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5)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5화
폭주
룬을 먹은 즉시, 압셀은 변했다.
짐승처럼 포효하며 모든 걸 잡아먹는 괴물이 됐다.
압셀이 홀로 뛰쳐나가 기사들을 살육하는 사이.
디트리히는 철창 안에 갇힌 ‘그’를 구했다.
“······.”
하지만, 철창 안에 갇힌 그의 모습을 보고 디트리히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너무 끔찍했으니까.
찢기고, 먹힌 저 육체를 ‘육신(肉身)’이라 칭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도리어 덩어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만 같았다.
아직 재생되지 못한 부위들이 처참하게 드러난 상태.
하지만, 디트리히는 움직였다.
쇠사슬을 풀고, 웃옷을 벗어 토막 난 덩어리를 동여맸다.
‘어찌 이토록 끔찍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세계가 달라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종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세계도 생명에 대한 존엄이라는 게 있을진대.
룬을 먹고 진화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묶어놓는 육신에 대한 존경심이 존재해야 정상 아닌가.
하지만, 이들에겐 그런 게 없다.
분명히 말이 통하는 수준의 지능이 있음에도 진화를 위해, 힘을 위해, 스스로 짐승이 되는 길을 택했다.
아니, 짐승조차도 이런 짓을 벌어진 못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경이 없는 이들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을 리가.’
디트리히의 두 눈이 분노로 얼룩졌다.
이들이 판게니아의 존재가 아님이 다행으로 여겨질 수준이었다.
―너는······ 판게니아의 인간인가?
그때였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압셀이 시간을 끌 때 빠져나갈 것이다. 잘 붙잡고 있어라.”
붙잡을 팔도 없지만, 디트리히는 애써 지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진짜로 빠져나가는 게 중요했으니까.
―아아. 열쇠의 주인이었구나. 느껴진다. 수호 성검의 의지가······.
휘잉! 휘잉!
허리춤에 맨 수호 성검이 빛을 발했다.
―압셀론은 룬드말 왕의 공격을 버티지 못할 것이란다. 룬드말 왕은 이미 압셀론의 룬을 반쪽이나 흡수했으니······.
“저번이랑 말이 다르잖아!”
육체를 먹여 흡수시키라고 했다.
그러면 압셀이 힘을 되찾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데, 말이 다르다.
―그리하면 압셀이 나를 전부 먹을 줄 알았어. 너의 룬과 육신은 무척이나 투명하고 밝으니, 너로 인해 폭주하여 나라는 존재까지 먹어치우거든,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단다······.
“지금은 승산이 없단 건가?”
―왜 나를 먹지 않았을꼬. 압셀론······ 왜 나의 고통을 끝내주지 않았을꼬······.
그는 절망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넌 드워프의 신인가?”
디트리히는 지하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한때, 그리 불리었던 적이 있는 것 같구나.
“그럼 포기하지 마라. 그들도 너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디트리히는 땅굴에서 보았다.
블랙을. 블랙의 의지를 잇는 드워프들을.
모두가 자신들의 신을 구하고자 필사적이었다.
끝났다고 여겨지는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건 오직 그들의 신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다.
고통이 끝나길 바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중이었다.
―이길 수 없다. 절대로 그들은 이길 수 없어······.
“그건 모르는 거다.”
―아니야. 판게니아가 멸망하지 않은 건 의외이나, 그곳에서 넘어왔다 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왕들은 차원이 다르단다. 도리어 너로 하여금 저들은 판게니아로 넘어갈 생각을 하겠지. 아아··· 최악이구나. 최약이야.
드워프의 신은 탄식했다.
압셀론의 룬을 먹어치운 룬드말 왕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이미, 백신전의 주신을 넘어서는 무력을 지니고 있던 존재가.
드워프들이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이어간다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멸망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최악인 건.
룬드말 왕과 레메게톤 왕이, ‘판게니아’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기사들을 이끌고 판게니아로 향한다면, 어쩌면 ‘멸망’의 출현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여태껏 저들이 이곳에 남아있던 이유는 판게니아가 멸망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판게니아에서 또 다른 존재가 넘어왔으니, 아아······ 전부 내 잘못이로구나.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어.
후회했다.
처음부터 드워프들을 이끌고 이 황무지 같은 세계로 넘어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들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도망자의 말로였다.
허나, 기껏 살아남은 판게니아가 그로 인해 완전한 파국을 맞이할 걸 생각하니,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판게니아의 상황은 어떻지? 백신전은 남아있니?
“그게 뭐지?”
―제국은? 6각의 영웅들은? ‘마탑’은? 드루이드 대족장들, 세계수는 몇 그루나 남았지?
“아르혼 제국은 있다만, 6각의 영웅들은 모두 죽은 지 오래다. 마탑은 뭔지 모르겠군. 그리고 드루이드는 종족명인가? 세계수는 공식적으로는 한 그루, 비공식적으로는 두 그루라고 알고 있다. 명예의 성소에 ‘명예의 세계수’가 최근 나타났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아르혼은 제국의 사대 가문 중 하나의 이름일 텐데, 그새 제국을 찬탈한 건가? 사흉과 함께 몰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두 여신께선 남아있으시겠지?
“여신 ‘레아’께선 ‘멸망’과 함께 소멸했고, 여신 ‘피나’께선 심연에 잠기지 않은 남은 대륙을 천공으로 떠올리셨다고 역사서에 적혀있다.”
