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24
만약 S급 헌터가 실존했더라도 이 정도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일반 프로 헌터 천 명을 모아 와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왜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너무 흥분해서 그런 건가.
“시작한다.”
“네.”
이번에도 선생님의 시작 신호와 함께 초원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포스부터 다르네.”
마치 거대한 벽이 다가오는 것만 같은 웅장한 실루엣.
데빌혼 다섯 마리는 마치 만리장성이 다가오는 것 같은 위압감을 뿜어내며 다가오기 시작했고,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니아이스에게 말했다.
“이번엔 힘들 수도 있어.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해.”
-응! 니아이스는 괜찮아!
“그래. 가자.”
니아이스와 내가 결의를 다지던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가 반짝이더니 이쪽으로 점점 날아오기 시작했다.
…….
잠깐.
이번엔 원거리전인가.
“니아이스. 보호막.”
촤악!
나는 반짝이는 것들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황급히 니아이스에게 물 보호막을 치라고 명령했다.
반짝이는 것이 별똥별이나 빗방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갑작스러운데.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저 수많은 반짝이는 것들의 정체는 다섯 마리의 데빌혼이 쏘아 대는 불꽃 덩어리들이었다.
“크흑…… 니아이스. 괜찮아?”
-니아이스는 괜찮아…….
역시 데빌혼 한 마리와 다섯 마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데빌혼 한 마리가 불꽃 덩어리 10발을 쏟는다면 막거나 피할 수 있지만, 다섯 마리가 발사하면 그 다섯 배.
즉 50발이 날아오는 거니까.
말 그대로 불꽃 덩어리 장대비가 내리는 것이다.
쩌적…….
“니아이스. 괜찮은 거야?”
-호야…… 힘들어…….
아무리 니아이스의 위력이 압도적이라고 해도 상대도 만만치 않은 적인 A+급 몬스터 5마리.
니아이스가 힘겹게 버티고는 있었지만, 니아이스의 물 보호막이 점점 옅어지고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선생……!”
스르륵…….
나는 실패를 확신하고 선생님을 부르려고 했으나, 선생님을 부르기도 전에 니아이스의 보호막이 먼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불꽃 덩어리들은 나와 니아이스에게 직면(直面)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쏟아지는 불꽃 덩어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씨…….”
니아이스는 이미 탈진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황.
지금 저 불꽃 덩어리가 이대로 떨어진다면 그대로 잿더미가 되는 건 안 봐도 뻔하다.
젠장.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발을 동동 구르는 것밖에는 없었다.
지금 정령이 없는 나는 정령왕 엘림이 아닌 그저 지능이 높은 인간일 뿐이니까.
“니아이스…….”
콰쾅!
결국, 불꽃 덩어리는 내 눈앞까지 다가왔고, 이글거리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나와 니아이스를 집어삼킬 듯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젠장……!”
결국, 불꽃 덩어리의 열기가 내 피부로 느껴지려고 하던 그때.
피이잉…….
내가 차고 있던 목걸이가 강렬한 푸른 빛을 뿜어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푸른 빛의 상태 창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시 물의 정령왕』
[임시적으로 물의 정령왕의 힘을 100% 사용할 수 있다. *목걸이를 보유시]…….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정령사는 정령에게 의존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나는 니아이스에게 의존할 수 없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내 기억이 흐릿해도, 또 많은 걸 잊었어도.
내 과거가 정령왕 엘림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결국, 불꽃 덩어리는 내 코앞까지 다가왔고, 불꽃 덩어리의 불길이 내 살갗을 태우기 일보 직전. 나는 본능적으로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은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
“물기둥이여 솟아나라.”
■ 제23편 물의 정령왕으로서 명한다 (1) □
“솟아나라.”
촤아아아아아악!
내가 한 손을 뻗은 상태에서 손바닥을 살짝 위로 들어 올리자, 나를 중심으로 수많은 거대한 물기둥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불꽃 덩어리들은 물기둥에 닿자마자 그대로 힘없이 휩쓸려 나가기 시작했고, 모든 불꽃 덩어리들이 모두 연기를 내 뿜으며 떨어지자, 나는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고 말했다.
“귀찮아.”
내가 머리를 쓸어 넘길 때 흘깃 보인, 전보다 더러워진 눈빛과 차가워진 말투는 지금의 내 상태가 평소의 나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려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강호보다 엘림에 가깝다는 것을.
콰앙!
콰앙!
다섯 마리의 데빌혼들은 자신들의 불꽃 덩어리가 한낱 인간에게 막히자 당황한 것인지, 다시 전력으로 입에서 불꽃 덩어리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전보다 크기가 거대해지고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진 불꽃 덩어리들이 나를 향해서 돌진해 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 방어 대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니아이스를 살며시 들며 읊조렸다.
“소환 해제.”
슈웅.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니아이스를 소환 해제시켰고 니아이스는 그대로 물방울이 되어 소환 해제되었다.
니아이스가 소환 해제된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쓸어 넘기며 드디어 제대로 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니아이스도 소환 해제됐겠다, 이제 남은 건 저 데빌혼들 뿐이니까.
콰앙!
불꽃 덩어리들은 빠르게 날아와 내 근처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불꽃 덩어리들은 내 근처를 금세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위력으로는 엘림에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저 어린아이의 불꽃놀이로 보였을 뿐.
엘림 상태의 나는 다시 한 손을 머리 위로 높게 든 뒤 떨어지는 불꽃 덩어리들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해일(海溢). 집어삼켜라.”
내가 허공에 손을 휘두름과 동시에 내 등 뒤 멀리에서 무언가 거대한 벽의 실루엣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우웅…….
