.
내 거친 생각과 소소한 용돈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킁킁. 손에서 아직 피톤치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우울함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려 애썼다.
‘아직 다이아 안 쓰길 잘했어.’
새 아이템을 사보고 싶은 충동을 참고 참은 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이아가 이렇게 귀한 줄 알았더라면 사용했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오뚜기처럼 몸을 세웠다.
실의의 빠질 시간 같은 건 사치다.
실패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주진 않았을 거란 말이야.’
가진 것 중에 유일하게 오리무중인 힌트.
의 배너를 심각하게 노려보았다.
왜 하필 오늘도, 모레도, 1주일 뒤도 아니고 내일의 신문일까?
모든 실마리들이 어떤 연결 고리를 쏙 빼놓은 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머리가 뿌옇게 물들었다.
예정된 서사의 변화. 예정된…….
“설마.”
어떤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사라졌다.
【‘내일의 신문’을 구입하셨습니다.】
300 다이아쯤은 가설을 확인하기에 아깝지 않다.
신중히, 그리고 아주 샅샅이 기사들을 살폈다.
【헌터 일보 2XXX/08/06】
― 강남구 한복판에 나타난 인스턴스 배리어, 軍 피해자수 추정…… ‘최소 천여 명 이상’
― 헌터장 거래 수수료 또 상승……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 우려
― 도심 속 아찔한 소멸 포탈 관리 현장…… 안전 대책은 허술
…….
…….
적당한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안 그래도 쪼들리는 판에 소중한 다이아를 날렸나 싶어 낭패감에 빠질 무렵.
‘어? 얘…….’
사건·사고란 지면 구석에 깨알 같이 적힌 기사와 증명사진을 발견했다.
― 【쌍문 스터디카페 소멸 포탈에 휘말린 20대 남성, 긴급 구출 이송】
평범하지만 어딘가 음울하게 생긴 얼굴이 낯익은 인상이었다.
분명 아는 앤데, 본 적 있는 앤데, 누구더라…… 강 씨 중에 내가 아는 누가…….
아.
‘강민희 남동생 아니야?’
유레카.
강민희는 서울에서 꽤 유명세를 끄는 길드, 의 간부 중 하나였다.
이 사고로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는 설정은 들은 적 있었다.
하필이면 강남 인스턴스 배리어와 동일한 시간대에 터져 모든 헌터 인원이 그쪽으로 쏠린 판에 생긴 포탈이었다.
구출대가 늦게 투입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이 간당간당하다고 했었나.
오래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던 이야기도 NPC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졌었지.
운도 참 나쁘다.
…… 별 관심은 없었지만.
‘사람 하나 멀쩡히 돌려보내면 그것도 스토리 변화 아니겠냐.’
게다가 잘만 하면 이건 백골 간부에게 빚을 만들어 놓을 기회였다.
안면이라도 터놓으면 앞으로의 진행에 협력할 순간이 생기던지, 이용 해먹을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해 보자.’
결정과 동시에 비장하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
철컹철컹! 철컹철컹철컹!
“제발, 제발…….”
남자는 거의 패닉에 잠긴 목소리로 거칠게 출입문을 흔들어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깥은 암흑에 물든 것처럼 새까맣고 거대한 기름 찌꺼기에 잠긴 것처럼 질척이고 꿀렁거렸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48분. 꿈이 아니다. 아직 바깥이 어두워질 시간, 역시.
[누나 나 여기 은혜스카 1층인데 배리어 생겨서 갇혔어 ! 15:48] [아 제발 ! 15:48] [ㄴ누나 ! 15:49] [누나 나 여기 은혜스카 1층인데 배리어 생겨서 갇혔어 -엄마딸] [수신 불가 지역입니다.]“아…….”
덜덜 떨리는 손이 결국 스마트폰을 놓친다.
지긋지긋하게, 모서리 끝이 닳도록 읽었던 각성 활용능력 교재의 문장들이 이 순간에 떠올랐다.
「포탈 안에서는 통신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첨부하자면, ‘포탈 진입과 동시에 채널 현상으로 다른 차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 말하자면 여긴 지금 다른 차원이었다.
다른 지형지물의 변형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건물 자체가 포탈화(化) 되었다고 보아야 했다.
한마디로.
‘포탈이 이 건물을 집어삼킨 거야.’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거구나.
Q. 더 떨어질 점수가 있을까? A. 있다.
를 몸소 보여준 포탈분석 부문 재수생 강민형은 오늘 미적거리며 공부를 하러 나온 것을 천 번 만 번 후회했다.