―아아··· 그럼 백신전도 사라지고, 두 여신께서도 힘을 잃으셨겠구나. 찬란했던 제국과 마도 문명도 몰락한 게야. 고작 한, 두 그루의 세계수로 지탱하는 세계라면 그 한계는 뻔할 테니······ 절대로 저들을 막지 못하겠구나······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군.”
―신이 남아있긴 한가?
“투신 카라스, 용신 아인하사르라면 있······.”
―투신 카라스? 그 녀석은 백신전의 신이 아닌 반신(半神)이란다. 흉신과 재의 주신이 탑을 관리하도록 신격을 부여한 반쪽짜리 까마귀야. 용신 아인하사르는 있으나 마나 한 녀석이고. 쓰레기 같은 용신회는 말로만 세계를 수호한다고 하지, 제대로 된 용신을 보내주지 않으니······.
아아.
드워프의 신은 더욱 강하게 탄식을 흘려냈다.
룬드말 왕과 레메게톤 왕이 판게니아로 넘어가면, 끝장이다.
그 둘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 턱이 없었다.
멸망의 출현 이전에도 두 왕이 판게니아로 넘어왔다면 답이 없을 수준인데, 모든 신과 문명이 사라진 지금의 판게니아는 절대로 그 둘을 막지 못할 것이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만, 나 혼자 넘어온 게 아니다.”
―혼자이든 둘이든, 숫자가 몇이든 아무 의미가 없단다. 이제 늦었어.
“······아직 ‘팬텀’이 계신다.”
―팬텀? 그게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
“엘프 여왕에게 ‘황금률의 드루이드’라 불리더군. 그리고 소문이 맞다면, 혼자서 제국을 물리칠 정도로 뛰어난 분이시다.”
―황금률의 드루이드? 하하. 웃기는구나. 엘프들도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무엇인지 모를 텐데. 하물며······ 제국은 몰락한 게 아닌가. 설령 말한 모든 게 사실이라 한들, 역부족이란다.
“······믿음이 부족하군.”
―수호 성검······ 그 열쇠를 가져왔으니, 저들이 판게니아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야.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디트리히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곳을 탈출하는 게 먼저였으니.
꽈아아아앙!
쿠르르릉!
탑이 흔들린다.
압셀이 뚫어놓은 길은 짓이겨진 시체투성이였다.
막아선 기사들은 모두 ‘룬’을 잃고 죽어있었다.
―아이야. 나를 압셀론에게 먹여다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밖에 답이 없구나. 내 존재 전체와 ‘룬’을 먹고 압셀론이 ‘룬드말 왕’을 상대하게 해야 해.
“드워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압셀도 너를 먹기는 싫어할 거다.”
먹고 싶었다면, 탈출하면서 이미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압셀은 디트리히도, 그리고 드워프의 신도 먹지 않았다.
폭주하는 와중에도 둘만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 아직 일말의 이성이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압셀은 드워프로 살며 드워프를 존중하게 된 것 같다.
만약 ‘세 왕’중 하나로 폭주한 것이라면 절대로 둘을 살려둘 리 없으니까.
“······ ‘그걸’ 들고 어디로 향할 생각이냐.”
그때였다.
한창 출입구를 찾아 복도를 달리고 있던 찰나.
디트리히의 앞을 막아선 기사가 있었다.
―수호기사 아발론······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드워프의 신은 모든 의지를 잃었다.
디트리히가 수호기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미 깨달은 탓이다.
디트리히가 천만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
“얌전히 넘긴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수호기사 아발론의 전신에는 검은 촉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촉수들은 디트리히의 사방을 둘러쌌다.
도망칠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스릉.
디트리히는 수호 성검을 꺼내 쥐었다.
아무리 불가능하다 한들, 포기할 순 없었으므로.
반드시 탈출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뤄야 할 꿈이 있었다.
“쯧. 그럼 고통스럽게 죽일 수밖에.”
스르르르!
사방에서 뻗어온 촉수들이 영역을 좁히기 시작했다.
디트리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순간.
촤악!
쿵!
갑자기, 촉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수호기사 아발론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여기서 뭐 하냐, 너네.”
“······ 누구?”
“나다. 사탄. 그런데 뒤에 매고 있는 덩어리는 드워프의 신인가?”
“사탄? 그 마검······?”
디트리히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마검이 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흡···!”
디트리히가 급히 검을 겨눴다.
자신을 사탄이라 칭한 청년의 옆에,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과 압셀을 납치했던 기사였다.
“아, 이 녀석은 적이 아니니까 경계 안 해도 된다. ”
“수호기사가 적이 아니라고······?”
“그래. 내 꼬봉이다.”
“꼬, 꼬봉······?”
수호기사를 두고 꼬봉이라니.
“······.”
정작 수호기사 안드로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 정말 마검 사탄님이십니까?”
디트리히가 힘겹게 묻자, 사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모습이 어떠냐? 좀 멋지지?”
“······ 예.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대체······.”
“그놈이 만들어줬다.”
“그놈······이 혹시 팬텀님이십니까?”
“그래!”
“그, 그럼 팬텀님께서도 이곳에 계십니까?”
“아니. 놈은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땅굴에 남아있다.”
“할 일이요?”
“아아. 내 영원의 반려, ‘겨울’의 몸을 만들고 있지!”
“······.”
“녀석은 지금 초집중 중이다. 나도 이 전쟁을 나름대로 평화롭게 끝내고 싶으니까 굳이 그 집중을 깨지 않았다. 녀석이 이곳에 오면 대화 자체가 안 돼.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아직 네가 살아있으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제가 살아있어서 무슨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까······?”
디트리히가 묻자, 사탄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팬텀. 그 녀석이 이 세계를 끝장내지 않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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