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76)
가라앉은 황제.
광휘의 기사단과 원탁의 기사단의 대결.
“원탁의 주인은 무서워서 도망쳤나?”
카심이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
이 중대한 대결에 단장이 나타나지 않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원탁의 새로운 주인이며, 멸망의 탑을 정복한 그와 대결을 펼쳐보고 싶었거늘.
자신의 대결을 피해 정말 도망이라도 쳤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마라.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니.”
그러나 원탁의 부단장 아벨로프는 고개를 저었다.
카심과 광휘의 기사단을 상대하는 데에 굳이 단장까지 갈 필요가 없노라고.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심감으로 똘똘 뭉친 표현.
동시에 카심의 표정이 더욱 굳어버렸다.
원탁의 기사단에 대한 소문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 잔인하며, 무례하다는 것이다.
단장을 제외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고 말도 섞지 않는다는데.
과연 소문대로였다.
다만, ‘원탁의 주인’ 없이 원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럴진대 단장 없이 이 대결을 수행할 수 있을지.
그렇게 생각하자, 재밌어졌다.
“후후.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보마.”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로지 검의 노래만이 그들을 대화케 하리라.
사실 카심이 원탁과의 대결을 원한 건 ‘여신의 기사’ 타이틀을 놓고 겨뤄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묘하게 눈에 익은 자들이 있다.’
원탁의 구성원 중, 몇몇 이가 눈에 익은 탓이다.
세계수의 던전에 입장했을 때 보았던 자들이 소수지만 분명히 있었다.
바로 ‘명예의 세계수’에서 자신의 명예를 증명한 자들.
그들 중 몇몇이 이곳에 있다는 건, ‘원탁의 주인’ 역시 그중 한명이었다는 뜻일는지.
아니면 아예 다른 인간일까?
아니, 인간이긴 한 걸까.
하여, 확인할 셈이다.
원탁의 주인을.
원탁을 몰아붙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밖에 없을 터.
이후 진정 ‘여신의 기사’에 어울리는 자인지 시험할 것이었다.
“이자젤. 선봉에 서도록.”
“광휘의 명을 받듭니다.”
카심이 이자젤을 호명했다.
광휘의 기사단, ‘엔젤 나이트’들은 모두 살아있는 ‘성검’이다.
카심은 생명체를 성검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그중에서도 엔젤 나이트는 스스로 성검이 되길 자처한 최강의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악신의 처단 이후 이곳 성도의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다.
카심은 그들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같이 악신을 물리쳤던 무적의 기사들을!
이자젤은 특급의 성검.
후아아아아앙-!
나선 즉시, 찬란한 빛의 무리를 내뿜었다.
카심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원탁과 부단장 아벨로프를 바라봤다.
자. 첫 대결이다.
선봉의 대결만큼이나 중요한 건 없을진대.
누구를 내보낼 테냐?
“······.”
아벨로프는 잠시 고민했다.
단장 없이 스스로 선택해야 했으니.
처음이었다.
예전이라면 이런 선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빌헬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아가기로 하지 않았던가.
변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나.
원탁의 주인이 없어도, 그 자리를 자신이 대신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원탁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이내 아벨로프는 시선을 돌려.
“세렝게티.”
세렝게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선봉장에는 그녀가 적임인 듯했으니.
한때 원탁의 막내였으나.
어느덧 훌쩍 커버려, 이제 원탁의 어느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만큼 강하게 성장했다.
아벨로프는 세렝게티가 원탁의 첫 승리를 가져다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무덤의 주인.
신의 섬에서 ‘심연의 주인’들을 상대할 당시 나를 돕던 고렘이다.
초거대형의 고렘은 마찬가지로 몇 개의 심연영역을 장악한 괴물이었으나, 다른 심연의 주인들과는 달리 정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덤의 주인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먼 옛날 자신을 만든, 어린아이를 찾는 것뿐.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의아하다.
이상한 일이다.
무덤의 주인은 그저 아이의 행방을 쫓아 헤맬 따름이었다.
깊은 심연까지 흘러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정령탑이 무너지고 오염물에 의해 초토화된 이런 혼돈에 굳이 발을 담근다?
상식적으로 아이가 이런 곳에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덤의 주인이 신의 섬에 입장한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지.’
애초에 무덤의 주인이 ‘신의 섬’에 입장한 것도 누군가에게 속아서였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분명히 운영자라고 했다. 신의 섬으로 가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말에 그곳으로 향했다고 했다.’
······ 운영자.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까.
자신을 운영자라고 말하는 존재에게 속아서 들어온 것이라고?
게다가.
‘나는 녀석을 속였지.’
나는 신의 섬에서 무덤의 주인을 속인 적이 있다.
네가 찾는 아이의 행방을 안다고, 찾아주겠다며 감언이설로 무덤의 주인을 속여 도움을 받았다.
허나, 거짓이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기억은 사라졌어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처럼 나에 관한 일체의 감정 따위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분노할 거다.’
거짓으로 이용했으며, ‘또 다른 란돌프’에 의해 참혹하게 조각났다.
내가 당사자라도 분노하는 게 당연할 듯싶었다.
당시 ‘또 다른 란돌프’가 도륙낸 심연의 주인들은 ‘태어나지 않은 존재’, ‘천마’, ‘무덤의 주인’, ‘별 부수는 자’다.
폭푹의 배율자는 이미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게 먹힌 상태였으므로, 사실상 심연의 주인 넷을 함께 박살낸 셈이다.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란돌프’에 의해 도륙나지 않은 존재는 둘뿐이다.
천축의 고래.
그리고 가라앉은 황제.
둘은 ‘또 다른 란돌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 싸우다가 함께 죽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가지도 않지만······ 확실한 것은.
