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82)
본의 아니게 가장 아래쪽에서 햄버거 놀이를 하게 된 건우는,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 인물의 도움을 받아서 벗어날 수 있었다.
촤아악!
다크 엘프들의 족장 한이 물의 정령을 이용해서 물벼락을 선사한 것이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건우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상으로 올라간다던 하와와 엘, 소아, 가온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와~”
“재밌었답니다!”
“한 번 더!”
갸우웅!
아이들은 쫄딱 젖긴 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오히려 신이 난 상태였다. 물벼락으로 인해 무너지는 엘프들을 미끄럼틀 삼아 내려온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이번에는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특히 힘의 상징인 허리 부분!
농사꾼에게 허리는 생명과 같았기 때문이다.
‘휴우. 다행히 내 허리도 멀쩡하네. 역시 초인의 몸이라는 건가?’
건우가 두 번째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의 물벼락으로 정신을 차린 엘프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사과하고 있었다. 무릎까지 꿇고서 말이다.
건우는 그런 엘프들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했다. 술을 마셨으면 곱게 좀 마시라고…… 하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엘프들이 물에 흠뻑 젖어서, 물에 빠진 강아지 같은 꼴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도저히 뭐라고 할 수 없어.’
반칙과도 같은 외모.
멋있고 싶을 땐 멋있고, 예쁘고 싶을 땐 예쁘고, 귀엽고 싶을 땐 귀엽고, 아찔하고 싶을 땐 아찔하고, 지금처럼 애처로워 보이고 싶을 땐 애처로워 보일 수 있는…… 엘프들은 그런 반칙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건우는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 아이들이 다칠 뻔했어요.”
다만 하와와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주의 정도는 줬다. 그에 엘프들이 감사하다면서 다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프닝 하나가 흘러갈 때였다.
건우를 구해 준 한이 다가왔다. 그는 상당히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에게 감사 인사를 한 순간이었다.
한의 지시에 따라서 물벼락을 내린 물의 정령이 건우에게 날아와서 볼에 찰싹 달라붙었다. 건우가 평소에 부르는 물의 정령들보다는 한 단계 격이 높은지, 작긴 하지만 그 형태가 상당히 뚜렷했다.
-나도나도! 해 줘!
뚜렷한 주어 없이 뭔가를 해 달라는 물의 정령.
건우는 자연스럽게 물의 정령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히히.
물의 정령은 건우에게 감사 인사를 받아서 기쁜지,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본 한은 안 그래도 큰 눈을 한층 더 키웠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척 놀라운 인간이군요.”
엘프들의 진심 어린 감정을 끌어 낼 수 있는 인간이자, 정령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자.
건우는 한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분명 놀라운 인간이었다.
그런 건우가 그런 한의 반응에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엘프들한테는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뭐, 그조차 고기한테는 좀 뒤지는 것 같지만요.”
그는 그렇게 얘기하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들고 있던 고기의 상태를 살피지 못한 것이다.
‘분명 깔리기 전에 놓친 것 같았는데…….’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와!”
하와가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봉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그 짧은 사이에, 고기는 안전하게 지킨 것이다.
건우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한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 씨는 고기 먹어 본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엘프들이 극찬을 하더군요.”
“하하. 맞아요. 참 좋아하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한 씨도 한번 드셔 보세요.”
그런 건우의 제안에 한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샤브샤브 파티를 시작할 때쯤.
자리를 비웠던 족장 얀과 무녀 라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이 부족한 술을 가지러 간 사이에, 건우가 엘프들에게 깔리는 사단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저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둘의 사과에 건우는 괜찮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건 그렇고, 엘프들이 술도 마실 줄은 몰랐어요. 직접 빚은 술인가요?”
그 물음에 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보통 새로운 엘프들이 태어났을 때, 빚어 놨던 술을 마시고 새로운 술을 빚습니다.”
“아, 그런 풍습이 있었군요. 그런데 오늘은 왜 술을 드신 건가요?”
그 물음에 얀이 다크 엘프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마침 그들은 샤브샤브를 맛보면서 눈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보이고 있었다.
덩치는 크지만 어린아이 같았다.
얀이 그런 다크 엘프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답했다.
“새로운 동족을 위한 축하주였습니다. 새로운 엘프들의 탄생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건우는 살짝 감탄하면서, 얀을 따라 다크 엘프들을 바라봤다.
다크 엘프들은 어느새 미친 듯이 샤브샤브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의 엘프들이 처음 고기를 접했을 때 같았다.
‘역시 같은 엘프라는 건가?’
건우는 그러면서 하와와 아이들의 모습도 살폈다. 아이들은 새로운 경쟁자들(?)을 의식하면서 연신 고기를 집어 먹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한 곳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는 얀과 라일라가 가져온 새로운 술병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가져온 술은 왜 더 안 드세요? 혹시 아까 전에 실수한 것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건우는 엘프들이 아까 전에 있었던 일 이후로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얀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밥을 먹고 있어서 술을 안 먹는 것뿐입니다.”
“네? 밥을 먹고 있어서 술을 안 먹는다고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식사를 할 때는 식사만, 술을 마실 때는 술만 마십니다. 혹시 인간은 다릅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건 문헌에 안 적혀 있던가요?”“음, 찾아봐야겠지만…… 아직 못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이건우 님께 듣고서, 제가 기록을 남겨야겠군요.”
