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196
197. 덧없는 존재들 (1)
수개월 전.
쇄도 길드의 D급 헌터였던 도주현은 한 E급 자이언트 크랩 던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E급 헌터들을 데리고 해당 건의 공략 맡게 되었는데 공략 도중 발생한 던전 변이 현상에 휩쓸리게 되었다.
“끄아아아악!”
자이언트 크랩 성체의 집게발에 이끌려 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게 되었고,
콰직! 콰악!
간신히 자신의 발을 붙잡은 성체 꽃게의 배딱지를 쑤셔버리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허억! 이런 미친!”
그 우글거리는 꽃게의 지옥 속에서 도주현은 온 힘을 다해 굴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초대형 자이언트 크랩을 마주했다.
“저놈이…… 보스 몬스터?”
그것은 이 던전의 보스몬스터, ‘깊은 곳의 거주자’.
따악! 따아악!
집게발 소리가 어찌나 큰지 한 번 맞부딪칠 때마다 구덩이 여기저기에서 흙무더기가 쏟아지며 무너져내릴 정도였다.
그리고 도주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도주현은 가까스로 피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크윽!”
흡사 코끼리에게 맞서는 생쥐, 혹은 포크레인 앞에 맞선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일반적인 자이언트 크랩이 E급. 성체는 D급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D+에서 C급은 될듯한 위력.
그에 반해 도주현 자신은 만년 D급 헌터였다.
“젠장, 젠장!”
도망칠 곳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꽃게들뿐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이 있다면 다른 꽃게들은 그를 향해 덤벼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서열상 이 ‘깊은 곳의 거주자’의 먹이로써 다른 개체들이 건들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이 모두 D급의 경지를 뚫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나갈 때, 자신은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점차 날카로워져갔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저기에 자신에 대한 악평이 산재해있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업무는 그저 E급 이하의 잡 던전 처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헌터로써의 창창한 비전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뒤치다꺼리에 가까운 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한세훈 새끼만 아니었더라도…….”
사실 자신이 이렇게 가면 갈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리게 된 것도.
질척하고 냄새나는, 꽃게로 가득한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 것도.
모두 다 한세훈 때문이었다.
애초에 D급 그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한 능력이 일차적인 문제였지만, 한세훈이라는 일개 접수원 새끼가 매번 뒤에서 자신의 행태를 인사팀에 꼰 지르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쳐 자던 한세훈을 보며 심산이 뒤틀렸다.
충동적인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를 강제로 이번 던전의 공략에 참가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터져버린 던전 변이. 꽃게들에게 고립되어버린 파티.
그 순간, 도주현은 생각했다. 이 정도 사고가 터졌는데 내가 굳이 저 재수 없는 접수원 새끼를 비롯하여 아무것도 안 하면서 달달한 꿀이나 빨아먹으러 온 F급 프리랜서들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어째서!”
거대 꽃게 발이 바로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가까스로 백스텝을 밟으며 공격을 피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휩쓸려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따악! 따악! 따악!
‘깊은 곳의 거주자’가 게걸음으로 다가왔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빠른 속도였고, 옆으로 걷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이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이어 연속적인 거대 집게발의 공세가 마치 소나기 같은 플리커 잽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주현은 그에 지지 않고 맞섰다.
“크아아아아아!”
재빠른 공격과 더불어 딱딱한 갑피. 단순히 그의 검으로 저것에 맞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집게발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스파이크에 살갗이 스치고, 튕겨져 나가 벽면에 처박히기를 반복하던 중.
타앗!
도주현은 집게발을 밟고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이어 꽃게의 다리 관절을 향해 온 힘을 다한 일격을 내리찍었다.
“헤비 스트라이크(Heavy Strike)!!”
콰가가각!
그의 검날은 딱딱한 갑피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마침내 집게발을 몸체에서 절단해버리고 말았다.
《끼히이이익……!》
‘깊은 곳의 거주자’가 고통스러운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그 비명의 음역대가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 방금의 일격을 위해 조금 무리를 해버린 건지.
