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6)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6화
천상이 다시 열렸다
세계를 종말시킨다?
누가?
디트리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에서 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지금 사탄이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얼핏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종말.
끝이며, 없앤다는 의미다.
아무리 팬텀이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하다고 해도,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 규모였다.
―헛소리를 하는구나. 사탄이여, 그대가 어떻게 육신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전쟁을 평화적으로 끝낼 방법은 없다.
“그 모습으로 잘도 지껄이는군.”
사탄은 슬쩍 디트리히가 동여맨 살덩이를 바라봤다.
이곳에 잡혀온 드워프의 신이 어떤 고초를 당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숱하게 먹히고, 또 먹혔겠지.
고통에 정신을 놔버려도 진즉에 놔버렸을 것이다.
드워프의 신에게선 아무런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룬드말도, 레메게톤도 내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내가 말하면 들어먹는 시늉이라도 하겠지.”
두 왕의 이름을 언급하며 사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이 세계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균형을 지켜온 존재.
이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사탄에게 빚이 있다.
―넌······ 최근의 두 왕을 본 적이 없나 보구나. 그놈들은 미쳤다. 힘을 탐하는 욕망이 도를 넘어섰어. 만족을 모르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한 성격 하는 놈이니까.”
―널 잡아먹으려고 들 것이다.
“영원의 반려와 맺어지기 전에 죽을 생각 없는데.”
―미련한······.
“실망이다. 예전에 보이던 패기는 어디 간 거냐? 드워프들을 이끌고 세계를 탐구하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놈이 정말 맞긴 한 거냐?”
―너는 모른다. 몰라서 그런다. 두 왕의 그 탐욕을 아직 마주한 적이 없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난··· 나는······.
드워프의 신은 말꼬리를 흩트렸다.
두려움에 겁을 먹은 것이다.
그 정도로 끔찍한 기억들의 연속이었다.
―판게니아는 끝장이야. 압셀론과 사탄까지 먹어치우면 대체 누가 룬드말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맛이 가버렸군.”
사탄은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의 신은 이제 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초라해졌다.
과거, 이 세계로 넘어와 전사들을 이끌던 그 용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잔뜩 위축된 겁쟁이만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이 맹신하는 ‘팬텀’이라는 자도, 룬드말과 레메게톤에겐 닿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압셀론에게 우리를 먹여야만 한다. 압셀론만이 희망이니!
“안드로.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사탄이 수호기사 안드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냐고 묻는 건지는 뻔했다.
팬텀이 룬드말과 레메게톤에게 닿을 수 없는 것 같느냐고 묻는 것이다.
“······.”
안드로는 입을 닫았다.
그가 모시는 룬드말 왕은 위대하다.
세상을 아우를 만큼 압도적인 힘을 지녔다.
수호기사들은 구색을 갖추기일 뿐, 그를 지킬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강력한 탓이다.
하지만.
동시에, 안드로는 보았다.
‘···팬텀.’
땅굴에서 작업중인 ‘팬텀’을 말이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사랑했다.
비록 무미건조하고, 정지된 듯 풍파 없는 세계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세계였으니까.
계승해온 수많은 ‘룬’을 그는 숭상했다.
그 가치가 무(無)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허나, 최근 왕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면 그 결과가 어떨지도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전쟁이 평화롭게 끝나길 바랍니다.”
애써 수호기사 안드로가 입을 열었다.
―대체 ‘팬텀’이 누구기에? 판게니아의 새로운 주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 설령 주신(主神)이라 할지라도, 여신들께서 돌아오신다 해도 룬드말 왕은 막을 수 없어!
당연히 드워프의 신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백신전의 신이었다.
두 쌍둥이 여신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이미 종족을 다스리는 주신의 격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도망치며 신격이 낮아졌다 한들, 필멸자들을 상대로는 무적과 같은 신위를 발휘하는 게 그였다.
그러나 이 세계의 왕들은 달랐다.
그들은 필멸자인 주제에 불멸자보다 높은 격을 쌓았다.
전성기의 그가 맞서도 필히 패할 만큼.
설령 두 여신이 온다 해도 감당 불가한 수준의 괴물.
한데, 팬텀은 그보다 더 격이 높기라도 하다는 뜻인가?
“놈은 그딴 것이랑은 관계가 멀어.”
사탄은 답했다.
그도 팬텀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룬을 새로이 해체하며 완성할 때, 엿본 것이다.
놈의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신과 같은 존재도 있었고, 신을 넘어서는 영혼도 있었고, 더 복잡하게 얽힌 혼돈도 있었다.
하지만, 사탄은 그 안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를 읽어냈다.
그 존재의 정체에 대해, 사탄은 툭 내뱉었다.
“신보다는, 멸망에 가깝지.”
―멸망······?
“나도 자세히는 몰라. 어떻게 그런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 건지 솔직히 감도 안 잡히거든. 모든 진화의 계보를 지켜본 나조차도 저런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 정도야. 저 너머, ‘천상의 잡것’들 중에서도 저런 놈은 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쿠르르릉!
탑이 거세게 흔들린다.
룬드말 왕이, 등장했다는 증거.
사탄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굳이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최대한 평화롭게 해결해 보자고.
사탄이 작게 중얼거리며 룬드말 왕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
“대단하구나. 이토록 빠르게 흡수하다니!”
룬드말 왕은 감탄했다.
탑을 뒤흔드는 압셀론.
