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83)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에 한 번쯤은 술을 입에 대본 경험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실수일 수도 있고, 호기심일 수도 있고, 어른들의 권유일 수도 있다.
건우 같은 경우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주를 약주라고 한 잔씩 주셨지.’
건우는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작은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항상 자신한테 큰집의 대목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셨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별생각이 다 나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는 하와와 엘, 소아, 가온을 바라봤다. 네 아이들은 얼굴이 붉게 물들어서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어른, 어린이 개념이 없는 엘프들이 아이들에게 술을 권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많이 마시지 않았다는 건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쩍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본래의 일과 계획대로라면 집에 있을 시간이 아니었지만, 하와와 아이들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 불상사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엘프들하고 농사 얘기를 좀 했어야 했는데…… 쩝, 급한 건 아니니까.’
건우는 그러면서 혼자 된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해 봤다.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두자. 우선순위도 매기고.’
농사 계획을 새롭게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건우는 농사 일지를 꺼내서 현재 농사 현황, 앞으로 지을 농사, 각종 계약 상황, 해결해야 할 일들부터 앞으로 하고 싶은 일까지…… 많은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까, 생각보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건우는 자신이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성과와 이뤄 나갈 것들을 눈앞에 적어 놓고 보는 것이 의외의 보람과 의욕을 주었던 것이다.
‘좋아. 앞으로도 꾸준하게, 성실하게 가자.’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적어 놓은 것들을 세부적으로 정리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집사 나이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나이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 주셨나요?”
-혹시, 시간 되시면 지금 댁에 방문해도 될까요?
그 물음에 건우는 잠시 정리하고 있던 농사 일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을 대뜸 덮고서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럼 바로 방문하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나이트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노크를 하려는 찰나에 문이 열려서 그런 것이다.
건우가 풋!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 인사에 나이트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설마 노크를 하기도 전에 이렇게 맞이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항상 전화 끊자마자 오시잖아요. 분명히 바로 앞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면서 나이트에게 물었다.
“윤아는 안 왔나 보네요?”
“네. 아무래도 바쁜 시기인지라…….”
“사용 후 핵연료 폐기 문제라면 그럴 수 있죠. 저도 조금 자세히 알아보니까, 생각보다 일이 크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원전 관련 숙원 사업이죠.”
“아무튼, 들어오세요. 아, 아이들이 낮잠 자고 있으니까, 그냥 밖에서 얘기할까요?”
그 물음에 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바깥도 상관없습니다.”
그 대답에 건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적인 대화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 더우세요? 항상 집사복을 입고 계시던데…….”
그에 나이트가 문제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 의복도 상당한 기능성을 자랑하지만, 저도 초인입니다. 더위나 추위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은 어떤 일로 깜짝 방문해 주신 건가요?”
그렇게 건우가 화제를 돌리자, 나이트가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서 한층 진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중국에 뭔가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중국에요?”
“네. 엘프들을 숨겨 두고 있던 거처 주변으로 거센 불길이 일어나면서, 엘프들이 전부 실종됐다고 합니다.”
그 말에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가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정말요?”
“네. 그런데 그 과정이 석연치가 않습니다.”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고요?”
“그렇습니다. 마치 일부러 키운 듯이 거센 불길이 한번에 넓은 범위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엘프들의 거처 주변으로 산 수십 개는 타올랐다고 하더군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산불을 일으킨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을 들은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불의 위대한 존재 정도라면…… 산 수십 개쯤 태워 버리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는 그렇게 상황을 이해하면서 슬쩍 물었다.
“혹시 인명 피해가 있었나요?”
“놀랍게도 엘프들만 감쪽같이 사라졌을 뿐, 인명 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분명 거처 주변으로 지키고 선 인물들도 있었을 텐데…… 참,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그 말에 건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혹시라도 인명 피해가 있었으면,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나이트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의아한 부분이 많아서 계속 조사 중에 있습니다. 엘프들의 종적도 찾고 있고요. 현재는 엘프들이 자력으로 탈출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데, 아무래도 앞으로 중국 엘프들에 대한 정보 제공은 어려울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그 말에 건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좀 무리한 부탁을 했던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이었으니까요.”
