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237
247. 반격의 칼날(1)
유서준은 일행이 머무는 곳에서 다소 떨어진 백사장에 엎드려 있었다.
인적은 없고 주변은 다소 어두웠다.
그의 손에는 다이어리가 펼쳐져 있었다. 물론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는 아니다.
항상 자신의 자산을 정리하고 결산해서 기록했던 다이어리다.
그는 오늘 여기에 숫자를 적어넣는 행동이 아마 인생의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1987년부터 2027년까지. 무려 40년의 기간 동안 처음에는 자주, 요즘은 가끔 자산통계를 기록했다.
목표가 2027년 12월이었기에 이제는 기록할 의미가 없어졌다.
미래에서 온 편지가 보내졌던 2027년 12월 24일이 지났어도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확실히 미래가 바뀐 것이다. 그만이 아니고 서하나를 비롯하여 김현아, 그리고 주변 사람 모두가 바뀌었을 것이다. 덕분에 오도욱이나 박강수, 백나희는 가보지 않았을 교도소도 구경해보게 되었으니.
12월 만기일 즈음 폭락했던 SJ 증권의 주가는 급반등을 이루며 제자리를 찾았다. 제자리 정도가 아니라 증권업계를 선도하는 위상을 찾았다. SJ 투자은행의 주가 역시 폭등했다. 세계 1위의 투자은행에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까지 더해져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랭킹에서 손꼽히는 위치에 올라섰다.
총액을 기록하는 유서준의 손길은 가벼웠다. 그가 손에 거머쥔 부는 세계 일등은 아닐지라도 손꼽히는 거대한 부였으며 특히 세계 경제에 끼치는 그 영향력 면에서는 단연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
2027년 12월 31일,
국내 SJ 투자금융그룹 주식보유분 10조 7천억 원.
해외 SJ 투자은행 주식보유분과 자산 274억 달러.
기타 개인 총자산 36조 8천억 원.
*
“일기 써?”
서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덮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늘색 비치 원피스로 갈아입은 서하나가 그의 옆에 앉았다. 가지런히 다리를 모으고 치마를 여미며 그의 곁에 바짝 붙었다.
“다 썼어. 오늘 자산을 정리했는데…….”
“그래서 얼마야?”
서하나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유서준이 엎드리고 있던 몸을 뒤집으며 편하게 백사장에 누웠다.
그는 곁에 앉은 서하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국내 국외 자산 모두 합쳐서 80조가량 되네.”
“와우! 많네.”
목소리는 환호성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리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산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무덤덤해지긴 했다. 1조나 100조나 체감되는 부는 어차피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처음 1천만 원을 넘으면서 무척 기뻤고 1억이 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1천억을 넘으니 큰 부자라는 실감이 났다. 거기까지였다.
1조를 넘으면서부터는 재벌이 되었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그 감흥은 예전보다 떨어졌다.
“어째 반응이 별로다?”
유서준의 말에 서하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많으면 좋은 거지. 돈 싫어할 리가 없잖아?”
유서준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서하나가 상체를 그에게 숙였다.
“난 돈보다 서준 씨가 더 좋아.”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도 그랬다. 그러니 만기일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녀를 찾으러 곧바로 뛰쳐나갔지.
“나도 그래. 하나가 더 좋아.”
유서준의 눈동자가 그녀를 찬찬히 훑었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피부가 눈앞에 있었다. 노출이 심한 비치 원피스답게 가슴팍 부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원피스 길이도 무척 짧아 보였다. 무릎을 세우고 앉으니 옆에 누운 유서준의 눈에 그녀의 허벅지가 확 들어왔다.
“하얀색이네.”
“응?”
서하나가 기계적으로 반문하다가 그의 눈이 닿은 곳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치마를 여몄다.
유서준이 곧장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이 아래로 무너졌다.
그는 곧바로 원피스의 허리띠를 풀고 앞에 쭉 이어진 단추를 끌렀다.
서하나의 몸이 모래 위에 반듯하게 눕혀졌다. 펼쳐진 그녀의 원피스는 흡사 야외매트처럼 그녀의 몸과 백사장 모래 사이에 끼었다. 그 펼쳐진 매트 위에 하얀 브래지어와 하얀 팬티만 입은 서하나가 누워 있었다.
서하나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여…… 여기에서? 누가 올지도 몰라.”
“오긴 누가와. 설사 오더라도 알아서 피해 갈 거야.”
“으흑, 그게 뭔 말이야.”
서하나는 도리질을 하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었다.
남십자성이 빛나는 남태평양 밤하늘이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반짝이는 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별빛은 하얀 서하나의 몸에 구석구석까지 내려와 박혔다.
**
[2028년 8월 1일]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미국 북동부에 있는 가장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의 주도인 이곳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가를 따라 쭉 뻗은 도로에는 한여름의 시원한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섰다.
여름 휴가를 맞아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 사이로 값비싼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지붕 없는 사인용 파란색 스포츠카에 모두 네 젊은이가 흥겨운 록 음악을 들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음악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밟으며 주변 바다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20대 중후반의 백인 남자였고 조수석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인 동양인 남자가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뒤에 앉은 두 사람도 비슷한 나이의 여인이었다. 둘 모두 한국인으로 한 사람은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화려한 용모가 돋보였다.
“은서야, 괜찮을까?”
화려한 용모의 여인이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세라. 바로 유서준의 딸이다. 옆의 여인은 구인혁의 딸. 두 사람은 여름을 맞아 휴가차 로드아일랜드로 놀러 왔다.
구은서가 음악에 몸을 흔들며 손을 저었다.
“당연히 괜찮지. 절대 나쁜 사람은 아냐.”
