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1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16화
휘잉!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던 숲은 완전히 빙결의 지대로 탈바꿈됐다.
숲을 요란스럽게 태우던 이그니스의 불길은 마치 촛불처럼 사그라졌다.
엘퀴네스, 이그니스, 미네르바, 티에라.
4대 정령왕은 세피아의 빙결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이들과 계약한 정령군주, 라페아 역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승부는 건우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교란자는 개뿔. 이 자식 완전히 생태계 교란자잖아!
그 어마어마한 풍경에 세이비어는 너무 놀라 육두문자를 남발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우는 세피아와 눈을 부딪치며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카리스마 스탯이 다소 높은데도 불구하고 세피아는 건우의 의지에 맞춰 주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7성급의 세피아.
‘정점까지 올라도 이런 녀석을 통제할 자신은 없어.’
절망이 잠시 어깨를 덮은 듯 보였지만 건우는 그것을 곧 맹세로 탈바꿈했다.
“언젠가 너는 완전한 모습으로 나한테 귀속될 거야.”
씨익.
세피아는 도발 같은 건우의 말에 미소를 짓다가…….
우웅.
이윽고 원래의 4성급의 형체로 되돌아왔다.
“쿨럭!”
긴장이 놓였는지 건우는 왈칵 피를 토하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마나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한 부작용인지.
7성급 세피아로 인해 반발력 때문인지 몸의 상태는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물론 복원의 권능으로 몸은 정상상태로 복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라페아와의 격전으로 잃은 체력이었다.
몸에 급속도로 찾아오는 피로에 건우는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아 당분간 녹용만 먹어도 기력이 나아질 것 같지가 않네.”
-네가 노인네야? 한창 팔팔한 놈이.
“젊어도 힘든 건 힘든 거예요.”
괜스레 세대 간의 오해와 갈등이 빚을까 싶어 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스키드블라드니르는 이 상황 속에서도 무척이나 건재해 보였다.
건우는 쓰러진 라페아를 안아 들었다.
그녀 역시 건우 못지않게 심신에 큰 피로가 쌓여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우습게도 곤히 잠을 취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냥 얄밉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수상한 조짐을 느낀 세이비어는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했냐?
“귀엽다고는 생각했어요.”
건우는 피식 웃으며 솔직한 모습에 세이비어는 잠시 넋을 놓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을 봤으면서도 목석처럼 점잖은 녀석이 이렇게 솔직하게 반응하다니.
그 모습이 실로 신기해 보였다.
“그럼 이동할까나.”
건우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 들며 스키드블라드니르에 올라탔다.
후웅!
스키드블라드니르는 건우의 의지에 맞춰 단숨에 라페아의 별장으로 향했다.
***
기묘한 숲에 한 소녀가 버려졌다.
우웅.
소녀가 지니고 있는 힘이 다소 특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때때로 아기의 주변에 불꽃이 튀기며 물방울들이 부유하는 풍경은 신비롭다기보다 사람들에게 위화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려졌음에도 소녀는 한 달 동안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굶주림에 흉포한 몬스터들은 그녀를 보며 군침을 흘렸지만.
크르릉.
그때마다 그녀를 지키고 있던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가 맹렬하게 적의를 표했다.
모습을 직접 드러낼 수 없고 단지 존재감을 내비췄을 뿐인데.
몬스터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소녀에게서 떨어졌다.
때때로 소녀가 배고픔을 느끼면 바람의 정령왕, 미네르바는 산양 무리를 인도해 젖을 물려주었다.
이 한 달 동안 정령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아기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정령왕들은 더 이상 소녀를 방치할 수 없었다.
더 늦었다가는 어렸을 때 배울 수 있는 인간들과 소통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녀를 구하기 위해 땅의 정령왕, 티에라는 주변 마을의 사람들에게 작물이 돋지 않게 만들었다.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는 비조차 내리지 않았다.
생명의 위화감을 느낀 마을의 주민들은 정령들이 분노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째서 그들이 분노한지 알 길은 없었다.
친화력을 지니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령의 존재를 자각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수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황폐화 된 대지와 산.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유독 풍요로운 곳이 존재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산을 수색하던 도중, 주민들은 비로소 소녀를 발견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정령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 마을이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소녀는 마을을 통치하는 신녀로 자랐다.
그 뒤로 수백 년이 흘렀다.
소녀는 여인의 모습으로 자라며 탑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이랭커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이 랭킹 7위, 정령군주 라페아의 아무도 모르는 일화였다.
꿈틀.
어렸을 적 꿈을 꾼 라페아는 눈을 파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우두커니 몸을 일으킨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졸려.”
그녀의 주변에서 작은 돌고래의 크기로 맴돌던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라피, 그렇게 자고도 또 졸려?
“하지만 자는 동안 너무 편안했는걸.”
의식을 잃기 전까지 그녀는 건우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분명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담긴 감정은 패배에 대한 굴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만연히 자리 잡았던 고충의 해소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표정이 편해 보이네.
“응.”
라페아는 피식 웃으며 엘퀴네스에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여기서 그녀가 언급한 이들은 남은 세 명의 정령왕이었다.
