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팬텀 VS 궤멸.
“아······!”
허드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필요경험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를.
그 강력했던 란돌프조차도 레벨 10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말을!
······ 솔직히, 농담인줄 알았지만.
실제로 캐릭터 간의 ‘필요 경험치’는 상이한 경우가 많았다.
캐릭터를 생성할 때 갖고 있는 재능, 혹은 특성에 따라 훨씬 많은 경험치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필요경험치가 많다고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레벨을 올리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건, 다시말해 다른 이들보다 상위 컨텐츠를 즐기기 어렵다는 뜻이니까.
초월이 더뎌지고 메인 퀘스트를 달성하는데 한계가 생긴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더 강한 적을 상대해야만 하지만 장비의 착용을 비롯한 모든 것에 제약이 생기니 마냥 좋은 게 아닌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라는 게 있는 법이다.
란돌프로서 이룩한 업적들이 어디 평범한 것들이던가.
허드슨이 알고 있는 시련들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라면 레벨 10을 몇 번은 찍고도 남을 경험이었다.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모험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한 족족 명예의 전당 1위를 달성했는데도 레벨 10을 못찍은 상태였다니.’
그런데 이제야 10을 달성했다고?
요즘 각성자들 사이에서 레벨 10은 초보자를 벗어나, ‘중수’를 가리는 지표다.
초월을 하면 ‘고수’로 인정받으며, 그 이상은 ‘랭커’로 불린다.
‘잠깐. 그럼 이제 막 초보자 딱지를 뗀거라고······?’
저 모습이, 어딜봐서 초보자인가.
멸망을 맞상대하는 박현명이 이제 레벨 10을 달성했다고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사실을 전한들 도리어 욕을 하지 않을까.
헛소리좀 그만하라며 그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그나마 허드슨은 어느정도 보고 들은 게 있기에 겨우 납득이나 할뿐이었다.
‘······ 아니, 납득이 될 리가 없잖아.’
다들 그와 같은 표정이었다.
어이가 없는 얼굴.
이자벨라를 제외하면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붕 떠 있다.
“그니까 10성 초월을 하셨다는 거죠?”
창술사 발테가 경건한 어조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수련자의 산에서 방치되었던 발테조차 레벨 10을 달성한지 오래다.
차라리 10번의 초월을 경험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을 지경이다.
이 역시 전무후무하지만, 상대가 박현명이지 않은가.
빌헬름, 란돌프, 그리고 박현명으로 이어지는 이 트라이앵글은 거를 타선이 없을만큼 위대했다.
그러니 이자벨라가 잘못 말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결국, 허드슨이 나섰다.
“레벨 10을 달성하신 게 맞을 겁니다. 아직······ 초월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도, 틀림은 없을 거고요.”
“······ 저게요?”
쩌어어엉-!
하늘이 갈린다.
먹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져내려온다.
궤멸의 힘은 삼라만상을 모조리 파괴하지만 오직 박현명만은 예외였다.
신들조차 범접하지 못했던 궤멸을 상대로.
그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빌헬름의 검술로 말미암아 닫혀있던 땅과 하늘을 열고 있다.
저게 어딜봐서 레벨 10의 소행이란 말인가.
“······.”
“······.”
모두가 할말을 잃은 채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상식밖의 대결.
도저히 그들로선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부딪히고 있었으니.
*
질리는 놈이다.
팬텀, 이 놈은.
-내게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콰르르!
콰르르르!
끊임없이 쏟아지는 불길.
궤멸을 중심으로 원모양의 불의 파장이 쉴 새 없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최초의 불’이 있는 미궁을 제외한 주변 모든 땅이 이미 형태도 없이 사라져, 증발한 상태.
하지만 박현명은 죽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파동을 상쇄하며 나아갔다.
한 발자국씩, 허공을 걷듯이.
무식할 정도의 우직함이다.
‘멸망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 내게 닿겠다는 거냐?’
팬텀은 오직 빌헬름의 검술만을 펼치는 중이다.
진짜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냐며.