지하를 뚫다 못해 내핵까지 닿아 버린 6모 평가점수를 어머니께 들킨 후로 영 집 안에 있기 껄끄러웠다.
‘누나가 대충 합격만 하면 백골에 꽂아준다고 했어!’를 시전하다 등짝만 얻어맞고 1년 권을 끊어놨던 스터디카페에 출근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텅 빈 로비를 보니 등줄기가 오싹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독서실 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말고 누군가 더 휘말렸을까?
꺼진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보며 15층짜리 건물을 올라가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마수라도 맞닥뜨리면.’
애당초 전지전능하신 각성주께서 내려주신 전용 스킬이 [구성 감정] 임에 따라, 운명에 순응해 전투 대신 공부 쪽으로 진로를 잡은 각성자였다.
그러므로 전투에 대해선 무지.
슬렁슬렁 아는 지식은 여기서 네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길잡이일 뿐이었다.
결국, 강민형은 기다려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구출대가 올 때까지.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살려주세…….”
콰앙!!!
책장 넘어지는 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바짝 긴장한 강민형은 자판기 옆 구석으로 숨긴 몸을 더더욱 쪼그라트렸다.
뭔가 온다. 오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확실히 느껴졌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들키지 말아야 해.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 채워 구역질이 치밀 것 같았다.
귀를 손으로 꾹 막고 눈을 감아 버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이곳에서.
“저기요.”
“아악!!!!!”
커다란 비명에 인상을 팍 찌푸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휘둥그런 눈으로 바들바들 떠는 남자를 발견한 윤채희가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뭐냐. 이 겁쟁이는.
***
“저기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분명 여기서 죽을 거야, 여기서 죽…….”
“아니, 저기요.”
“엄마, 아빠, 불효자는 이렇게 갑니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난…….”
“아, 진짜!!”
버럭 소리를 치자 화들짝 놀란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끝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던 두려움과 울음이 가득 찬 눈이 나를 향했다.
여기서 화를 내면 더 역효과가 들 뿐이다.
침착하게, 젠틀하게.
“제가 지켜 드린다니까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이게 도대체 몇 분 째야.
놈은 거의 마수한테 ‘이리 와서 나 좀 죽여주쇼’ 하는 것처럼 한 자리에 못 박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던전형 포탈이었으면 벌써 들키고도 한참 남을 시간이었다.
최선을 다해 비즈니스 미소를 짓는 나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강민형이 중얼거렸다.
“E급이 뭘 해요.”
이 새끼 진짜 그냥 두고 가?
분노가 솟구쳤다.
나를 보고 살려달라 죽어라 매달릴 땐 언제고.
표면적으로 등급 낮은 헌터라는 걸 알자마자 강민형은 푸쉬식 꺼져 다시 구석탱이에 처박혔다.
이해는 간다.
현재 포탈의 등급은 C-.
소멸치고는 높은 난이도인 것도 그렇지만, 더 나아가 파티의 상태가 노답이었다.
평생 공부만 해온 범생이 하나와 갓 태어난 수준의 헌터 조합이라…….
그렇지만. 그치만!
‘나 윤채희라고.’
상태창에 빨리빨리 정보 업데이트가 잘 안 돼서 그렇지.
염화로 얻은 숙련도까지 치면 난 지금 적어도 D급 헌터는 됐다.
심지어 포탈에 대한 대강의 정보도 이미 파악했다.
나타날 마수는 무형계 기물형.
일반적인 물건에 생명이 깃들어 조종하는 마수종이었다.
기물형 마수들은 형태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재생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점을 파악해서 완전히 조져야 한다는 뜻인데, 그 정도야 뭐.
‘껌이지.’
실제로 오는 동안에도 징하게 들러붙은 마수들을 한 마리씩 참수해 온 참이었다.
모든 마수를 처치하고 배리어를 빠져나가는 건 좀 많은 시간을 잡아야겠지만, 구출대가 올 때까진 버틸 수 있을 만한 레벨이라는 소리였다.
‘니가 이렇게 방해만 안 하면.’
중간에 좀 망치더라도 강민형이 응급으로 이송된 시간이 6시쯤이었으니 약 2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다만 문제는.
‘변동.’
【예정된 서사를 벗어나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포탈 재분류 중…… 】
【상태 및 세부 사항이 조정됩니다.】
【은경빌딩 1F 남은 시간…… 00:3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