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1)
정령 농사꾼 – 21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농산물을 가공한다는 것은 상당히 여러 가지 의미로 볼 수 있었다.
먹지 못하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도 가공일 테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가열하는 것도 가공일 테니까 말이다.
즉, 원재료의 모습에 손을 대는 모든 것을 가공이랄 수 있었다.
‘역시 단순한 방법으로는 안 되나?’
건우는 상당한 양의 널부러진 아름의 잎과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껍질을 까고 속살만 남은 것들, 괴상한 색으로 변색되어 죽처럼 변한 것들, 바짝 말린 것들, 가루로 만든 것들, 소금에 절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가공된 아름에서도 부작용이 완화되거나, 처리되었다는 정보는 뜨지 않았다.
‘이건 오히려 부작용이 더 심해졌네.’
건우는 새까맣게 탄 아름의 열매를 바라보았다.
「까맣게 탄 아름의 열매 – EX급.
농사의 정령과 던전의 정령의 전폭적인 관리를 받은 아름의 열매. 정령 농사꾼을 위한 던전 농지(Lv2)의 기운을 독점했다. 거의 온전한 프람망고 사체 하나를 전부 양분으로 삼아서 피어난 만큼, 특별한 열매가 되었다. 하지만 잘못된 가공으로 인해서, 기존의 모든 효능이 괴랄할 정도의 부작용으로 승화되었다.
★어차피 이렇게 태운 거, 그대로 완전 소거될 때까지 태워서 재로 만들 것을 추천한다.」
인터넷을 통해 본, 파프리카 직화 구이에 착안해서 한 방법이 완전히 실패로 거듭난 것이다.
‘나중에 원수라도 만나면 만들어서 줘야겠다. 먹을지 모르겠지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불의 정령을 이용해, 아름 열매 직화구이를 완전히 소거시켰다. 그러면서 두 손을 가볍게 들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더 해봐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소금에 절여놓은 아름을 가득 채운 항아리만 잘 보관했다. 그리고 그것을 뒤로 한 채, 던전 농지를 벗어났다.
***
건우가 그렇게 아름의 부작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건우처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A+급 옥수수를 요리했었던 초인 쉐프 정수찬.
그는 최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접으려는데,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운영하던 레스토랑 자체가 큰 외식업체와 계약을 통해 운영되고 있었던 것만큼,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인한 위약금 문제가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수찬은 레스토랑 사업을 과감하게 접었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말이다.
「진정한 요리사가 되기 위한 2번째 시련.
정체되어 있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부와 명예, 자존심마저 버릴 수 있어야만 한다. 지금의 것을 비워내고 떠나라. 그리고 도움을 청해라.
목표1: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처분해라. (완료)
목표2: A+급 옥수수를 재배해낸 장인을 찾아내어 의탁하고 도움을 청해라.
목표3: 깨달음을 얻어라.
성공보상: 잊혀진 극한의 요리사의 선물.」
잊혀진 극한의 요리사가 준 2번째 ‘시련’,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참고로 시련은 도전과는 달리 희생을 강요하고 그 어떤 힌트도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전과는 달리 실패나 포기도 없었다. 말 그대로 피할 수 없는 강제된 사항인 것이다.
그 덕분에 시련을 원망하는 초인들도 더러 있었다. 시련을 벗어나지 못하면 비교적 쉬운 도전을 진행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수찬은 달랐다.
‘차라리 잘 됐다. 나도 원하는 바였다.’
그는 이번 시련을 아주 달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는 요리 실력을 발전시킬 돌파구가 될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모든 문제거리들을 처리하고 커다란 배낭 가방을 등에 멨다. 거기에는 그의 전용 요리도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가자. 일단······강원도부터다.’
그렇게 그는 강원도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건우의 아름 부작용 제거 도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가?’
건우는 문득 처음에 아름을 키웠을 때가 떠올랐다.
힌트가 없었다면 아주아주 높은 확률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아름의 파종 방법.
건우는 아름의 부작용을 지우는 방법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직접적인 힌트가 있기 전까지는 부작용 제거는 힘들다는 소리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단 아름의 부작용 제거 작업은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대로는 아름의 소비만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차선책에 힘을 싣기로 했다.
아름의 잎과 열매를 뿔토끼들에게 먹여서 뿔과 털을 강제로 자라게 하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그 방법은 잘 먹혀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잘 먹혀들고 있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뿔토끼 사육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뿔토끼 농사의 핵심이 평화롭게 사료를 먹다가 건우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뀽?(뭘 보냐뀽?)”
얼마 전만 해도 형편없이 부러진 뿔을 소유하고 있던 수컷 뿔토끼.
녀석은 꾸준하게 아름을 섭취해서 그런지, 다른 뿔토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뿔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아름을 먹인 건 저 녀석밖에 없지만 부작용 걱정도 없는 것 같고······슬슬 절각작업을 해도 되겠어.’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소뿔을 자르는 절각 작업이나 사슴뿔을 자르는 절각 작업을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그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것이다.
