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84)
건우는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을 가볍게 말렸다.
“어머니, 아버지. 그만 싸우고 TV 좀 봐 보세요. 전번에 저하고 애들이 갔던 요리 방송 예고편 나오고 있어요.”
“어, 그래?”
“그럼 봐야지.”
건우의 말에 부모님은 언제 싸웠냐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는 초인 셰프 정수찬을 포함한 유명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이 교차하면서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전번에 네가 우리한테 같이 가자고 했던 방송이지? 수찬이가 요리한다던 방송.”
지난번에 건우는 다른 사람들과 촬영장에 가긴 했지만, 그러기 전에 미리 부모님께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건우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텃밭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건우가 보기엔 그건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었다.
‘인원 제한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안 간다고 하셨지.’
부모님은 자신들보다는 애들을 더 데리고 가라는 뜻으로, 건우의 제안을 거부했던 것이다.
건우가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때 찍은 방송이에요.”
“그래? 그런데 찍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예고편이 나와?”
“특집 방송이라서 그렇대요. 최대한 빨리 방송에 내보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아버지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다시 TV에 집중할 때였다.
―하으앙~
두 볼을 빵빵하게 채운 채, 입을 오물오물거리고 있는 아이가 TV에 나왔다. 다름 아닌 하와였다.
TV에 나오는 하와의 모습은 마치, 도토리를 볼 안쪽에 가득 채워 넣은 다람쥐 같았다.
“하으앙~”
하와가 그 모습을 보면서 신기한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엘이 TV의 하와와 현실의 하와를 번갈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완전히 똑같답니다!”
마침, TV에 나오는 것처럼 두 볼을 빵빵하게 채우고 오물오물하고 있던 하와.
“하와가 둘이다!”
갸웅!
소아와 가온도 그 모습을 보고서, 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건우는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 이번에는 엘의 모습이 TV에 나왔다. 엘은 하와보다 분량이 좀 더 많았다.
―요리의 맛은 어땠나요?
―무척 맛있답니다!
―음, 어떻게 맛있나요?
―입 안에서 꽃이 피었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활짝 웃는 엘.
보는 사람의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환한 웃음이었다.
엘이 그 모습을 보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저도 하와 님처럼 TV에 나왔답니다!”
“하와!”
“엘도 둘이야!”
갸웅!
아이들은 그렇게 TV에 나오는 하와와 엘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 순간, ‘SBC특집방송 ― 요리사와 식재료’의 방영 날짜와 시간이 뜨면서 예고편이 마무리되었다.
부모님이 TV에서 시선을 떼고 함박웃음을 지은 것은 그때였다.
“역시 우리 하와하고 엘이야. 어쩜 저렇게 예쁠까? 역시 연예인상이야.”
“그러게. 이 방송, 언제 한다고 했지? 녹화 좀 해 놔야겠어.”
“이 양반은…… 촌스럽게 녹화가 뭐예요? 요즘은 인터넷에 다 나와요.”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아는 사람이, 그것도 손녀들이 TV에 예쁘게 나왔으니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호들갑은 속된 말로 ‘클라스’가 달랐다.
어머니가 두 눈을 무섭게 번뜩이면서 건우에게 물었다.
“아들. 우리 손녀들, 나중에 연예인 시킬까?”
“네? 연예인이요?”
“응. 그거 있잖아.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걸그룹이요?”
“응! 우리 손녀들, 걸그룹 시키자. 어때?”
그 물음에 건우는 침음을 흘렸다.
‘정령과 엘프가 걸그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서 현실성이 좀 떨어지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어머니의 기대 어린 표정을 보면서, 생각을 바꿔 먹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기회만 된다면 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어차피 하와와 아이들이 걸그룹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수긍해 준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은 어머니가 활짝 웃었다.
“정말? 아들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우리 손녀들이 걸그룹 되는 거에 찬성이야?”
“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잖아요.”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가 씨익 웃었다.
“윤아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아들이 한 번 윤아한테 물어봐. 우리 손녀들, 걸그룹 시켜 줄 수 있냐고.”
그 말에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런 부탁을 했다가는, 신비술사 조윤아에게 폐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문제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윤아라면, 정말로 아이들을 걸그룹으로 만들어 줄 것 같단 말이지.’
평소 조윤아의 하와 사랑과 재력, 행동력을 생각해 봤을 때, 그녀는 엔터테인먼트를 직접 차려서라도 하와와 아이들을 걸그룹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부탁은 절대로 안 돼.’
건우가 그렇게 생각을 굳힐 때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섰다.
“어이구, 이 할망구야. 설레발 좀 작작 쳐. 윤아한테 실례야.”
그 말에 어머니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웃사촌끼리 그 정도 부탁도 못 해요?”
“당연히 못 하지! 연예인 만들어 달라는 게 간단한 부탁이야?”
“윤아가 그래도 신화그룹 딸내미인데, 그 정도는 간단한 부탁이겠죠.”
“어허! 이 사람이? 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어! 괜히 나서서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그 말에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노성을 듣고 보니, 너무 흥분해서 자신이 너무 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건우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볼을 긁적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돌아봤다.
