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Eyes Under Black Feet RAW novel - chapter 161
“이미 내 손으로 둘을 죽였으니 자비라는 것을 좀 보여 주려고.”
“반스는 차라리 캘던에서 죽길 바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공감했다. 리오 상인 길드의 길드장인 그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제와 손잡고 카르낙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반스는 광장에 묶여 죽을 때까지 돌팔매질을 당할 것이다. 그렇게 수치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캘던의 단두대에 오르는 것이 더 나으리라.
“그러니 자비지, 릴리. 리오의 자유민들에게 하사하는 나의 자비.”
리오의 자유민들은 카르낙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자유를 보장해 준 유일한 왕이 아닌가. 그를 끌어내리고 다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귀족들의 소모품이 되기는 곧 죽어도 싫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 반스를 아주 잔인하게 처단하리라. 그렇게 처단하여 다시 카르낙의 마음을 얻으려 할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다.
“폐하의 손에 굳이 피를 더 묻히지 않고 얻고자 하는 것은 확실히 얻으시겠군요. 정말 현명하십니다, 폐하.”
“칼이라고 불러.”
“…….”
칼?
“아내에게까지 딱딱한 호칭을 듣고 싶진 않아. 그러니 칼이라고 불러. 내가 널 릴리라 부르듯이.”
애칭임이 분명하다. 에이가는 한 번도 카르낙을 칼이라 부른 적이 없을 것이다. 로로는 어떨까. 카르낙이 왕좌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카르낙을 칼이라 불렀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지금도 종종 그는 카르낙을 칼이라고 부를까. 단둘이 있을 때가 되면 그럴까.
그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내가 그를 애칭으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일까. 어쩐지 목이 타고 입술이 마르는 것 같아 릴리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입을 뗐다.
“…칼.”
릴리는 어색한 듯 그의 이름을 한 번 불러 보았다. 발음하기 편하고 내뱉기도 쉬웠다. 다만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 분명 언젠가 익숙해질 거다.
제 이름을 부르는 릴리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명확하고 다정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듣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그립고 아련한 기분이 되었다.
“칼, 언젠가 우리가 부부가 된 첫날 밤이 되면 제가 당신에게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지 저에게 묻겠다 하셨지요?”
사전 경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것이 그녀의 특기다. 준비할 틈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오니 매번 당황하는 것은 카르낙이었다. 그는 포도주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려 코로 뿜을 뻔했지만 참았다. 속으로 기침을 삼키느라 입가에 흐른 것은 손등으로 무심히 훔쳐 냈다.
“쭉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되면 꼭 그 질문에 답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그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방패 같은 것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할지 자신도 모르겠으니 네가 선을 그어 달란 말이었다. 부디 나약하고 어리석은 짐승인 저에게서 먼저 물러나 달란 한심한 청원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대답을 듣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를 좀 헤아려 달란 것이었다. 본디 너는 나보다 늘 영특했으니까.
“그렇게 서둘러 대답할 필요는 없어.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게다가 아직 묻지도 않았잖아. 그러니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이제 와 그것을 들먹이며 답해 주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기에 방은 너무 좁았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카르낙은 분위기를 바꾸어 볼 요량으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른 날들과 다르지 않은 밤인 듯 난롯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마치 전우처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여.
릴리는 손에 들린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저는 가능하면….”
그러고는 약간 뜸을 들였다. 그쪽은 찰나겠지만 이쪽은 억겁의 시간이다. 카르낙은 서둘러 제 빈 잔을 채워 한 번 더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가능하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드리고 싶습니다.”
푸우웁, 하고 카르낙은 결국 사레가 들려 마시던 것을 뿜었다. 당혹스러움에 얼굴에 피가 몰리는데 릴리는 얌전히 눈꺼풀만 내린 채 제 앞에서 제 남편이 말라 죽어 가건 폭탄을 맞아 터져 가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서 있었다.
파니릴리는 대부분 순종적이고 침착하나 어느 순간 뒤통수를 치듯 그를 도발한다. 얌전하고 정숙하다 생각할 만하면 대범한 소리를 지껄이고, 지나치게 조용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생각하면 어디선가 파안대소를 하고 있다. 대체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원래 여인들은 이런가. 이렇게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여자인가.
“아무것도 몰라 무턱대고 뱉는 말이라 생각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보았습니다. 본래 궁금한 것은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그래서 로리아나에게 물었지. 사내가 여인에게 기쁨을 준다면 반대로 여인이 사내에게 기쁨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로리아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세일린은 정말로 그런 짓을 하느냐며 연신 되묻곤 했지만 릴리는 무척 진지한 태도로 열중했다. 대체로 그려 볼 수가 없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모든 것을 꼼꼼히 듣긴 하였다. 고맙게도 로리아나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기들을 선뜻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자신의 장사 밑천일 텐데 말이다.
