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33
32화. 늙은 계수나무 (7)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이 바짝 말랐지만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번호가 남겨져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성함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전의 요한 씨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신체보다는 정신이 같아야 하는 게 맞나 봅니다.
인터넷을 뒤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기계 음성 사이로 딱딱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중간중간 섞여 나온다.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흔적이라면 전부 기억해둘 심산으로 모든 신경을 귀로 쏟았다.
-어찌 그 몸은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당신을 데려오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공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성함을 알려주시지 않을 거라면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상대방의 페이스에 휩쓸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저쪽이 내 물음에 멀쩡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쪽은 있는 대로 질문을 바꿔가며 궁금한 것만 많고 눈치가 나자빠진 인간이 되면 그만이다.
단호한 내 말에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정체 모를 상대는 낄낄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말투가 휙 바뀌었다.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엇이든지요. 나는, 우리는, 그러라고 당신을 굳이 찾아서 여기로 데려왔기 때문이지요.
맥락을 알 수 없는 대답 속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걸렸다. 평소라면 저걸 붙잡고 물어봤겠지만, 이 자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게 뻔하니 다른 걸 묻는 게 낫겠다.
“아까부터 데려왔다고 하시는데, 저는 다른 곳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착각하신 게 아닙니까?”
-거짓말에 능숙하군요. 아주 좋아요. 우리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테니 계속 그렇게 굴면 우리는 좋은데…. 흠. 그쪽에서도 한 사람은 알고 있으니 애매하군요. 아, 그래요. 알려줄까요? 그 사람이 누군지?
진예신이겠지. 뻔하다. 그쪽은 내가 멱살을 잡기로 예약해놨기 때문에 굳이 이간질의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서 들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진예신이 아무리 수상하다고 해도, 선한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괜히 경계할 필요도 없단 말이지.
이건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된 캐릭터성을 떠나서 사람 진예신과 함께 어울리며 내가 직접 판단한 부분이다.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신여월만큼 자부심이 있거든.
진예신은 이번에도 ‘세계 유지’를 위한 자들의 편이다.
“아무래도 제 이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서로 아는 것이 없는데, 구태여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까? 이제 이 번호는 삭제하고, 없었던 것 취급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낄낄낄. 우리가 계속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당신이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없앨 수 있겠어요? 정말로? 나라면 못할 거 같은데. 궁금하잖아요, 우리가 누군지. 그리고 당신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또 무슨 수를 썼길래 전혀 다른 세계의 당신을 이곳에 끌고 왔는지도.
악취미적인 웃음소리가 소름이 끼친다. 기계로 된 소리여서 그런지 절로 거부감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바로 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알려주실 겁니까? 그렇다면 아직 통화를 더 할 용의가 있습니다.”
-안 알려준다면 끊을 거고요?
“예. 제가 좀 바쁜 사람이라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지속할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멋진 배짱이라니까요. 마음에 들어요. 정말로.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잘해줄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는 제대로 답해줄게요. 어느 게 가장 궁금한가요? 내 가장 소중한 파트너를 걸고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테니 뭐든 물어봐요.
계속 들리던 톱니바퀴 소리에 가려져 있던 건지, 아주 작은 물소리가 전파를 타고 이쪽까지 들렸다.
작은 폭포, 혹은 강. 그게 아니라면 현재 대화를 하는 자가 아닌 다른 자가 수도꼭지라도 틀었다거나. 미세하게 흐르는 소리를 기억해두며 질문을 골라냈다.
“나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라, 우리가 누군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의외네요. 우리 정체가 제일 궁금한 거 아니었어요?
“제 정보가 빠져나간 것이 더 신경에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스트레스기 때문이니 약속대로 답이나 해주십시오.”
정체는 내가 알아내면 그만이다.
신여월의 화끈한 추진력을 생각하면, 이번 달이 채 가기 전에 내게는 보안부와 감사부라는 두 개의 자리가 굴러들어올 것이다.
합법적으로 정보를 끌어모을 수 있는 감투를 쓰고서 숨어 있는 사람 하나 못 찾으면 개망신 아닌가. 그래도 내가 짬이 있는데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찾아낼 것이다.
-으히히. 그래요. 원하는 대로 알려줘야지. 김요한 씨. ‘쌍월의 보석’이라는 책, 알죠? 게임도 알고? 우리도 그걸 알거든.