도주현은 일시적인 경직상태에 빠졌다.
이어 잽싸게 날아든 반대쪽 집게발이 도주현의 몸통을 붙잡았다.
우드득!
“크악!”
이것은 분명 어딘가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아래쪽에 감각이 없었다.
아마도 허리가 나간 듯 싶었다.
이젠 정말로 끝이었다.
그러나 도주현은 죽기 직전의 사람이 회광반조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들고 있던 검을 집어던졌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
콰지지지지직!
꽃게의 최대 약점은 배딱지.
현재 놈의 배딱지는 가드가 비어있었고, 빛살처럼 날아간 도주현의 검은 그 정중앙을 관통했다.
검끝은 거침없이 장기를 파괴하면 내부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꽃게의 심장 앞에서 힘을 다하고 우뚝 멈춰 섰다.
툭.
그것을 마지막으로, 도주현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주현은 눈을 떴다.
이곳은 어디일까? 천국? 지옥?
아니, 주변을 바라보니 이곳은 여전히 그 꽃게 던전이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 많던 꽃게들이 모조리 죽어있었다.
“끄으윽.”
상반신은 움직였으나, 허리 아래부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반 토막이 났다.
그러나 각성자의 지독한 생명력 때문인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두 팔로 기고 기었다. 꽃게들의 사체를 헤치고 나아갔다.
당장에라도 의식을 잃어버릴 듯 끊임없이 시야가 흐려져 왔지만 이를 악물고 기어갔고, 마침내 입구까지 도달했다.
일렁이는 포탈을 향해 다시 한 번 팔을 뻗었다.
“도착이다……·.”
분명 포탈 밖으로 나갔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다음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깨어나셨군요.”
다시 눈을 뜨니 어두운 실험실이었다.
“조사팀이 해당 포탈을 확인하던 중, 당신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이것부터 말씀해주셔야겠습니다.”
이 사람은, 그래. 기억이 정확하다면…… 쇄도 길드의 길드장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당신은 던전 공략 도중, 하반신을 잃어버렸고 주요 장기가 모두 괴사했습니다. 생명유지장치를 때면 바로 죽게 될 겁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듣던 중, 도주현은 문득 자신의 시야가 이렇게 높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래를 바라보니…….
여러 개의 다리가 달린 기계가 그의 하반신을 대체하고 있었고, 그의 상반신에는 온갖 종류의 약품이 신체로 주입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저희 쇄도 길드는 인권과 윤리를 중요시 여깁니다. 혹시라도 그런 모습으로라도 살아가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희는 기꺼이 당신의 회복과 재활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원치 않으실 경우 언제든 그 장치를 때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주현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에서 회생 불가능한 손상을 입은 헌터들이 온갖 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정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살겠습니다.”
***
검색 길드의 폐허 근처.
나는 도주현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여섯 개의 기계 다리, 두터운 기계 장치와 각종 약물로 뒤덮인 상체. 캐노피 속의 물에 잠겨있는 머리까지.
설마 그가 쇄도 길드의 비밀 부서, ‘라스트 댄스’에 들어가서 살아있었을 줄이야.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네놈 때문에 꼬인 인생.”
끼이익.
나를 향한 도주현의 기계 손가락. 그곳에서 총구가 튀어나왔다.
그 총구에는 일반적인 탄환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대신 헌터와 몬스터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는 던전산 특수 금속에 인첸트가 발려진 천문학적 금액의 탄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터.
“젠장.”
그러나 잠시 나를 향하던 총구는 곧이어 아래로 내려갔다.
“많이 변했구나, 한세훈. 이제는 나에게 존댓말도 쓰지 않는군.”
“그야 나는 이제 쇄도 길드가 아니니까. 그때는 같은 길드니까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겠지만, 지금의 너와 나는 생판 관계도 없는 남남이라고.”
“그런가.”