릴리는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용기를 내려면 술기운이 조금 더 필요했다. 잔을 싹 비운 뒤 릴리는 테이블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 카르낙의 앞에 섰다. 그는 몸을 조금 뒤로 물린 자세로 앉아 파니릴리를 올려다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릴리는 로리아나의 말을 되새김질했다.
“우선, 남자의 가슴팍을 천천히 어루만지세요. 아주 부드럽게요.”
가슴팍을 부드럽게.
“중요한 건 시선이에요. 사내들은 여자가 자신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싫어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해요.”
봉사하는 느낌. 봉사하는 느낌을 주려면 일단 그보다 아래에서 시선을 맞춰야겠지. 릴리는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붉은 카펫 위에 하얀 수련이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였다. 카르낙은 릴리가 뭘 하려는 것인지 몰라 연거푸 눈만 깜빡였다. 릴리는 먼저 자신의 왕관을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카르낙이 그녀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제가 폐하의 왕관을 벗겨도 될는지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대범한 모양새가 궁금하여 카르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분명 술기운이 돌아 허락했노라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릴리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머리 위에서 묵직한 왕관을 벗겨 냈다. 카르낙은 가까이 다가온 파니릴리의 얼굴에 골몰하느라 넋을 놓았다.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는 진중한 회색 눈동자, 핑크빛으로 물든 뺨, 보기 좋은 콧방울, 새초롬하고 탐스러운 입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하얗고 무결한 피부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취했네. 진짜 취했어. 틀림없다. 취한 거다.
그는 저도 모르게 의자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릴리는 왕관을 자신의 것 옆에 나란히 올려놓고 헝클어진 카르낙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쓸어내렸다. 카르낙의 눈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릴리는 거칠고 풍성한 카르낙의 머릿결을 따라 끝까지 내려왔다.
그의 머리카락은 가슴팍 언저리에서 끝이 났다. 딱 좋은 지점이었다. 릴리의 손은 자연스레 그의 가슴으로 옮겨 갔다. 튜닉 위로도 그의 따듯한 온기와 단단한 가슴이 느껴졌다. 세차게 뛰는 심장 고동 소리도 그녀의 손바닥이 진동할 만큼 강렬했다.
봉사한다는 느낌. 봉사…. 릴리는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단단한 근육을 쓰다듬었다. 카르낙의 가슴팍이 눈에 띄게 들썩였지만 릴리는 로리아나에게 배운 것에 열중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그다음엔 허리에 찬 띠를 풀라고 했던가. 릴리의 시선은 절로 그의 배꼽으로 향했다. 검집이 달린 두꺼운 가죽 혁대가 제법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릴리는 기억나는 대로 행동을 취했다. 손을 내려 그의 혁대를 쥔 것이다.
카르낙이 헉, 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릴리는 시선을 들었다. 카르낙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뭐… 뭐….”
뭘 하는 거냐고 묻고 싶은데 제대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릴리는 여전히 무구하고 성실한 눈을 하고 지나치게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제가 배운 것이 있습니다.”
배워? 뭘?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노력해 보겠습니다.”
뭐… 뭐, 뭐, 뭐, 뭐를?
카르낙이 의아함에 정신을 놓자 릴리는 각오를 다지며 그의 혁대를 풀기 시작했다. 카르낙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릴리의 손을 붙들었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말해야 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마냥 아득하기만 했다.
지금껏 누구도 그의 가슴팍을 어루만진 적이 없다.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린 적도 없다. 하물며 그의 허리띠에 손을 댄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무도 없다. 거기에서 오는 생경함이 있었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들은 몹시도 충격적이어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릴리는 자꾸 단계를 높여 가고 있었다.
“자… 잠깐. 잠깐 말… 말미가 필요하다.”
멈춰 볼 요량으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러나 영 허튼소리는 아니다. 정말 시간이 필요했다. 릴리가 이렇게 나올 줄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조만간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다.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릴리는 그에게서 조금 물러났다. 됐어. 간신히 멈췄다. 열이 나고 입술이 말랐다. 카르낙은 다시 잔을 가득 채워 꿀꺽꿀꺽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조금만 더 취하자. 조금만 더 취하면 심장이 좀 덜 뛰겠지. 그러면 좀 덜 머저리 같으리라. 그래. 일단 한잔하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다시. 다시 분위기를 잡고 이번엔 좀 더 용기를 내서 내가 먼저….
“푸우우우우우우웁.”
그러나 카르낙은 곁눈질한 릴리가 옷을 벗고 있자 마시던 것을 죄다 뿜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것보다 뿜어낸 것이 더욱 많았다.
“괜찮으세요?”
릴리가 멀뚱거리며 물었다. 카르낙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 내며 심히 경악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옷을 벗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아니.
