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원시천마.
동요(動搖).
흔들림이다.
절대로 흔들릴 리 없는 것들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신의 격에 다다른 육체와 정신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데, 연유를 알 수 없다.
만물의 조종자인 그다.
무언가에 동요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된다.
신이란 자고로 무감정한 법.
때에 따라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신이다.
당연히 외부에서의 자극 따위는 침범할 수 없어야 하건만.
‘내가 흔들리고 있다고?’
다시 한번 되뇐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 그는 천산의 주인이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을 쌓았다.
불가에서 이르는 신선 같은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신(神)’의 격을 쥐었다.
천마도에 적힌 모든 구절을 탐독하고 깨달으며 그는 스스로 ‘진리’의 문을 열었다.
만고불변의 진리.
그 안에서 일평생 못 보던 것들을 보고,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 나는 진리를 보았다.’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대해와도 같은 깨달음.
곧이어 그는 욕구했다.
갈망했다.
‘반드시 천상에 오를 것이다.’
천상은 불가에서 말하는 선계와도 거리가 멀다.
그곳이야말로 모든 것이다.
그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있는 세상이었다.
존재한 적 없고,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 말이다.
하지만, 진리의 문을 열었지만, 천상에는 닿지 못했다.
천상은 마귀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었을 뿐이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어째서 천마(天魔)인가.
어찌하여 마귀는 하늘을 오르려는가?
초대 천마도 보았던 것이다.
기필코 오르려 하였으나 결국은 오르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천마’라고 불렀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에 닿기를, 천상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비워라. 버려라.’
천상에 오르려는 자가 고작 ‘알 수 없는’ 이유로 동요하다니.
천마는 모든 감정을 비워냈다.
그러자 더는 떨리지 않았다.
‘전부 없애면 찾을 필요가 없을 터이니.’
실로 간단하지 않은가.
흔들린 이유를 찾지 않을 생각이다.
전부 없애면, 찾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
후웅-
곧이어 천마의 육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 즉시 그는 천마도를 겨누었다.
인간들을 향해.
쩌어어억!
쉬이이이이-
동시에 천마의 주변으로 백여개에 달하는 강환이 생성되었다.
닿는 모든걸 지워버리는 힘.
저 인간들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정령왕의 계약도 무효가 될 터.
허약해진 정령왕을 먹어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모든 정령왕을 포식해, 스스로 혼돈왕이 되리라.
“내 앞에 존재하는 걸 허락하지 아니한다, 인간들이여.”
그러니 전부 사라져라.
순간.
짜르르르!!!
백여개의 강환이 대지를 울리며 튀어나갔다.
*
쿠우우웅!
대지의 정령왕 움이 바닥에 손을 뻗자 거대한 세계수의 줄기가 튀어나와, 벽을 만들었다.
-악신 따위가 감히······!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는 자신의 불을 벽에 보태었다.
근원어린 태초의 불은 세계수의 뿌리를 전혀 형태로 바꾸었다.
뿌리가 타오르며 이내 단단한 철의 벽이 된 것이다.
콰르르르르르르릉!
귀가 터져버릴 듯한 광음과 함께 벽이 흔들린다.
하지만, 벽은 견고했다.
백 개의 강환도 두 정령왕의 연계를 뚫어내진 못했다.
평상시의 모습이었다면 단번에 소멸했을 터이다.
허나, 두 정령왕은 이미 비할데없이 강력해진 상태였다.
고작 한 번의 계약으로 인해.
전례가 없던 인간과의 계약이 그들을 진화시켰다.
-반드시, 너만은 내가 태워버리리라.
아그니스가 손을 뻗었다.
후우우우웅-!
동시에 하늘이 열리며 천마를 향해 불구덩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수의 뿌리가 지상 전역에서 튀어나와 천마의 발목을 잡았다.
“장관이로군.”
이아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령왕의 한계를 넘어선 힘이라는 걸 본 즉시 알았기 때문이다.
‘정령의 본질조차 뛰어넘었다.’
정령은 자연의 속성이 극대화된 종족이다.
그 본질을 넘어서는 이적은 발휘할 수 없다.
예컨대 불의 정령이 물을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태어날때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속성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 둘의 연계는 본질을 넘어섰다.
이 세상에 없던 물질을 만들어내었다.
이건 진리 바깥의 이적이다.
‘박현명과의 계약이 저들을 진리 바깥으로 이끌어냈다는 말인가?’
규칙을 깨고, 정해진 틀을 부순다.
말은 쉬우나 진리 앞에선 불가능한 행위다.