유세라는 불안한 표정으로 앞에 앉은 두 남자를 바라봤다.
운전 중인 백인 남자의 이름은 아론. 그는 이 동네에 있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브라운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구은서와 옆집에 살았다고 했다. 최근에 우연히 다시 연락되어 휴가 중인 구은서를 초대했다.
이곳 로드아일랜드가 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을 생각해보면 그 인연이 그리 특별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구은서는 들떠 있었다. 유세라가 보기에 상대편인 아론도 그렇게 보였다.
조수석에 앉아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으로 두 사람 모두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아론과 함께 브라운 대학을 다니는 대학원생으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로 이 자리에 끼었다. 그의 이름은 오준영.
구은서가 유세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게다가 준영이 봐, 엄청 잘 생겼잖아? 난 꽃미남인 남자가 좋더라. 너도 그렇지 않아?”
“물론 나도 그렇긴 하지만…….”
유세라가 말끝을 흐렸다. 유세라는 그리 잘 생기지 않은 아버지를 둔 탓에 남자 얼굴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특별히 잘 생겨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점수를 더 주지도 않았다.
“이 기회에 너도 남자친구 하나 만들어봐. 그 나이 될 때까지 그게 뭐냐?”
구은서는 항상 유세라에게 남자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 대단한 미모 때문에 남자가 줄을 서고 있음에도 유세라는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변변하게 사귄 남자가 없었다.
그렇다고 구은서 또한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니 같은 처지긴 했지만.
남자가 없다 보니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 남들이 보기에 심각해 보일 정도로.
유세라가 보기에 구은서 또한 약간 들뜬 모습으로 보였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났더니 예상외로 준수하고 훌륭하게 자란데다 그 친구라고 데려온 한국인 남자는 엄청 잘 생겼으니까.
누가 파트너가 되든 그리 불만이 없을 정도였다. 아론의 집안이 부유층에 속한다는 것은 그녀가 먼저 잘 알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 오준영 역시 유학까지 올 정도면 나름 괜찮은 집안일 테니까.
어쨌든 그 자리에 유세라 마저 끼어들어 짝이 딱 일치했다. 그녀는 이번 휴가 기간 굳이 남자친구를 만든다기보다는 신세를 좀 진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만난 지 이제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넷은 꽤 친해진 것 같았다.
바닷가 도로를 달리던 차가 부근의 한 저택으로 들어갔다.
눈부시게 하얀 지붕을 이고 있는 이 저택은 아론의 별장이었다. 이곳 로드 아일랜드에는 부유층의 별장이 많았다. 아론의 별장 부근에도 수 채의 고급별장이 해변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구은서가 별장을 들어가며 환호성을 질렀다. 유세라는 피식 웃으며 짐을 들고 뒤를 따랐다.
“와우! 아론! 멋지다. 여기.”
구은서의 호들갑에 아론이 특유의 매너 있는 웃음을 선보였다.
“나 멋진 거 이제 알았어?”
“너 말고 집 말이야. 킥킥.”
구은서가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유세라 옆으로 오준영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짐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흡사 탤런트를 보는 듯한 미남 얼굴에 유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짐을 건넸다.
구은서가 아론을 뒤따르며 물었다.
“우린 어디를 써?”
“이 층 끝방. 방이 넓어서 둘이 쓰기 충분할 거야.”
아론이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아론을 따라 거실 내부에 있는 나선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잘 정리된 깨끗한 방이 그곳에 있었다.
아론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짐 정리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내려와. 열심히 놀아야지.”
“술도 마시고!”
오준영이 끼어들었다.
“바다는 언제 가?”
구은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의견을 말했다.
아론이 다시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바다부터 갈래?”
“밥을 먹어야지.”
유세라에 의해 여러 의견이 단칼에 마무리 지어졌다.
**
구인혁은 태안반도의 한 구릉에 지은 작은 집에서 살았다. 바다가 보이는 장소였다.
집 옆에는 큼지막한 크기의 공장형 컨테이너 박스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차단되어 있었다.
주변 마을 사람은 그 컨테이너 박스가 물건 보관용 창고일 것으로 추측했다.
멋진 주변 경치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이상한 경관이긴 했다.
구인혁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일 년이 됐다. 그는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컨테이너 박스 내부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바로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이었다.
애초에 구인혁은 타임머신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자칫하면 이것이 다시 미래를 바꾸는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생각을 바꾸었다.
12월의 위기에서 만일 유서준이 다시 실패한다면 그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다이어리든 뭐든 과거로 보내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거기에 타임머신이 실제 작동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이어리로 입증이 되었다 해도 그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구인혁은 타임머신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제작비의 대부분을 유서준이 댔다.
7월 초에 타임머신의 제작이 완료됐다.
유서준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고 SJ 금융그룹 역시 국내에서 해외에서 할 것 없이 사실상 무적 행보를 계속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순수한 과학적인 의문과 증명만이 남았다.
구인혁은 타임머신을 실험하기 위해 한 달가량 에너지를 축적해왔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타임머신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커먼 거대한 둥근 탑처럼 생긴 기계가 삼 층 높이로 눈앞에 자리했다.
맨 아래층 하단부의 크기는 지름이 약 이십 미터.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졌다.
검은 몸체 중간부에는 사방으로 모니터처럼 생긴 것이 매달려 있었다. 그 모니터에는 지금 타임머신의 각종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와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구인혁은 눈앞의 기계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는 다이어리를 보냈던 예전의 그 미래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기능은 사실상 같을 것이다. 타임머신에 쓸데없는 잡다한 기능을 붙이지 않았으니까.
그의 눈에 제어 모니터에 나타난 100%이란 숫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