“왜?”
“폐하의 수고를 조금 덜어 드릴까 하여….”
하긴 첫날밤 신부의 살결을 보는 것은 남편의 특권이랬지. 그러면 역시 직접 벗기는 편이 더 기쁘려나?
“…그만둘까요?”
“…….”
카르낙은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얇은 슈미즈 한 겹만 남았잖아. 그것만 벗으면 알몸이라고. 이미 실루엣은 다 보인단 말이다! 슈미즈 자락 아래로 릴리의 발목과 앙증맞은 발가락들이 보였다. 불순한 상상이 머릿속을 난잡하게 뒤섞고 있었다.
진정을 시켜도 모자랄 판에 왜 자꾸 먹음직스러운 것을 던져 주나. 사람이 미치면 어떻게 되나 보려고 저러는 건가.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 줄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일단 입을 뗐다. 하지만 뭐라고 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자꾸만 눈앞에 그녀의 슈미즈가 팔랑거린다. 알몸. 저것만 벗으면 알몸. 알몸. 알몸. 알몸! 아악! 내적 비명을 지르며 동시에 카르낙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기세에 놀라 릴리의 눈이 등잔만 하게 커졌다. 카르낙은 엄청난 기세로 허리띠를 풀었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하반신이 매우 부풀었으므로 갑갑함을 풀어 보려는 동시에 제 앞섶을 조금은 가려 볼 요량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어나 혁대를 풀어 던지고 나니 다시 앉기도 힘들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어떻게 해도 녹슨 쇠처럼 삐걱거렸다. 그래서 릴리가 천천히 다가와 오만 향기를 풍기는데도 뒤로 물러서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카르낙은 가쁘게 숨을 고르며 얇은 슈미즈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릴리의 젖가슴에 시선을 주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부풀었다가 내려앉는 모습이 탐스러웠다.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 번 만져 보고 싶어. 만지고 한 번 움켜쥐어 보고 싶다. 하고 싶다. 손이 근질근질하다. 아무리 힘껏 주먹을 말아 쥐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카르낙은 결국 덥석 그녀의 한쪽 젖가슴에 손을 올렸다. 릴리는 놀란 듯 입을 조금 벌렸으나 비명은 토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눈이 커다래졌다가 이내 얌전히 눈꺼풀을 내렸다. 볼에 붉은 홍조가 피었다.
뭐지. 싫지 않은 건가? 내가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데 괜찮은 건가? 카르낙은 손가락에 좀 더 힘을 주어 아주 약간 그녀의 가슴을 쥐어 보았다. 부드럽고 말캉거리고 따듯했다. 카르낙은 저도 모르게 낮은 숨을 토해 냈다. 이렇게 기분 좋은 감촉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카르낙은 반대편 가슴 위에도 손을 올렸다. 제 손안에 딱 맞았다. 종일 그 위에 손을 얹고 있으라면 얹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르낙은 젖가슴을 모두 움켜쥐고 리드미컬하게 주물렀다. 제 손 모양에 따라 부드러운 것이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누르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붙은 듯 손바닥에 착 달라붙는다. 그것을 만지고 있자니 흥분은 배가 되었다. 그래. 이젠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카르낙은 그녀의 목덜미를 감아 저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감촉을 즐겼다. 카르낙은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짓눌렀다. 충돌에 얼얼하여 릴리가 작게 신음을 뱉었다. 그러느라 입술이 벌어지고 더운 기운과 타액이 카르낙의 입술을 적셨다.
키스라는 것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해. 지금껏 여자랑 손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걸. 그러나 카르낙은 본능적으로 릴리의 입술을 빨았다. 혀로 그 도톰함을 맛보고 부드럽게 위아래 입술을 번갈아 가며 빨았다. 그 느낌이 지독하게 좋았다.
불덩이를 입 안에 머금은 것보다 더 뜨거웠다. 그러면서도 감미로워 귓불까지 열기가 번졌다. 이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카르낙은 릴리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고 재빨리 그 위에 몸을 겹쳤다. 다시금 손으로 릴리의 가슴을 움켜쥐고 허겁지겁 입술을 삼켰다. 릴리가 그의 어깨 어디쯤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신음했다.
흥건한 타액이 릴리의 입가를 타고 흘렀다. 카르낙은 혀로 그것을 핥았다. 단맛이 났다. 릴리가 한숨을 쉬며 반대편으로 살짝 얼굴을 돌렸다. 유려한 턱선과 목덜미가 보란 듯이 드러났다.
카르낙은 거기에 코를 묻었다. 물기 어린 꽃 같은 향이 났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솜털처럼 콧등을 간지럽혔다. 실크 같은 감촉에 배 속까지 저려 왔다. 카르낙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