정해진 규격을 벗어난다는 건 그 자체로 세계에 반하는 일인 탓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령왕과 박현명이 계약할 때, 그 모든 게 이상했다.
‘아그니스는 태초의 불을 언급했다. 움에 이르러선 세계수가 피어나기도 했지.’
태초의 불이 무엇인가.
······ 솔직히, 모른다.
이름 그대로 ‘시작의 불’이라는 건 알겠지만.
칠군주 바사라도 ‘태초의 불’에 대해선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 넘어갔다.
문제는 그 뒤의 세계수다.
대지의 정려왕이 건네는 ‘대지의 씨앗’은 모든 나무로 변할 수 있다.
간혹 꽃이 되기도하고, 잡초 따위로 자라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수’가 되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계수가 무엇인가.
세계를 만들고, 지탱하는, 근원이다.
그걸 누군가가 타의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여전히 어떠한 이해도, 납득도 못하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둘 다 세계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태초의 불도, 세계수도.
만물의 시작, 세계의 태동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계약만으로 그 ‘시작’을 발아시키는 자.
‘··· 진리 바깥으로 향하는 방법이 이것이었구나.’
칠군주 바사라는 깨달았다.
진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보다 간단했다.
‘시작’의 줄기를 다르게 틀면 된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진리’만이 알고 있는 근원을 알고 파악할 수만 있다면, 줄기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다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틀림없이 박현명의 정체성과 관계가 있으리라.
모든 시작과 관계된 히든 클래스를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박현명이 바사라도 모르는 ‘13번째 히든 특성’의 주인인 것일까?
-너는 누구지?
······ 그때였다.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근워지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팬텀······.’
······ 팬텀으로 추정되는 남자.
그가 있었다.
그는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황금률의 선’을 연결해 말을 걸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너는 인간이 아니로군.
인간. 인간이라.
보통 사람이 같은 사람을 대할 때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던가?
이아린은 다소 놀랐다.
어쨌든 자신의 정체성을 간파한 존재는 처음이었으므로.
떠보는 게 아니라, 확신을 담고 있다.
이아린이 차분하게 답했다.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팬텀.
-너의 감정은 인간과 다소 다르다.
······ 감정을 읽었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녀는 인간의 흉내를 완벽하게 내고 있다.
더불어 감정을 완벽하게 절제하고 있었다.
-마치, 마족같다.
··· 잠깐.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감정에는 형태가 없다.
그나마 엘프는 ‘욕망의 형태’를 볼 수 있지만, 이곳엔 엘프가 없었다.
그리고 엘프조차도 욕망의 형태를 볼뿐이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 순 없다.
고로,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해낼 가능성은 0이다.
설마 떠보는 건가?
-너야말로 팬텀이 맞나?
-내가 팬텀이다.
-······.
뭐?
분명히 자신이 팬텀이라고 말했다.
거짓인가, 진실인가.
곧이어 그가 말했다.
-역시 너는 팬텀을 아나보군. 이아린, 한국 영웅연합의 부연합장. 너는 팬텀과 관계된 어떠한 인물도 만나본 적이 없을텐데도.
······ 떠본 게 맞다.
그녀의 내적인 흔들림을 읽어낸 것이다.
허나 역시나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아차렸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을, 이아린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팬텀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아니, 직접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만한 ‘감정선’은 존재할 수 없으니.
···그러니까, ‘감정선’을 읽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고?
그건 아무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는 건.
‘감정이 요동치는 부분에서의 생각을 흐릿하게 알아차린 모양이군.’
과연-
그러나 윤곽을 읽어낸 것에 불과하다.
확실하게 읽어냈다면 떠볼 이유가 없으니까.
깨닫자마자, 그녀는 일체의 생각을 버렸다.
내적인 감정조차 지워버렸다.
그러자.
-인간이 아님은 확실하구나. 빌헬름을 보았나? 어디서 만났지? 마계, 대원정인가?
대처함과 동시에 그는 확신했다.
이 또한 그의 계산 아래였다는 의미다.
······ 뭐하는 놈이지?
생각보다, 생각 이상으로 철두철미하다.
정말 팬텀인가?
이 녀석이······ 진정 그 빌헬름이라는 말인가.
-왜 마족이 인간의 모습으로 지구에 있느냐. 무엇을 목적으로?
제법 적대적이다.
그녀가 인간의 모습으로 지구에 있는 목적을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듯싶었다.
지극히 오해였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할 시간은 없었다.
“하하하! 너희는 나를 태울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천마의 몸이 물처럼 액체화되었다.
물의 정령왕 이퀘렐의 권능을 사용해 정령왕들을 농락한 것이다.
