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86
85화. 녹아버린 진주 (10)
바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다.
신발 사이로 모래가 들어오는 느낌도, 금방 머리가 뻣뻣해지는 바닷바람도, 햇빛에 달궈져 미지근한 물의 온도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멀찍이서 탁 트인 해안가를 구경하는 건 좋아하지만, 내 몸이 물에 닿는 건 싫다는 얘기다.
‘그런데 물속에서 전투를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지.’
균열마다 특징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전투 장소도 다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식과 경험은 역시 다르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기다란 물의 창을 아슬아슬하게 숙여서 피하고는 왼발에 힘을 팍 줬다.
뽀글뽀글. 공기 방울이 발치에 우르르 생겼다가 사라졌다. 강나비와 용왕의 정수리가 보이는 위치까지 대번에 올라오자마자 비늘을 쥐고 있던 손을 바꿨다.
너무 꽉 쥐고 있었더니 슬슬 얼얼한 느낌까지 든다.
‘아이고, 내 팔자야….’
비늘 덕분에 공중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치더라도 엄연히 물과 공기는 다르다.
움직일 때마다 바람 대신 물결이 느껴지고 소리도 생소하기 짝이 없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도 물의 저항 때문에 공중보다 움직임이 둔했다. 여러모로 나한테는 불리한 상황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걸 같은 팀인 강나비보다 용왕이 먼저 눈치를 챘다는 게 문제다!
‘나만 공격하고 있잖아, 지금!’
이번에는 형태를 바꿔 연속으로 날아오는 물의 화살에 기겁하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부우웅. 느릿하게 내 앞을 가로막은 지팡이를 중심으로 얇은 보호막이 생겼다가 금방 화살 세례를 받고 깨졌다.
도중에 물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같이 들린 걸로 봐서는 진짜 화살과 물로 만들어진 화살이 섞여 있는 듯싶다.
‘이런 식으로 응용이 더해질 줄은 몰랐지만, 방어와 회피는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일회용으로 만든 거라 가벼운 보호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깨진 충격이 가볍지는 않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속을 달랠 시간도 없이 다시 몸을 비틀어 맹렬하게 달려드는 단도를 피하고, 지팡이의 봉 부분으로 두어 개 정도 쳐냈다.
둔탁하게 맞고 밀려나는 꼴을 보니 이번에도 물로 만들어진 것과 철로 만들어진 진짜가 섞였다.
‘까다로워.’
용왕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물로 만든 무기 투척’이다. 무기 자체가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들어서 속도도 빠르고 파괴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물이어서 맞았을 때 신체를 관통하는 게 아니라 강한 수압으로 밀어내거나 으스러뜨린다.
즉, 한 대 제대로 맞으면 기본적으로 뼈가 부서질 정도로 강한 공격을 날리는 게 용왕의 방식이다.
‘그런데 철로 된 무기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당연하게도 물 화살은 맞으면 타박상이지만, 진짜 화살은 맞으면 관통상이다. 동시에 공격에 따라 사용하는 보호막의 형식이 달라지는 나에게는 몹시 귀찮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물로 만들어진 무기는 보호막으로 밀어내면 터지고, 철로 된 무기는 튕겨 나가니까 뒤처리도 신경이 쓰였다.
‘아니, 그리고 근거리에서 공격하고 있는 건 강나비인데 왜 원거리 공격을 자꾸 이쪽으로 날리냐고.’
강나비의 공격엔 오롯이 방어로만 대응하고, 지금껏 공격 한 번 하지 않은 내게 온갖 무기를 날려대는 용왕 때문에 몹쓸 마음이 든다.
차라리 강나비랑 신나게 개싸움을 하고, 나는 둘 중 다친 사람을 치료하면서 정보나 빼먹으면 안 될까 싶은 글러 먹은 생각까지 든다고.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다소 부은 손목을 확인했다. 방금 날아온 단도를 세게 쳐내느라 시큰거리던 손목이 슬슬 파업을 시도할 기세다.
일부러 남은 아이온을 손목을 보강하는 데에 사용하며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용궁은 밑바닥이 존재하는 심해였기 때문에 아직 수면까지는 거리가 꽤 남아 있어서 다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비늘이 있다고 해도 언제 내가 떨어뜨릴지 알 수 없어.’
이제 보호막 세 번 정도 사용하면 바닥날 아이온, 통증이 더해지고 있는 손목, 슬슬 바깥쪽에서 지원군을 파견할지도 모를 정도로 흘러가고 있는 시간.