하와와 아이들은 어느새 들떴던 흥분을 가라앉히고 밥을 마저 먹고 있었다.
‘걸그룹이라…… 아이들이 정말로 걸그룹으로 데뷔하면 어떤 모습일까?’
건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와와 아이들이 걸그룹이 되는 상상을 조금 해 봤다.
하와가 센터에 서고, 엘과 소아가 양옆에 선 채로 엉덩이춤을 추는 상상이었다.
‘분명 인기 만발일 거야.’
그러면서 헤벌쭉 입꼬리를 늘어뜨리는 건우.
어쩌다 그 모습을 본 가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갸웅?
물론 곧 아무려면 어떠냐라는 표정으로 식사에 다시 열중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 * *
건우는 아침을 먹고, 평소처럼 밭으로 나섰다. 오전 일과로 밭 관리를 할 생각이었다.
‘밭을 다 매면, 오늘은 꼭 엘프들하고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어.’
그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면서, 작업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문득 하와가 건우에게 다가왔다.
“하와.”
어딘가를 가리키는 하와.
건우가 하와의 손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스프린스 박예준과 불의 꽃 박예란, 얼음의 정령 빙닭이 건우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복장이 평소와 조금 많이 달랐다.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검은 구두까지…… 평소에 보던 트레이닝복 차림이 아니었다.
건우가 그것을 눈치채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저 애들이 신화그룹 집사로 취업했나?’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를, 조그마한 선글라스를 쓴 빙닭이 날아와서 하와의 품에 쏙 안겼다.
“하와!”
뺙!
서로 꼭 끌어안으면서 교감을 나누는 하와와 빙닭.
그러는 사이, 박예준과 박예란이 건우의 앞까지 당도했다. 박 남매는 동시에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건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건우 형님.”
“안녕하세요? 이건우 선배님.”
건우가 그런 둘의 인사를 가볍게 받아 주면서 물었다.
“어, 그래. 안녕? 그런데 오늘따라 복장이 왜 그래? 어디 초상이라도 났어?”
그 물음에 박예준이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설마요. 초상집에 선글라스를 끼고 가지는 않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 복장을 하고 있어? 날도 더운데…… 보고 있는 나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야.”
그가 그리 말하자, 박예준이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 뒤를 쓰다듬었다.
“임무 수행 중이었습니다. 이 정도 복장은 입어 줘야, 일할 맛이 날 것 같아서 입어 봤는데…… 역시 이상합니까?”
“그건 아니고, 그냥 좀 낯설었을 뿐이야. 그런데 무슨 임무 중이야?”
건우가 그렇게 묻자, 박예준이 잠시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봤다. 그런 후에 속삭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백천수 원주지부장님께 직접 받은 비밀 임무입니다.”
건우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초인 협회 원주지부장 백천수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흥미가 동한 것이다.
“그래? 그런데 그런 중요한 걸, 나한테 발설해도 되는 거야?”
그 물음에 옆에 있던 박예란이 나섰다.
“물론이죠. 사실, 이건우 선배님께 협조 요청을 하려고 온 거거든요.”
“나한테?”
“네. 그러니까 저희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 부탁하면서, 간절한 표정을 짓는 박예란.
아마 웬만한 남자들이라면,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는 미녀의 부탁에 약한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건우는 웬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엘프들과 조금 부대끼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인에 대한 내성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런 건우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들어 보고 생각해 볼게.”
그 대답에 박예란이 아깝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쳇! 다 넘어왔는데…….”
농담이 다분한 말투였다.
그때, 박예준이 그녀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나무랐다.
“거봐. 건우 형님은 미인계 같은 건 안 통한다고 했지? 그리고 애초에 너는 미인도 아니잖아.”
“뭐!? 내가 미인이 아니면 누가 미인인데?”
“음, 라일라 씨 정도는 돼야, 미인 아니겠어?”
그 말에 박예란은 조금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녀도 무녀 라일라의 미모를 본 적이 있는 만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건우는 그 모습이 살짝 안쓰러워서, 박예란을 달랬다.
“너무 의기소침하지는 마. 라일라 씨는 반칙 써서 그래.”
그 대답에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박 남매.
미와 관련돼서 떠오르는 반칙은 성형이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두 사람이 괜한 오해를 할 것 같아서, 바로 말을 이었다.
“참고로 라일라 씨는 100% 자연 미인이야. 성형은 조금도 하지 않았어.”
그 말에 박 남매가 놀란 마음을 빠르게 추슬렀다. 그러면서 반칙이라는 게 뭐냐고 건우에게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 반칙이 뭔지, 두 사람에게 알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엘프라서 반칙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건우가 그러면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나한테 뭐 부탁하러 온 거 아니었어? 그것부터 얘기하자.”
그 말에 박 남매가 잠시 라일라에게 팔렸던 정신을 다잡았다.
박예준이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건우 형님. 혹시 성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 아십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찔리는 바가 있어서 움찔거렸다. 하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런데 그게 왜?”
“백천수 지부장이 그 일하고 관련된 임무를 주셨습니다.”
“관련된 임무?”
“네. 누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저희가 좀 찾아봐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건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