비록, 아그니스와 움 모두 초월적으로 강해졌으나.
··· 천마에게는 닿지 못했다.
“······ 우리 차례로군.”
이대로면 두 정령왕의 소실이 확정이었다.
하지만 이만한 전력을 손놓고 잃을 수는 없는 노릇.
그녀는 고개를 젓고 앞으로 나아갔다.
“미안하지만, 끼어들어야겠구나.”
정령왕들의 의지는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나.
승리를 위해.
칠군주 바사라··· 아니, 이아린은 검을 들었다.
칠군주 바사라가 아닌 이아린으로서의 그녀는, 인류의 승리에 이바지할 생각이었으므로.
*
벌레들이 군집한다.
허나, 개미 떼가 모여봤자 개미일 따름이다.
“······?”
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밟아 죽이리라 생각했던 개미들이 생각보다 끈질겼기 때문이다.
정령왕들과 연합한 인간들은 차륜전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단순히 치고 빠지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저 두 연놈들이 내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었군.’
자신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이들이 있었다.
이아린, 그리고 팬텀.
게다가 두 정령왕은 그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시간이 끌린다.
공격이 지지부진하다.
“쯧.”
천마는 혀를 찼다.
그래도 제법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이대로면 싸움이 끝이 나지 않을 듯했으니까.
곧이어.
“일문(一門).”
쫘아악!
천마의 육체가 부풀어올랐다.
천마도에 적힌 공부를 통해, 비로소 천마는 완성됐다.
봉인되었던 나머지 반쪽의 힘도 깨달을 수 있었다.
흡성대법만이 아닌, 오문의 개방조차도 말이다.
‘천마군림보.’
일문을 개방한 천마가 대지에 발을 내리찍었다.
그 찰나.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지면 전체가 일어났다.
패도적인 무력은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내었다.
이어 천마군림보와 합쳐지자.
“도, 도망쳐······!”
“무슨 힘이······!!”
“제기랄!”
두 정령왕의 벽도 허물어졌다.
마신을 상대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고작 일문의 개방을 했을 따름이거늘.
대적불가.
그들은 자신의 앞에 설 수조차 없다.
직후 천마는 인간들을 전부 심연의 아래에 처박아버렸다.
절대로 나오지 못하도록 땅으로 덮고, 기운으로 봉쇄했다.
“천천히 죽거라.”
완벽한 생매장.
땅의 아래엔 심연의 독이 넘쳐난다.
저 인간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다가오는 죽음에 발버둥치는 게 저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천마는 미소지었다.
일문의 개방이 이 정도일진대, 육문은 어떨까?
‘오문을 완성한 존재를 먹어치우면 육문을 열 수 있다.’
오문개방이 가능해졌으나 천마도 거기까지였다.
육문을 열기 위한 조건이 완성되지 않은 탓이다.
같은 오문의 완성자를 먹어치우는 것.
그게 마지막 육문의 완성 조건이다.
육문을 열면 천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오문의 완성자는 판게니아에 있지.’
대륙제일검 라이가라고 했던가?
천마는 그의 존재를 느꼈다.
놈을 죽이고, 먹어치우면, 비로소 육문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
상상만으로도 흥분된다.
“음?”
그런데, 다시 한번 천마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일문을 개방하여 펼친 천마군림보.
천마군림보의 영향에 받지 않은 인간이 한 명, 있었다.
땅 위에 서있는 단 한 명의 인간!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 거냐?”
저 인간의 주변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정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이.
허나 천마군림보는 모든 기운을 상쇄하고 엎어버리는 최상승의 무공.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같은 ‘천마군림보’뿐이다.
자신이 천마군림보를 펼쳐냈을 때, 저 인간도 같은 천마군림보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넌······.”
순간 천마의 두 눈동자가 얕게 흔들렸다.
익숙한 기색이 읽혔으니까.
저놈도 천마군림보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천마군림보는 천마도로 전해지는, 오직 천마만이 이을 수 있는 일인비전의 공부다.
그것을 같이 펼쳐냈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나 착각할 리도 없었다.
그는 천마였고, 누구보다도 ‘천마군림보’에 대해 잘 아는 존재였으니.
찌르르르르-!
천마도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천마는 깨달았다.
“······ 너였구나. 나를 동요시킨 존재가.”
······ 찾았다.
찾아내고 만 것이다.
한데, 이상하다.
천마가 이상함을 느낀 찰나였다.
《‘원시천마’가 깨어납니다.》
《‘원시천마’의 고유 히든 스킬 ‘멸세천마’가 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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