‘더 거대해졌군.’
무덤의 주인은 성장기의 아이처럼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족히 두배는 더 커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마주쳤을 때도 느꼈지만, 놈들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신의 섬에서의 경험 자체는 육체에 녹아있기 때문일는지.
“······.”
모두가 숨을 죽였다.
다행히 아직 들키진 않았지만, 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고렘이 공격해온다고 상상하면 정신이 아찔해지는 탓이다.
뿐만인가.
척 보기에도 강력한 고렘들이 족히 천여기는 있었다.
“크림슨 고렘······.”
“잠깐. 저게 전부 ‘고렘의 땅’ 레이스 보스 몬스터라고?”
“미친······.”
익숙한 고렘의 형태를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크림슨 고렘.
남부에 위치한 ‘고렘의 땅’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이며, 1성의 초월자가 족히 넷은 달라붙어야 겨우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다.
한데, 천에 가까운 저 수많은 고렘이 전부 크림슨 고렘이란 말인가?
“심연······ 대체 뭐하는 곳이야?”
“··· 우리가 아는 심연은 심연도 아니었어.”
인류가 파악한 심연은, 과일의 껍질을 핥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마저도 대부분 제국제일검 ‘라이가’ 덕분이었다.
심연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강력한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저런 것들이 판게니아에 떠올랐다.
만약, 지구로 침략해온다면······.
꿀꺽!
“저건······ 또 뭐야?”
그때였다.
돌연, 고렘들이 한쪽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덤의 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은 하늘 위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고오오오오오오-
그륵. 그륵. 그르륵!
대지가 울리는 공진음과 함께.
고렘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들을 일제히 부추긴 자.
그를 보는 내 눈에도 이체가 뗬다.
‘그로스를 길들인 자.’
하늘을 걷는 말.
심연영역 3개를 지배한 왕, 그로스.
그리고 그 그로스를 길들인 존재.
‘······ 가라앉은 황제!’
그가 가면을 쓴 채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타난 즉시.
후우우우우우웅-!
가라앉은 황제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건 생물의 날개와는 거리가 멀었다.
보이지도 않을만큼 미세한 ‘검은 입자’들이 셀 수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공간.
천마는 저것을 ‘벌레’라고 표현했다.
닿는 모든 것을 갉아먹는 벌레 말이다.
스스스스스스!
찰나, 검은 입자들이 억수처럼 고렘들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
느닷없이 시작된 전투.
“······.”
“······.”
그 광경에, 모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두 괴수의 전투는 전쟁을 방불케했으므로.
‘어찌한다.’
이아린은 고민했다.
이 전투는 그들에게 있어선 천운에 가까웠다.
지금이라면 ‘대지의 산’에 무리없이 입장할 수 있을테니까.
몰래 지나가는게 상책이다.
애초에 저들 중 누가 이겨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아린의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대지의 산에 조용히 입장하냐는 것이었다.
아직 고렘들이 대지의 산 입구를 막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동안 기다리는 것.’
고렘들이 소모되길 기다리며, 새로이 나타난 심연의 주인에게 완전히 매몰되길 바라는 게 가장 현실적이었다.
특히 이아린은 하늘에 떠 있는 존재, ‘가라앉은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 심연의 주인들 중에서도 요주의 괴물이지.’
마계가 신경을 쓰고 있는 심연의 주인들 중 하나.
가라앉은 황제는 특히 유별난 녀석이었다.
무려 다른 심연의 주인인 ‘그로스’를 길들였으니까.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로 죽이는 일은 있어도, 결코 따르진 않는 게 심연의 주인들이었다.
한데 절대로 길들일 수 없는 것을 길들였으며, 그런 주제에 추종자는 없다.
홀로 심연에 영향을 끼치는 몇 안 되는 절대강자가 가라앉은 황제다.
그를 증명하듯, ‘가라앉은 황제’는 순식간에 수십구의 크림슨 고렘을 박살내버렸다.
무덤의 주인이 일어나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으나.
쿠아아아아아앙-!
‘검은 벽’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하물며 벽을 이룬 미세한 입자들은, 무덤의 주인에게 닿자마자 전신으로 퍼지며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저건 마력이 아니다. 스스로 복제되며 마력조차 분해하고 분석하는······.’
······ 기계에 가깝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아린은 본인이 생각해놓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힘이로군.’
처음본다.
그의 존재를 파악하긴 했으나, 어떠한 힘을 휘두르는지 알게 된 건 처음이었다.
만약 ‘가라앉은 황제’와 칠군주 바사라의 육체로 대결을 펼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상당히 까다롭다, 저 힘은.’
지지는 않을 것이다.
칠군주 바사라의 약점은 사랑.
그녀가 가라앉은 황제에게 사랑을 느낄 리는 없었으므로.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저 무수히 많은 벌레들은 모든걸 분석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대결을 끌고 나갈수록 자신의 약점이 파악될 테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약점을 파고들 터이니.
저건 그런 힘이다.
닿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고렘이 졌다.’
결과가 그려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천, 수만 번의 전투가 펼쳐졌고.
그 모든 결과는 고렘들이 패배하는 것이었다.
고렘이 ‘가라앉은 황제’에게 승리할 가능성은 0%.
적당한 시기에 파고들어, 산을 오른다.
이아린에겐 그런 생각뿐이었다.
“너······ 무슨 짓을······!”
하지만, 이아린은 이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기에.
······ 박현명.
-불의 세례를 받아라!
녀석이,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를 움직인 까닭이다.
그것도······.
“뭐, 뭐하는 거야?”
“그만둬!”
“왜 하필······!”
너나 할 것 없이 목놓아 소리쳤다.
‘미친놈아!’라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