나이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건우가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그동안 저희가 모아 놓은 엘프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한번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나이트는 그러면서 가져온 자료를 건우에게 건넸다. 꽤 두꺼운 것을 보니 짧은 시간 내에 신화그룹이 모은 자료가 상당한 듯싶었다.
건우가 그것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이건 나중에 천천히 읽어 볼게요.”
그 말에 나이트가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렸다.
“지금 안 읽어 보십니까?”
아무래도 지금까지 엘프들에 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건우였기에 의아한 것이다.
그 물음에 건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손님이 오셨는데, 자료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것보다 차 한잔하고 가실래요?”
그렇게 말하는 건우의 모습에, 나이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건우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무래도 바로 아가씨께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나중에 윤아한테 여유가 되면 같이 차 한잔해요.”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건우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나이트는 대문을 나섰다.
* * *
대문을 나서던 나이트가 잠시 뒤를 돌아봤다.
‘중국 엘프들의 실종은 아무래도 이건우 님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군.’
사실 그는 건우네 집에 들르기 전부터, 엘프들의 실종이 건우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우 님은 이미 엘프들과 접촉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엘프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관심이 많았지. 방법은 모르겠지만,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는 엘프들을 위해서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증거와 심증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트는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우가 방금 전에 보인, 묘한 반응들이 그것에 확신을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건우 님도 대단하신 분이야. 중국 정부와 신화그룹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에서, 몰래 엘프들을 빼 가시다니…….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
그는 그러면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대뜸 한 가지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 시간 부로, 중국 엘프들에 대한 조사는 멈춘다. VIP와 관련된 일이다.”
그렇게 신화그룹은 엘프들에 관한 일에 손을 완전히 뗐다. 그리고 앞으로 엘프들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 * *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
“하이고~ 우리 꼬마 주정뱅이들~”
아버지는 하와와 아이들을 놀리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에 하와와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건우를 훔쳐봤다.
혹시나 혼날까 봐 걱정인 것이다.
사실, 하와와 아이들은 어린아이가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생활을 한 지도 꽤 됐고, 여름휴가 때 한 차례 술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와 아이들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를 내는, 투명한 녹색 빛을 띠는 액체.
엘프주를 맛있게 들이켜는 엘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안 그래도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건우도 과거 술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적이 있는 만큼 그런 아이들의 호기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크게 혼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술이 맛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와와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제, 처음 마셔 본 술은 어땠어?”
그 물음에 아이들이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하왁!”
“으웩이었답니다.”
“썼어.”
갸웅-
단맛이 도는 술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알콜 성분이 있는 만큼 술은 쓴 것이 당연했다. 어린아이들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건우는 예상했던 답변에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혹시 또 먹고 싶어?”
그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이들.
“앞으로 누가 권해도 안 먹을 거지?”
이어지는 건우의 물음에,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건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면 됐어. 자, 밥 먹자. 왜 그렇게들 의기소침해져 있어? 다들 밥 먹는 건 좋아하잖아.”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기운을 되찾았다. 본능적으로, 더 이상 술로 인한 꾸중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때였다.
연신 하와와 아이들을 놀리던 아버지가 묘한 심술을 느꼈는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 할애비가 줘도 안 먹을 거야?”
그 말에 물음에 혼란스러워하는 하와와 아이들.
그 순간, 어머니가 나섰다.
짜악!
아버지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것이다.
“이 양반이? 애들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이 여편네야! 남편을 죽일 생각이야?”
“엄살은…… 그러니까 누가 애들한테 그런 흰소리하래요?”
“아니, 장난 한번 친 것 가지고…… 아이고, 죽겠네.”
둘은 그렇게 오붓한(?)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도 좋은 금실을 보여 주었다.
건우가 그런 모습을 보고, 풋! 하고 웃을 때였다.
[‘SBC특집방송 ― 요리사와 식재료’ 예고!]TV에서 이번 주말에 나올 특집 방송 예고편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