엘퀴네스는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이그니스는 그 미친 몬스터한테 가장 타격을 심하게 입어서 당분간 정령계에서 기력을 회복할 참이야. 미네르바는 또 한 명의 계약자의 소환에 응해서 갔고, 티에라는 우두커니 자고 있어.
“의외네.”
-뭐가?
“그 몬스터와 상성이 제일 안 좋은 건 엘퀴네스잖아.”
몬스터, 세피아의 빙결이라면 엘퀴네스의 몸체를 통째로 얼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에 엘퀴네스는 못내 섭섭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나 그 정도로 어수룩하게 보다니 실망이야. 라피. 나는 엄연히 물의 정령왕이라고! 빙결을 다시 물로 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푸훗! 식은 죽 먹어 본 적도 없으면서.”
-라피 나 화낸다.
엘퀴네스와 라페아가 투덕거리는 동안.
끼익.
별장의 시녀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 뒤, 공손히 예를 갖췄다.
“깨어나셨습니까?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보필하겠습니다.”
“아아, 괜찮아. 지금은 잠시 혼자 있고 싶어.”
“……?!”
라페아의 말에 시녀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평소라면 오만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말투가 무척이나 상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요하고 있던 시녀 중 한 명이 입을 뗐다.
“외, 외람되지만 하, 한마디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그녀에게 감히 의견을 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녀들이 의견을 올리다니?
“뭔데?”
라페아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의 발언을 허가했다.
“라, 라페아님과 같이 있던 남성분께서 직접 요리를 해서 가지고 오겠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언급한 남성이 건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라페아는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얼마든지 기다린다고 전해 줄래?”
“알겠습니다.”
시녀들은 정중히 예를 갖추며 물러섰다.
잠시 후.
똑똑.
“나야.”
건우의 목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때마침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으로 빗고 있던 라페아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도 된다.”
끼익.
그녀의 허가에 곧 문이 열리며 건우가 죽이 든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몸 상태는?”
라페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무척이나 건재하다. 그것이 교란자. 아니. 크흠!”
라페아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 건우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름이 뭐지?”
“참 빨리도 묻는다.”
조우한 지는 꽤 된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이름이 궁금해진 그녀의 심리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건우. 최건우야.”
“건우. 음 어감이 좋구나. 그렇게 불러도 되겠느냐?”
“나도 교란자라는 이상한 칭호보다 그게 더 나아. 그나저나 죽 만들어왔는데, 먹을 수 있겠어?”
“직접 만든 건가?”
“당연하지. 내가 이래보여도 요리는 꽤 잘하거든.”
건우는 테이블에 쟁반을 놓았고 라페아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수저로 떠 입에 넣었다.
구수한 식감이 묘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맛있구나.”
라페아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홍조를 피우고 있었다.
“입에 맞아서 다행이네.”
건우는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자연히 착석하며 이야기의 본론을 꺼냈다.
“럼과 그 가족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라페아는 수저를 내려 두며 미소와 함께 답을 했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라페아의 확답을 들은 건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녀의 기분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면, 어떤 험난한 일이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페아는 그대로 빤히 건우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건우. 어째서 약한 동료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어떤 목적으로 탑을 등반하는 건지 모르지만 분명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거다.”
라페아의 말은 어찌 보면 사실일 거다.
혼자서 탑을 등반했으면 분명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더 많은 힘을 이뤘을 수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잖아.”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한 한계야. 실제로 럼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다소 시간이 걸렸을 거고, 필릴프를 쓰러뜨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난 인연을 소중히 하는 스타일이거든.”
피식 웃는 건우의 모습에 라페아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스윽.
그대로 건우의 손을 붙들어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
“응?”
예상치 못한 그녀의 돌발행동에 건우는 얼굴이 급격히 빨개졌다.
“그렇다면, 건우 너는 나와의 인연도 소중히 하겠구나.”
“……아마 소중히 하겠지.”
짧고 굵직한 만남이었지만.
아마 그녀와의 인연을 잊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말한 답변이었지만, 아무래도 라페아의 귀에는 다른 의미로 들린 것 같았다.
“이전에 나는 건우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기억하느냐?”
“내가 뭔가를 잊기는 더 어려울걸.”
완전기억능력 보유자이기 때문에 건우는 그녀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 자리에서 언급했다.
“‘바라는 건, 하나, 내 시험에 도전해서 성공했으면 좋겠구나.’라고 했었지……?!”
발설 직후.
건우는 뒤늦게 이 발언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통과하는 것.
그 말인즉슨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 다음에 있다는 것이다.
꿀꺽.
뒤늦게 그 사실을 자각한 건우는 목에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라페아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시험에 통과한 자에게는 나, 라페아를 주겠다.”
거짓 없는 진실.
그것을 증명하려는 건지, 그녀의 동공은 무척이나 떨렸고 상아처럼 새하얀 목덜미와 얼굴은 불게 상기돼 있었다.
“……취, 취했나 보네. 다음에 얘기하자.”
모른 척 일관하려고 했지만.
덥석.
라페아는 건우의 멱살을 쥐며 자신의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호흡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근거리.
건우의 얼굴은 급속도로 빨개졌고 라페아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건우에게 선언했다.
“그러니 최건우, 너는 나 라페아의 것이 되거라.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