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전투가 끝났다.
아니, 전투라 할 것도 없었다.
“가짜에겐 과분한 힘이다.”
흑왕은 오만하기 짝이없는 태도로 말했다.
이미 황금 가면은 ‘멸왕 모크’에 의해 말 그대로 ‘짓이겨진’ 상태.
정해진 결말이다.
가짜 따위는 완성된 ‘멸왕 모크’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이니라.”
흑왕은 흐뭇한 눈빛으로 멸왕 모크를 바라봤다.
모든 ‘검은 짐승’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멸왕 모크의 등에는 거대한 검은색의 날개가 펄럭대고 있었다.
뿐만인가.
절망의 세포와 주입할 수 있는 히든 특성을 전부 때려박았음에도, ‘멸왕 모크’는 무한한 그릇처럼 모든 힘을 담아냈다.
과거 백호족의 침략 당시 사용된 멸왕 모크보다도 더 강화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화의 궁극이다.
이보다 더 강한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나저나.”
흑왕은 천천히 ‘눈’을 향해 다가갔다.
틀림없는 멸망의 눈.
아직 반 정도밖에 떠지지 않았지만, 절망과 바알의 힘이 반응하는 걸로 보아 의심할 여지는 없을 듯했다.
“······ 제국놈들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멍청하기 짝이없군.”
구제국은 사흉을 제어하려다가 멸망했다.
그리고 아르혼 제국은 한 술 더 떠서 멸망을 만들어, 지배하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다.
멸망은 이런 가짜의 그릇 따위가 담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까.
황금 가면.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흉내내려고 만들어진 놈.
아무리 ‘도플갱어 로드’의 세포로 탄생했던들, ‘멸망’마저 흉내낼 수 있겠는가.
욕심이 과하다.
멸망의 힘은, 자신과 같이 스스로를 증명한 존재에게 어울린다.
다만······.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고작 일격에 박살났다.
아무리 멸왕 모크가 궁극에 달했다지만, ‘멸망의 힘’을 끌어낸 것치곤 허망할 정도다.
혹시, 멸망의 힘이 고작 이런 걸까?
그렇다면 실망이었다.
흑왕은 시선을 돌렸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시체가 되어 쓰러져있는 자.
처음 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황금 가면은 저 드루이드의 목을 쥐고 있었다.
아마도 이 둘이 전투를 벌인 끝에 약화된 것이리라.
허나 드루이드는 이미 멸종한 종족이다.
멸망이 그들의 생존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멸망에 어느정도 대적할 정도로 강력한 드루이드가 누가 있었을까.
“······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
있다면, 그뿐이다.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
구시대의 존재이나 그 이름을 흑호족은 기억하고 있었다.
드루이드는 흑호족에게 있어서도 가장 뛰어난 종족이었으니.
세계수의 씨앗을 옮기고, 진화를 촉진하는 드루이드야말로 흑호족이 연구하고 싶어하는 1순위였다.
당연히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알려진 알비노의 이름을 흑왕이 모를 리 만무한 것이다.
문헌에 그려진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과연.’
왜 황금 가면이 이토록 약화되어있었는지 알겠다.
알비노가 상대였다면 전력을 다해야 했을 테니.
하필이면 그 뒤에 자신이 나타나리라곤 예상도 못했겠지.
물론, 멀쩡한 상태였대도 그를 감당하진 못했겠지만.
‘운이 좋군.’
이것도 운명 아니겠나.
궁극에 이르면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것들이 흑왕, 그의 완성을 위해 마련된 길과 같다.
어깨를 으쓱하며 흑왕은 천천히 ‘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반쯤 떠진 ‘멸망의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주마, 멸망이여.”
흑왕은 천천히 멸망의 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
“······ 큿!”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
뇌가 아려올 정도의 진동에 흑왕은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 목소린?’
흑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 들려온 목소리는, 바로 알아듣진 못했으나 익숙했으므로.
“······ 네놈, 아직 살아있는 거냐?”
목소리는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은 흑왕은 털이 곤두섬을 느꼈다.
「원망하고 저주한다. 나를 만든 자들을, 세계를. 너희를 나는 모조리 ‘궤멸’ 시키리라. 너희의 영혼도, 육체도,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건 분명히 황금 가면의 목소리였다.
이 세계를 전부 없애버리겠다는 통한의 말이었다.
가짜로 태어나 영원히 다른 이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황금 가면.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가짜 따위가······!”
흑왕은 이를 악물었다.
멸망의 눈은 여전히 ‘황금 가면’을 선택했다.
자신을 바로 앞에 두고서.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푸욱!
흑왕은 어금니를 ‘멸망의 눈’에 박았다.
손톱을 세워 눈의 옆에 고정시킨 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멸망의 힘을 자신의 본체에 받아들이려고 했다.
‘모든 건 투쟁이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투쟁에서 져본 적이 없다!’
멸망의 세포를 강제로 흡수했다.
이미 수도 없이 해본 일.
이윽고 ‘문’이 열린다.
흑왕의 피에 잠든 모든 ‘히든 특성’이, ‘열쇠’가 비로소 반응하며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열쇠를, 마력을, 사흉의 힘을.
전부 사용하여 멸망의 눈을 압한다.
“너는··· 나의 것이다!”
그러자 감겼던 멸망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주도권이, 흑왕 자신에게 넘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가짜인 황금 가면 따위가 아니라, 300년간 자신을 수도 없이 증명해온 흑왕이 멸망의 주인임을 알아본 것이리라.
그 순간이었다.
푹!
“컥······?!”
목 주변에서 시작된 통증에 흑왕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이에 흑왕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목을 찌른 존재를 바라보았다.
“네··· 놈은······.”
아아.
암살자다.
