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33)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꿰뚫은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죽었겠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멸악의 거인 그대도 같지 않나? 아니, 애초에 이길 생각이 있긴 했던 건가?”
“······ ‘드루이드’를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
죽일 생각으로 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멸악의 거인은 처음부터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세계수가, 모든 자연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많은 짐승이, 우리 신화종의 힘마저도 대를 이어갈수록 약해져만 가고 있지.”
천공으로 떠오른 대륙.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땅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땅이 약해지자 자연이 죽어가고, 자연이 죽어가자 짐승들은 작아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에서 신화종들도 자유롭진 못하다.
멸악의 거인은 참담한 심점을 담아 말했다.
“······ 이대로면, 우리는 언젠가 한낱 멍청한 짐승처럼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드루이드’가 땅의 힘을 회복시켜주지 않는다면······.”
흔히들 드루이드는 ‘씨앗을 피우는 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땅의 힘을 복구하는 것’에 있었다.
하여, 멸악의 거인은 처음부터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멸족했다 알려진 그들이 돌아왔을진대 두 팔 벌려 환호해주진 못할망정 어떻게 생과 사를 나누겠나.
다만······ 본 것이다.
그의 가능성을.
그의 의지를.
“어때 보이던가?”
늑대가 묻자, 멸악의 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결이 달라 보이진 않더군.”
“음. 하기야, 처음부터 ‘제압’만 하려던 게 목적 같아 보이던데. 그 점에선 우리와 같았지.”
필요없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
‘별 수호자’가 존재하는 이유와, 서로의 필요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별 수호자 기사단’도 마찬가지로 ‘황금률의 기사단’과 반목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제압하여 결판을 지으려던 건데.
“다만······ 비상한 자다.”
“비상하다니?”
비상(非常).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다.
멸악의 거인은 방금 전의 상황을 상기하곤 입을 열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고 있다. 마치 미래를 읽은 듯, 더없이 많은 상황을 겪어본 듯······.”
“‘미래시’를 갖고 있다는 건가? 그럼 예언자인가?”
간혹 있다.
미래시를 갖고 태어나는 자가.
신의 축복을 부여받은 존재가.
확실한 미래를 읽지는 못하지만 열중 일곱 정도는 결과를 맞추는 자들.
그들은 예언자로 불리우며 수많은 기적을 행하곤 한다.
하지만 멸악의 거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미래시처럼 보일 정도로 수많은 상황과 경험을 해봤다는 게다. 모든 행동과 선택이 능수능란하더군. 단순히 미래시를 갖고 있다면 그 정도로 빠르게 수많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터인데.”
결단이 빠르다.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그 모든 결과가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타난다.
검을 성장시키고 조합하는 것.
그리하여 나타난 격이 다른 무기까지.
뿐만인가.
멸악의 거인, 그가 어떻게 나올지까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기사단의 인원을 배치하고, 분배하여, 모든 상황을 자신이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멸악의 거인은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처음본다.
경험한 적 없음에도, 경험한 것처럼 확신하는 자.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늑대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긴······ 선택에 의해 미래는 바뀌곤 하니, 미래시를 가진 자들은 도리어 ‘선택’을 망설이는 경향이 있지. 한데 그런게 아예 없다?”
“전혀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차이가 무엇인지 알겠나?”
“······ 진짜 신이라 이건가.”
신.
단순히 ‘신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반신격이든 준신격이든, 신격을 지닌 자들이 이 세계에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당장 멸악의 거인만 하더라도 반신격을 지닌 성스러운 존재였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말 그대로의 ‘신’이다.
태초, 천지가 창조될 때 존재하던 신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멸망에 의해 소멸하거나, 이름을 잃고 ‘잊혀져’갔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두 여신 레아와 피나였다.
“‘창세의 가호’를 두르고 있더군.”
“······!!!”
늑대가 기겁했다.
듣고 있던 별 수호자들 모두가 믿기지 않는 눈초리를 지어보였다.
드루이드의 신이 어찌 여신의 가호를 잇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0규율의 가호를!
“그뿐만이 아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에게 가슴팍을 관통당했을 때, 느껴진 또 다른 ‘신’들이 있었다.”
