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juk battlefield's non-mortgage loan specialist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깔깔깔.”
기해령은 은은한 핏빛이 도는 철삭을 휘둘렀다.
촤륵, 쒜엑, 쒜엑-
가뜩이나 오싹한 공간인데 귀기가 넘실거리며 귀곡성이 났다. 보아하니 보통 한이 서린 물건이 아니어 보였다.
“마음에 드는구나.”
기해령은 만족하는 듯 철삭을 거뒀다.
꿀꺽-
모두가 두려워 침을 꼴깍 삼켰다. 철삭의 파괴력도 있지만, 저걸 한 대 맞으면 영혼이 작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마룡은 마녀를 떠올렸다. 마녀가 채찍 같은 꼬리를 휘두르고 기해령이 저 귀물로 맞서 싸우면, 과연 어떤 살벌한 광경이 펼쳐질 것인가. 식은땀이 절로 났다. 막상막하였다.
“흐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기해령이 저들 편에 있어 준다면 비로소 마녀의 호적수를 찾은 거나 다름없었다.
“마음에 들면 선물로 드리리다.”
“정말로?”
기해령이 소녀처럼 기뻐했다.
“무에 아까울 게 있겠소.”
마녀와 묘한 악연이 있는 사마룡은 정말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맙구나!”
기해령이 사마룡을 껴안았다. 워낙 갑작스러운 행동이라 사마룡도 차마 반응 못 했다.
“무, 무슨 짓이외까!”
사마룡이 더듬거리며 물러났다.
“크흠.”
우국이 민망하여 고갤 돌렸다.
“깔깔깔. 왜? 더한 것도 해줄 수 있는데?”
기해령의 농담 반 진담 반에 사마룡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돼, 됐소! 여차하면 뺏어버릴라.”
사마룡은 손을 다급하게 저었다.
“깔깔깔깔.”
기해령은 더욱 선명하게 웃었다.
깔깔깔-
비슷한 웃음으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삼백 년 전, 무산 신녀봉에 선녀가 강림했단 소식을 들은 당시 사천 지역을 거느리던 사천왕부 도호왕(桃好王)은 정예 병력 기백을 움직여 그녀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계 허드렛일을 도맡는 그녀라도 하계의 것에 비하자면 경지가 무색한 지경이었고, 선녀의 반항에 아끼던 수하들을 잃은 왕야는 혼돈을 엮은 쇠사슬에 그녀의 사지를 꿰뚫어버렸다.
왕의 노리개로 전락한 선녀는 결국 식음을 전폐하다 아사하고 말았고, 그녀를 꿰뚫었던 철삭은 무시무시한 귀물이 되어 도호왕을 위협했으니, 왕은 이들을 사천지역 동서남북 끝단에 봉인시켰다.
그리고 몇 년 후, 동쪽 끝단에 있던 철삭이 어느 소동의 손에 들어갔다. 소동은 장차 최고의 역사(力士)가 되어 왕야의 연회에서 공연을 펼치게 됐고, 도호왕은 결국 철삭에 목이 꿰뚫려 죽고 말았다. 기해령의 귀물, 귀혼삭(鬼魂索)에 얽힌 이야기였다.
반면, 당동막은 한 무구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이건….”
그건 속이 비칠 듯 투명한 장갑이었다. 장갑은 투명한 성질도 신비했지만 촤락, 철망을 드는 소리가 났다. 무게도 깃털처럼 가벼웠다.
“거 신기하구나.”
우국은 살짝 관심을 가졌다가 시들해졌다.
“그거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사마룡은 물었다.
“지닌 특성이 제가 아는 것과 똑 닮았습니다.”
당동막은 장갑을 마치 꿀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했다.
“당조용막수투(唐朝龍膜手鬪).”
“뭣이?”
당동막의 말에 우국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흐음.”
사마룡은 침음을 삼켰다. 저게 당조룡막수투라고? 사마룡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조룡막수투가 무엇이냐, 먼저 사천지방에 용과 관련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얘기해야 했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를 꼽으라면 무엇을 꼽을 것인가? 혹자들은 만년한철, 금강석, 곤옥 등을 꼽을 테지만, 대개는 용린, 용의 비늘을 꼽을 거였다.
그렇담 세상에서 가장 질긴 물체는 무엇일까. 이는 별로 이견이 없었다. 용막. 중원인들은 이견 없이 용막을 말할 것이었다.
용은 파충류나 비슷한 생명체로 여길 수도 있지만, 사천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용은 두꺼운 비늘, 용린 안에 용막이란 투명한 막이 감쌌고, 그 안은 무궁무진한 기운 덩어리, 나머진 밤하늘처럼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당가의 시조, 당유고(唐儒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이한 수투를 손에 넣게 됐다. 수투는 투명한 재질로 착용해도 알아볼 수 없는 특성이 있었고, 만독, 만검이 불침해 어떤 독을 써도 중독되지 않았고, 어떤 병기와도 맞싸울 수 있었다. 덕분에 당시 보잘것없던 당가는 희대의 보물을 빌려 중원 오대세가로 발돋움하게 됐다. 당유고는 그를 필시 천상의 대장장이가 용막을 제련해 만든 기이한 보물이라 여겼고, 물건이나 수투를 당가의 조사격으로 모시고 이를 당조룡막수투라고 명명해 귀히 여겼다.
