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86)
다음 날, 건우는 오랜만에 근처 양계장을 찾았다. 닭만 수만 마리를 키우는 큰 축사였다.
양계장은 인적이 드문 산 중턱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양계장 냄새가 너무 역했기 때문이다.
갸, 갸웅!
가온은 생전 처음 맡아 보는 양계장 냄새에 깜짝 놀라서 앞발로 자신의 코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냄새가 아니었다.
건우가 피식 웃으면서 가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냄새가 좀 심하지? 조금만 참아. 익숙해질 거야.”
갸, 갸웅.
가온은 그럴 것 같지 않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하와가 그런 가온을 쓰다듬으면서 달랬다.
그렇게 잠시 후, 거짓말처럼 냄새에 적응한 가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지독한 냄새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하와?”
갸웅!
괜찮냐고 묻는 하와와 그렇다고 대답하는 가온.
건우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둘이 사이좋은 남매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러고 있을 때, 건우를 기다리고 있던 양계장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건우야, 이게 얼마만이냐? 오랜만이다. 밖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양계장 주인은 건우의 아버지와 동년배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건우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격조했죠?”
“됐다, 됐어. 우리 아도 마찬가지 아니냐? 무슨 헌터인가 뭔가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어휴. 빨리 너처럼 정신 차리고 가업이나 이었으면 좋으련만······.”
양계장 주인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아들에 대한 뒷담화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건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남 얘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네도 우리 집이랑 비슷한 경우네.’
양계장 주인의 아들은 건우처럼 초인으로 각성해서 헌터가 되겠다고 서울로 올라간 상태였다. 건우가 묵계리라는 좁은 마을보다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것처럼, 양계장 주인의 아들도 냄새나는 양계장을 벗어나서 넓은 세상을 동경했다.
물론 둘이 완전히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건우는 11년 동안 집에 찾아오지 않았지만, 양계장 주인의 아들은 명절 같은 때는 꼬박꼬박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계장 주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건우.
그가 잠깐 그의 말을 멈췄다. 그리고 같이 따라온 하와와 가온부터 소개시켜 주었다.
“하와.”
갸웅!
배꼽에 손을 얹고 꾸벅 인사하는 하와와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가온.
양계장 주인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둘의 머리를 동시에 쓰다듬어 주었다.
“으하하. 소문대로 정말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그런데 너무 세게 쓰다듬어서 하와와 가온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 하와아!”
갸, 갸우웅!
“아차차! 미안하다, 미안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좀 세게 쓰다듬었구나. 미안해요, 아저씨가.”
하와와 가온은 양계장 주인의 사과를 쿨하게 받아 주었다.
그때, 건우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소문이라뇨?”
“응? 너는 몰랐냐? 네가 키우는 딸하고 테이밍 몬스터가 귀엽다고 난리잖냐.”
건우는 그 말을 듣고서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런 소문이 돌았어요?”
“그래. 이 근처에서 난리야. 할배, 할매들이 얼마나 자식들을 들들 볶는지······ 입석리, 반곡리, 청용리, 곡교리. 마을마다 테이밍 몬스터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손주 보고 싶다고 난리다. 주책들이지, 정말.”
소문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건우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와와 가온의 칭찬은 그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 충분한 일이었다.
양계장 주인이 그런 건우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튼 잘 왔다. 계분 비료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맞아요. 땅이 좀 늘어났거든요.”
“오, 축하할 일이구나. 능력 있네. 우리 건우.”
건우가 양계장을 찾은 이유는 바로 계분 비료 때문이었다. 농사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비료를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구해서 사용하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계분 비료를 미리 구비해 놓고 쓸 요량이었다.
그렇게 계분 비료에 대한 흥정을 시작한 두 사람.
하와와 가온은 둘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허락을 받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구경하고 싶었던 것을 보러 움직였다.
바로 양계장의 핵심인 닭들 구경이었다.
“하와~”
갸웅~
양계장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만 안쪽을 확인해도 엄청난 숫자의 닭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와와 가온은 창밖에서 닭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둘은 조심스럽게 양계장 출입문을 열었다.
꼬꼬꼭꼬꼬꼬꼭꼬꼭꼬꼬꼬꼬꼭꼬.
출입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닭들의 소리. 닭똥 냄새도 아까보다 한층 심해졌다.
하지만 그 두 가지로는 하와와 가온의 양계장 탐사 욕구를 막을 수 없었다. 둘은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서 양계장 내부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하와~”
갸옹!
여기를 봐도 닭, 저기를 봐도 닭. 닭들 천지였다.
녀석들은 양계장 안에 자유롭게 풀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처음에 하와와 가온을 보고는 심하게 경계했다.
“하와아~”
하지만 곧, 하와의 친화력에 이끌려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꼬꼬꼭.
순식간에 닭들에게 둘러싸인 하와와 가온.
둘은 닭들을 쓰다듬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온이 뭔가를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갸, 갸웅!
몇몇 닭들이 축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와가 놀라서 그 닭들에게 도도도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녀석들은 숨을 거둔 상태였다.
수만 마리의 닭들을 한곳에 모아서 대규모로 키우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폐사하는 닭들이 나오는 것이다.