“······ 그래서 움직이지 못한 건가?”
“아아.”
멸악의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빼려고 했으나, 빠지지 않던 검.
그가 넘어진 이유는 단순히 다리를 헛디뎌서가 아니었다.
그만한 존재가 고작 발을 헛디뎌서 자리에서 넘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찰나와 같지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죽고 잊혀진 신들. 그는 그런 존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더군.”
신들의 의지가.
존재가.
그래서 그가 자신의 가슴팍 위에 발을 올리고 올라왔을 때도,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은 두 여신.
그리고 먼 옛날 소멸했다 알려진 드루이드의 신뿐만이 아니라.
‘더 있다. 더 많은 신들의 흔적이 그의 안에 있었다.’
어머니 별의 수호자인 멸악의 거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들.
그는 수많은 신을 겪어보았으며, 스러지는 걸 지켜본 자.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태초부터 존재하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신들······.’
어째서 그들의 흔적이, 그의 안에 남아있는가.
어째서 그들이 그에게 그런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마치 제발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듯이.
신들이 그에게 열렬하게 구애를 하고 있는 것만 같지 않은가.
심지어 여신들마저도 말이다.
그러니, 그는 단순한 ‘드루이드의 신’이 아닐 수도 있었다.
도리어 ‘드루이드의 신’이라는 자격은, 그가 지닌 수많은 ‘자격’ 중 하나일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 적대해서 좋을 건 없어보이는군.’
그가 ‘악’만 아니라면, 멀리하는 것보단 가까이하는 게 훨씬 이로울 듯했다.
“제대로 붙어볼 걸 그랬나?”
늑대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멸악의 거인이 피식 웃었다.
“제대로 붙었어도 이기기 쉽지 않았을 게다.”
“하긴······ 그놈, 알비노라고 했던가? 쉽지 않아 보이더군.”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괴물이었다.
만약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했다면 결국 전멸하는 건 ‘별 수호자’ 쪽이었을 것이다.
알비노. 놈이 혼자 절반은 죽였을 터이니.
멸악의 거인 또한 알비노를 상대로 승리할 확신이 없었다.
죽음을 상정하고 싸워도 잘 쳐줘야 6:4······ 아니, 7:3 정도일까.
그가 패배할 수가 더 많을 듯하다.
“‘라이가’는 어떻던가?”
“······.”
멸악의 거인의 물음에 순간 늑대가 입을 닫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간인 그도 알비노 못지않게 괴물이었으니까.
인질이 잡혀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실상은 둘의 조합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멸악의 거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들은 빠르게 강해진다. 우리가 잠시 눈만 깜빡여도 어느새 앞서가곤 하지. 여신들께서 괜히 그들을 어여삐 여기셨던 게 아니다.”
“우리가 뒤떨어진다는 거냐?”
“늑대여, 우리도 움직여야한다는 뜻이다. ‘별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너무 고여있긴 했으니.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멸악의 거인이 슬쩍 시선을 틀어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을 마주친 거대한 뱀, 드라무트가 몸을 잘게 떨었다.
가장 먼저 인질로 잡히고, 별 수호자들 중에서도 약체로 분류된 게 드라무트였으므로.
멸악의 거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세계수의 던전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우리 ‘별 수호자’는 더 높이 도약할 것이다. 자격 없는 자들은 자격을 잃을 것이며, 대신 자격 있는 자들이 그 자리를 꿰찰 터.”
황금률의 기사단.
그들을 보고, 맞붙자, 확실히 알겠다.
이대로면 ‘별 수호자’라는 이름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모든 ‘별’의 자격을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 수호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별을, 여신의 신체를 지켜내는 것에 있었다.
사사로운 자가 여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마왕과 같이 악한 자들의 손에 닿지 못하도록 말이다.
‘심연이 떠오르고, 마왕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별을 노리려는 자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별 수호자는, 자격을 지닌 자들에게만 여신의 힘을 내어주어야한다.
그러니······ 당연히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후대의 신화종들 중 꽤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
던전에서 나가는 순간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진행될 것이었다.