그 말에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농담 좀 한 것인데, 이렇게 진지하게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얀 씨니까, 이해는 가지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도 덩달아 진지하게 대답했다.
“인간은 술에 안주를 곁들여 먹어요.”
“안주?”
“술이랑 먹는 음식이에요. 고기랑 먹는 경우도 많죠. 마침 잘됐네요. 고기도 많으니까, 고기를 안주로 해서 술 한잔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 제안에 얀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라일라가 눈을 반짝였다.
“네! 그렇게 먹어 볼래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재빨리 샤브샤브를 자신의 앞 접시에 가져왔다. 그리고 건우를 빤히 바라보면서, 살짝 들뜬 듯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먹나요? 고기에 술을 뿌려 먹는 건가요?”
그 물음에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딱히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술을 먼저 한 잔 마시고, 다음에 고기를 먹는 거죠.”
그 말에 라일라는 바로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재빨리 고기를 입에 쏙 넣어서 씹었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기 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요!”
그 말에 건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모든 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은 보통 입가심을 해 주는 역할도 하거든요. 보통, 술 다음에 먹는 음식은 그 맛이 더 좋게 느껴져요.”
“아, 그래서 안주라는 걸 먹는 거군요?”
“뭐, 그런 것도 있지만…… 보통은 술만 먹으면 허전하잖아요? 숙취도 걱정되고…….”
“숙취요? 숙취가 뭐죠?”
“음, 엘프들은 숙취를 느끼지 못하나요? 숙취가 뭐냐면…….”
건우는 라일라와 함께 신나서 대화를 나눴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평소보다 대화가 더 매끄럽게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얀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인간의 문화인가?’
얀은 그러면서 고기 파티를 둘러보았다.
건우와 얀이 먹는 방법을 보고, 엘프들도 하나둘씩 인간들의 술 문화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워하면서 그 문화를 즐겼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들의 방식이 아닌, 인간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게?’
얀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이 슬쩍 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술을 꽤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지?”
그 물음에 얀은 한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과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다크 엘프들의 족장 한.
얀은 그런 한에게 자신의 생각을 터놓고 얘기했다.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얀의 기대와는 다르게, 한은 얀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리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 생각한 적이 있다고?”
“그래. 엄마 나무가 시들고 막 지구로 나왔을 때까지였지. 하지만 그 이후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지구에서 본 인간들의 문화는 엘프의 것에 뒤지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가 엘프들의 문화보다 뛰어나다는 뜻인가?”
그 물음에 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가치로 따지자면 같다는 거지.”
“문화의 가치가 같다?”
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한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문화는 문화일 뿐이다. 그것이 엘프들의 정체성을 저해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받아들일 수 있으면 받아들이는 거고, 아닌 것 같다면 배척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가 알려 준 방식대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맛있군. 이런 인간의 문화라면 받아들여도 좋지 않은가?”
그 말에 얀은 잠시 침묵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건우가 알려 준 방식대로 술과 고기를 먹었다.
알딸딸한 정신을 한차례 뒤흔드는 고기의 농후한 맛이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얀은 그것을 최대한 참아 냈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 없다.”
“흐음, 그래? 왜지?”
“세상은 빛과 어둠이 같이 공존하는 법이니까.”
아리송하게 대답한 얀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 얀의 모습을 본 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경계할 사람은 필요하다는 건가?”
그 물음에 얀이 눈을 떴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나보다 더 족장의 역할에 어울리는 자군.”
그 말에 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이지?”
“서로 다른 부족이 하나가 됐다. 그렇다면 필요한 역할도 둘에서 하나가 되어야겠지. 앞으로 족장은 얀, 너다. 잘 부탁한다. 족장.”
그 말에 얀은 입을 들썩였다. 하지만 곧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한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라일라와의 대화에 푹 빠져 있는 건우를 불렀다.
“이건우 님. 즐거우십니까?”
“네? 아, 네. 즐겁네요. 하하. 그런데 한 씨도 존댓말 마법을 배우신 건가요? 지금 보니까, 말투가 바뀌셨네요.”
“네. 그렇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음, 그렇다고 해둘까요? 하하.”
건우는 술을 좀 마셔서 그런지, 기분 좋게 웃었다. 잘 보면 얼굴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한이 그런 건우에 말을 이었다.
“술을 잘 마시는군요.”
“아, 저는 잘 못 마시는데, 엘프주가 워낙 좋아서요.”
“엘프주라…… 좋은 이름이군요. 앞으로 저희의 술을 엘프주라고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우 님과 같이 온 일행분들은 술에 약한 것 같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건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음, 이건우 님과 같이 오신 분들은 술에 약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건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하와와 아이들은 얼굴이 붉어져서 헤롱헤롱거리고 있었다. 분명 엘프주를 마신 것이 분명했다.
건우는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하와아~”
“헤에- 이건우 님이…… 딸꾹! 두 명이랍니다아~”
“헤헤. 건우 조아.”
갸우웅~
건우를 보고 헤벌쭉 웃는 아이들.
“아이고, 두야.”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