“하와.”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하와는 잠시 폐사한 닭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가온도 앞발을 모았다.
그 후로, 하와와 가온은 닭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조용히 양계장을 나왔다.
때마침, 양계장 주인과 대화를 끝낸 건우가 둘을 발견했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하와하와~.”
하와는 가온과 함께 닭장을 구경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분명 이 정도 숫자면 건우가 어제 알려 준다고 했던 50만이라는 숫자만큼일 거라고 자신했다.
건우는 그런 하와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좋은 구경했네. 그럼 닭만 구경한 거야? 다른 일은 없었지?”
그 물음에 하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와는 아까 있었던 일을 건우에게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건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폐사한 닭이 있었구나.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하와는 좋은 곳에 가라고 가온과 함께 기도해 주었다고 말했다.
건우는 그런 하와와 가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하네. 잘했어.”
건우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하와도 그것 이상의 뭔가를 바라지 않았다.
건우와 하와는 가축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농사꾼이었던 탓이다.
그렇게 하와와 가온의 짧은 양계장 탐험이 끝났다.
***
건우가 양계장에서 계분 비료를 구하고 있을 때.
신비술사 조윤아는 오랜만에 묵계리 집에 있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반쯤 파묻은 상태였다.
그녀는 살짝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대하고 있던 하와의 마정석 장신구 모델 건이 반려됐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사, 나이트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가씨, 하와 님과 같은 어린아이가 장신구 모델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본사의 판단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신구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어린아이들이 사용하기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이 착용하기 때문이다.
나이트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연령층과 남녀 모두를 타깃층으로 잡고 광고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마정석 장신구의 특수성을 생각해 보면 남녀노소 전부 타깃으로 노릴 수 있다는 것이 본사의 판단입니다.”
거기까지 할 말을 모두 마친 나이트가 조윤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조윤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국 어린아이만 타깃층이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렇습니다.”
“결국 하와가 모델을 할 일은 없고요?”
“네. 그렇습니다.”
나이트의 단호한 말에 조윤아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걸로 알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옆에 있던 액자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지난번에 마정석 티아라와 예쁘장한 드레스를 입은 하와가 찍혀 있었다.
“하와가 모델을 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텐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사진을 품에 꼭 안았다. 그렇게 하면 하와를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트가 그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아쉬우십니까?”
“당연하죠. 하와를 모델로 채용하자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반려됐다는데······.”
“흐음. 그러시군요. 저도 웬만하면 아.가.씨.가. 기획하신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렵더군요.”
“그러셨어요? 고생 많으셨······.”
조윤아는 별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그리고 천천히 나이트를 돌아봤다.
나이트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가늘게 뜬 눈에는 약간의 노기가 엿보였다.
조윤아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물었다.
“혹시······ 눈치채셨어요?” “네. 보고서에 쓰인 기획자를 찾아가 보니까, 그분은 기획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더군요.”
“그, 그걸 찾아가신 거예요?”
“네. 일단 하와 님의 모델 건은 반려됐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은 전부 다 채용되었으니까요. 성과급을 지급해 드리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이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티 나게 노기를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였다.
조윤아가 그 모습을 보면서 움찔거렸다.
“죄, 죄송해요. 나이트, 속여서······.”
“아닙니다. 애초에 하와 님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나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가씨,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나이트.”
나이트는 조윤아의 집사였다. 그리고 그런 집사의 역할에는 훈육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트는 가끔씩 그 권한을 이용해서 조윤아의 잘못을 꼬집고는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아가씨. 소와 호랑이 이야기 아십니까?”
그 질문에 조윤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와 호랑이요?”
“네. 소는 풀을 뜯는 동물이고 호랑이는 고기를 뜯는 동물이지요.”
조윤아는 나이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졌다.
“그런데요?”
“만약 소와 호랑이가 사랑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하고 호랑이가 사랑을요?”
조윤아는 나이트의 질문을 되물으면서 묘한 상상을 했다.
소와 호랑이가 사랑을 나눠서,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내는 상상이었다.
그때, 나이트가 그녀의 생각을 끊고 하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마 소는 호랑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풀을 가져다줄 것이고, 호랑이는 소를 사랑하기 때문에 소에게 고기를 가져다줄 겁니다.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로가 못 먹겠죠?”
“맞습니다. 소는 풀을 뜯고, 호랑이는 고기를 뜯어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요. 그런데 그 이치를 모르고 계속해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주게 되면, 결국 둘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 겁니다.”
나이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투두두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아무래도 사모님이 오신 모양입니다.”
나이트는 그렇게 알리고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하와 님과 아가씨는 소와 호랑이가 아닌, 사람입니다. 하지만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다르겠지요. 부디 그 점을 고려해 주시고 행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명하신 아가씨라면 제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지 충분히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조윤아는 나이트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나이트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슬슬 사모님 마중을 나가시지요.”
“알았어요, 나이트. 그리고······ 항상 고마워요.”
“별말씀을······.”
둘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가까워지는 헬리콥터가 보였고, 그 헬리콥터의 문이 덜컥 열렸다.
그곳에서 한 여성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딸! 엄마 왔어!”
신화그룹의 안주인이자 조윤아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