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Eyes Under Black Feet RAW novel - chapter 177
“저는 캘던에 살고 있는 클레제 다미앵이라고 합니다! 저의 가문은 한때 많은 노예와 재산을 갖고 있었으나 폐하께서 왕좌에 오르신 후, 폐하께서 제정하신 칙령에 따라 데리고 있던 노예들에게 정당한 품삯을 지불하여 풀어 주었나이다! 거기에 어떠한 불만도, 억울함도 품지 않았다 감히 저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저희 가문은 폐하의 종으로서, 또 백성 중 한 사람으로서 언제나 성실하게 폐하의 뜻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귀족으로서 늘 타인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캘던의 모든 사람들이 알 것입니다!”
다미앵의 눈은 분노와 슬픔으로 붉게 충혈되었다.
“그런 저의 처와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 딸아이를….”
다미앵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부르르 떨다가 피를 토하듯 소리 높였다.
“짐승만도 못한 저자가… 겁간하고 살해하였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저를 죽였다면, 집에 남은 것이 딸과 아내가 아니라 저였다면 하고 매일 매시간 아마네스 님께 부디 과거를 되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다못해 누군가… 누군가 노략질을 하러 들어왔거든 가진 것은 모두… 모두 내놓고 다만 목숨이라도 부지하라고…. 그렇게 한마디라도 해 줄 수 있었으면….”
“…….”
사내의 비통한 하소연에 사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젖은 땅을 짚은 그의 투박한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카르낙은 덜덜 떨리는 다미앵의 굽은 어깨를 바라보았다. 흙과 물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었다. 그토록 괴로움을 토하는 다미앵을 바라보는 투로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인 양,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사흘 밤낮을… 저놈을 찾아다녔습니다.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고… 그러니 부디, 부디 저놈을 단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캘던의 신실한 시민으로서, 엘버그 왕국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폐하께 자비를 구합니다. 부디… 제 손으로 저놈을 죽이도록 해 주십시오.”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카르낙이 투로를 향해 물었다. 며칠간 씻지 않은 듯 그의 몸에선 냄새가 났고,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머리는 빗질도 하지 못한 짐승의 털처럼 너저분하게 얽혀 있었다. 사내는 누런 눈알을 굴려 카르낙을 쳐다보았다. 왕을 올려보는 눈에는 왕을 향한 존경도, 예의도, 겸손도, 또한 두려움이나 괴로움도 없었다. 모든 것에 달관한 것처럼 그저 무심히 입을 열었다.
“없다. 그런 것.”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대답에 핀이 조용히 제 검집을 잡았다. 여차하면 그것을 꺼내 놈의 목을 벨 작정이었다.
“이름이 없다.”
카르낙이 그의 대답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노예가 된 투로에게도 이름은 있다. 간신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투로들에게도 이름은 있었다. 그런데 이름조차 없다라.
“다른 이들은 너를 무어라 불렀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불렀다. 검둥이, 썩은 나무, 지렁이, 말똥, 아무렇게나 불렀다.”
“너는 살인마다! 살인마! 더러운 살인마!”
다미앵이 악을 쓰자 사내는 새까맣게 썩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저분한 얼굴에 듬성듬성 주름이 졌다.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는 미치광이 같으니! 너같이 세상을 더럽히는 추잡한 오물 덩어리는 죽어 없어져야 마땅하다!”
다미앵이 악을 쓰면 쓸수록 그의 웃음도 히스테릭해져 갔다. 핀은 그 모습에 실소했다. 정말로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다미앵이 제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었다.
“검을 다시 검집에 넣어 둬라, 다미앵.”
그것이 카르낙이 처음으로 다미앵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그리 피를 토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건만 저 살인마의 이름만을 물었을 뿐, 저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지도 그에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며 건네는 말이라고는 분에 이기지 못해 든 검을 내려놓으라니.
“놈을 죽여야 합니다, 폐하! 죽이게 해 주십시오! 놈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카르낙이 얕은 한숨을 내쉬며 핀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핀이 그의 손에 자신의 검을 들려 주었다. 카르낙이 검을 바로 쥐고 둘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왕이 나서자 다미앵은 검 끝을 내리고 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르낙의 그림자가 투로의 위에 드리웠다. 위압적인 모습에 모두 숨을 죽였다. 다미앵조차 순간 살기를 잊었다. 그러나 놈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광기에 젖은 탁한 눈동자를 들어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악, 놈에게 남은 것은 끝없는 악뿐인 것처럼.
카르낙은 검을 치켜들었다. 다미앵은 빛을 뿜어내는 그 선연하고 날카로운 단면을 응시했다. 드디어 살인마를 단죄할 때였다. 저 칼끝이 놈의 심장을 관통하고 도려낼 때였다.
높게 치켜든 카르낙의 검은 단번에 사선을 내리그었다. 쉬익,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찰나 모든 소음이 소멸하였다. 그 후 두 동강으로 갈라진 것은 이름 없는 살인마가 아니라 서글프게 일그러진 다미앵의 얼굴이었다.