당조용막수투는 당가의 조사전에 보관되며 오직 가문 직계로만 전해지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그걸 분실한 사건이 일어났다.
“풍신.”
풍신 가주야, 그 희대의 도둑놈에 사천 당가 조사전이 털렸다.
“끄응.”
사마룡은 여러모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으음, 그게….”
하필 당가 앞에다 뻔뻔하게 당가에서 훔친 보물을 내놓았다.
“오해 말았으면 하외다.”
사마룡은 장황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 모두는 죽은 풍신의 후예에게 받은 것들이외다.”
다들 깜짝 놀랐다. 모두가 풍신의 유지라니. 어쩐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그리 말씀 안 하셔도 공자를 의심하지 않았나이다.”
당동막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만약 공자가 훔친 물건이었다면, 이를 선뜻 제게 보여줄 리 없을 테지요.”
당동막은 수투를 다시 내려놨다.
“소인은 본 수투를 못 본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쉽지 않은 결심을 했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사마룡은 고갤 저었다.
“이 물건은 어차피 당가의 것이니 당가인 그대가 가져도 좋소.”
사마룡은 쉬이 수투를 당동막에 건넸다. 당동막은 눈이 심히 흔들렸다.
“너무 그럴 것 없소. 정황상 당가의 수투나 진배없지만, 가품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소?”
“아아.”
당동막은 거절 못하고 수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진짜다. 당가의 피가 뜨겁게 반응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저도 당가 아닌가. 지금 누구보다 강해지는 데 열망이 컸던 그였다. 당조용막수투, 잠시 쓰고 본가에 돌려줄 것이었다.
“평생을 곁에 머물며 보은하겠나이다.”
당동막은 무릎 꿇었다. 사마룡은 여느 때처럼 그를 일으켜 세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우국 말고 하나씩 선물을 준 셈이 됐다.
“도장께서도 하나 고르시오.”
“정마알?”
귀물에 관심 없는 척 어슬렁거리던 우국은 낯빛이 밝아지며 어느 쪽으로 흐르듯 움직였다.
촤락-
우국은 섭선 하나를 펼쳤다. 살은 듯 아름드리 국화가 여덟 송이 그려진 부채였다. 그는 그걸 들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다들 모습이 익살스러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다!”
당동막도 덩실덩실 같이 춤을 췄다. 사람을 신나게 하는 마력이 있는 부채려나, 다른 하등 특별함은 느껴지진 않았다.
“예쁜 부채로구나.”
기해령은 순수히 감탄했다.
그렇구나. 호기의 보고에 있던 물건, 특히 나머지 고른 물건들이 너무나도 특별했기에 당연히 이도 특별해야 된다 여기고 있었다.
“공자 아니, 주군 이걸로 하겠사외다.”
우국은 결국 그 부채를 택했다. 신나니까.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우국이 신나 부채를 흔드는 동안 꽃잎이 하나가 떨어져 사라져버렸다는 걸.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인 기사였다.
“형님?”
당동막은 그게 조금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둘이 형님 아우 하기로 했던가.
“언제든지 다른 걸로 바꿔줄 터이니 잘 쓰고 갖다 놓으시오.”
사마룡의 배포에 우국은 감탄했다.
덜컥-
“깜짝이야!”
순간 반대쪽 문이 조금 열렸다.
보이진 않았지만 저쪽도 적잖이 놀란 듯 정적이 흘렀다.
“들어오거라.”
사마룡은 상대를 알아채고 말했다.
빼꼼-
그러자 맏언니 소소가 용기를 내 얼굴을 내밀었다.
“소소 낭자 아니오?”
우국이 그녀를 반겼다.
“우국도장님?”
뒤로 방연과 한유아가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소저들께서 어찌 저기로 나타나시오?”
사마룡은 공사가 제대로 진행된 데 기꺼웠다.
백문이불여일견, 사마룡은 일행을 이끌고 반대쪽 문으로 향했다. 본래 두꺼비상이 있던 자리는 여의주를 문 용의 두상이 자리해 있었다.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더냐?”
“네. 조금 무섭긴 했지만요.”
사마룡의 물음에 방연이 답했다.
건너편 문을 나서자 거긴 본래 호기가 머물던 소소한 공간이 나타났고, 전에 없던 주렴이 달린 문이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뒤에 기다란 통로를 지나니 홍학루가 건너 보이는, 조금 오래 방치된 모습의 장원 안뜰로 이어졌다.
“여긴?”
당동막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사마룡은 답했다.
“복룡장(福龍莊). 이번엔 우리가 머물 공간이외다.”
사마룡의 처음 별호를 딴 장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