방정맞은 웃음을 터트린 자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뭐라고 반응을 하기도 전에 대답은 이어졌다. 단조로운 기계음이건만,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요한 씨 당신은 바깥쪽에서 본 사람이고, 우리는 안쪽에서 본 사람들이라는 거? 그런데 모든 게 그런 것처럼 안과 밖은 결국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쯤이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책을 읽고, 게임을 하는 내 모습을 봤다는 뜻입니까. 그런 걸로는 제 얼굴을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외의 정보는 모를 텐데, 대답의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깐깐하네! 하지만 대답해주기로 했으니까 특별히 설명을 더 해줄게요. 있잖아, 요한 씨. 사람은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누군가 꾸준히 이쪽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지고, 기대를 걸게 되고, 그러면 뭐라도 해보려고 발악을 한다는 얘기에요.
끼릭끼릭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더니 기계음의 말투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여기엔 간절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김요한 씨. 그만큼 희망에 목숨 정도는 초개처럼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소립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세계는 그 무엇도 보상해주지 않는 매정한 곳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대가를 치르는 만큼 정확한 보상을 받습니다. 그 정도를 아는 것이 어려울 뿐입니다. 우리는 그중 성공한 자들인 겁니다.
“‘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것’을 성공했다고 표현해도 괜찮은 겁니까?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겁니다, 당신들에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장담하시고 나면 분명 후회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걸 그쪽에서 원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저희도 목적이 있어서 당신을 불러들였지만, 그렇다고 조종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건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까도 말했듯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그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그거면 됩니다.
잠시 침묵 사이로 똑딱똑딱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더니 기계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신이 포기하는 일만큼은 우리 쪽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니, 한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요한 씨. 만들어진 세계가 자기 부모 세계를 삼키기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까?
“너무 규모가 커서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희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걸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걸어봤고, 이렇게 성공했는데…. 이제 남은 것이 없지 뭡니까.
처음으로 ‘진짜 사람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몹시 갈라져서 나이도 성별도 짐작하기 어려운 바람 같은 소리였다.
-이 세계가 마지막입니다, 김요한 씨. 더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정해진 결과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유일한 세계입니다. 당신이 있었던 그 세계와 비로소 동등한.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숫자의 세계가 스러졌는지는 비밀이라고 덧붙인 기계음은 끝내 내게 폭탄을 투하하고 먼저 끊었다.
-늙은 계수나무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오거든, 저 대신 전해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그대가 피우는 꽃도 마지막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럼 먼저 끊는 대신, 다음 연락은 이쪽에서 먼저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김요한 씨.
뚜-뚜- 이어지는 수화음이 가증스러워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수나무. 달토끼들이 있던 곳의 계수나무를 말한 게 틀림없다.
나로서는 달토끼들과 계수나무와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만남이었고, 김휘율이 살아있어서 겪을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정해진 결과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말을 한 주제에 자연스럽게 미리 알던 정보를 알려주는 척 계수나무의 안부를 입에 올렸다는 건, 이건 이미 짜인 판이었고 내가 거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놀아났다는 거 아닌가.
“이런 X발.”
험한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욕설이 절로 나간다.
머리에 열이 오른 채로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는 집어 던질 것 같아서 일단 얌전히 침대에 두고, 주먹을 쥐었다. 약간 긴 손톱이 손바닥에 찍히며 알싸한 고통을 남겼다.
덕분에 아주 조금 진정한 상태로 크게 심호흡했다.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보자.’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 하나를 쥐고 일기장의 제일 끝장을 펼쳤다.
텅 빈 종이에 큼지막하게 A, B, C를 나눠 적고 각각 협회, 풍월주, 전화라는 단어도 적어넣었다.
그중 협회를 표시한 A와 풍월주를 표시한 B 사이에는 양방향 화살표를, 전화를 표시한 B에서부터는 A와 C 양쪽에 각각 한 방향 화살표를 그렸다.
‘세계니, 뭐니 그런 스케일이 큰 건 일단 나중으로 미뤄도 돼. 어차피 지금 이해한다고 해서 그게 정답일 거란 보장도 없고, 틀리면 더 골치 아파지니까.’
하지만 집단 간의 관계는 당장 파악해둬야만 한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이 첩자를 골라내는 일이라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협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야. 풍월주 쪽은 당연히 반대편이고. 애초에 그자가 평화 같은 소리를 입에 담을 리도 없거니와 죽을 거면 다 같이 죽는 게 좋다는 자인데 한 편이 될 약간의 가능성도 없지.’
게임과 소설을 기반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점이었다.
양측의 수장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데, 화해가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흉신악살 같았던 신여월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화살표를 더 굵고 진하게 그렸다.
‘문제는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 전화를 건 자들이야. 세상에 성향이 다른 집단이 두 개만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한데, 그게 세계 유지냐 멸망이냐를 기준으로 두면 양쪽으로 갈라진단 말이지.’
그리고 짐작건대 이들은 ‘유지’가 목적일 것이다.
희망에 목숨을 걸고, 차마 닿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바깥에 손을 뻗은 자들.