··· 이 얼마나 버릇없이 오만한가.
멸망의 대결에 체술이라니.
저 검술.
단순하기 짝이없는 동작이지만 궤멸은 확신했다.
‘빌헬름. 놈이 완성한 검술이라.’
아직도 놓지 못한 미련이 있었던가?
궤멸로 거듭나며 더 이상 존재의 의의에 고민하지 않기로 했건만.
빌헬름의 이름을 듣자마자 다시 악몽처럼 떠오른다.
게다가 놈이 완성한 검술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궤멸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궤멸의 검】
그러자 허공이 찢기며 검 한자루가 손에 쥐어졌다.
또한 찢긴 허공의 사이로 ‘문’이 나타났다.
【진리의 문】
··· 바로 진리의 문이다.
머지않아 ‘문’이 열렸고, 동시에 궤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상하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리의 문 안에 있는 수천, 수억 가지의 검술.
수많은 세계에서 최강으로 군림했던 검사들의 행동거지들.
세세하며 알아차리기 힘든 습관까지도.
그것들을 순식간에 탐독하며, 학습한다.
천상의 멸망들에게는 ‘진리’를 탐하는 게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세계의 진리가 담겨있는 문의 안쪽에서 언제든 원하는 것을 골라, 빼내어 쓸 수 있다.
고작해야 빌헬름 따위.
판게니아의 기사왕이라 추앙받으며 우스대지만.
그래봤자 판게니아 한정의 검사일 따름이다.
스르르!
눈의 움직임이 멈췄다.
3초.
궤멸이 진리의 문 안쪽에서 모든 세계의 검술을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이다.
최강이라 불리었던 검사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데는 3초면 충분했다.
빌헬름은 그들에 비하면 중간 정도에 불과하다.
‘빌헬름. 너의 최강을 박살내주마.’
궤멸이 파동의 방출을 멈췄다.
대신.
스팟-!
쿠르르르릉!
궤멸이 움직이자, 그 파장만으로도 거센 후폭풍이 불어왔다.
하지만 후폭풍이 채 닿기도 전에.
쩌르르릉!
검과 검이 부딪힌다.
막았다.
순간적으로 흘려냈으나, 과연 계속해서 흘려내는 게 가능할까?
궤멸은 진리의 문에서 학습한 검사들의 움직임을 보다 심도있게 재현해냈다.
채엥!
채채채챙!
부딪힐 때마다 검이 울린다.
한 치의 밀림없이 백여차례 검의 공방이 오갔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검술과 기세를 달리하며 전혀 다른 사람을 상대하듯 팬텀을 압박해나갔다.
빌헬름의 검술?
그래봤자 놈은 인간이고,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된 검술 따위 한계가 있기 마련.
아무리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문 안쪽에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고작 하나의 검술로 표현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해져있다.
반드시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힘도, 육체의 균형도, 내가 더 우위에 있다.’
지금이야 막아서고 있지만 언제까지 막아설 수 있을까.
궤멸은 확실하게 우위를 점했다.
멸망의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빌헬름의 검술로 자신을 상대하겠다는 허황된 생각.
그 생각이 팬텀을 죽일 것이다.
패배할 수는 보이지 않는다.
빌헬름을 넘어서는 검사는 수백에 달한다.
그들의 검술 전부를 과연 팬텀이 감당할 수 있을지.
‘앞으로 5초.’
팬텀의 목을 자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정교히 펼쳐낸 148합을 더하면 놈은 고갈될 것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48합 째에.
‘틈-’
견고했던 팬텀의 검 사이로, ‘틈’이 발생했다.
틈을 노리지 않고 궤멸은 검을 뻗어냈다.
촤악!
그리고 팬텀의 머리를 잘랐다.
틀림없이, 잘라냈다.
-······?
한데 정작 잘려나간 것은 그의 양쪽 팔이었다.
궤멸의 검과 함께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잘라냈건만, 역으로 잘렸다.
다가오는 검의 촉감에 궤멸은 황급히 뒤로 벗어났다.
그러자 놈이, 말했다.