폭주한 그 녀석은 빠르게 룬을 먹어치워 흡수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마력이 강해지는 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룬’은 흡수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전체를 먹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니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룬드말 왕 역시 압셀론의 룬을 아직 전부 흡수하지 못했다.
‘한 번 비워내서 그런가?’
압셀론은 한 차례 룬을 잃었다.
룬드말 왕과 레메게톤 왕이 압셀론의 룬을 반쪽씩 먹어치운 탓이다.
허나, 기적적으로 룬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드워프의 신이 수작을 부려서 살린 것이겠지.’
그 남은 룬의 잔재를 드워프의 신이 자신의 심장과 결합하여, 압셀론을 드워프의 모습으로 부활시킨 게 분명했다.
당연히 한 번 비워진 룬은 다시 채워지길 욕망할 테고, 그 결과 ‘전율이 일 정도로 빠른 흡수율’을 보이게 된 것이다.
‘다 먹어치워서 어디 한계까지 도달해 보거라.’
그래서다.
룬드말 왕이 압셀론의 폭주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건.
다시 한번, 채워진 압셀론의 룬을 먹는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상상도 안 갔으니까.
지금도 이미 세계에 적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유일한 대적자는 같이 룬을 먹은 ‘레메게톤’ 뿐이었다.
순식간에 압셀론은 수호기사들을 죽이고 룬을 강탈했다.
룬드말 왕이 자신을 따르던 수호기사들을 먹이로 넘긴 셈이다.
그 직후- 룬드말 왕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압셀론. 형편없는 모습이 되었군.”
【키이이이이-】
워낙 빠르게 진화한 탓일까.
육체의 성장 한계를 과도하게 넘어서서, 현재 압셀론의 모습은 정말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거대해진 몸집과 어깨 위로 솟아난 수호기사들의 머리들.
게다가 전신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형형색색의 ‘룬’이 박혀있다.
저런 모습은 처음 봤다.
한 개여야 할 ‘룬’이, 그것도 죽어야만 나타나는 룬이 저런 식으로 전신에 돋아난 모습은 말이다.
아마도 드워프의 신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아닐는지.
쩌릉!
룬들이 빛을 냈다.
순간 압축된 고도의 마력이 룬드말을 향해 달려들었다.
룬드말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고오오오오!
그의 손바닥 가운데가 벌어지며, 입처럼 변했다.
이내 나타난 ‘입’은 가공할 마력의 줄기를 모두 흡수해버렸다.
“생각보다 맛이 없군. 돌려주마.”
휘이이잉!
꽈르르르르릉!
입안에서 압축된 마력이, 배가 되어 압셀론을 향해 뛰쳐나갔다.
【크아아아아!】
압셀론이 양팔을 들어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왜. 너의 것이 아니냐. 네가 맛봐도 맛이 없더냐, 압셀론?”
룬드말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덧 하늘 위엔 바로 옆에 있듯이 커다란 붉은 달이 떠 있었다.
영역을 지배하는 룬드말의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쩌어억!
붉은 달의 가운데가 찢어지며, 또 다른 ‘입’이 나타났다.
그것이 등장하자 압셀론의 전신에서 마력이 빠져나갔다.
강제로 상대를 침식하여 모든 걸 먹어치우는 달.
“어디,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자꾸나.”
일전 압셀론을 죽인 권능이었다.
압셀론은 비명을 내지르고 몸을 비틀어댔다.
이 절대적인 권능 앞에선 모두가 무력하다.
“거기까지 하지, 룬드말.”
“······?”
그때였다.
영역을 찢으며 나타난 누군가.
룬드말은 목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곤, 눈살을 찌푸렸다.
“······사탄?”
“그래. 나다.”
“그 더러운 모습은 뭐냐.”
“···뭐? 더러워?”
“끔찍하군.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주겠다.”
솔직한 룬드말의 평가에 사탄의 표정이 굳었다.
여태까지 이런 혹평을 쏟아낸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여대는 거야? 이 모습이 안 멋있다고?”
“말 걸지 마라.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
사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결국, 참지 못한 사탄이 말했다.
“죽여버린다. 너.”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만. 한참 찾아다녔는데 제알아서 내 영역에 걸어들어올 만큼 멍청할 줄은 몰랐구나.”
타악!
룬드말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달이 두 개로 증식했다.
사탄의 전신에서도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룬드말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탄. 진화한 건가? 그런데 하필이면 조금 큰 드워프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다니. 압셀론도, 너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군.”
“······.”
“아아, 말하기 힘들겠지. 이해한다. 압셀론의 룬을 먹고 내 권능도 강화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야.”
“······압셀론은 왜 죽이려고 한 거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우릴 먼저 죽이려고 한 건 압셀론이다만.”
“너희 셋 중에 압셀론이 가장 평화주의자였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랬나? 그런데 넌 뭘 하고 있었지? 설마, 드워프들을 지켜주고 있었나?”
“······.”
“웃기는군. 압셀론도, 사탄 네놈도. 전부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하구나. 침략자를 감싸고 도는 꼴이라니.”
“···무엇이 너희를 바뀌게 만든 거냐?”
사탄은 정색했다.
룬드말이 예전에 비해 너무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이러한 극심한 변화가 갑자기 일어날 리 만무했다.
동시에.
씨익!
“천상이 다시 열렸다.”
룬드말 왕은 답했다.
닫혀있던 천상이, 다시 열렸노라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네가 지키려는 드워프들의 고향이 판게니아랬던가? 레메게톤은 이미 판게니아로 떠났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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