가만히 있으면 자연히 풍월주의 손에 멸망하는 세계에서 그들에게 동참하고자 했을까?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곳이 본래 만들어진 세계였다는 것을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데.
‘그건 나라도 그랬을 거 같으니까 판단 보류. 일단 중요한 건 방식은 어쨌든 목적은 같으니 중간에 동료가 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거지. 아직 정체도 모르고 한 편이 되어줄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풍월주 손에 패가 하나라도 덜 들어가면 그걸로 좋아.’
B와 A 사이의 화살표 위에는 물음표를 적고, C 사이의 화살표에는 가위표를 쳤다. 그런 다음에 물음표 옆으로 진예신의 이름을 썼다.
‘진예신이 협회 편인 건 확정이야. 얘네들 아까 묘하게 편을 갈라서 진예신은 자기네 쪽 사람이 아니라고 구분을 지었단 말이지. 그럼 진예신은 어디에서 내가 외부 사람인 걸 알았냐는 건데….’
진예신은 플레이어 캐릭터였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플레이어가 노련하다고 해도, 게임의 끝까지 캐릭터를 살릴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 캐릭터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가 게임 속이고, 나는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내 뜻대로 살았던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끌려다녔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흔한 장르 소설의 도식 중 하나기는 한데, 여기는 이제 현실이잖아. ‘캐릭터’와 ‘사람’은 엄연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게다가 어째서인지 진예신은 처음부터 나한테 호감을 보였어. 내가 바깥사람인 것을 아는 상태에서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수많은 인생을 내 손으로 결정지었는데?’
볼펜을 똑딱거리다가 멈췄다.
‘나라면 꼴도 보기 싫을 거 같은데.’
해피엔딩 하나 안겨주지 못하고, 끝이 항상 죽음과 세계 멸망인데 뭐가 예쁘다고 봐주나.
착잡해진 마음에 볼펜을 내려두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푸후, 일부러 크게 숨을 내뱉고, 몇 번인가 마른세수를 한 뒤에 손을 뗐다.
‘혼자 생각해서 뭐 하겠어. 사람 생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내가 가진 것도 아닌데. 이럴 바에는 그냥 직구를 던져야지.’
침대에 던져놨던 낡은 휴대폰이 아닌 업무 전용 새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빼곡한 협회 사람들의 번호 가운데에서 진예신을 찾아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부터 내 콘셉트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막 나가는 불도저다.
-세상에. 요한 군이 어쩐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걸었어요? 번호 알려준 지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 거는 거 알아요?
“협회에서 매일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옆에 안 계시니 전화를 걸었는데, 혹시 시간 좀 있으십니까.”
-그럼요. 요한 군에게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뺄 수 있어요. 무슨 일 있어요?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한 겁니다.”
-뭔가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다 말해줄게요.
진예신의 순순한 대답에 지저분한 일기장을 내려다보다가 느릿하게 혀를 움직였다. 녹은 사탕이 혀를 칭칭 감은 것처럼 무척이나 느리게.
“‘쌍월의 보석’에 대해서 아십니까.”
-어머나. 놀라워라.
장난스러운 감탄사 뒤로 진예신의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벌써 알아낸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나는 뭐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대신 힌트는 하나 줄 수 있는데.
휴대폰 너머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진예신이 멈췄던 말을 이었다.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어요, 요한 군. 아주, 극적인 만남이었는데.
“예전이라니,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억이 없어질 정도로 오래전이죠. 난 우리가 서로 끝까지 못 알아볼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내 기억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러면 요한 군도 기억해낼 수 있지 않겠어요?
탁탁 단단한 것을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그러니 그 기억이 돌아오거든, 내 집무실로 찾아와서 그때의 내 부탁에 대한 답을 해줄래요? 그때가 되면 분명, 우리는 아주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요한 군이 한 질문에 대한 답도 그때로 미뤄둘게요.
나지막한 웃음이 흐르고, 이내 진예신은 다정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럼 먼저 끊을게요, 요한 군. 좋은 꿈 꾸기를 바랄게요.
통화가 뚝 끊어진 휴대폰 화면이 금방 새카맣게 변했다. 알쏭달쏭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얼굴이 액정 표면에 비쳤다. 그 멍청한 얼굴을 보다가 책상에 엎드렸다.
“극적인 만남이 대체 뭔데? 일기장에 남아 있나? 아니, 그 전에 진예신 이 인간…. 내가 저걸 물어볼 거라고 예상했었나 본데….”
횡설수설 되는대로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웃음기가 잔뜩 서린 놀라운 척하던 감탄사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진예신이 능변가긴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언젠가 내가 이 물음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간지러운 귀를 문지르다가 쿵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해결하려고 전화했는데 의문만 늘었잖아….’
좋은 꿈은커녕 의문에 의문만 더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