‘산소통을 물고 싸워도 되기는 한데, 그건 불편한 데다가 비상용이라고. 아예 바다에서 이탈해서 공중전으로 몰고 가는 게 나아.’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지금 내가 여기서 쓸데없이 용왕의 공격을 회피하는 데에 시간을 보낼 순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까딱 잘못하면 내 목숨이 위태로운 공간에서 공격도 못 하고 버티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사양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강나비가 분발해서 용왕에게 유효 타격을 두 번마저 명중시키는 것이지만.
‘그나저나 시야가 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용왕에게 달려드는 강나비와 그런 강나비를 설렁설렁 막으면서 손을 휘젓는 용왕의 모습이 이제는 양 손바닥 안에 가려질 정도로 올라왔는데도 물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철로 된 화살은 없었기 때문에 자연의 가호를 얇게 중첩해서 막아냈다.
화살촉이 닿는 가장 겉의 가호가 깨지고, 그 여파로 물의 화살이 터졌으며, 마지막으로 안쪽의 가호가 형태를 잃은 물로 뒤덮였다.
순간적으로 위장이 뒤틀리면서 구토감이 치밀었지만 참았다. 피일 게 분명한 내용물을 삼키는 순간, 강나비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퍼졌다.
“부장님! 맞은 거 아니지?”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똑바로 앞이나 봐!”
내게 말을 건네느라 시선을 돌린 강나비에게 처음으로 용왕이 주먹을 날렸다.
고아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개싸움이 특기라고 하더니만 찢긴 소매가 완전히 뜯어질 정도로 강하고 빨랐다.
무려 협회에서 근접전으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강나비가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연격을 급하게 방패로 막아야 했다.
한눈을 팔아서 그런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변명한 강나비가 내게 다시 소리쳤다.
“아하하, 안 맞았으면 됐어! 더 올라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거리가 꽤 멀어서 고함을 쳐야만 가능한 대화 속으로 용왕이 느긋하게 끼어들었다.
“이 내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보내주셔야 할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사슬과 닻으로 돌아온 무기를 용왕에게 던지며 강나비가 달려들었다.
용왕이 가볍게 물러섰지만, 강나비는 결코 거리를 두지 않겠다는 듯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일체 망설임 없이 꽂히는 주먹에 용왕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피했다.
동시에 강나비가 몸을 회전시키며 시원하게 발차기를 날렸고, 용왕은 그 공격에서 벗어나기보다는 받아치기를 택했는지 팔뚝으로 강나비의 종아리 부근을 막아내더니 그대로 밀어쳤다.
균형을 잃은 강나비가 용왕에게 발이 낚이기 전에 잽싸게 사슬을 잡고 용왕의 등 뒤를 점했다.
용왕은 기다렸다는 듯 팔꿈치로 강나비의 명치를 노렸고, 마치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강나비는 양손으로 공격을 막아내고선 용왕의 발목을 타격해 넘어뜨렸다.
우당탕탕. 여기까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물속에서 나뒹구는 둘은 그야말로 서로에게 어떻게든 주먹을 한 방 먹이겠다는 듯 데굴데굴 구르며 팔을 휘둘렀다.
‘좋아, 이 틈에 가자.’
한순간이라도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는 순간, 강나비는 용왕에게 거하게 멍을 선사해줄 것이 틀림없다.
강나비는 용왕이 내게 집중할 수 없도록 제대로 마크했다. 나는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된 닻과 묘하게 모양을 그리는 사슬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서는 곧장 위쪽으로 헤엄쳤다.
아무래도 강나비는 나를 안전한 곳으로 완벽하게 보내두고, 주문을 하나 더 쓸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강나비의 손에서 벗어난 사슬이 제멋대로 움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용왕에게 두 대를 저기서 다 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대는 확실하게 때리고 올라올 성싶다.
“후우.”
딴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올라가는 것만 목표로 몸을 움직였더니 생각보다는 빨리 수면에 도달했다.
첨벙. 물에서 빠져나오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비뚤어진 모자를 똑바로 쓰고, 비늘을 보관함에 넣은 후, 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축축하게 젖은 장비를 아이온으로 건조하고, 협회에서 지원해준 아이온 사탕을 입에 넣었다.