하지만 놈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움직인 게 아니었던가?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멸왕 모크도 놈의 움직임일 감지할 수 없었다.
이놈은··· 뭐지?
설마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을 암습한 남자의 눈은 차갑다.
평상시라면 절대로 당하지 않았을 암습이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을 터였다.
설령 가능했다 하더라도 그의 마력을 뚫고 상처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허나··· ‘멸망의 눈’을 먹어치우고자 모든 정신과 마력을 쏟아붓고 있는 지금, 이 찰나만은 예외였다.
“처··· 음부터······.”
만약 릴리스와 바알을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올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멸망의 눈’을 탐하게 된 건 전부 이놈 때문이었다.
허나··· 이러한 설계를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암살할 대상을 강하게 만드는 암살자가 이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까.
오직 이 한순간만을 위해 그리 했다는 뜻인데.
쿨럭!
마력이 폭주한다.
고작해야 상처 하나에 불과하나, 그 ‘틈’은 불균형을 초래했다.
“백, 왕······!”
아직 흡수하지 못한 백왕의 존재마저도 그를 방해하고 있었다.
흑과 백 반반으로 나뉘었던 몸은 하얗게 변하고, 머리만이 까맣게 변색되기 시작한 것이다.
죽는다.
이대로면, 죽는다······.
“아, 안돼······!”
쩍! 쩌저적!
암살자가 검을 쥔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툭!
흑왕의 머리가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도 함께 바닥에 눕혔다.
“······.”
남자, 살귀는 조용히 떨어진 흑왕의 머리를 주워들었다.
그리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구오오오오오오오-!
주인을 잃은 ‘멸왕 모크’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어억!
감겼던 멸망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흑왕이 지녔던 열쇠가 기어코 문을 열고 만 것이다.
*
툭-!
“······ 이, 이게 뭡니까?”
흑왕의 머리를 바닥에 던지자, 허드슨은 할 말을 잃고 살귀를 바라보았다.
살귀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머리를 가져온다고 하지 않았나.”
“침입자의 목을 딴다고는 했지만··· 설마 흑왕을······.”
흑왕의 머리를 따오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쿠르르르릉!
미궁이 흔들린다.
더욱 격렬하게.
이전까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궁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기어코 부활했나보군.”
살귀가 씁쓸한 어조로 말하자 허드슨이 되물었다.
“······ 부활하다니요?”
“황금색 가면을 쓰고 있던 놈. 드루이드가 죽였는데 다시 살아났다. 아마도 이 머리가 조종하던 근육질 괴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나본데.”
“사신교가 아직도······.”
“그 두 괴물은 아직 내가 죽일 수 없다.”
흑왕을 죽일 유일한 수.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된 살귀는 인내하고, 인내하며, 흑왕이 완전히 방심하길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흑왕을 죽였을 뿐이다.
멸왕 모크와 부활한 황금 가면은 그의 손을 벗어났다.
너무 강했으니까.
죽여도, 죽일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본 탓이다.
지금의 살귀는 그 둘을 상대할 수 없다.
허나 결국 둘 중 하나만 남게 될 것이다.
흑왕을 제거함으로써 멸왕 모크는 폭주하기 시작했으니.
두 괴물이 함께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지금도 최악인 건 매한가지 같다만.’
미궁이 벌써 반파됐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이곳까지 침범당하리라.
어지간한 신들도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력이었다.
놔두면 세계가 멸망할 테다.
저딴 괴물을, 팬텀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팬텀이 정말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가?
살귀가 의문을 담아 허드슨을 쳐다봤다.
“팬텀은 안 깨어났나?”
“······ 예.”
“쯧. 내가 도와줘야겠군. 이걸로 빚은 없는 거다.”
혀를 찬 살귀가 ‘최초의 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지금이라면, ‘팬텀’의 생존도 가능할 것 같았으므로.
솔직한 말로 팬텀이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고.
*
쿠르르르릉!
벽이 무너진다.
‘천상’의 벽이.
“와, 이게 되네.”
아쉬웠던 ‘생존 퀘스트’를 모조리 완료한 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덕분에 빌헬름의 미련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됐다.
-이곳에 계십시오, 황자님. 제가 병사들을 유인해보겠습니다.
-가, 가지마. 이런 어두운 곳에서 나 혼자 어떻게 있어?
-며칠만 견디십시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빌헬름은 자신을 살리고 죽은 늙은 기사를 생존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빌헬름의 생존을 위해서, 늙은 기사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인물이다.
솔직히 나도 늙은 기사를 살릴 엄두를 못냈다.
다시 재도전했음에도 늙은 기사를 살리진 못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빌헬름. 그를 살리지 못해서 미안하다. 도저히 방법이 없네.”
“······.”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빌헬름의 존재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내 옆에 있었다.
“그래도 위치는 알았으니까, 같이 그의 무덤을 만들어주러 가자고.”
비록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다만······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늙은 기사가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아냈다.
그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명복을 빌어주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건 빌헬름만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있다.
두 쌍둥이 여신과 란돌프도.
심지어 원시천마도.
화아악!
마치 불꽃이 일 듯, 다른 존재들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 나의 아바타들.
내가 ‘생존’시켰던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그 전에······ 역시 우리가 살 집을 완성해야겠지?”
바닥에 쌓인 천상의 벽돌로 집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시켰다.
허나······ 부족하다.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는건 어렵지 않았다.
“······ 나의 미련인가.”
다른 이들의 미련은 풀었지만, 아직 나의 미련이 풀리지 않은 것이다.
대원정.
이곳에 나타난 모든 이들이 나의 미련을 풀어주고자 도전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장면들.
하지만 마왕에게 닿기는커녕 군주들조차 상대하지 못한 채 스러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들의 머리 위를, 그들의 대원정을 바라봤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한 마디 꺼내고 말았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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