울컥 피를 토하며 그의 몸은 두 쪽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낙하하였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근위대는 그것을 피하려 한 발 더 뒤로 물러섰다.
“…….”
이름 없는 투로의 얼굴은 그제야 굳었다. 비소도, 희열도, 광기도 일순 멎었다. 다미앵의 핏물을 그대로 뒤집어쓴 그는 넋이 나간 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다미앵의 시신을 바라보다 카르낙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대체 왜.
그러나 카르낙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핀에게 검을 돌려주며 더는 볼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듯 심드렁히 명령했다.
“놈을 풀어 줘라.”
“예, 폐하.”
근위병들이 달려들어 그의 포박을 풀기 시작했다. 왕은 군중의 사이를 가르며 멀어졌다. 핀이 제 망토 자락에다 검에 묻은 핏물을 한번 닦아 검집에 넣고 그의 뒤를 따랐다. 로리아나는 황망한 눈으로 왕의 뒷모습을 쫓는 투로의 얼굴을 쳐다보다 비틀비틀 왕을 따라갔다.
다미앵은 명망 있는 귀족이다. 그의 아내와 딸자식까지 투로의 손에 잃었으니 모두가 그 일에 공분하며 다미앵의 처지를 딱하게 여길 것이다. 한데… 왕은 그런 자를 죽였다. 죽어 마땅한 자는 살아서 두 발로 걸어 나가게 하고 정작 억울함에 땅을 치는 자를 죽였다.
처와 딸자식을 잃은… 부유하고 모범적인 귀족을…. 로리아나는 머리가 띵했다. 둔탁한 것에 얻어맞은 다음엔 날카로운 것이 제 살갗을 찌른 듯 온몸이 따끔하였다. 이제야 현실이 제대로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가 지금껏 누구를 상대하고 있었는지. 감히 다미앵에 관하여 말할 수가 없었다. 그를 죽인 것은 잘못된 일이고, 곧 캘던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될 것이라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제 앞에 걸어가고 있는 저 사내는 카르낙 발투만. 밑바닥에서 기어 나와 마침내 왕좌를 차지한 잔인하고 흉폭한 자. 이제야 무서워 온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그래, 이제야 제대로 그를 보게 된 것이다. 지금껏 멋대로 짖고 까불어도 살아남은 것은 로리아나 자신이 그 이름 없는 사내와 마찬가지로 투로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도, 혹은 그녀에게 인간적 호의를 느껴서도, 혹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지금껏 목숨줄이 붙어 있는 것이다.
찬물을 얻어맞은 듯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차마 그의 그림자조차 밟기 두려워 로리아나는 아주 멀찍이 그의 뒤를 따랐다. 성을 나설 때까지 로리아나가 고개를 들어 카르낙의 얼굴을 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릴리는 침대에 앉아 로리아나가 주고 간 케이스를 매만졌다. 머리맡에는 리쿠스가 가지고 온 약초가 타고 있었고, 세일린은 미지근하게 식은 물 위에 몇 번이고 뜨거운 물을 붓느라 주전자를 들고 벽난로와 작은 사이드 테이블을 분주히 오갔다.
향초의 덕인지 아니면 세일린이 만들어 내는 듣기 좋은 소음들 때문인지 릴리는 기분 좋은 노곤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엘버그로 온 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이토록 편안히.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아늑함 속에서 말이다. 제법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폐하께서 뜨거운 물과 보드라운 천을 준비해 두라 하셨는데… 어쩐지 좀 늦으시네요.”
세일린은 다시 난로 위에 철 주전자를 올리며 말했다. 얇은 두건 밖으로 삐져나온 잔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이제 그만 쉬는 게 어때요? 아침부터 한 번도 쉬지 않았잖아요. 그러다 병나겠어요.”
릴리의 걱정 어린 말에 세일린은 씩씩하게 이마를 훔치며 웃어 보였다.
“전 괜찮습니다, 전하. 다만 전하께서 어서 좋아지시길 바랄 뿐이에요.”
“죽을병도 아닌데 괜한 호들갑이에요. 며칠 쉬면 나아질 것인데요.”
“아주 작은 생채기도 저에겐 큰일입니다. 전하는 엘버그의 왕비님이시니 전하의 안위는 곧 엘버그의 안위이니까요.”
그것은 참 부담스럽네요, 세일린. 같은 말은 속으로 삼켰다. 까닭도 모른 채 끌려와 그저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만 낳아 주면 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역할엔 더 많은 의미가 담겼다. 때로는 방패가 되고, 때로는 날카로운 검이 되고, 또 때로는 엘버그 그 자체가 된다니. 자신의 이런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씩씩하게 웃는 세일린의 모습을 고맙고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세일린은 곧바로 몸을 숙였다. 몹시도 민첩한 몸놀림이어서 그보다 한참 후에야 릴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는 카르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칼.”
“미안.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
카르낙은 망토를 벗어 의자에 걸쳐두며 사과했다.
“다시 오실 줄 몰랐어요. 다시 오겠다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무슨 소리야. 일이 끝나면 난 무조건 돌아와. 할 일이 아무것도 없거나. 짬이 나도 마찬가지야. 당연하잖아. 그럼 내가 어디서 시간을 보낸단 말이야?”