미래 기억 상 라스트 댄스의 기계 헌터들은 자아를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도주현은 그러한 기계의 몸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몸은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움직인다. 내 의지는 네놈을 찢어 죽이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군.”
쇄도 길드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생화학과 기계 그리고 마석학으로 강화된 라스트 댄스의 헌터들.
그들은 하나같이 SS급 이상의 전력들이었다.
거기에 몸에 장착된 온갖 종류의 무기들과 인간의 사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상황 판단을 내리는 기계 몸은 사실상 한두 등급 이상의 적들과도 대등하게 맞붙을 수 있게끔 설계된 최후의 전투병기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현재 이곳에 왔다는 것은 서울 쪽의 방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놈이 온다.”
도주현은 곧장 전투자세를 취하며 자세를 복귀했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적, 위압자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한세훈, 네놈에게는 신경을 끄도록 하겠다.”
“그거 잘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하도록 해라. 저놈은 정말로 괴물이니…….”
위압자의 근처에는 이곳에 도착한 모든 라스트 댄스의 헌터들이 완전히 파괴되어있었다.
그들 중 이제 남아있는 인원은 도주현 뿐.
‘원래대로라면 라스트 댄스가 위압자와 직접적으로 맞붙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미래 기억 상, 이들은 폴룩스와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전멸당하고 말았다.
폴룩스는 제거되었고, 이후 칼라미티의 수괴, 위압자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위압자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살펴봤다.
응?
그 순간.
나는 위압자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온몸에는 생체기가 가득했고, 생각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머무르기에 적합한 신체였건만, 아쉽게도 상당히 손상되어버렸군.”
그의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아버렸다.
물론 그의 진짜 정체는 여전히 모호했다.
위압자는 그 누구와의 싸움에 있어서도 절대로 밀리는 법이 없었다.
모든 것에 능숙한 자. 신 그 자체라 불리던 자라 불렸던 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라스트 댄스와의 싸움에서는 유혈 사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과연 어째서일까?’
이 순간, 나는 위압자가 가진 힘의 범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아앗!
도주현이 여섯 개의 다리 사이에서 불을 뿜었다.
매섭게 쏘아져 나간 그는 상반신 전체에 수십 개의 검날을 뽑아냈다.
동시에 총구가 튀어나와있던 여섯 개의 무릎에서도 검날이 튀어나왔다.
“흐아앗!”
위이이이이이잉!
마나가 깃들며 푸르딩딩해진 기계 몸체가 닿는 모든 걸 갈아버리겠다는 듯 맹렬히 회전하며 쇄도했다.
“지성이 없는 존재들은 언제나 성가시기 짝이 없구나. 덕분에 예상외의 소모가 있었다.”
위압자의 손에는 어디선가 주워온 듯한 각기 다른 모양의 검 두 자루가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도주현을 맞이했다.
카가가가가각!
시리우스의 말에 의하면, 그는 기생형 정신체.
그리고 위압자가 기생 되어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저 아이작 T 케이크라는 인물은 유약한 F급 헌터에 불과했다.
그러한 자가 SSS급의 전투병기의 공격을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 받아쳐 내고 있었다.
“그동안 수확한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누적되는 생명 에너지의 소실은 썩 달갑지 않군.”
그때 머릿속에서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인님!
그것은 내면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래. 세팅은 끝났어?’
– 네, 끝났어요. 하지만,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것은 아까처럼 위압자에 의해 강제로 꿈속에 빠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오래 유지 할 수 없다니? 분신 하나 내 몸에 심어놓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평소에 그녀가 유지하는 유령 분신의 개수를 생각해보았을 때, 전혀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 한 사람의 정신체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모두 막으려면 제 영혼을 더욱더 잘게 잘게 쪼개서 분신을 늘려야 해요. 그런데 주인님의 정신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넓고 크네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 상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 길어야 한 시간 정도요. 본래의 컨디션이라면 더 유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해요.
‘충분해. 그럼 딱 한 시간만 부탁한다.’
– 해볼게요!
키잉! 킹킹! 카각!