거대한 벽 그 자체로 보였던 실루엣의 정체는 다름 아닌 거대한 해일이었고, 그 해일은 데빌혼의 육중한 몸집 따위는 충분히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이나 거대했다.
거대한 크기의 해일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데빌혼들은 잠시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더니 일제히 해일을 향해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륵!
마치 화염방사기 수천 대를 한 번에 작동시킨 것 같은 화력이 해일을 향해 쏟아져 나왔고, 데빌혼의 불꽃과 해일이 맞부딪치자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뭉게뭉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연기가 공기 중을 감싸기 시작했고 해일과 데빌혼의 모습이 연기에 가려지자 데빌혼들은 불꽃이 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경계 따윈 없이 그저 태연하게 숫자를 셀 뿐이었다.
“셋. 둘…….”
…….
“하나.”
촤아아아아아!
내 ‘하나’에 맞춰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고 연기가 걷힌 데빌혼들의 앞에는 불꽃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이 여전히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해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일은 순식간에 데빌혼 다섯 마리를 집어삼켜 버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난 포스를 내뿜던 데빌혼 다섯 마리는 한순간에 물에 휩쓸린 생쥐 꼴이 되어 버렸고, 해일은 그대로 데빌혼들을 집어삼킨 채 붉게 물든 초원 저 멀리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인가.”
해일이 데빌혼과 함께 사라지고 잠시 뒤, 더 이상 데빌혼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강렬하게 빛나던 목걸이는 다시 잠잠해져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엘림 그 자체였던 나 역시 원래 강호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뭐였지.”
정신이 돌아온 나는 내 양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아까 전의 기억은 지워지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인간의 몸으로 엘림의 힘을 저 정도까지 사용한 것도 놀랍고, 가장 중요한 건 마치 내가 엘림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
아니면 내가 엘림에게 몸을 빼앗겼던 것이거나.
내가 한창 내 양손과 목걸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호?”
“네.”
“그래…… 잠깐만 기다려. 지금 내려갈 테니까.”
다급한 마이크 끄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선생님이 나오셨고, 선생님은 물난리가 난 초원을 잠시 두리번거리시더니 내게 달려오신 뒤 말을 걸어오셨다.
“강호. 지금 이거 정령이 한 거 아니지?”
“네?”
“위층에서 다 봤어. 너…… 정체가 뭐야.”
“정체라뇨.”
“저 정도 힘은 정령도 아니었다고. 너 도대체 뭐야. 어?”
선생님은 내 어깨를 붙잡으시고는 폭풍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저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다 해도 쉽게 믿지는 못하실 테니까.
정령이 아닌 정령사가 저 정도의 위력을 내다니.
나라도 믿지 못하겠지.
“너 혹시…….”
선생님이 내 정체를 의심하시려던 바로 그 순간.
나는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머리가…….”
“왜 그래? 어?”
“머리…….”
털썩.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머지않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나는 정령왕의 몸이 아닌 인간의 몸.
정령왕의 몸을 사용하던 엘림은 정령왕의 힘을 100% 감당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반면, 인간인 나는 정령왕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약한 신체를 가졌으니 몸에 부담이 가는 건 당연하다.
거기다가 엘림이 보통 정령왕도 아니고, 마치 들어가지 않는 청바지를 억지로 입어서 찢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지.
“강호! 강호!”
선생님은 다급하게 쓰러진 나를 부르시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다.
“지금 특별 훈련장으로 응급 팀 보내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선생님은 전화를 끊으신 뒤 내게 심폐소생술을 하시기 시작하셨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수많은 의료진이 내리기 시작했다.
“헌터님. 정신이 드세요?”
의료진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며 내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지만.
…….
여기까지가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내 신체는 엘림의 강력한 힘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난 의식불명인 채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 * *
“어이 엘림.”
…….
“어이 엘림! 무시하냐!”
“뭐야…… 날 부르는 건가.”
“그래. 네가 엘림이지 또 누가 엘림인데?”
내가 엘림이라는 건. 여기가…….
나는 깨어나자마자 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근처의 상황을 보자마자 한 번에 깨달았다.
지금 여기는 대격변의 날이라는 것을.
‘저번에 꾸던 꿈을 이어 꾸는 건가. 그렇다는 건…….’
“그래서, 비밀 안 궁금해? 갑자기 정신을 놓고 그러시네. 안 어울리게.”
내 머리 위 상공에 떠 있는 키리엘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 대기 시작했고, 나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불꽃 조각들과 키리엘의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보고 사태 파악을 마쳤다.
저번에 내가 꾸던 꿈을 지금 이어 꾸는 것이 확실하다고.
여긴 정령계. 지금은 대격변. 지금의 나는 엘림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다시 얘기해라.”
“비밀 안 궁금하냐고~.”
정신을 잃은 것까지는 최악일지 모르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번에 듣지 못한 비밀을 지금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도 그 비밀이 상당히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얘기해라.”
“흠…… 알려 줄까? 말까~?”
“너의 입을 찢으면 말이 더 잘 나오겠지.”
“크큭! 정말 유머 감각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키리엘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으며 공중에서 내려와 내 앞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래. 솔직히 네가 이걸 들으면 너희들 사이에 내분이 생길 것 같으니까 알려 주는 거야. 나는 너희들과 달리 솔직한 편이거든.”
“혀가 길군.”
“비밀은 사실 말이야…….”
…….
“너는 네가 어떻게 정령왕이 됐는지 기억하냐?”
무언가 비장한 비밀을 말할 것같이 뜸을 들이던 키리엘은 갑자기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비밀인가.”
“아니. 대답부터 해 봐. 나는 너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을 뿐이라고.”
…….
“모른다.”
내 대답을 듣자, 키리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씨익 보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