“개(開).”
천과 지.
천지로 궤멸의 힘을 무효화했고, ‘개(開)’로 열었다.
가능성을.
불가능한······.
-역전······.
카운터다.
단순히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다.
148합에 일부러 틈을 만들고, 그가 목을 자르려하자 역으로 팔을 잘라낸 건 모두 저 ‘역전’의 힘 때문이었다.
‘나를 읽고, 역으로 이용할 줄이야.’
우연이 아니다.
필연. 정확히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수를 보았다는 게 놀랍다.
보이지 않을만큼 경이로운 숫자의 수였을진대, 그중 하나의 가능성을 정확히 짚어본다는 게.
빌헬름이 모든 ‘경우의 수’에 대응할 수 있게끔 검술을 완성시킨 탓이다.
한낱 인간이,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게다.
저건 진리의 문 안쪽에도 없는 종류였다.
애당초 등록될 수도 없는 검술이고.
꿀렁! 꿀렁!
검은 기운이 꿀렁이며 이내 팔이 재생시킨다.
궤멸이 지닌 ‘반전’의 능력.
이미 육체의 한계를 벗어던졌기에, 직전의 타격을 반전시키는 것 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눈속임인 것을.’
이어, 궤멸은 빌헬름의 검술을 간파했다.
검술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저것은 일반적인 검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결(結)이라 부르는 것.
그 결을 읽고, 공명하는 게 골자다.
‘결(結)이 없다면 공명하지 못할 테지.’
평범한 생물에게 그러한 행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궤멸은 생물이 아니다.
사물도 아니며, 차라리 ‘현상’에 가깝다.
이미 일으켜진 ‘현상’을 잘라낼 수 있을까?
【궤멸의 옥】
쩌어어억!
이는 궤멸의 가장 강력한 권능.
모든 걸 ‘궤멸’ 시키는 현상의 강림이다.
이윽고 궤멸의 육체가 분신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12개의 육체.
정통의 숫자 11과 그를 더한 12의 완성이다.
그중 하나의 육체가 이내 검은색의 구슬과 같은 형태의 ‘옥’으로 변했다.
쓸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있지만, 그렇기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권능 중 하나.
그가 이 최강의 권능을 쓴다는 건.
-너를 인정하마, 팬텀.
상대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고작 한 번 타격이지만 궤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팔이 잘린 순간 알았다.
‘검으로는 이길 수 없다.’
진리의 문에서 학습한 수많은 검술들.
최강이라 불렸던 검사들보다도.
······ 빌헬름이 더 우위에 있음을, 시인한다는 의미였다.
검의 극의.
인간의 수준을 가벼이 넘어서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낸 존재의 검술이다.
놀랍지 않은가.
필멸자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내다니.
과연 황제의 피로 태어난 인간이다.
물론 궤멸이 되었어야할 황제는 천상의 천신과 다름이 없으니, 그 천신의 피로 만들어진 빌헬름이 인간이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래봤자, 천상에는 닿지 못한다.
이 정도로는 천상에 닿을 수 없다.
멸망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궤멸의 옥’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팬텀이 ‘멸망의 힘’을 사용한다면, 놈이 지키던 인간들도 다 소멸할 것이다.
이곳 미궁 도시를 넘어 판게니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이 갈 터.
지키려는 놈이 모든 걸 파괴하는 힘을 과연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어디 한 번 네놈이 지닌 ‘멸망’으로 막아보거라.
타악-!
궤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쩌적!
‘궤멸의 옥’에 금이가며.
지이이이이잉-
어둠이 넓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내 팽창한 어둠은 블랙홀과 같이 모든 걸 빨아들였다.
먹구름을, 주변을 수놓은 빛과 어둠조차도 모조리.
닿는 전부를 허무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궤멸의 옥’이었으니.
이는 현상이다.
지고불변. 바뀌지 않는, 결 따윈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현상!
정해진대로 휘두를뿐인 검술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멸망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거든 그대로 함께 소멸하리라.
그때였다.
“··· 벽(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