‘모든 기사단이 우리와 같진 않겠으나······.’
다만, 걱정인 건 황금률의 드루이드와 그의 기사단이다.
던전에 입장한 일곱 개의 기사단.
그들이 모두 자신들과 같지는 않을 테니까.
필연적으로 부딪힐 테고, 필연적으로 소모되리라.
특히 몇몇 눈에 거슬리는 놈들이 있었다.
백왕 역시 그중 하나.
녀석이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몸 조심하시오.’
멸악의 거인이 무운을 빌었다.
*
문을 넘자 너른 초원이었다.
깡충대며 뛰어다니는 토끼들이 인상적인 곳.
그러나 기사단원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팀전을 가장한 솔플이라.’
의도는 알겠다.
각자가 ‘몬스터 혼’을 키워, 마지막 대결의 장에서 만나는 것이다.
여러 장치가 있기는 하겠으나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은 같다.
‘이게 몬스터 혼이로군.’
돌멩이.
그 위에 룬어가 적혀있는 그것.
나는 바로 앞에 떨어져있는 ‘몬스터 혼’을 내려다보았다.
【몬스터 혼(0등급, 無)】
-‘혼’을 사용하면 사용자의 속성에 맞는 0등급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사용자의 속성에 맞는 소환물이라.
혼을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툭!
칼날로 손가락에 작게 상처를 내어, 떨어지는 피를 룬어 위에 펴발랐다.
그러자.
스으으으!
【‘베이비 히드라곤(0등급, 짐승, 화속성 일반)’이 소환되었습니다!】
베이비 히드라곤?
내게 보유하고 있는 ‘히드라곤의 혼’이 영향을 준 모양이다.
돌멩이 위에 아예 같은 룬어가 떠오른 걸 보면, 확실했다.
곧이어 내 앞으로 3살짜리 어린아이와 같은 크기의 ‘히드라곤’이 소환되었다.
아홉 개의 머리, 드래곤의 하체를 합쳐놓은 모습.
뒤뚱 뒤뚱!
크기가 작아서 주변을 걷는 모습이 퍽 웃겼다.
《히든 특성 ‘비스트 로드’가 발현됩니다.》
《소환된 ‘몬스터 혼’이 소환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베이비 히드라곤’의 상태창을 확인하십시오.》
히든 특성의 발현.
비스트 로드는 이름 그대로 펫을 길들이는 데 특화되어 있는 특성이다.
한데, 그게 전부가 아닌 듯싶었다.
나는 베이비 히드라곤의 머리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시에.
이름 : 베이비 히드라곤(0등급)
힘 : 10
체력 : 6
민첩 : 4
지능 : 3
마력 : 8
능력치만 보았을 땐 별 볼 게 없다.
토끼나 사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약하기 그지 없는 능력치.
하지만, 그 뒤에 붙은 단락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자연 재생력 : +51,400%
모든 자연 속성 능력치 : +514%
빛 속성 능력치 : +100%
모든 내성 : +20%
최소 물리내성 : +50%
전체 경험치 획득률 : +500%
숙련도 효율 : +2,100%
피해량 : +120%
보스 몬스터 추가 피해량 : +20%
전체 관통력 : +34.3%
저주 관통력 : +15%
저주 반사 : +40%
저주 유지시간 증가 : +30%
감각 공유 : +200%
“······.”
끝없이 펼쳐지는 부가 능력치의 향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 부가능력치 전부가, 내가 가진 부가능력치와 같았으니 말이다.
특히 ‘인내’를 얻어 증폭된 자연 재생력을 보자 전율이 일 정도였다.
동시에 이놈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지도 감이 왔다.
낑?
깨엥!
뭔가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베이비 히드라곤.
아홉 머리 전부가 머리를 뒤로 젖혔지만, 어림도 없다.
‘일격에 죽지만 않으면 돼.’
즉사만 안 하면 압도적인 자연재생 능력으로 재생할 수 있다.
즉.
‘초보자 사냥터를 굳이 거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나는 미련없이 토끼들이 뛰어다니는 초원을 떠났다.
그리고 이 날, 베이비 히드라곤은 지옥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