그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듯 실소를 하고는 소매를 걷고 보드라운 천 뭉치를 들었다. 세일린은 때맞춰 물그릇에 더운물을 한 번 더 부었다. 뜨거운 증기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카르낙은 제 손등으로 물의 온도를 가늠해 본 후 천 뭉치를 물에 담그고 말했다.
“고마워, 세일린. 이제 나가 보아도 좋아.”
“네, 폐하.”
세일린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카르낙은 물에 젖은 천 뭉치를 꽉 짜고 반듯하게 접어 든 후 릴리의 몸을 덮은 공단 이불을 젖혔다. 하얀 슈미즈 아래 가녀린 허벅지와 무릎이 뽀얗게 드러났다.
카르낙은 침대맡에 앉아 그녀의 슈미즈를 말아 올리기 시작했다. 릴리는 그가 하는 것을 뻔히 바라보다 확신 없이 물었다.
“폐하께서 직접 하시게요?”
“그럼? 이걸 누가 하는데?”
그러자 오히려 카르낙이 반문했다. 그는 따끈한 천을 릴리의 허벅지 위에 눅진하게 누르며 말을 이었다.
“릴리, 네 허벅지는 내가 만질 수 있는 유일한 허벅지야.”
“…….”
“네 입술은 내가 입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입술이고, 네 피부는 내가 맛볼 수 있는 유일한 피부지.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난 그 점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야. 그러니 너도 가능한 내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이야기하면 기꺼이 뭐든지 주고 싶어진다. 카르낙 발투만이 이토록 다정한 사내였던가. 마냥 대하기 어려운, 처치하기 곤란한, 어떻게 해도 그 마음 한 자락 얻지 못할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의 아내가 되지 못했다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의 이런 모습은 그의 여자가 아니고는 볼 수 없으리라.
카르낙은 릴리의 허벅지를 뜨거운 수건으로 덮고 아주 부드럽고 정성스레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올라와 부르테와도 달랐다. 그들의 보살핌은 그녀에게 편안함과 아늑함은 주었어도 가슴을 뛰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카르낙이 그녀에게 베푸는 보살핌은 그녀의 가슴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눈앞의 남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직도… 아직도 저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세요?”
“…….”
카르낙은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모르겠어, 릴리. 그땐…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 몰랐거든. 그런데 지금은 알게 되었지. 그래서 잘 모르겠어. 하지만 언젠가 생기면… 그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다만 그로 인해 우리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럴 리가요.”
“난 여자아이가 좋아.”
“…….”
“이왕이면 여자아이가 많았으면 좋겠어.”
카르낙은 열심히 릴리의 허벅지를 누르며 대답했다. 그래야 그녀가 장자를 낳아 주었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을 떠나지 않으리라.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줄줄이 여자아이만 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릴리는 불현듯 카르낙의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뚜껑이 열린 붉은색 조개 케이스.
“이것을 좀 발라 주었으면 좋겠어요.”
카르낙은 그 흰색 고약과 릴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로리아나에게 이 고약을 어디에 발라야 하는지 들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 릴리도 분명 들었을 거다.
“…어….”
그래서 카르낙은 눈을 굴리며 망설였다. 초조한 기색의 카르낙과 다르게 릴리의 표정은 평온했다.
“어디에 발라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역시… 볼 수가 없는 곳이라.”
그렇지. 스스로는 볼 수가 없는 부분이지. 그러나 카르낙은 그녀의 은밀한 부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내 만지고 맛보고 보아 왔던 곳이니. 또한 주저하는 연유도 같았다. 보고 만지면 맛보고 싶어질 것이 분명한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세일린이나… 리쿠스에게….”
“이리 줘.”
그건 안 되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때가 아니라면 가급적, 릴리의 몸은 저 혼자 사유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말 그대로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누구도 안 된다.
릴리는 카르낙에게 고약을 건네주고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웠다. 무릎을 세우며 흘러 내려간 슈미즈 사이로 그녀의 하얀 속살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열기가 몰려 아래가 홧홧하였다.
“가끔은 릴리, 네가 나를 괴롭히려는 것 같아.”
“그럴 리가요. 전 언제나 폐하께 충직하답니다.”
그래, 바로 그런 태도가 말이야. 그렇게 천연덕스럽고 화사하게 웃는 것 말이야. 카르낙은 침대 위로 올라가 릴리의 무릎을 벌리고 그 사이에 앉았다. 뽀얀 둔덕 아래 예민한 살덩어리들이 부풀어 오르고 지나치게 붉은색을 띠었다. 카르낙은 여러 의미로 신음을 흘렸다. 첫째로는 안쓰러움, 둘째로는 놀라움. 셋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가 동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등등….
카르낙은 제 검지에 고약을 묻히고 가랑이 사이가 더 벌어지도록 팔뚝으로 릴리의 사타구니를 바깥쪽으로 밀어젖혔다. 붉은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고 손가락을 밀부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