‘하긴, 그래도 나는 좀 낫지. 나는 내가 직접 자르진 않을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리미리 하와를 시켜서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절각작업은 바람의 정령이 건우를 대신해서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저 녀석을 붙잡아야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얼굴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영업용 미소를 만들어 보이면서 수컷 뿔토끼를 불렀다.
“크고 아름다운 뿔을 가진 아이야. 잠시 이리로 오지 않으련?”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이 잠시 움찔거렸다. 평소와는 다른 친절한 말투에 경계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건우에게 깡총거리면서 뛰어왔다.
“뀽?(왜 불렀냐뀽?)”
“왜 불렀긴? 크고 아름다운 뿔 좀 보려고 그러지. 일루와 봐.”
건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자, 뿔토끼가 얌전히 건우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건우는 그런 뿔토끼를 안아들고는 뿔을 살폈다.
“많이 자랐네?”
“뀽뀨뀽!(전보다 더 크고 굵게 자랐다뀽!)”
수컷 뿔토끼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뿔토끼에게 뿔이란 스스로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건우는 그런 녀석의 반응에 고개를 주억이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봐도 크고 아름답네. 그러니까······.”
뀽?
“슬슬 다시 자르자.”
뀨융!?
건우의 말을 들은 수컷 뿔토끼는 깜짝 놀라서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건우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했다. 자신의 뿔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물론 건우에게 완벽하게 붙잡힌 녀석은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녀석에게 허용된 움직임이라고는 의미 없는 발버둥뿐이었다.
건우는 그런 뿔토끼를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믿지? 못 믿어?”
“뀽뀽!(어떻게 믿냐뀽!)”
“어허. 가만히 있어 봐. 조금만 자르고 놔줄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던전 농지의 한켠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준비해둔 절각 작업에 필요한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건우는 그 중에 주사기를 들고 눈을 번뜩였다.
그 모습에 뿔토끼가 소리쳤다.
“뀽뀽!(뿔토끼 살려뀽!)”
하지만 그 누구도 건우를 막을 수는 없었다.
***
“뀽.(너무하다뀽.) 뀽뀽······.(어떻게 키운 뿔인데뀽······.)”
다시 한번 멋들어진 뿔을 잃은 수컷 뿔토끼는 안쓰럽게 훌쩍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서 건우는 태연하게 자신의 손에 들린 뿔을 살펴보고 있었다.
「수컷 뿔토끼의 영롱한 뿔 – A+급.
수컷 뿔토끼의 뿔. 조금의 손상도 없이 크고 아름답게 자랐다. 뿔이 자란 결이 아름답게 물결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특징. 장신구로 사용해도 좋고, 연금술 재료로 사용해도 좋다. 마력 전도율이 기존 뿔토끼 뿔보다 높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미쳤는데?”
건우는 수컷 뿔토끼 뿔의 정보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익히 알려진 뿔토끼 뿔의 정보보다 월등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못 구할 정도의 물건은 아니었다. 뿔토끼의 뿔 같은 경우에는 거래량이 많아서 등급이 높은 뿔토끼 뿔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무튼 대박이다. 이런 정도의 뿔을 계속해서 양산해낼 수만 있다면······.’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뿔토끼를 훑어보았다. 그에 움츠려 있던 뿔토끼가 한층 더 크게 몸을 웅크렸다.
“뀽······뀽?(왜 그런 눈으로······뀽?)”
“흠흠. 아니야. 아무것도.”
건우는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욕망으로 일그러진 눈빛을 감췄다. 그러면서 한 번 더 채취한 뿔을 보면서 실실 웃었다.
벌써부터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이 일련의 과정을 조금도 모르고 다가오던 하와가 수컷 뿔토끼의 상태를 봐버렸다.
하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뿔토끼에서 후다닥 달려왔다.
“하와!?”
“뀽······.(서럽다······뀽.).”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뿔토끼를 조심스럽게 안아드는 하와. 하와는 그대로 뿔토끼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하와하와.”
한껏 자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그에 잔뜩 움츠린 뿔토끼가 서서히 평온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하와의 품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와의 어루만지는 능력을 저렇게도 쓸 수 있었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와가 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하와는 뿔토끼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손수 사육장까지 안아다 주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 옆을 지키면서 어루만져주다가 사육장을 나섰다.
“하와!”
자신이 할 일을 끝내고 방긋 웃는 하와.
건우는 그런 하와의 미소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빼먹을 것만 빼먹고 뒷일은 나 몰라라 한 놈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뿔토끼한테 집도 지어주고, 먹이도 주고, 마취도 해주고, 지혈제도 뿌려주고, 아플까봐 바람의 정령으로 단번에 뿔을 잘라주기도 하고······흠흠.’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스로 졸렬해지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다음부터는 나도 좀 다독여주고 그래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하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하와. 내가 할 일을 대신 해줘서.”
“하와!”
“그래. 가서 좀 더 놀아.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까.”
하와는 건우의 말에 방긋 웃고는 엘에게 달려갔다. 엘은 하와보다 먼저 다른 뿔토끼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두 정령과 뿔토끼들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가축들한테 감사한 마음을 잊지는 말자.’
그렇게 그는 한층 더, 농사꾼에 가까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