위압자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쌍검을 휘둘러 도주현의 회전하는 칼날을 모조리 쳐냈다.
그와 동시에 사각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을 펼쳤다.
“성가셔. 정말 성가시군. 이러한 종류의 해충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맹렬했지만 찰나의 공방이기도 했다.
쨍그랑!
일순 도주현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캐노피가 박살이 났다.
그리고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버렸다.
꽉.
아이작의 손아귀에는 어느새 도주현의 머리가 붙잡혀있었다.
“…….”
도주현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내 이름을 온힘을 다해 외쳤다.
“한세훈!!”
“성가신 것도 모자라 시끄럽기까지 한 벌레로다.”
콰직!
머리가 터져버렸다.
그러나 도주현의 몸은 위압자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기계로 되어진 손은 위압자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었다.
“…….”
비록 썩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
자이언트 크랩 던전에서도 도주현의 배신으로 모두가 위험에 빠질 뻔했긴 했었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벌였던 목숨을 건 사투가 없었다면 나는 결국 그 보스급 꽃게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와 완전히 달라져 버린, 초라했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나는 여전히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빛의 길(Light Path).”
번쩍!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도주현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기회였다.
‘전인화’를 쓸 새도 없이, 곧장 빛의 속도로 놈에게 달라붙어 ‘덧없는 칼날’을 찔러 넣었다.
“……!”
카앙!
위압자는 급히 상체를 회전시키며 내가 내지른, 피할 수 없어야 할 일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놈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일고 있었다.
저 표정은 아까, 꿈에 빠지기 전에도 한 번 봤었던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정신의 통로를 완전히 차단해놓았을 줄이야.”
지금껏 벼루고 벼려왔던 칼라미티의 보스. 그리고 스스로를 ‘위압자’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자.
그와 검을 맞댄 상태로 얼굴을 마주봤다.
기념비적이고 공식적인 첫 대면이기도 했고, 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인데 욕부터 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나는 우선 그에게 감사의 인사부터 전하기로 했다.
“고맙다.”
“음?”
“네 부하였던 시리우스. 써보니까 쩔더라.”
“…….”
그렇게 잠시 검과 검이 대치하는 사이.
위이이이이이잉!
여전히 위압자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도주현의 신체가 밝게 빛나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 도주현이 나를 불렀던 이유.
그것은 자신의 자폭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치지지직!
나는 검을 잡지 않은 왼손을 위압자에게 향했다.
“스톰바인드(Stormbind)!”
촤라락!
수십 개의 벼락의 덩굴이 튀어나와 위압자의 몸을 옭아맸다.
그리고 나는 ‘마나 쉴드’를 펼친 상태로 서둘러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앗……!”
타앗! 타앗! 타아앗!
그 순간. 놀랍게도, 인근에 쓰러져있던 다른 라스트댄스의 헌터들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위압자를 끌어안은 도주현을 향해 날아와 달라붙기 시작했다.
도주현을 비롯한 다른 기계 헌터들의 신체들로부터, 새하얀 폭광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내 온 세상을 화이트-아웃으로 만들어버렸다.
쇄도 길드에서 만들어낸 비인륜적인 전투병기, 라스트 댄스.
그것의 자폭 공격은 현대의 마공학과 마석학을 비롯하여 인류가 이룩한 자연과학이 한대 집대성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삐이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큰 소리는 고요함을 만들어내곤 하기 때문이다.
후두둑.
점차 빛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폭발의 중심점에는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 된 위압자가 쓰러져있었다.
“드디어…….”
나는 그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내 주변으로 쓰러진 줄 알았던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방화연, 김마리, 황명수, 조준혁, 안인식, 김정수…… 검색 길드의 원년 맴버들을 비롯하여 검선, 윤희망, 팍딩, 다이스케…… 협력 길드의 일원들까지.
모두들. 그래도, 무사했구나.
“저기요?”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나를 둘러싼 모양으로, 나를 가운데 두고는 각자의 무기를 나에게 향했다.
“다들 왜 이러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