와득 깨물자 안에 시럽처럼 고여 있던 아이온이 빠져나오며 몸속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솜사탕처럼 녹는 것도 괜찮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네.’
씹는 걸로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개발자인 윤혜아가 직접 만든 아이온 관련 물품을 사용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꼭 후기를 들려달라고 하므로 머릿속으로 잘 기억해두면서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좋아, 완벽하게 돌아온 건 아니지만 전투할 정도는 돼.’
사탕 부스러기를 잘게 씹어 넘기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윤혜아가 또 무슨 연구를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전 버전의 보충제보다 흡수가 빠르다. 시럽 형태라서 그런지 농도도 제법 짙어서 이쯤 되면 보충제가 아니라 강화제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나쁜 상황은 아니었기에 사탕을 하나 더 입에 물고 아이온을 쭉쭉 뽑아냈다.
‘새로 익힌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실전에서는 한 번도 안 써보기는 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전투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걸 배워서 능숙해지는 시간이 부족했다면, 실전에서라도 숙련도를 올려서 쓸만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외근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전투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관함에 든 보충제도 이제 없고, 지팡이 대신 쓸만한 다른 도구도 없다.
그런데 본래 잘 쓰고 있던 기술로는 용왕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죄다 보호막이거나 치유에 관련된 주문이니까. 그러니 신기술이라도 써봐야지.
‘아무리 뒹군다고 해도 장소가 크게 변하진 않을 테니까 이쯤이면 되겠고, 중요한 건 타이밍이려나.’
꿀꺽 사탕을 삼키며 지팡이의 끝으로 내 앞에 반듯한 선을 그렸다. 진하게 농축된 아이온이 짙은 초록색으로 빛나며 직선이 되어 나타났다.
그대로 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내 발치를 가두듯 사각형을 그렸다.
그중 오른발과 가까운 선을 밟고, 그 선을 지팡이로 꾹 찍어서 들어 올렸다. 자석에 붙은 쇳가루처럼 지팡이의 날카로운 끝부분에 달라붙는 선을 보니 1단계는 성공이다.
‘주문을 다 외웠다가는 실신할 거 같으니까 약식으로….’
아직 서툴러서 어마어마하게 아이온을 잡아먹는 주문을 발동시킬 준비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수면에서부터 사슬이 뻗어 나왔다.
촤악. 물을 사방으로 뿌리며 꼿꼿하게 튀어나온 사슬은 강나비가 주문을 사용했는지 하나가 아니었다.
촤르륵.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네 개의 사슬이 나타났고, 그 끝에는 닻이 아니라 용왕의 허리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양새가 한 대 맞기는 한 것 같은데 순순히 사슬에 감겨 올라오는 게 미심쩍다.
용왕이 수면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슬의 주인인 강나비도 공중에 발을 디뎠다. 강나비는 볼에 시퍼런 멍을 달고 나왔다. 그에 반해 용왕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는 없어 보였다.
“맞았어?”
“미안, 한 대 못 피했어. 그래도 나 한 대는 제대로 먹였어!”
히히 실없이 웃은 강나비가 사슬을 잡아당기자 용왕이 낮게 신음하며 손을 튕겼다. 마치 몸이 물이라도 된 것처럼 사슬 안쪽에서 흘러내리더니 어느새 사슬을 밟고 선 용왕이 혀를 끌끌 찼다.
“아주 힘이 장사로구나. 구속만으로 내 늑골이 나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제가 힘이 좀 세죠. 팔씨름에서 져 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주먹질 도중에 한 대 맞아주고선 나를 사슬로 묶었더냐?”
“전략이죠! 언제까지고 지지부진하게 뒹굴 순 없잖아요.”
티격태격하는 용왕과 강나비는 어째 매우 친해 보였다. 용왕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자여서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전투 중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지.
일단은 서로 한 대씩 때렸다고 했지만, 우리는 한 대만 더 때리면 된다는 것에 집중했다.
‘어디 막타를 가져가 볼까.’
게임을 할 때는 남이 막타를 가져가면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는데, 내가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즐겁다.
씩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발끝으로 차올렸다. 쭉 딸려 올라오는 네모난 아이온의 선이 함께 떠올랐고, 그대로 용왕의 양 발목을 휘감았다.
당황한 용왕이 벗어나려고 했지만, 에헤이. 이 주문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랍니다.
“담쟁이의 인사 발동.”
게임 속 진예신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와 행운의 봄이 새로 만든 나만의 주문이 발동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